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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February 03, 2024

风起陇西 Feng Qi Longxi (2022)

风起陇西  Feng Qi Longxi  풍기농서(24부작) => @netflix
(The Wind Blows from Longxi, 2022)
based on 马伯庸 Ma Boyong (2006)  풍기농서


결정적인 부분에서 개연성이 없어지는 결점이 있기는 하지만, 유비 사후 촉한 제갈량의 3차에 걸친 북벌은 배경일 뿐, 르 카레를 기본으로 미션 임파서블을 섞고, 장면 연출보단 캐릭터에 집중한 첩보 추리물. 고증은 멀리 날려 버리는 손쉬운 위험을 선택. 그래도 정사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연의를 따르고 있어 삼국지 팬이라면 드라마 전개상 지루해지거나 황당한 부분에서도 아련한 애틋함에 기대게 된다. 구성이야 원작이 일반적인 경우라면 더 낫겠지만, 조명/촬영이 훌륭. 테이크가 섬세하다.

가치관은 나와 안 맞지만, 최소 이 정도가 내가 집중할 수 있는 복잡도. 생각을 멈출 순 없다면 다른 내용으로 치환하는 치유책. 이렇게 암에 걸린다는 거였구나.

곽회[17]: " 누군가에겐 가장 확고하고 굳은 신념이 약점이 되기도 하지. "

곽회[17]: " 무슨 일이든 마음먹고 공을 들이면 남다른 수준에 이를 수 있지. 일시적인 승패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왜 이렇게 공명이 이해가 잘 가는지. 그에게 애초에 선택지가 너무 없었다. 반대 세력들도 이해가 잘 되고. 여하튼, 고작 삼십 년을 내다보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자녀들도 있는 이들이. 물론 이 시각으로 개인사가 보이진 않지만. 살리려고 나아간 건데. 키우려고가 아니라. 

+

마지막에 직접 정리해 주시네. 

좀 더 복잡한 거 없나?

Wednesday, July 12, 2023

젊은 위고의 기쁨과 슬픔 The Joys and Sorrows of Young Yuguo (2022, Ilinca Calugareanu)

The Joys and Sorrows of Young Yuguo  젊은 위고의 기쁨과 슬픔 

by Ilinca Calugareanu (2022) 일린카 칼루가레아누 

@iMDB / watch @netflix


2023-07-12 물의 저녁: 거실, 뮤젠 


cf. Mihai Eminescu (1850-1889, rou) 미하이 에미네스쿠 


Monday, November 28, 2022

quo vadis?

 ⟪呂氏春秋 · 孟夏紀⟫


Quo Vadis Zunshi? 존사여, 어디로 가심? orz 받아 쓴다고 날로 습관이 될 리가...

내겐 연예인보다 먼 존재라는 한계 상황이 비록 있기는 하지만, 존사에 그런 참작 조항은 없음. 😭

 

Wednesday, September 28, 2022

陈雷激(CHEN Lei Ji) 秋夜长 (Qiū yè cháng)

陈雷激(CHEN Lei Ji) 秋夜长 (Qiū yè cháng; Long Autumn Night)


陈雷激 (b. 1967) 

Sunday, September 18, 2022

孟夏紀 · 勸學 (Quàn xué in the 4th Lunar Month)

한문을 좋아하기도 하니 기꺼이 다짐대로 받아쓰기를 하는데, 꿈틀꿈틀. 3분도 안 걸리는 사이에 토할 것 같기도 하고, 날이 가도 어쩐지 개운하지가 않았다. 자책은 잘 해도, ritual이라니... 비위 맞추기를 전혀 못 하는 천성을 고치고 예를 익히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너무 나답지가 않은데. 왜 자꾸 찜찜하고 뭔가 더 가야 한다고 강력히 느끼는 걸까? 문제의 뒷부분. 


《呂氏春秋 · 孟夏紀 · 尊師》 : 
Lǚ shì chūnqiū - mèng xiàjì - zūnshī :
君子之學也,說義必稱師以論道,聽從必盡力以光明。
Jūnzǐ zhī xué yě, shuō yì bì chēng shī yǐ lùn dào, tīngcóng bì jìnlì yǐ guāngmíng.

군자의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담론을 펼 때에는 반드시 스승을 칭하면서 도(道)를 논(論)해야 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귀담아 실천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스승의 학풍을 빛내야 한다. 

聽從不盡力,命之曰背;說義不稱師,命之曰叛;
Tīngcóng bù jìnlì, mìng zhī yuē bèi; shuō yì bù chēng shī, mìng zhī yuē pàn; 

귀담아 따르는 데 있는 힘을 다하지 않는 것을 배(背)라고 이름짓고, 담론을 펼치면서 스승의 이름을 거론치 아니 하는 것을 반(叛)이라 이름짓는다. 

背叛之人,賢主弗內之於朝,君子不與交友。
bèipàn zhī rén, xián zhǔ fú nèi zhī yú cháo, jūnzǐ bù yú jiāoyǒu.

현명한 임금은 배반(背叛)의 인간들을 조정에 들이지 아니하고, 군자는 더불어 교우(交友)하지 아니 한다. 

故教也者,義之大者也;學也者,知之盛者也。
Gù jiào yě zhě, yìzhī dà zhě yě; xué yě zhě, zhīzhī shèng zhě yě.

그러므로 가르침(敎)이야말로 정의의 대체(大體)이다. 배움(學)이야말로 지식의 융성함이다. 

義之大者,莫大於利人,利人莫大於教。
Yìzhī dà zhě, mòdà yú lì rén, lì rén mòdà yú jiào.

정의의 대체는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은 가르침보다 더 큰 것이 없다. 

知之盛者,莫大於成身,成身莫大於學。
Zhīzhī shèng zhě, mòdà yú chéng shēn, chéng shēn mòdà yú xué.

지식의 융성함이란 몸을 이루는 것(成身: [대학]의 수신修身과 완전히 일치하는 개념)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몸을 이루는 것은 배움(學)보다 더 큰 것이 없다. 

身成則為人子弗使而孝矣,為人臣弗令而忠矣,
Shēn chéng zé wéi rén zǐ fú shǐ ér xiào yǐ, wéi rén chén fú lìng ér zhōng yǐ, 

배움이 이루어지면, 사람의 아들된 자로서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효성스럽게 되며, 사람의 신하된 자로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저절로 충성스럽게 되며, 

為人君弗彊而平矣,有大勢可以為天下正矣。
wéi rén jūn fú jiàng ér píng yǐ, yǒu dàshì kěyǐ wéi tiānxià zhèng yǐ.

사람의 임금된 자로서 강압을 가하지 않아도 저절로 공평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대세를 장악하는 자라야 천하의 바른 기준이 되는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도올 옮김(2009/2016:224-226) 


도올(2009/2016:226): 너무도 강렬한 언사이며 《대학》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모든 논리가 제공되고 있다. 먼저 우리가 흔히 "배반背叛"이라고 쓰고 있는 단어의 실내용이 아주 리얼하게 규정되어 있다. 배반의 가장 큰 것은 가르침과 배움 사이의 배반이다. 

[...]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성신"이 "지식知"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또 "배움學"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수신은 어디까지나 배움을 통하여 몸을 이루어가는 것이며 그 과정에 깔려있는 것은 지식의 융성함이다. 수신과 격물치지가 연결될 수밖에 없는 논리적 고리가 여기 이미 〈존사〉편에 드러나 있는 것이다. [...] 


아니, 내 사전이 배반을 당한 일들로 점철되어 있지, 배반을 한/할 일이 있을 리가 있겠니? 삐딱하게 부러울 지경인데. 근데 왜 자꾸 찔리는 것 같고 슬퍼지려는지...  


故子貢問孔子曰:「後世將何以稱夫子?」
Gù Zǐgòng wèn kǒngzǐ yuē: "Hòushì jiāng héyǐ chēng fūzǐ?"

그러므로 자공이 공자에게 여쭈어 말하였다: "후세사람들이 장차 선생님을 어떻게 상찬하오리이까?" 

孔子曰:「吾何足以稱哉?勿已者,則好學而不厭,好教而不倦,其惟此邪。」
Kǒngzǐ yuē:`Wú hé zúyǐ chēng zāi? Wù yǐ zhě, zé hào xué ér bùyàn, hǎo jiào ér bù juàn, qí wéi cǐ xié.'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내가 어찌 상찬을 받기에 족한 인물이겠는가? 부득불 나보고 어떤 사람이냐고 말하라고 한다면, 끊임없이 배우며 싫증내지 않았고, 남을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며 게으름이 없었다는 것, 그것을 말할 수 있을 뿐이로다." 

天子入太學,祭先聖,則齒嘗為師者弗臣,所以見敬學與尊師也。
Tiānzǐ rù tàixué, jì xiān shèng, zé chǐ cháng wéi shī zhě fú chén, suǒyǐ jiàn jìng xué yǔ zūnshī yě.

천자가 태학(太學)에 들어가 지나간 성인들의 제사를 올릴 때, 일찌기 스승이었던 사람을 신하의 반열에 세우는 짓은 하지 않는다. 이러한 행동을 통하여 학문을 숭상하고 스승을 존경하는 자세를 천하에 보이는 것이다. 

-- 도올 옮김(2009/2016: 226-228) 


원망이 자책으로 설움이 슬픔으로 바뀌었을 뿐이라면 뭔가 아직 아니올시다. 존사 편은 존사의 방법을 알려 주고 있다. 그걸 몰라서 본 손실이 아까우니 익혀서 써먹겠다고 하는 심사는 또 뭐냐. 흉하다. (그런데 왠지 교수님은 그렇게라도 좀 잘 받아먹는 게 있었으면 차라리 좋다고 하셨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생각은 더 슬프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 답은 뒤가 아니라 앞에서 찾을 수 있었다. 권학 편은 존사가 왜 필요한지 내면(수신)에서부터 경륜(치세)까지 단계적으로 설명한다.(소름끼친다.) 그리고, 나에게 결정적이었던 것은 바로, 존사란 기실 무엇인지. 


《呂氏春秋 · 孟夏紀 · 勸學》 :
Lǚ shì chūnqiū - mèng xiàjì - quàn xué
疾學在於尊師,師尊則言信矣,道論矣。
Jí xué zàiyú zūnshī, shī zūnzé yán xìn yǐ, dào lùn yǐ.

Intense study depends on honoring teachers. When teachers are honored, their doctrines are accepted on faith and their way is advocated. 

故往教者不化,召師者不化,
Gù wǎng jiào zhě bù huà, zhào shī zhě bù huà, 

Therefore, a teacher who instructs in response to a summons does not transform the person who summoned him, and the person who summons the teacher is not transformed by his teachings. 

自卑者不聽,卑師者不聽。
zìbēi zhě bù tīng, bēi shī zhě bù tīng.

Those who debase themselves are not heeded, and those who debase teachers do not heed their teachings. 

師操不化不聽之術而以彊教之,欲道之行、身之尊也,不亦遠乎?
Shī cāo bù huà bù tīng zhī shù ér yǐ jiàng jiàozhī, yù dào zhī xíng, shēn zhī zūn yě, bù yì yuǎn hū?

If the teacher upholds methods that do not transform and are not heeded, yet insists that others be instructed in them, is this not far indeed from his desire to have his Dao practiced and his person honored! 

學者處不化不聽之勢,而以自行,欲名之顯、身之安也,
Xuézhě chù bù huà bù tīng zhī shì, ér yǐ zìxíng, yù míng zhī xiǎn, shēn zhī ān yě, 

If the student lives in a situation where he can neither be transformed nor heed instructions, but does whatever suits him, then his hope of making his name eminent and his person secure is 

是懷腐而欲香也,是入水而惡濡也。
shì huái fǔ ér yù xiāng yě, shì rùshuǐ ér è rú yě.

like "holding something rotten but wanting to smell perfume" or "hating to get wet and yet going in the water." 

-- tr. John Knoblock & Jeffrey Riegel (2001) The Annals of Lü Buwei, p.119



疾學在於尊師,師尊則言信矣,道論矣。 순간 너무 아파서 이것이 답이고 모든 원인인 줄 절로 알았다. 난 마지막까지도 고작 이렇게 적지 않았던가. 매번 즉각 답을 주셨는데, 그것이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그때는 뉘우치는 마음으로 괴롭지만 굳이 끌어내 적어 놓자는 것이었는데, 조금만 더 생각하면 이 말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삿되이 비틀려 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부터 일파만파 꼬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대학원이란, 내가 공부하는 동기란(그래도 가장 중요하지만), 잘도 이래 가면서. 더 많지만 차마 다 적지 못하겠다. 칼 맞은 것처럼 신체의 격통에 한참 꼼짝 못 하고 숨을 못 쉬었다.  

인터넷 검색으로는 적절한 번역을 찾을 수가 없어서(내가 읽는 것보다도 못하시면 어쩌란...), 이럴 때가 아닌데 어쩔 수 없이 한나절을 날린 끝에(인용들은 어째 비유에 불과한 마지막 문장만 선호되는지...) 아쉬운 대로 영역을 찾았다. 양심의 힘이었는지 그냥 내가 읽은 게 제일 나았지만. (도올 선생님 제발 여씨춘추 전체 번역 좀 해 주세요. cJ2 글항아리 건 왠지 안 내켜요.) 

疾學在於尊師,師尊則言信矣,道論矣。

평생 못 잊을 것이다. 근원적 환부가 도려내졌다. 頓 ! 그래서 받아쓰기 같은 건 안 해도 되지만. 이 역사적인 사건을 남겨 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漸에 해당하는 문제의 존사 부분 받아쓰기는 내년 1월 1일까지는 해야지. 왜냐하면, 여기서 돈이 이루어진 것은 무엇보다 애초 내가 師를 찾은 게 맞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제 내가 먼저 포기하거나 포기하기를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고려하는 일은 절대 없다. (이제 생각하니 도대체 다른 건 다 몰라도 나의 그런 망발을 어떻게 용서하셨는지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다. 졸업은 내가 이미 스스로 자격을 잃었으므로 나로서는 아무 불만이 없지만, 내가 짐작하기에 교수님께서는 내가 業을 다하지 않으면, 敎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보시고 師弟가 성립하지 않는다 여기실 것 같다.)  

化聽이 되지 않으면 깨달은 것도 아니겠지만, 化聽을 이루리란 보장은 없어도 그나마 발동은 걸린 듯. 다 늦어서. 

교수님 + 세 명의 과학철학자 + 도올 선생님 + 북부여가 세워졌던 해(기원전 239년)의 여불위와 3천 문사들이 나의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 동원되어야 했으니, 병이 참 깊었구나. (절연이 마땅한 과거나 그리워하고 앉아 있었다니... 사실, 석사 지도교수님이 나에게는 정확히 배신의 상처였다는 것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는 師로 여기는 마음이 없었으므로, 관계적으로는 아무것도 원하는 바가 없었는데도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 바라는 마음이 있고, 너무나 강한 상태로 인해 끔찍한 불안을 느꼈던 거였다.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되면 죽는 게 낫겠다고 여기니 당연하다. 극도의 불안이 공포가 되어 스스로 도리어 불안을 실현시키는 쪽으로 진행한 것. 갖가지 차원의 망상들은 분석하자면 그 방어기제였다고 할 수 있겠지만, 경험상 분석 작업에 집착한다면 또 다른 도피일 뿐이고 그게 또 무가치한 망상을 낳을 뿐이다.)   

요약하면, 그토록 찾으려 애썼던 학문적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고작 과거의 상처를 핑계로 존사를 안 하려고 한 당장의 마음이 문제였다. 아주 치장이 장엄했소. (그래도 그 모색 자체는 가치가 없지는 않았다고 위안하고 싶다.) 요약하면, 인문학이나 유리 벽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수신(正心)이 안 되어 장애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교수님께서 받으셨던 건 학생이 아닌 곪은 알... 알이 어떻게 논문을 쓰겠나... 그래도...

저 다 나았어요! 

(생쇼 그만하고 그 기력으로 논문을 쓰라는 소리가 들린다... 늘 뜻을 모르겠다고, 나아가서, 모를 수밖에 없지 않냐고, 속으로 잘도 뇌여 왔는데, 이제 잘 들리는 걸 보니 정말 나은 듯. 교수님의 지성을 이런 식으로 소모하다니 하늘이 노하지 않을까 무섭기는 하다.) 

어쨌든 이제 없애야 할 잡념 자체가 사라졌다. 비로소 편하다. 😭 

논문을 쓰기 위한 짓, 논문을 안 쓰기 위한 짓, 논문을 쓰고 난 다음을 위한 짓, 논문을 못 쓰고 난 다음을 위한 짓... 논문을 쓰는 짓만 빼고 죄다 해 보느라고 얼마나 힘들었겠어. 남은 한 가지 일이 차라리 쉬울 듯. 잘해야 되는 것도 아니니 걱정도 없고. 물론 몇 달 후부턴 생계가 걱정이겠지만. 그동안 한껏 누려야겠다. 

날린 하루였지만, 굉장한 하루였다. 수술 받은 날. 아프지만, 희망적인 아픔. 


+

化 = 人(산 사람)이 匕(죽은 사람)으로 되어 다른 사람으로 모양을 바꾸어 다시 태어나다. 윤회(輪廻) 

聽 = 直(숨어 있는 것을 바르게 보고) + 耳(듣고) + 心(느끼는) + 壬(사람). (남의 의견·권고 따위를) 받아들이다. (명령·지시에) 따르다.


++

《禮記 · 中庸》 : 

Lǐjì · Zhōngyōng

其次致曲。

Qícì zhì qū. 

다음으로 힘써야 할 것을 치곡(致曲)의 문제이다. 

曲能有誠,

Qū néng yǒu chéng, 

그것은 소소(小小)한 사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지극하게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다. 그리하면 소소한 사물마다 모두 성(誠)이 있게 된다.  

誠則形,形則著,

chéng zé xíng, xíng zé zhù,

성(誠)이 있게 되면 그 사물의 내면의 바른 이치가 구체적으로 형상화된다. 형상화되면 그것은 외부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著則明,明則動,

zhù zémíng, míngzé dòng, 

드러나게 되면 밝아진다. 밝아지면 움직인다. 

動則變,變則化。

dòng zé biàn, biàn zé huà. 

움직이면 변(變)한다. 변하면 화(化)한다. 

唯天下至誠為能化。

Wéi tiānxià zhìchéng wéi néng huà.

오직 천하의 지성(至誠)이야 능히 화(化)할 수 있다. 


-- 도올 옮김(2011:544) 



Friday, September 16, 2022

Kung Fu Panda (2008) OST


Kung Fu Panda (2008, John Stevenson & Mark Osborne)
(P) DreamWorks Animation




OST by Hans Zimmer & John Powell





The Piano Guys — Kung Fu Piano: Cello Ascends 



Thursday, September 15, 2022

尊師 Zūnshī

„Der Vogel kämpft sich aus dem Ei. Das Ei ist die Welt. Wer geboren werden will, muß eine Welt zerstören. Der Vogel fliegt zu Gott. Der Gott heißt Abraxas.“ 

-- Hermann Hesse (1919) Demian. Die Geschichte einer Jugend 


충격의 순간 떠오른 구절. 그러나 부화 후에도 과연 살아나겠나 싶게 비실비실한 것이 중2 때보다 못한 부실한 정신의 원인을 메일을 받고도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뭔가 무지 억울하다. 아둔해서 잃어 버린 것들이. 객관적으로 3년이나 걸릴 만한 상황이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내가 처음부터 적나라하게 여쭈었고 매번 즉각 답을 주셨었다. 그게 동문서답이라고 생각한 건 나고. 부질없지만 그렇다고 외양간을 아니 고쳐 놓을 수도 없다. 



《呂氏春秋 · 孟夏紀 · 尊師: 
Lǚ shì chūnqiū - mèng xiàjì - zūnshī :

凡學必務進業,心則無營。 
Fán xué bì wù jìn yè, xīn zé wú yíng.  
대저 배운다는 것은 반드시 수업의 진도가 나아가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가슴에 의혹이 남은 채 넘어가서는 아니 된다.  

疾諷誦,謹司聞, 
Jí fèngsòng, jǐnsī wén,

경전을 읽고 외우는 데 전념하여 서둘러야 하며, 또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열심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觀驩愉,問書意, 
Guān huān yú, wèn shū yì, 

의문이 생길 때는 선생님께서 기분이 좋으실 때를 틈타 경전의 뜻을 여쭈어 보아야 한다. 

順耳目,不逆志, 
Shùn ěrmù, bù nì zhì, 

이때 묻는 방식이 선생님의 이목을 거슬리면 안 되며 그 심지를 불쾌하게 만들면 안 된다. 

退思慮,求所謂,
Tuì sīlǜ, qiú suǒwèi, 

그리고 물러나서는 혼자 반추하면서 생각을 깊게 해야 한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바의 핵심적 도리를 탐구해야 한다.  

時辨說,以論道, 
Shí biàn shuō, yǐ lùn dào,

수시로 같이 배운 사람들과 더불어 변론하면서 도(道)의 요체를 논구해야 한다. 

不苟辨,必中法, 
Bùgǒu biàn, bìzhōng fǎ,
그러나 구차스럽게 변론하면 안 되고 반드시 합리적 논리에 적합해야 한다.   
得之無矜,失之無慚,必反其本。   
Dé zhī wú jīn, shī zhī wú cán, bì fǎn qí běn.
변론에서 이겨도 자긍(自矜)하지 아니 하며 져도 부끄럽게 생각치 아니 하며 항상 그 근본으로 되돌아가 다시 변론할 것을 기대한다.  
 

-- 도올 옮김 (2009/2016: 221-222)



십 년 전 정말 얼마나 고심하고 다 버린 선택이었는데... 하여 나만 이해할 수 있는 원망심에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눌려 있었던 것도 맞지만 이런 습관이 없는 것도 맞다. (그럴 만한은 커녕 그래도 되는 인간을 통 만난 적이 있었어야지.) 집중을 못 하고 잡념이 계속되어 안 되겠다. 시간이 없다고 느껴서 더 그러는 것 같다. 와신상담 정신으로 아침마다 한 번씩 쓰기로 한다. 그리고 하루 동안 딱 끊어야지. 



必恭敬,和顏色;
Bì gōngjìng, hé yánsè;

학생된 자는 항상 선생님을 공경히 응대하여 안색을 순화롭게 하여 임한다. 

審辭令,疾趨翔,必嚴肅;
Shěn cílìng, jí qū xiáng, bì yánsù;

지시하시는 말씀을 잘 살피어, 즉각적으로 그것을 시행하고, 무슨 일이든지 엄숙하게 잘 마무리짓는다.  

此所以尊師也。
Cǐ suǒyǐ zūnshī yě.

이것이 바로 스승님을 존경하는 마음이다. 


-- 도올 옮김 (2009/2016: 222-223)



Thursday, September 08, 2022

姜夔 (Jiang Kui, 1191) 暗香 (An Xiang)

姜夔 (Jiāng Kuí, 1191) 暗香 (Àn Xiāng; Hidden Fragrance)
in 《白石道人歌曲》 
arr. 李凤云 (Li Feng-Yun)
古琴(칠현금): 孔子文 (Kong Zi-Wen) / 洞箫(퉁소): 孔志轩 (Kong Zi-Xuan)



白露 the day of dew drops

白露. 이슬 총총한 날. 



[簡單百科] 白露時節承載了多少古代的好詩詞,這個冬天,世界會怎麼樣? 


시를 다 모아 놨어~ 💘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것! 


白露不僅僅是節氣,還承載了中國人的愛情、思念及豐收的喜悅

大家好,這裡是簡單生活頻道,今天,和大家聊聊二十四節氣中的,白露。白露是一年中的第十五個節氣,也是反應天氣變化的一個重要節氣,《月令七十二候集解》對“白露”的詮釋是這樣的:

 

水土濕氣凝而為露  
Shuǐtǔ shī qì níng ér wéi lù.

秋屬金        金色白  
Qiū shǔ jīn,     jīnsè bái. 
白者露之色        而氣始寒也 
Bái zhě lù zhī sè,     ér qì shǐ hán yě.


天氣的變化,讓世界寒生露凝,也就給白露這個節氣帶來了詩意,帶來了靈性,中國古代以白露為詩詞的很多,

一、白露是愛情的畫卷

春秋戰國時期的人們已經感受到了白露這個節氣的美,雖然此時還沒有白露這個名稱的節氣,但這首詩百分之九十的人都聽過:

 

蒹葭蒼蒼 
Jiānjiā cāngcāng,  

白露為霜  
báilù wèi shuāng. 
所謂伊人  
suǒwèi yīrén,

在水一方  
zài shuǐ yīfāng

 

這句詩出自於《詩經·國風·秦風》,想像一下在河邊生長著茂盛的蘆葦,顏色蒼青, 而在那蘆葦葉上凝結了一層露水,遠遠望去就像白霜,那微微的秋風送著襲人的涼意,而朝思暮想的佳人正佇立在河岸邊。這充分錶現了一個年輕人看到自己喜愛的佳人時候那種緊張、激動而又興奮的情緒。

二、白露是秋天的畫卷

漢武帝時期,公元前一百零四年,由鄧平等製定的《太初歷》(태초력)把二十四節氣定於曆法,中國正式有了二十四節氣,而白露節氣所代表的由熱轉涼的秋意也被詩人利用起來。唐朝時期,時任丞相的元稹向全國頒布了二十四節氣詩,其中《詠廿四氣詩 白露八月節》說的就是白露節氣:

 

露霑蔬草白        天氣轉青高  
Lù zhān shū cǎo bái     tiānqì zhuǎn qīng gāo 
葉下和秋吹        驚看兩鬢毛 
yè xià hé qiū chuī     jīng kàn liǎng bìn máo  
養羞因野鳥        為客訝蓬蒿 
yǎng xiū yīn yěniǎo     wèi kè yà pénghāo 
火急收田種        晨昏莫辭勞 
huǒjí shōu tián zhǒng     chénhūn mò cí láo

 

元稹通過節氣詩描述了一個白露時節美秋的畫卷,白露到了,晶瑩的露水凝聚在草木和蔬菜上,天氣也慢慢變的秋高氣爽,高大的樹木開始落葉,意味著深秋即將來臨,而當你照鏡子的時候會發現,兩鬢的頭髮又白了一些,不知不覺又要老一歲了。大自然的野鳥開始活躍起來,在戶外捕捉蟲子,儲存食物,為了即將到來的寒冬做好準備,人類也開始忙碌起來了,開始收割豐收的糧食,早出晚歸也不覺得辛勞,這是豐收的季節。元稹的寥寥幾句詩,就把白露時節秋天的畫卷徐徐展開,一方面感嘆時光過得飛快,另外一方面也展示了豐收的喜悅。

三、白露是思念的畫卷

杜甫是詩聖,他所處的時代是開元盛世後期,又趕上了安史之亂,所以杜甫的詩中總是表達對老百姓的關心,對國家的擔憂。

 

戍鼓斷人行        邊秋一雁聲  
Shù gǔ duàn rénxíng     biān qiū yī yàn shēng 
露從今夜白        月是故鄉明 
lù cóng jīnyè bái     yuè shì gùxiāng míng  
有弟皆分散        無家問死生 
yǒu dì jiē fēnsàn     wú jiā wèn sǐshēng 
寄書長不達        況乃未休兵 
jìshū cháng bù dá     kuàng nǎi wèi xiū bīng

 

這是在安史之亂期間,杜甫寫下的《月夜懷舍弟》,表達了杜甫在白露時節對自己兄弟的思念。白露節氣的到來,意味著豐收時節的到來,天氣逐漸轉涼,越是這個時節越容易勾起人們的相思慾望,因為安史之亂的爆發,導致杜甫和自己的弟弟分散兩地,白露時節到了,露水從今夜開始掛滿草木,月亮掛在了天空,但怎麼看都感覺還是家鄉的月亮更加明亮,這分明是在表達思念之情。杜甫和弟弟想通過書信進行聯繫,但總是送不到弟弟手上,只因為戰亂沒有結束,阻塞了送信的道路。或許只有經歷過分離和戰亂,才懂得團聚和和平的彌足珍貴,中國古老的家國深情,在這首詩中得到最大的展現和昇華。

這裡是簡單生活頻道,和大家分享生活中的簡單知識,一起思考人生中的哲理,感謝大家的觀看。如果喜歡我請點贊或者訂閱,我們下期再見



😱 숨을 못 쉬겠... 영어/간체자 자막까지! 복배하는 아이콘은 없나? o2 (오~ 괜찮) 

cJ2  (이게 더 나은 듯?)  cJㄹ (매사 발전)

사극 팬으로 보건대 왼쪽은 중국풍(팔을 올리고 배를 당기고 머리를 숙여 이마를 댄다. 오래 유지하기 힘드니 보통 곧 해제 허가가 떨어진다. 때로 직접 일으켜 주는 후덕한 반응이 나온다.) 오른쪽은 일본풍(손을 옆으로 짚고 목을 늘이고 등을 편다. 어깨로 버티는 방어 불가 상태.)에 가깝다. (한국은 중국풍에 더 가깝지만, 차이는 상체보다 하체에 치중한다는 점. 결국 안정적인 자세로 내려앉는 식. 하여 대기하기엔 용이하지만 바로 일어나기 어렵다. 자세라기보다는 동작. 안 살벌하다.) 혼놀의 경지. 

Wednesday, July 20, 2022

노회찬의 말과 글 Roh Hoe-chan's Words

노회찬 의원 서거 4주기 추모 토론회: '지금 다시, 노회찬의 말과 글' 
2022-07-20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


1부 주제 강연: 수사학자가 본 노회찬의 말과 글 

[15:50] 김헌(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고전 수사학에 비춰 본 노회찬의 말

[31:36] 안성재(인천대학교 교육대학원) 기버(Giver)의 전언(傳言) : 노자와 공자 그리고 노회찬의 수사(修辭) - 

[53:50] 하병학(가톨릭대학교 학부대학) 현대 수사학으로 소환하는 노회찬의 말하기

[1:32:10] 2부: 우리시대 정치인의 말과 글


Friday, August 06, 2021

郑思肖 (ZHENG Sixiao) 寒菊 Winter Chrysanthemum

 寒菊 (Hánjú) 한국 / 畫菊 (画菊; Huà jú) 화국 

郑思肖 (鄭思肖 정사초; ZHENG Sixiao, 1241-1318) 


花開不竝百花叢 (花开不并百花丛)     
Huā kāi bù bìng bǎi huācóng, 

獨立疏籬趣未窮 (独立疏篱趣未穷)。 
dúlì shū lí qù wèi qióng. 

寧可枝頭抱香死 (宁可枝头抱香死), 
Nìngkě zhī tóu bào xiāng sǐ, 

何曾吹落北風中 (何曾吹落北风中)! 
hécéng chuī luò běi fēng zhōng! 



宋詩 전공하고 싶다. 표의 문자에는 장애도 덜하고. 나에게도 집이 생겼을 텐데. 아무래도 한문학 최고봉은 굴원인 듯하지만 난이도가 너무 높으니. 풍도 제일 마음에 들고, 무엇보다 악비의 숨결이 있는 곳이 좋아. 중공 덕분에 적극 기억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   



Saturday, June 05, 2021

張國榮 Leslie Cheung in 金枝玉葉 (Gam chi yuk yip)

陳可辛(Chen Kexin; Peter Chan) 진가신 감독 《金枝玉葉 금지옥엽; He's a Woman, She's a Man》(1994) + 《金枝玉葉2 금지옥엽 2; Who's the Woman, Who's the Man?》(1996) 삽입곡:   


追 (Jeui) Chase
曲 李迪文 / 詞 林夕

這一生 也在進取    這分鐘 卻掛念誰
我會說 是唯獨你不可失去
好風光 似幻似虛    誰明人生樂趣
我會說 為情為愛    仍然是對

誰比你重要 成功了敗了也完全無重要
誰比你重要 狂風與暴雨都因你燃燒

一追再追 只想追趕生命裡一分一秒
原來多麼可笑 你是真正目標
一追再追 追蹤一些生活最基本需要
原來早不缺少 Ha...
有了你 即使平凡卻最重要

好光陰 縱沒太多    一分鐘那又如何
會與你 共同渡過 都不枉過
瘋戀多 錯誤更多 如能從新做過
我會說 願能為你 提前做錯

只得你    會叫我彷彿人群裡最重要
有了你    即使沈睡了也在笑
 


眉來眼去 (Mei loi ngaan heui) Make Passes 
作曲 趙増熹 / 作詞 林夕 

微微略略緩緩慢慢擦過 是否真的有過    一分半秒戀火
無情或是有意或是怎麼 即使多不清不楚    目光早侵占我

偷偷看是無心    有意也是無意
再看也是無意    只得一個意思
多麼的一致 你說這是誰人在說 愛意
即使初看像無心    有意也是無意
眼角卻是情意    只得一個意思 
你說為何在這時 眼望眼竟這般如此 不分真心假意

眉來或是眼去或是看錯 是真不想錯過    假的怎可這麼
無情或是有意或是怎麼 即使多不清不楚    目光早親吻我
  


今生今世 (Gam sang gam sai) In This Lifetime
作曲 許願 / 作詞 阮世生

幻變的一生 默默期待一份愛
踏過多少彎 段段情路也失望
我不甘心說別離 仍舊渴望愛的傳奇
不捨不棄 無懼長夜空虛風中繼續追

風裡笑著風裡唱 感激天意碰著你
縱是苦澀都變得美
天也老 任海也老 惟望此愛愛未老 
願意今生約定他生再擁抱

是你的雙手 靜靜燃亮這份愛
是你的聲音 夜夜陪伴我的夢
交出真心真的美 無盡每日每天想你
今生今世 寧願名利拋開 瀟灑跟你飛


Twist and Shout
詞曲 Phil Medley & Ben Russell (1961) 



談戀愛 (Taam lyun oi) Falling in Love
詞曲 黃舒駿



有心人 (Yau sam yan) A Man of Intention
作曲 張國榮 / 作詞 林夕 

寂寞也揮發著餘香    原來情動正是這樣
曾忘掉這種遐想     這麼超乎我想像
但願我可以沒成長    完全憑直覺覓對象
模糊地迷戀你一場    就當風雨下潮漲

如果真的太好 如錯看了都好  
不想證實有沒有過傾慕
是無力    或有心    像謎    像戲
誰又會 似我演的更好

從眉梢中感覺到 從眼角看不到  
彷彿已是最直接的裸露
是無力    但有心    暗來    明往
誰說    這算是    情愫

=> HQ in [紅 Red](1996)


my most favorite scene

miss you much, gorgor. 

Sunday, March 21, 2021

萬芳 (Wan Fang, 1993) 新不了情 (Xin bu liao qing; Everlasting Love)

萬芳 Wan Fang (1993, 新不了情) 新不了情 (Xin bu liao qing; Everlasting Love)
作曲: 鮑比達 Bao Bi Da / 作詞: 黃鬱 Huang Yu 


心若倦了 淚也乾了 
這份深情 難捨難了 
曾經擁有 天荒地老 
已不見你 暮暮與朝朝 

這一份情 永遠難了 
願來生還能 再度擁抱 
愛一個人 如何廝守到老 
怎樣面對一切 我不知道 

回憶過去 痛苦的相思忘不了 
為何你還來 撥動我心跳 
愛你怎麼能了 今夜的你應該明瞭 
緣難了 情難了


종이 사전 뒤적여 병음과 성조 다느라 며칠이나 걸리고, 발음 연습 하는데 그때만 해도 짱깨말 시끄럽다고 구박받던 시절이 소롯한데. 영화를 여태 못 봤네. 문화 개방 전이라 민중서국에서 씨디/비디오테이프 어렵게 구하고 했는데. 만방 지금도 활동이 활발한 것 같아 반가움.   

Monday, August 29, 2016

胡玫 Mei Hu (2010) 孔子 (Kong Zi) Confucius

胡玫 후 메이(Mei Hu) 孔子 (Kong Zi) Confucius 공자: 춘추전국 시대

@iMDb / @naver

공자: 예와 악을 위한 큰 꿈은 후세에 맡길 수밖에...

공자: 그들이 법을 지키는 건 형벌이 두렵기 때문인데, 사람들이 예를 지키고 염치를 알아서 법을 지키는 게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군주 노정공이 나라를 강하게 하는 방법으로써 제나라의 법치에 대해 묻자)

공자: 인이 우선일진데 살인은 전통이 될 수 없소. (노나라 대부 계손사가 부친의 장례에 순장 풍습에 따라 어린 노비를 죽이려 하면서 전통임을 주장하자)

공자: 자신이 원하지 않는 건 남에게도 시키지 말아야죠. (노나라 계손사가 선친의 유언에 따라 어린 노비를 순장하여 죽이려 하는 것은 효심이라고 공산유가 주장하자)

공자: 기꺼이 살신성인해야지, 어찌 살기 위해 인을 저버리십니까! (노정공이 삼성을 허무는 국책을 중단하려 하자 항변하며)

안회: 제게도 말씀하셨잖아요. 세상을 바꿔 놓을 수 없다면 자신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요. (노나라에서 축출된 공자가 자신을 따라 쫓아온 제자 안회에게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냐고 묻자)

남자: 어진 자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가르치셨다지요? 그 사람 속에는 저처럼 평판이 나쁜 여자도 속하나요?

공자: 군자는 미인을 얻고자 할 때도 예의를 지킨다는 뜻입니다. (위나라 남자가 [시경]의 한 구절 '요조숙녀 군자호구'에 대해 묻자)

공자: 시 삼백 편을 한마디로 간추리자면, 정이 넘치되 사념이 없는 거죠. (위나라 남자가 [시경]의 남녀 애정에 대해 묻자)

남자: 재물과 미색을 탐하는 게 사내의 본성이라, 차지하려 피를 흘리며 싸우죠. 그것도 천성이니 극복하기 어렵고요.
공자: 어렵기에 군자가 두드러지죠.

공자: 저는 믿습니다. 아침에 도를 알면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다고. (위나라 남자가 공자에게 군자로서 고상한 덕망을 갖추는 것을 진정 중요하게 보느냐고 묻자)

공자: 전 불편합니다. 속세의 아름다움과 미덕을 함께 원하시니까요. 대충 내가 옮기면 ==> (부인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불편합니다. 덕을 좋아하기를 색을 좋아하듯이 하는 사람을 소신은 아직 보지 못했으니까요. (다음에 한 번 더 볼 수 있겠느냐는 남자의 물음에) 
남자: 세인들은 공 대인의 고통을 이해할진 몰라도 그 속에서 일궈낸 진리는 모를 거예요.

공자: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마라. (제자 자로가 위나라 조정의 부름을 받아 떠나게 되자 기뻐하면서도 그의 성급한 성미를 걱정하며)

공자: 후세에 날 이해하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일 테고, 날 오해하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일 것이다.


2016.08.29 낮 @내 방

최소한의 배경 지식이 없었다면 지루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었을 듯하다. 다행히 이제야 뒤늦게 보게 되어서 떨리는 재미가 있었다. 평전적인 성격이 강해 시간 순서에 따르기는 하지만 차분히 흘러가기보다는 압축적으로 건너뛰기가 많다. 과감히 특정 에피소드들을 선별하는 방식이라서 자세한 지식이 있는 관객이라면 빠진 내용들에 대해 아쉬움이 많을 수도 있겠다. 현재의 내게는 안성맞춤. 고증에 충실한 세밀한 묘사들에 감탄할 수 있었던 건 역시 근래에야 알게 된 지식들 덕분이다. 건축과 실내 기구, 수레나 각종 무기 등 전쟁 장비, 의복부터 배우들의 자세나 몸짓, 어법(말투는 다소 현대화했지만 시대상 정확한 호칭들을 구사. 비록 한글 자막에선 전부 무효화됐지만.)까지 속속들이 꼼꼼했다. 무엇보다도 각본이 (영화사에라기보다) 역사에 남을 만하다. 그리고 서양인과 서구화된 관객들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듯한 욕심이 느껴지는 촬영. 특히 각본과 고증에 홀려서 두 번 연속으로 본 다음 스크롤링 해 가면서 두어 번 더 봤다.

노나라 최고 권력가 계 씨의 노비의 목숨을 구하고 제자로 거두는 일화는, 그동안 고민하면서 나름 정리해 두기는 했었지만 혼자서는 확신할 수 없었던 공자의 인과 예의 관계에 대해 명쾌하고도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어서 깨달은 것이 많다. 틀리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도 했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측면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다운로드 파일을 재생하며 본 것이라 수없이 정지 버튼을 누르면서 실시간으로 성장하는 기분이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한계가 영화를 통해 상당히 보충되었다. 현대 어원학의 발전으로 인해 구체적인 것(두 명의 사람)에서 추상적인 것(사람 사이의 관계)으로 그 의미의 폭이 넓어지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인'이란 단어를 공자가 자기 식대로 개념화하면서, 모호한 언어적 규정이 아닌 당면 상황에 즉각적으로 인을 적용하는 논리적 근거로서 매번 다르게 실체화되는 '예' 그리고 실증적 근거로서 역사(춘추)의 사례로서의 주공을 제시했던 것이었다. 현재의 과학적 기준으로도 이론과 증거가 합치할 때, 가설과 실례가 일관됨을 증명했을 때 해당 주장을 반박할 수는 없다. 반박하려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론 자체의 결함 또는 증거 자체의 오류 또는 양자의 관계의 틈을 제시해야만 한다. (아니라면, 이성주의 또는 합리주의가 아니므로 과학적 방법이 아니니까 일단 논외의 문제가 된다. 뭐 꼭 과학적이어야만 하는 건 아닐 테니. 하지만 누구든 특권적 자격 제한 없이 자기 이성의 자유에 따라 제시하기만 하면 되는데, 이걸 폭력이라고 하고, 논외의 상황을 끌어 들여서 문제를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폭력이 아닌가? 나는 후자의 폭력이 더 특권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폭력적이라고 본다. 다른 문제를 제시하고 싶다면 새로운 문제로 제시하면 된다. 자유롭게. 문제 자체를 유물론적으로 대상화시키면서 독점하려고 하지 말고. 생각이 무슨 땅따먹기도 아니고.)

계손사는 결국 "당신 말에 틀림이 하나도 없구려."라며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말이 칼보다 강하다'는 표현이 나한테 이렇게까지 깊게 와닿은 적이 없다. 현세의 숱한 오해로, 뜬구름 잡는 이상으로서 약자를 억압하는 유교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지금 말로 '정치', 권력이 강한 자가 주도하는 쟁론의 현장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어도 시퍼렇게 날을 세워 모든 불인과 불의와 무례를 처단하기 위한 최강의 설득력으로서의 인을 지극히 현실적이고 효과적으로 발휘했던 것이다.

더구나 내가 요즘 가장 치열하게 고민 중인 논제에 대한 언급이 노자와 공자와의 대화에서 건드려진다. 한자어 하나의 개념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 중인데, 이것이 보통 알려지거나 연구되는 유가적 인의예지에서 내용상 직접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확신할 순 없지만 글자 자체가 잘 등장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아직 문외한인 처지에서 관련 자료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어 벽에 부딪힌 상태다. 양명학을 살펴봐야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완전 깜깜이라 어느 세월에... 이러고 덮어 두었다. (이런 거 고민하고 있는 자신이 참 궁상스럽기도 한 현실이고.)

아무튼, 역사적 실존 자체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도 하고 세인들에게 친근한 도교적 신선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노자와의 회상 또는 가상 대화의 장소가 역시 도교적으로 구름 위의 산봉우리인 데 반해, 마치 땅바닥으로 추락하듯,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군자'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변하는 현실의 군주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 공자는 노정공의 장막 안에서 신하의 예로 꿇어 앉아 있다. 시각적으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 은유는 노자와 공자가 공유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달랐는지 영화적으로 말하고 있다. 공자의 좌절은 노정공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그가 은자의 길이 아닌 세속의 길을 자신의 삶으로 이미 이전에 선택했기 때문에 자연히 따라온 고통으로 보인다. 그래서 더 이상 선택하지 않고 일체의 항거도 없이 버려진다. 나는 이것이 유가적 '자연'이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공자가 나자렛 예수와 만난다고 생각한다. 흔히 공자가 모국의 군주에게 실망한 끝에 자신의 이상에 맞는 군주를 찾아내어 자신의 정치를 실현시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유랑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후 메이는 공자의 퇴출이 철저히 정치적 패배였고 최후까지 충심과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애절한 기다림에 대한 냉정한 배신이었기에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는 모습을 큰 뜻을 품고 나아갔다기보다는 비참하게 쫓겨나 구차하게 떠돌게 되었던 것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공자는 자신이 버려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버려졌다는 현실에 대해서도 받아들이는 것을 끝까지 힘들어 한다. 내가 후 메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버려지는 것에 대한 공자의 결코 원치 않았고 준비도 대책도 없었던 고통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친 예수가 기어이 죽어야 했던 것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한편 안회의 대답에서 공자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감을 알 수 있다. 자신을 바꾸는 데에는 끝이 없기에. (자신을 바꾸기를 그치지 않고 살기에는 나도 한가락 하건만. 나는 왜 멀리서는 커녕 가까운 거리 안에서도 혼자지?)

내가 여자인지라 더욱 위나라 군부인 남자와의 대화는 경악스러울 지경이었다. 촌철살인으로 넘치는 대화로 거의 백미 같은 장면이었다. 만나는 예를 마친 후 남자는 첫마디부터 핵심을 찌른다. "어진 자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가르치셨다지요? 그 사람 속에는 저처럼 평판이 나쁜 여자도 속하나요?" 지적 편력과는 별개로 그저 생생히 일상이 힘들어서 새삼스레 공자를 찾게 된 것이니까. 요즘 살기가 이렇게까지 힘든 건 내가 여자이기 때문인데, 이걸 이제와서 인정하기에는 참 마음의 저항이 남은 데다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으니, 그러니까 나도 최선을 다했기에, 이 점에 있어서만은 공자 님도 인정해 줄 것이라 믿는다. 각종 성욕제어불구 소인배들에게 시달리다 못해 역겨운 지경이라 공자 만나면 울음부터 쏟아질 것 같았는데, 내가 완전 사랑하는 배우 저우쉰이 나보다 훨씬 강단 있게 물어봐 주니... 그 어떤 하소연보다 위로가 된다.

+ 아무래도 이상해서 정확한 대사("微臣从未见过如斯好德如好色的人.")를 찾아보니, 한글 자막 오역이 너무 창의적이었군. 짐작대로 [논어] 20장: 子曰: "吾未見好德如好色者."이란 유명한 구절인데. 어쨌든, 그렇다면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나? 덕까지는 안 바라니 제발 예의 좀 갖추길. ("교수님"을 "오빠야"로 듣는 미친 무례한 것들. 그냥 무례한 것보다 상대의 예를 무례로 응대하는 게 더 나쁜 거거든. 자고로 "죄질이 나쁜" 것으로 여겨져 왔는데, 어디서 서양 봉건제 궁전에서 볼모로 지내던 왕족, 귀족들이 자기 목숨이 언제 달아날까 공포에 떨다 탄생시킨 매너를 예로 잘못 배워 가지고 그저 권력 우열의 관계에서 작동하는 사회적 코드라고 여기고 있는 자신에 대한 자각이나 있는 건지 예를 무슨 한쪽이 그보다 약한 한쪽으로부터 받아 먹는 건 줄로 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정책을 하필 이 땅에서 헌병대가 담당했기에 유독 졸렬하고 잔악한 방식이었던 것을 우리 고유의 삼강오륜적 장유유서 풍습으로 잘못 알고 둔갑시키고 있는가 하면... 성욕=권력이라고 고대인들도 알고 있었던 것을 나만 모르쇠 혼자 타조 놀이 하고 앉아 있으면서 적반하장이질 않나... 무식(=무례)하면 세상이 슬퍼진다.)

좀 진지하게는, 공자가 구설을 무릅쓰고 일단 남자를 만났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자. 특히 자로가 격렬하게 반대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한데. 공자는 남자가 단순히 베갯머리 송사를 통한 경국지색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정치적 안목을 가지고 위나라 정치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만남의 이유로 댄다. 훗날 남자가 살해당할 때 숨을 거두며 공자의 모습을 회상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세상의 이해를 받지 못한 공자가 역시 세상의 이해를 받지 못한 자신을 꿰뚫어 보고 이해하며 인정하고 있었다는 사실. 내 가슴에도 박혔었으니까.

닫는 장면에서의 공자의 독백 "후세에 날 이해하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일 테고, 날 오해하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일 것이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감독 후 메이가 이 작품을 통해서 공자에 대한 현재의 세인들의 대표적인 오해들을 몇 가지만이라도 바로잡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영화 처음부터 명확히 느낄 수 있다. 노정왕과의 대화에서 법가적 법치 체계와의 차이점을, 삼환에 대한 공자의 복잡하고 얼핏 보면 일관성 없어 보이지만 실은 굉장히 일관된, 역사적으로 빈번했던 유생들의 파벌주의와는 상반되는 원래의 유가적 원칙주의와 정명론적인 태도를, "정은 없고 사념이 넘치는" 문란하거나 폭력적인 관계가 아닌 남녀간의 애정 관계에 대한 공자의 아름다운 가치관을, 망명을 떠나던 당시의 처신이나 남자와의 독대를 감행하는 모습에서는 체면이나 평판에 연연하지 않는 대쪽 같은 신념과 용기를, 제자들을 맞아들이거나 떠나보내고 함께 생활하는 모습에서 특유의 소탈함과 다정함을. 하지만... "세인들은 공 대인의 고통을 이해할진 몰라도 그 속에서 일궈낸 진리는 모를 거예요."라고 했던 남자의 말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물론 계몽주의적이라거나 고리타분하다는 비판을 받기에 딱 알맞겠는데, 도무지 소위 평론가들의 반주지주의적 주지주의의 강박 또는 비도덕주의적 도덕주의의 횡포가 특히나 매체 예술마저 감금하려는 것을 보면, 뭐, 본인 인생만 재미없을 뿐이니. ('공가점'을 때려 부수던 공산당이 공묘 복원으로 관광 특수를 누리게 된 이후 국책 마케팅 영화로 제작하였으나 흥행과 평가 모두 망한 것은 사실이다.)

취향 저격 장면은 제나라 대부 여조의 책략으로 제경공이 노정공에게 제안한 회동을 당시 대사구로 있었던 공부자님께서 완벽하게 처리해 주시는 (내 여심을 마구 흔들어 주시는) 일화. 일차적으로 주군의 신변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강국의 권세에 맞서 동등한 권위를 세우며, 무엇보다 영토와 공물 등 예상되는 외교적 요구의 탈을 쓴 패권적 횡포에 대하여 실리적으로 밑지지 않는 협상을 성사시키는 세 가지 일을 동시에 깔끔하게 해결해 주신다. 첫 번째는 사병을 보유한 계 씨와 맹 씨 등을 협력시키기 위해 미리미리 최선을 다하지만 실패하자 기지를 발휘하여 허허실실의 책략으로 병법전을, 두 번째는 예법을 빌어 상대의 자연스러운 협조를 이끌어 내는 우아하고 우호적인 방식으로 심리전을, 세 번째는 역사와 명분을 내세운 날카로운 언변으로 외교전을. 아아, 진정한 완벽남이 여기에... 실은 다방면으로 철저한 사전 준비로 충심을 다하는 헌신적인 공무원 능력자. 국서가 도착하자마자 공자는 지도부터 펼쳐 놓고 회동 장소의 지형을 파악하는 작업을 가장 먼저 한다. 삼환에게서 호위 군사들을 받아내기 위해 직접 활쏘기 내기를 하는 등 (도올 선생님 강의에서 배웠던 '사'로서의 공자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애초에 부친이 무장이었고 대를 이어 기골이 장대했던) 실무자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고대에는 전쟁과 정치가 따로 나뉜 것이 아니었다는 실정을 확인할 수 있다.

한 시퀀스에서 진행 중인 사건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작은 몸짓이나 지나가는 중얼거림, 배우들의 무의식적인 듯한 자세나 스쳐지나가는 표정 등을 통해서 여러 인물들의 성격과 생략된 많은 일화들을 농축적으로 전달하는 연출 덕분에 일일이 풀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계 씨가 보낸 무사에 맞서 스승을 지키기 위해 가장 먼저 칼을 뽑는 자로의 반사신경이라든가 (다 뽑기 전에 손으로 막는 스승님의 스피드가 역시 한 수 위?) 방랑 중 다같이 굶을 때 증삼과 안회의 대사라거나 등등 아는 만큼 재미있는 영화다.
 
가오시시 (2010, CCTV) 삼국 95부작에서 각기 조조와 제갈량 역으로 철천지 원수 사이로 나오는 첸빈천과 류이가 같은 해에 상영된 영화에서 노나라 삼환 중 첫째인 계 씨 가문의 부자지간으로 찰떡 출연하는 재미는 덤. 그러고 보니, 역사이든 원작이든 최대한 재현하기보다는 스크랩하듯이 선별한 일화에 집중하는 연출 방식이 공통점이기도 하네. 첸빈천은 신삼국에서 굉장히 복합적인 성격으로 그려지는 조조의 다면적인 면모를 맛깔나게 연기했는데, 이 작품에서도 계손사가 공자에게 느끼는 복잡미묘한 애증을 보여준다. 참으로 능란한 배우다.

Saturday, August 13, 2016

論語 (The Analects of Confucius) 3-12 by Ogyū Sorai

論語: 八佾편(3장) 12절:
祭如在,祭神如神在。子曰:「吾不與祭,如不祭。」

(tr. D. C. Lau:)  'Sacrifice as if present' is taken to mean ‘sacrifice to the gods as if gods were present.' The Master, however, said, 'Unless I take part in a sacrifice, it is as if I did not sacrifice.'

논어 3장 12절에 대한 오규우 소라이(荻生 徂徠 ; Ogyū Sorai)의 해석! 어제 최 선생님께 듣자마자 하늘에서 바위산이 떨어지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온몸에 소름이 연달아 스무 번쯤 내렸다. 이 정도의 강도를 겪는 것은 살면서 몇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일이다. D. C. Lau의 영어 번역은 이에 의거한 것. 일단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論語 : 八佾에 나와 있는 일차 해석과만 비교해 보더라도 그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그동안 내가 검토해 본 다수의 영어 번역들이 논어를 무슨 바른 생활용 잠언록 정도로 만들어 놓고 있기에 문외한인 내 눈에도 어이없던 중이었는데, 명불허전이라더니 철저한 문헌 고증에 의거한 오규우 소라이는 탁월하다기보다 정확하다는 느낌이다. 무섭다. 공자(논어)에게서 공자를 찾아내기가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라니... 동양학을 공부하는 매력을 짐작할 수 있겠다. 서양의 주석학과 문헌학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구나.

중니 선생, 소탈하신 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나자렛 예수 뺨칠 카리스마가 있으신 줄 비로소 알았습니다. 소생 이미 저절로 무릎이 꺾여 넙죽 엎드린 채 아룀.


(있거나 아니면 없고, 너가 아니면 나라서, 내가 있다고 말하기까지 2천 년, 네가 없다고 말하기까지 다시 2백 년 이상, 그 모든 배중률이 아니라 변증법적 주객이든 우연적 우열이든 가변적 상대성을 보자고 하기 시작한 지 반 세기도 지나지 않아, 여태 헤매고 있는 그들의 한계가 이제야 좀 뚜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여태까지 생고생을 하고 있다니... 웃어야 할지 남의 일로 벗어날 수 없으니 울어야 할지... 아무튼 나는 디지털이 아니거든. 패러렐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