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
( Chéng zhě, tiān zhī dào yě; chéngzhī zhě, rén zhī dào yě. )
---- 子思 《禮記·中庸》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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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bestirnte Himmel über mir, und das moralische Gesetz in mir. ---- Immanuel Kant (KpV: AA 05: 161.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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ἃ γὰρ δεῖ μαθόντας ποιεῖν, ταῦτα ποιοῦντες μανθάνομεν (What we have to learn to do we learn by doing.)
---- Ἀριστοτέλης (Nic. Eth. 1103a33)
Dans le second chapitre, il suppose d’abord certaines vérités peripatétiques. 1°. Que tous les corps naturels ont d’eux-mêmes la force de se remuer : ce qu’il ne prouve point ici ni ailleurs. Il assure au contraire, dans le premier chapitre du second livre de physique, qu’il est ridicule de s’efforcer de le prouver, parce que, dit-il, c’est une chose évidente par elle-même, et qu’il n’y a que ceux qui ne peuvent discerner ce qui est connu de soi-même de ce qui ne l’est pas qui s’arrêtent à prouver ce qui est évident par ce qui est obscur. Mais on a fait voir ailleurs qu’il est absolument faux que les corps naturels aient dans eux-mêmes la force de se remuer, et que cela ne paraît évident qu’à ceux qui, comme Aristote, suivent les impressions de leurs sens et ne font aucun usage de leur raison. [547]
아리스토텔레스는 2장에서 우선 자기 학파에서 내세우는 어떤 진리들을 가정한다. 첫째, 모든 자연물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런데 이 점은 이곳에서도, 또 다른 곳에서도 입증되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자연학 2권 1장에서 이를 증명하려고 노력을 기울이는 일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확신한다. 그의 말로는 그 자체로 명백한 것이고, 그 자체로 알려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사람들뿐인데, 이들은 모호한 것을 통해 명백한 것을 증명하는 데 집중하는 이들이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자연물이 스스로 운동하는 힘을 가졌다는 것은 완전히 거짓임을 보여 주었다. 이 점은 아리스토텔레스 같이 감각의 자극을 따르고 이성이라고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명백해 보일 뿐이다. [137]
REVERSE PSYCHOLOGY | 13 LESSONS on how to use REJECTION to your favor
Marcus Aurelius' Stoicism to maintain composure, focusing on self-improvement, leveraging personal virtues, and practicing healthy emotional detachment, ensures you remain unaffected by others' indifference.
내가 너무 잘하는 건데. 비극은 이마저 해석들이 가관들이시라는 것. 우리나라 성차별 문화는 이 국면에서 극명. 한 신체에선 멋과 힘이 다른 신체에선 고얀 오물이나 한가로운 방종이라면서.
작은 비극은, 그건 되돌릴 수 없는 회전들이었다는 원리에 무감한 교수님. 가능성을 끊는 자유 의지.
고로 천 탕, 만 탕은 일방적 충성 욕구. 이기적인 능력. 소리 없는 진혼무. 굳이 끄집어내지 않으면 편리하고 안전한. 시종일관 무위자연의 광막한 숭고 아래 겸허로움. 선택적 친화력의 슬기에 적응할 단념. 그러나 그렇기에 더더욱 천연히 피워 냄의 감격을 잊지 말라. 生則逆.
더불어민주당 국민소통위원회(최민희 위원장) 주관 2024-05-31 19:00 서울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
[매일매일불금쇼/철학: 박구용] 5.18 광주 시민 이야기
> 역사를 대하는 방식 4가지
(1) 사실
(2) 이념
(3) 서사(이야기 = 사건들의 연결 - 문학/예술)
(4) 알레고리(증언될 수 없는 증언. 이야기될 수 없는 이야기. 흩어져 있는 것들을 연결)
=> 적용 to (1)
1980.5.17 계엄령 선포로 내란을 일으킨 신군부에 광주 시민들이 5.18-27 열흘 동안 저항한 사건. <경과> 18일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학생들과 군부대 충돌. 21일 시민들을 향해 발포. 당일 오후 집단 발포. 자국민을 학살하는 군인을 신군부의 사병으로 인식한 시민들이 도청 앞 분수대에서 결집대회를 개최, 토의를 거쳐 국방을 위해 자체적으로 군을 조직.
Brunello Cucinelli on Humanistic Capitalism in an Age of AI VOICES2023 | The Business of Fashion
At BoF VOICES 2023, the Italian designer spoke about the balance required to run an ethical fashion business while embracing new technologies.
Since 1978, Brunello Cucinelli’s namesake brand has been a standard-bearer for both luxury clothing and a more responsible way of doing business. At a time of great change, Cucinelli believes that businesses must strike a balance between embracing technological innovation that could threaten livelihoods, like AI, to push creativity forward while also keeping humanity at the heart of business.
“I believe in a kind of contemporary way of capitalism. We are a listed company. We do want to make a profit, but a fair profit at that. There should be a balance between profit and giving back,” he explains.
Key Insights:
- Cucinelli’s approach to labour is guided by his working-class upbringing and seeing his father was demeaned and belittled at work. “I saw tears in his eyes and that was my source of inspiration to have a completely different vision of the world,” he says. “I wanted my human beings to be surrounded by pleasant places. I wanted them to make handsome money. And I wanted them to be treated like thinking souls.”
- This philosophy of ‘humanistic capitalism’ also extends to customers. “We need to redress the balance. Shoppers want to know exactly where a specific item has been made, how it's been made, whether creation has harmed it along the process. We need a new social contract with creation,” he explains.
- Mr Cucinelli believes artificial intelligence offers both solutions and challenges. “Technology is a blessing from creation, but sometimes it steals the soul that creation bestowed upon us,” he says. However, he adds, when used correctly, “AI will be just a partner for us, and we will rediscover the value of truth and human beings.”
When it comes to planning for the future of his company, Cucinelli hopes his successor will share his humanistic ethos. “I would like my company to still be there for the coming 100, 200 years. And I would like whoever runs it to keep believing in a contemporary capitalism, to make a fair profit while respecting human beings and creation.”
Formal comparisons reveal both ZERO and Dansaekhwa artists were interested in interrogating the space of painting—its defining characteristics, the tension between flatness and depth, a renegotia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artist’s “hand” and its index—and its metaphysical and phenomenological implications. Both groups, either in the wake or the midst of wartime devastation, political and cultural oppression, and/or sociopolitical and economic turmoil, sought to turn painting inside out, to understand it from all angles, planes, and surfaces. Questioning the very nature of painting, they challenged previous definitions to create works absent what might have been considered painting’s one defining characteristic: the application of liquid pigment on a surface.
Der formale Vergleich offenbart, dass sich sowohl die ZERO- als auch die Dansaekhwa- Künstler*innen dafür interessierten, den malerischen Raum – seine bestimmenden Merkmale, die Spannung zwischen Fläche und Tiefe, eine Neuverhandlung der Beziehung zwischen der »Hand« des Künstlers und ihrer indexikalischen Spur – sowie seine metaphysischen und phänomenologischen Implikationen zu befragen. Ob während oder nach Zeiten kriegerischer Verheerungen, politischer und kultureller Unterdrückung und/oder soziopolitischer sowie wirtschaftlicher Turbulenzen – beide Gruppen versuchten, die Malerei umzukrempeln, um sie in all ihren Winkeln, Ebenen und Oberflächen geistig zu durchdringen. Indem sie das Wesen der Malerei selbst befragten, stellten sie auch bis dahin gültige Regeln infrage. So schufen sie Werke, die ohne das vermeintlich entscheidende Merkmal von Malerei auskamen: das Aufbringen flüssiger Farbpigmente auf einer Oberfläche.
👍😍
Lee’s conception of the color white as “a void for consciousness” or “a vessel for thought” results in paintings that act as propositions of how to represent the emptiness contained within a vessel, in which absence is revealed only when adjacent to a counterbalancing presence. Lee’s previous works from the early 1970s included the outlines of everyday containers, but in the works at the Tokyo Gallery “the outlines have gradually begun to disappear, and … the delineation of objects has been reduced to the point where only a suggestion of their existence remains.”
Lees Verständnis von Weiß als »Leerstelle für das Bewusstsein« oder »Denkbehältnis « lässt Gemälde entstehen, die wie Thesen zur Darstellbarkeit der Leere in einem Gefäß wirken, in dem sich Absenz nur im Kontrast zu einer Präsenz offenbart. Unter Lees vorher entstandenen Arbeiten aus den frühen 1970er- Jahren befanden sich auch Umrisszeichnungen von Alltagsbehältnissen, doch in den Arbeiten, die in der Tokyo Gallery zu sehen waren, »haben sich die Umrisse allmählich aufzulösen begonnen, und […] die Darstellung der Gegenstände wurde derart reduziert, dass sie nur noch andeutungsweise existieren«.
😊💗
😭
😈
역사의 반복은 대문자 역사에서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역사는 일상에서 이름 없이 반복된다. 강약의 논리다. 생명의 역사가 이분법적 일원론의 세계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다름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가치 체계로 운영되도록 만들 텐가?
있었던 일을 없는 것으로, 없는 것을 있었던 일로 만들려는 모든 구체적인 시도들은 전부 하나를 가리킨다. 피해가 철저히 사회적인 개념이라고 해서 벌어지는 폭력도 그만히 무마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폭력은 물리적이다. 다음 우주가 안고 간다. 사회적 힘이 바꾼 순서는 가능성의 시공을 뒤튼다. 그 안의 있었던, 있었을, 모든 것들은 타나토스.
눈칫밥 먹는 보람이 가득하다 못해 하늘을 찌른 날! (물론 그 밥에 답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롱. 다만 마지막 마중물이었을 뿐.)
룰루랄라~ 베토벤 교향곡 중 제일 좋아하는 넘버!
++ (적기 귀찮아서 빼먹었던 부분)
하지만 이로써 내가 진정 이해하게 된 것은 바슐라르가 이름 지은 자율적 필연성이고, 벤야민이 만난 클레의 천사이다. 니체의 용맹. 후썰의 통찰. 싸르트르의 분노와 푸코의 야망도. 넓은 의미의 철학사 전체라는 하나의 틀에서 주요 도로들의 위상 관계를 남의 말로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진짜 도로들을 하나씩 내 발로 샅샅이 걷다 보면 어느 순간 한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에 각기 다른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그 많은 문제들이 결국 하나의 문제로 수렴된다. (오늘부터 난 히스토리아포비아에서 벗어난다.)
그동안 동아시아의 학자들이 특정 문화권의 언어와 문법에 의해 발생한 인식의 한계 문제라고 입을 모아 결론을 내렸던 연유에 대한 의심도 풀려 버렸다. 한편으론 극장의 우상에 무책임하게 빠지지 않기 위해서 다른 한편으론 컴플렉스로 인한 패배감을 비판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차별성 강박에 불과하다고 매도하는 올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오락가락 끊임없이 도돌이표를 찍을 일도 없어졌다.
왜 한쪽에서는 철학사 기술에서 배제할 만하다고 보는 베르그손을 다른 쪽에서는 철학사가 플라톤과 베르그손으로 요약된다고 말하는 정도로 평가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죽기 전에 풀지 못하는 문제는 있어도, 죽어도 풀리지 않는 문제란 없다. 잊거나 버려도 되는 문제는 없다.
+
그제 인간을 잘못 만난 관계로 허리가 한 달 전의 상태로 후퇴, 그동안 공든 탑이 무너져 속상하다. 다시 수 백 시간을 자야 한다. 😭 악화된 통증보다 그 사실이 더 무섭다. (추간판을 아물게 하는 체액은 수면 중에만 분비됨. 일단 아물어야 운동 가능. 다시 찢어지지 않을 만큼만 운동 강도를 서서히 올려 나감.) 내년에도 무일푼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
+
수입이 생기면 십일조를 하리라 늘 생각해 왔건만, 평소 특별히 경외하던 선생님으로부터 라티움어 (무려 입문) 직강을 받는 (나는야 자랑스러운 7기) 행운을 공짜로 누리기가 괴로워져 결국 (후원도 소속도 없는 free한 낙동강 오리알로서) 후원회 등록. 비록 형편상 최소액이지만.
**학당 후원회원 가입 신청을 완료하였습니다. 선생님의 관심과 후원은 지난 십수 년 이상을 재야의 선비로서 묵묵히 그리스·로마 원전 연구에만 매달려온 학당 연구원들에 대한 지원은 물론 우리나라 인문학 발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양심이 없지만, 난 있으니까. (초면에 편찮으신 걸 뵈니 더욱 괴롭...)
학당이 나의 밑거름이었다. 학당 아니었으면, 내가 나 되는 데 실패했다. 중단되었을 것. 학교 아닌 '학교'에서 맞은 폭탄들을 제거, 복구, 재건해 주는 것이 나에게 줄곧 진짜 학교가 되어 준 학당이니까. 날 사람으로 대해 준 것도, 조건 없이 학생으로 여겨 줬던 것도. 대학원생이라고만 하면 일단 당연히 연구하는 줄로 생각하는 것도. 심지어 내 연구가 가능하게 해 줬던 것도.
어떤 느낌이 있기는 했었다. 아픈 덕분에 바로 확인하지를 못했는데, 아직 상태도
안 좋고 치워 놓을 수 있는 책을 고르는 일을 하려다 보니 잠시 펼쳐 본다는
것이...
결과만 가져오라고 하신다, 고 나로서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께는 이것도
말하자면 일종의 아름다움의 문제인가, 하는 의심이 처음 들었던 것은 "정도의
차이"라는 말씀의 뜻을 무려 두 달 동안 고민했던 끝. 덧붙여 철학이 아닌 '문학'
박사라는 미처 몰랐던/과중한 타이틀. "너무 급하지"와 "잡다하다"라는 힌트.
그리고 나서야, 설명항과 피설명항을 심사 후 삭제하려던 부록(원문)/본문 대비가
아니라 본문에서 구분해 주어야 하나 보다는 생각. 대조군이 있어야 하나 보다 하는
생각. 한두 가지만 선별해야 하나 보다 하는 생각. 무려 삼 년에 걸쳐서야
이해했다는 것을 이 책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사후약방문일 뿐인 현실일 수 있지만.
어쨌든 내가 처한 현실을 파악하게 되었다.
배경지식 + 대조 집합 + '두드러진 요인' => 좋은 설명
여영서(2022: 109):
두드러진 요인으로 거론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서는 좋은 설명을 할 수 없다.
두드러진 요인으로 거론되지 않던 것을 새로 거론하면서 좋은 설명을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그렇게 새로 거론된 요인이 두드러진 요인이 되는
새로운 설명이 제시되는 것이다.
나에게 논문이란 학적 기여(contribution)에 대한 자기 증명/방어, 즉 [입증]의 문제일 뿐이었다. 우리나라 전공들 90% 이상이 그럴 듯. 이걸 안 하고도
학술 논문이 성립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뜻을 이해를 못 함. 이건 절대 정도의
문제가 아님. 책도 달라요. 결국 '네가 무슨 연구를 하겠다고 그러느냐'는 뜻으로
이해함. 무엇이든 지적해 봐야 개선의 여지가 없는 학생이라서 안 하시는 줄로
믿음. (이건 여전 유효할지도.) 그래서 일반 논문을 쓰려면 필수인 정기 브리핑도
금하신다 믿음.
하여간 '두드러진 요인' 때문에 바슐라르가 아쉽긴 한데, 이 선택을 싫어하실 것
같은 느낌이 있는데, 먼저 여쭈는 건 안 된다고 하시고, 대안은 못 찾겠어서 무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한편, 내가 고민을 안 했던 것은 아니었구나. 결론의 내용이 입문 수준 교과서용
책에 나와 있는 걸 보니. 묘하게 안심되면서도 완전 허탈.
또 한편, 난 (초/중/고 매번 문예반으로 강제 이송되고, 재미로 인소 연재까지 해
본 자이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설명하기 위한 글은 써 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음.
기력뿐 아니라 기운도 없다. 왠지 멘붕. (아웃이라고 하시면 그냥 사극로맨스물에
도전하는 걸로...)
+
여영서(2022): 그럼 설명과 관련된 두드러진 요인이 무엇인지는 어떻게 밝혀낼 수 있는가?
여기에서도 맥락이 작동한다. 대개 한 사건의 원인으로 지칭될 수 있는 후보
요인은 여럿이 있다. 그 모두가 객관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관련이 있는
요인일 수 있다. 그중에서 두드러진 요인으로 뽑혀 그 사건의 원인으로 지칭되는
데에는 무엇이 두드러진 요인인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사람의 관심과 배경지식
등을 포함하는 맥락이 작동한다. [...] 다시 한번 설명이 맥락 의존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09-110]
두드러진 요인들만 하도 많이 찾아서 내 재작년에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미 몇 편을 썼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는데, 각각 정당화 가능하며(=
학문의 지형과 동원 가능한 장비 파악) 그럴 필요가 있는(= 내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 있는지 검토하는 데 또 엄청난 시간을 쓰고 있었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하나씩 해 봤으면 좋았겠다. 이후에 쓸거리만 십 년치는 쌓은 듯. 그리고 이제 정말 시간이 없어짐.
여영서(2022): 상충하는 답변이라면 하나가 좋은 것일 때 다른 하나는 나쁜 것이어야 하겠지만, 두 과학자의 답변이 모두 좋은 설명일 수 있는 것은 각각의 맥락, 특히 서로 다른 배경지식을 전제로 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설명은 맥락 독립적인 특성을 지니는 진리와 지식과 다르다. [117] 설명은 각각의 맥락 속에서 평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118]
일반 논문은 물론 수성전이다. 성패, 생사의 문제다. 학생과 지도교수의 관계는 축구/권투 선수와 감독과 비슷하다. 훈련도 그렇지만 적어도 정기적 연습시합(모의전투)이 없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건 경연 대회 같은 건가 보다는 생각이 요즘 겨우 들긴 했었다. 피겨 스케이팅의 프리 부문 예술 점수 같은.
여영서(2022): 반 프라센의 화용론적 설명 이론은 설명이 이론과 사실 그리고 맥락 사이의
삼항 관계임을 밝혔다. [...] 설명에 성공했다는 말도, 따지고 보면 맥락에
맞는 적절한 수준의 유의미한 정보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이 설명을 추구한다고 할 때 설명이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은, 결국 과학이 경험적으로 적합한, 그래서 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과학 이론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설명이 추구하는 이해를 객관적인 경험을
통해 확인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고, 그런 측면에서 설명의 맥락 의존성을
강조하며 설명 자체가 과학의 목표는 아니라는 반 프라센의 입장은 경험주의
원칙에 철저하게 충실한 것이다. [120]
인과관계 같은 것만이 연관 관계 R의 제대로 된 후보자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보면, 설명항과 피설명항을 연결시키는 연관 관계 R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모든 것을 맥락이 결정할 것이라는 반 프라센의 이론은
미완성이다. [121]
그러니까,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따르려고 했던 교수님의 기준과 동시에
만족시키려고 했던 일반적인(과학적인) 기준이 결국 R의 문제임을 진작 느끼고는
있있던 셈. 구체적으로 최소한의 '학술적 가치'가 있는지의 문제. 그리고 그 정당화
방법. 여기까지 고민하고 있으니 힘들지.
여기까지 제시해야 한다고 공학 교수님들로부터 교육받기도 했다. 과학의 '세계 이해'를 넘어, 공학은 '문제 해결'이니까. 문학(?)에서는 이
부분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이건 단순히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다.
++
이영의(2022): 이해는 심리 상태라는 점에서 주관적 개념이며, 그런 주관적 개념을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124]
세상은 넓구나.
그러나 이 세상에서 내가 지도받고 싶은 분을 찾았고, 온갖 우여곡절 끝에야 받아들여졌다. 도통 실감이 안 났었는데... 그랬는데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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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재생으로 우연히 듣게 된 영상. 베스트셀러들도 단 한 권도 읽지 않아서 잘 모르는 학자다. 기본적인 존경심은 있지만 나와 세계관이 다르다고 느껴서 좋아하지는 않는다. (가치관이 다르지 않더라도, 말하자면 내가 강하게 문제의식을 느끼는 지점들이 이 분한테는 맹점으로 남아 있다.)
[최재천의 아마존] 살인의 진화심리학
교수님께 좀 보여 드리고 싶다. 세계적인 과학자가 뚜렷한 학술적인 목적을 가지고 이미 확립된 선행 연구를 준거로 연구를 수행하고 국제 학술대회에서 발표하여 큰 호응을 얻은 성과가 나왔어도 '논문'으로 성립시키지 못하는 경우란 이것 말고도 무수히 많이 일어난다. 자료 수집과 분석에 동원된 학생은 정황상 아마 석사 과정 신입생일 확률이 높을텐데 일 년의 수고가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이 가장 치명적인 시기이다. 하지만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국내 논문을 썼더라도 자연계에서 국내 논문의 학술적 가치는 0이다. 산업계에서는 국내 실적을 선호하지만.) 하루하루 생활은 물론 강의 진행과 핵심인 세미나/정기 미팅, 교수님과의 관계부터 모든 것이 너무 다르다. 하나하나 모든 성공 가능성과 실패 가능성과 발전 가능성과 위험 가능성을 상시 검토한다. 교차 검증/비판해 준다. 그래도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다. 교수 연구실이 늘 열려 있는 이유다. 예전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8년을 바친 박사과정생 연구가 논문심사 당일 심사 시작 불과 몇 시간 전에 다른 나라에서 동일한 결과가 먼저 나왔다는 이유로 심사 자체가 취소된 일화. 나도 석사과정 심사 당일 새벽 지도교수님으로부터 내 주제는 그 교수님 전문 분야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불과 이틀 사이에 새로 발표된 해외 연구로 겹치는 것이 없는지 재차 확인하라는 연락을 받았었다. 박사과정 말년차라면 이미 자기 분야에서 피어-리뷰어로 요청을 받는 정도가 되기에 그때까지 훈련을 위해서라도 지도교수와 연구교수들로부터 끊임없이 리뷰를 받게 되고 물론 일상적인 페이퍼 리딩을 통해 관심 분야를 위주로 집중적인 리뷰를 하는 것은 더욱 기본으로 대학원 과정 내내 진행된다. 이곳에서는 줄곧 마치 퇴역 군인 또는 다시 고등학생이 된 듯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알을 깨기가 너무 힘들었다.
어제 대화 후 링크를 보내려고 찾다가 2017년 출국 준비 당시 (대학원 방식으로 진행되는 수업을 철학과와 이후 자연계로 소속을 옮긴 심리학과를 제외하면 재야의 대안 공간들에서만 찾을 수 있었고 그곳에서, 푸코를 예외로, 고강도로 진행되는 세미나에만 주로 참여했더니 개론적 해설 강의나 교양 강의에서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는 기초 지식이 오히려 부족한 상태였기에 애매한 이행기에 보충할 목적이었다.) 그리고 작년에 이어 (놀 시간이 없는데 너무 재밌으니까) 결국 세 번째로 듣게 되었다. 인류사에 평생 나만큼 많은 강의를 들은 인간이 있을지 의심스러운 지경인데, 나 자신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기껏 완벽한 오점에 불과하게 취급되므로 굳이 드러낼 이유가 없다. 아무튼, 추천하라면, 학술적인(=전문적인=직업적인) 측면에서는 (미국식 학제를 따르는 '일반'대학원생인데도 학계에서 완전 배제되어 있는, 국내 상황 치곤 특수한 형편상 취향과 무관히 당연하게도) 물론 정암학당에서 열리는 (현실적으로 대강 콜레지 드 프랑스 강의에 가까운) 호사로운 강의들이었지만, 특정한 크리테이아 없이 최고의 강의를 하나만 꼽으라면 주저없이 이것이라고 하겠다. 공학 석사 백수인 나에게보다는 현재 자신의 지식이 전문적인 사람에게일수록 절실해 보이는 강의. 그리고 비전문 직종일수록 의미 있을 강의. 언제 들어도 나의 상태에 대해서 가장 선명하게 깨닫게 해 주는 강의. 도올 선생님을 존경을 넘어 인간적으로 좋아하게 된 강의. 마음은 넓어지고 머리는 깨끗해진다. 자신을 인정하는 데 냉정해지고, 방향을 조정하는 데 용감해진다.
'오늘날의 문제의식'.
사실 2017년에는 여기에서 논하는 고전들의 대부분을 이미 헬라어 등 원문과 함께 가급적 해당 전공자/번역자와 함께 정독하고, 강의에서 다루지 않는 이후의 현대 철학 부분은 비록 분석철학 위주였지만 역시 각 분야 전공 박사 선생님들과 원전은 물론 국제 공인 정통 해설자의 원서와 비교하며 다른 중요 논문들과 함께 리뷰, 논쟁하는 대학원 세미나 수준을 거친 지도 한참 지난 상태였기에,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이 교양용 연강은 아우구스티누스/아퀴나스 부분을 제외하고 아무래도 지루하다고까지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해서 가볍게 쉬거나 청소할 때 틀어 놓는 식이었는데, 지난 수 년 간 의무적 칩거 생활로 너무 외부 자극이 없다 보니 원기 보충이 필요해서 아쉬운 대로 그동안 틈틈이 죽 다시 들어 봤더니, 내가 너무 지식 획득에만 치중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편중이나 왜곡들은 가려 들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배운 다음이니까, 맑은 관점을 가지려면 역시 외부(동아시아 고전학자)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
도올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SY 선생님의 글이 그토록 위력적인 것은 바로 그런 서로에게 외부인 시각들을 안일하게 피하거나 권위로 뭉개지 않고 고단하게 무전제에서 출발하여 가난한 마음으로 치열하게 고민했던 과정이 녹아 있기 때문이겠다.
이정우(2000/2012): 과학들과 형이상학은 서로를 배척하기보다는 상보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형이상학과 단절된 과학들은 결국 기술 및 자본주의의 하수인이 될 뿐이고, 과학들과 단절된 형이상학은 근거 없는 사변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개별 과학들이 형이상학을 멸시하거나 형이상학이 개별 과학들을 무시한다면, 기술, 자본주의, 종교, 이념, 대중문화, ......등만 존재할 수 있을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유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과학들은 형이상학으로부터 메타적인 사유(비판적이고 종합적인 사유)를 배워 각각의 한계를 돌파해 나가고, 형이상학은 자신의 사유를 개별 과학들의 성과를 매개해 구체화해야 합니다. [15]
오늘날 '사물'은 무엇이고, '인간'이란 무엇이고, '리얼리티'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해 새롭게 답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존재론과 자연철학이 오늘날처럼 일상 속에서 절실하게 요구되었던 시대도 드물 것입니다.
그런데 20세기의 철학은 대체적으로 자연/사물과 절연되어 있었어요. 20세기 철학의 전반적인 경향을 논할 때 흔히 언급되는 것이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죠. 무슨 자랑스러운 것이나 되는 듯이 언급되는데, 사실은 철학이 사물과 세계를 상실했다는 것을 뜻할 따름입니다. 20세기의 철학은 주로 언어나 논리, 사고나 문화를 다루어 왔습니다. 세계, 자연, 사물, 우주를 잘 다루지 않았어요. [17-18]
오늘날 의미 있는 형이상학이 제시되려면 그것은 반드시 과학의 역사를 매개한 형이상학이어야 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강의 첫머리에서 언급한 '과학사의 외삽으로서의 형이상학'인 것이죠.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의 대립은 바로 이러한 과정의 최초의 예입니다. 17세기에 처음으로 근대 과학이 성립했고, 또 처음으로 그 근대 과학에 대한 비판이 성립했던 것이죠(그 비판을 통해 고대와 근대를 잇는 끈이 마련됩니다). 그후의 역사는 이 최초의 대립으로부터 이어져 나오는 것이죠. [54-55]
[1:13:19] Sulkhan Tsintsadze (1950) 5 Pieces on Folk Themes for Cello and Piano
지금 나로서 이럴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연속성(continuity)에 한정해서, 전해 듣기만 했는데도, 러셀이 맞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베르그손 쪽에서는 반박해 볼 궁리는 안 하고 거의 ad hominem이면서 논점 회피만 하고 있다. 내 시간이 새삼 아깝다. '경험적' 시간은 별개의 논제이다. 그렇다고 말하면서도 반대로 덮어씌우네. 수학적 접근과 철학적 접근의 구별이라는 대립 구도를 전선으로 그은 것은 그쪽이었기 때문에 그에 따라 대응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논리주의에 공감한 적이 아직 한 번도 없는 사람인데 나도. 동일률에서조차 꽤 radical 상대주의자 진영이고.
그래서 말인데, 추상적 사유 과정의 경험은 왜 경험이 아닌가? 감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체험은 왜 체험이 아닌가? 늘 궁금하지만. 누가 진짜 충실한 플라톤주의자이고 데카르트주의자인지 모르겠어. (단위 문제에 대한 명쾌한 정리는 재작년엔가 번역을 뚫고 눈이 부신 원문에서 보았던 미친 문장력 때문에 더욱 존경스러웠지만, 철학사의 관점에서라면 19세기에라기엔 늦어도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이과 입장에서.)
Herbert Spiegelberg (1960/1982): 실존주의 사상의 조류가 현상학의 대의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실존주의가 현상학에서 다루는 현상들의 범위에다 하나의 주제 혹은 여러 주제들을 보탠 것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라면 그것은 환영받을 수 있었다. 더구나 몇몇의 실존적인 주제들은 확실히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주제들은 '실존'에 빠져 있는 현상학의 일방적인 치우침에 대해 염려를 불러일으킬 만큼 '비실존적인' 현상들을 희생시키면서 강조되었다. 그리하여 실존주의의 주목할 만한 성공은 다소 의심스러운 명성과 함께 현상학에 대한 보다 심각한 위험을 수반했다. 그것은 특히 철학에 보다 큰 학적인 엄밀성을 주려는 후설 현상학의 기본 목표를 방해했다. 왜냐하면 너무도 많은 현상학적 실존주의자들의 저작물들이 학의 역사적인 예증화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학의 이념에 대해 다소 공개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보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메를로-뽕띠의 경우에서와 같이 이러한 반과학적인 진술들은 실제로 오류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진실들은 단지 학에 대한 객관주의적인 해석 혹은 기계주의적인 해석만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늘 보듯이 알 수 없고, 모호하고 신비화시키는 분위기만이 남았을 뿐이다. 또 한편으로 현상학적인 실존주의자들은 자주 현상학의 원래 기풍인 끈기있는 탐구의 정신과는 거리가 먼 예언자적인 각성자의 역할을 취하고 있다. [26]
보다 더 정확히 말하여 기술의 임무는 종종 다소 가볍고 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의미있는 현상에 대해 전 범위에 걸쳐 추적하는 충분한 주의를 쏟지 않는다. 이러한 불충분한 주의마저 포괄적이고, 그리고 위험한 일반화의 기초로서 너무나 급속히 선택된 몇몇의 현상들에 대해서 자주 전혀 다른 조명을 던지곤 하였다. 여기서 현상의 여러 가능한 대안적인 의미들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 해석학적인 해석이 즉시 도입된다. 이러한 해석은 자주 야심적인 존재론적, 그리고 형이상학적 구조들과 연결되어 있다. 실존적인 현상들로부터 존재 일반의 해석에로의 전이가 쉽게 이루어져 보다 비판적인 독자들을 자주 숨차게 만든다. [26-27]
Pro! 보편주의적 객관성, 인과, 기계론을 '과학'과 동일시하는 오류는 french theories가 공유하는 착각이다. 그런 '과학'이라면 이미 케플러도 갈릴레오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과학'을 깨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근대 과학(오늘날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이었으니까. 자력과 중력의 발견이 대표적이다.(연역적 이성에 반하는 연금술적 신비주의 전통의 경험주의 또는 기술자의 생업.) 프랑스의 실증주의가 베이컨의 스키엔티아, 즉 귀납적 지식과 콩트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도 보인다. 맥락과 인식 상황에 의한 구속을 전제로 하는 현대 수학과 현대 물리학의 성립 이후로 개진된 '현대' 사상들에서 이러한 외면/무지가 나타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늘 당황스럽다. 과연 이해할 필요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구세대인 나도 전자기력을 이미 초등 교과과정에서 배웠고, 현대 물리학에 대한 교양적 소개 또한 이제 고등 교과과정에 들어 있다. 인과와 기계론에 따랐다면 내가 '공학' 석사 논문을 쓸 수가 없었다. 온라인을 벗어난 시스템 (개발은 물론) 설계부터가 불가능하니까. 모든 과학들은 이미 인간적인 한계에 의한 것이다. 그것이 근대의 각성이었다. 그 한계들을 일반론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모든 과학적 이론의 출발이며, 구체적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기술의 학술적 도전이 성공한 경우의 결과이다. 존재하지 않는 대립 구도에 의한 공격을 방어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학자는 없는 것으로 보이므로 다행히 고민할 거리가 남아 있지는 않지만. 다만 양쪽에서 아무런 실질적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지켜보기 답답할 뿐. 반과학주의에서의 '과학'이 실제/역사적 과학인 적이 있기나 한가 싶다. 차라리 그것의 내용은 퓌타고라스교나 데카르트주의가 아닌가? 새삼스레 비교조주의 정도인 것이 아닌가? 20세기에 살았으면서 왜 20세기를 살지 않았는지 의아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멀어서 그랬다 쳐도 뉘른베르크에서는 그럼 뭐였는지? 그래서 자꾸 'post'를 붙이려고 하나?
후설에 있어서 가장 감동적인 것들 중의 하나는 생의 진실로 생생하고 절박한 문제들, 혹은 그 자신이 궁극적으로 '실존'이라고 부른 것에 아직 도달할 수 없다는 대가를 치로고서라도 정초에 대한 헌신적이고 끈기있는 느린 작업의 필요성을 고집한 점이다. 현대의 무대 속에서 충분한 구실을 발견했다는 이유로 현상학은 너무나 자주 이러한 문제들에 충분한 준비도 없이 달려려들었다. [27]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초기의 현상학적인 철저함의 정신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그리하여 프랑스 현상학이 그 개척자들에 의해 얻은 득점을 높일 수 있는 충분한 암시가 있다. 다음에 오는 장들은 주로 그 장래성 있는 기여들을 제시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27]
-- 최경호 옮김(1992)
나의 첫 논문이 내용보다 동기에 있어서는 더욱 순진한, 물론 어설픈, 현상학적인 것이었음을... 그 방법도 프랑스 쪽에서. 다만 그 시도의 대상이 어떤 '개념'이었을 뿐. (사소하게는, 독일식 문헌학적 개념사가 아닌 프랑스식 계보학적 방법이라는 점과 함께.) '연구 대상의' 내용이 주류 철학적/전통 과학철학적/비주류 미학적이라는 사실은 연구 자체의 '방법'과 무관하다. 학술적 가치가 있었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무슨 의욕이 남았겠어? 따라가기 위해서라면 더 이상 해 볼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설령 언제가 능력을 갖춘다고 하더라도 자격 조건상 현상학의 해설자가 될 수 없고, 그것을 방법으로 쓸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Jean Starobinski (1964): 18세기 미학이론의 역사만 봐서는 그 시대 예술이 실제로 어땠는지 규정할 수가 없다. 예술에는 이론가가 보지 못한 면이 많았고, 이론에는 예술가가 거추장스럽다고 오해할 만한 요구가 꽤 많았다. 한편에서는 철학자들이, 다른 한편에서는 예술사가들이 사상은 어떻게 전개되었고 작품은 어떻게 만개하게 되었는지 따로 연구했다. 물론 이런 업무 분담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18세기의 생생한 현실을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에게는 불만스러운 상황이다. 우리의 임무는 (예술 따로 사상 따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 공유하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기원을 고려하면서, 자유로워지려는 예술과 그런 예술을 이해하고 지도하고 고취하고자 하는 까다로운 성찰이 얼마나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서 미학/예술학을 하라고 하시는 건 마치 연인에게 공작을 하라는 명령 같은 걸. 자명고 찢을 리도 없지만 난 좀 뜨거운 편이라 곤란한데. 보통 안 드러나지만.
실천을 "이해하고 지도하고 고취"할 능력이 이론에게 없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론은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을 뿐이다. (난 이런 세계가 더 맘에 드는데.) 그걸 활용할 능력은 양쪽 모두에게 있고.
그러니까 FN 교수님도 JM 교수님도 나에겐 소중한 고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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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의... 그러고 보니 북한은 어떨지 다를 것 같은 기대와 함께 궁금하네. 남한의 작가들과 관객들은 자칭 이론가(대개는 백인분들 말씀 전파자)들의 작태에 이골이 나 있다. 일단 예술 현장에 자신의 몸이 있지 않은 자의 예술론이란 절망을 줄 만한 힘조차 없는 것을. 지금까지 살면서 관찰한 바로는 아무래도 이 나라에서만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이다. 우리는 더 이상 입 아픈 얘기는 별로 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잘 살고 있고. 예술 학교에서도 예술가로 살기 위해서는 직접 글을 써야 하는 것으로 가르친 지 오래다.
그런 의미에서도 LH 씨를 꼭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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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Starobinski (1964): 교양을 갖춘 사람은 기존의 모든 권위에 반대할 권리를 강력히 요구하다보니 반대자의 입장까지 갖게 된다. 스스로 자신에게 반론을 던지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기에 18세기는 그 시대의 모든 경향과 그 시대에 인기를 끌었던 모든 관례적 표현에 비판의 칼날을 댔던 것이다. 간혹 단호한 의지로 완전히 다른 것을 실험하고자 할 때도 있었다. 그리하여 즉각적 자극을 추구하는 로코코 시대의 취향이 영원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신고전주의 시대의 취향을 대체되었다. 표현의 변동성이 형식의 부동성 속에 숨어버린다.
Jean Starobinski (1964): 예술은 역사의 어떤 지점에서든 사회 전반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는다는 점이 충분히 강조되지 않았다. 예술은 권력과 부를 가진 이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들이 작품을 주문하고, 자기 취향과 문화를 기준으로 작품을 평가했다. 예술사회학은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예술의 생산과 수용의 회로에서 배제된 사회계급이 있는가? 예술작품은 문화의 언어를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말 없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그림과 조각, 건물의 소유자가 되는 후원자가 그것들의 다양한 기능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그는 작품을 개인적 즐거움을 위해 보관할 수도 있고, 반대로 군중을 초대하여 경이로운 작품을 감상하게 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예술가의 영광보다도 비용을 낸 사람의 위신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이때 사회적으로 열등한 조건을 가졌기에 '미'의 생산과 소비의 회로에서 배제된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예술작품을 넋 놓고 바라보고 감화되는 수용자로 재통합된다. 미술 애호가가 혼자 즐기려고 모으는 수집품과 민중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교회나 광장의 예술적 기능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민중은 교회나 광장에서 신앙의 상징, 공동생활의 공간을 찾게 된다. 여기에서 집단적 귀속과 일체화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예술의 기능을 분석한다는 것은 결국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왜 그것을 언급하는지, 나아가 누구를 대상으로 말한 것인지, 수용자가 작품을 이해했는지 묻는 일이다.
René Descartes (1628?):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모든 학문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따로 분리해서 하는 것보다 그것들을 함께 탐구하는 것이 훨씬 더 쉽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진지하게 사물의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개별적인 학문을 취해서는 안 된다. 학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유념할 것은, 이성의 자연적인 빛을 증대시키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것도 이런저런 학적인 난제를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각의 삶의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를 지성이 의지에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렇게 되면 조만간에 자신이 개별적인 것을 연구한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진보를 했음을 알게 될 것이고, 또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도달했음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