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实甫(Wang Shi-Fu, 1260-1336) 《紫花儿》(元代 越调 散曲)
李祥霆 (Li Xiang-Ting) guqin
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 ( Chéng zhě, tiān zhī dào yě; chéngzhī zhě, rén zhī dào yě. ) ---- 子思 《禮記·中庸》22:7 _____ Der bestirnte Himmel über mir, und das moralische Gesetz in mir. ---- Immanuel Kant (KpV: AA 05: 161.33–36) ________________________ ἃ γὰρ δεῖ μαθόντας ποιεῖν, ταῦτα ποιοῦντες μανθάνομεν (What we have to learn to do we learn by doing.) ---- Ἀριστοτέλης (Nic. Eth. 1103a33)
결정적인 부분에서 개연성이 없어지는 결점이 있기는 하지만, 유비 사후 촉한 제갈량의 3차에 걸친 북벌은 배경일 뿐, 르 카레를 기본으로 미션 임파서블을 섞고, 장면 연출보단 캐릭터에 집중한 첩보 추리물. 고증은 멀리 날려 버리는 손쉬운 위험을 선택. 그래도 정사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연의를 따르고 있어 삼국지 팬이라면 드라마 전개상 지루해지거나 황당한 부분에서도 아련한 애틋함에 기대게 된다. 구성이야 원작이 일반적인 경우라면 더 낫겠지만, 조명/촬영이 훌륭. 테이크가 섬세하다.
가치관은 나와 안 맞지만, 최소 이 정도가 내가 집중할 수 있는 복잡도. 생각을 멈출 순 없다면 다른 내용으로 치환하는 치유책. 이렇게 암에 걸린다는 거였구나.
곽회[17]: " 누군가에겐 가장 확고하고 굳은 신념이 약점이 되기도 하지. "
곽회[17]: " 무슨 일이든 마음먹고 공을 들이면 남다른 수준에 이를 수 있지. 일시적인 승패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왜 이렇게 공명이 이해가 잘 가는지. 그에게 애초에 선택지가 너무 없었다. 반대 세력들도 이해가 잘 되고. 여하튼, 고작 삼십 년을 내다보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자녀들도 있는 이들이. 물론 이 시각으로 개인사가 보이진 않지만. 살리려고 나아간 건데. 키우려고가 아니라.
+
마지막에 직접 정리해 주시네.
좀 더 복잡한 거 없나?
The Joys and Sorrows of Young Yuguo 젊은 위고의 기쁨과 슬픔
by Ilinca Calugareanu (2022) 일린카 칼루가레아누
2023-07-12 물의 저녁: 거실, 뮤젠
cf. Mihai Eminescu (1850-1889, rou) 미하이 에미네스쿠
⟪呂氏春秋 · 孟夏紀⟫
Quo Vadis Zunshi? 존사여, 어디로 가심? orz 받아 쓴다고 날로 습관이 될 리가...
내겐 연예인보다 먼 존재라는 한계 상황이 비록 있기는 하지만, 존사에 그런 참작 조항은 없음. 😭
한문을 좋아하기도 하니 기꺼이 다짐대로 받아쓰기를 하는데, 꿈틀꿈틀. 3분도 안 걸리는 사이에 토할 것 같기도 하고, 날이 가도 어쩐지 개운하지가 않았다. 자책은 잘 해도, ritual이라니... 비위 맞추기를 전혀 못 하는 천성을 고치고 예를 익히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너무 나답지가 않은데. 왜 자꾸 찜찜하고 뭔가 더 가야 한다고 강력히 느끼는 걸까? 문제의 뒷부분.
君子之學也,說義必稱師以論道,聽從必盡力以光明。
Jūnzǐ zhī xué yě, shuō yì bì chēng shī yǐ lùn dào, tīngcóng bì jìnlì yǐ guāngmíng.군자의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담론을 펼 때에는 반드시 스승을 칭하면서 도(道)를 논(論)해야 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귀담아 실천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스승의 학풍을 빛내야 한다.
聽從不盡力,命之曰背;說義不稱師,命之曰叛;
Tīngcóng bù jìnlì, mìng zhī yuē bèi; shuō yì bù chēng shī, mìng zhī yuē pàn;귀담아 따르는 데 있는 힘을 다하지 않는 것을 배(背)라고 이름짓고, 담론을 펼치면서 스승의 이름을 거론치 아니 하는 것을 반(叛)이라 이름짓는다.
背叛之人,賢主弗內之於朝,君子不與交友。
bèipàn zhī rén, xián zhǔ fú nèi zhī yú cháo, jūnzǐ bù yú jiāoyǒu.현명한 임금은 배반(背叛)의 인간들을 조정에 들이지 아니하고, 군자는 더불어 교우(交友)하지 아니 한다.
故教也者,義之大者也;學也者,知之盛者也。
Gù jiào yě zhě, yìzhī dà zhě yě; xué yě zhě, zhīzhī shèng zhě yě.그러므로 가르침(敎)이야말로 정의의 대체(大體)이다. 배움(學)이야말로 지식의 융성함이다.
義之大者,莫大於利人,利人莫大於教。
Yìzhī dà zhě, mòdà yú lì rén, lì rén mòdà yú jiào.정의의 대체는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은 가르침보다 더 큰 것이 없다.
知之盛者,莫大於成身,成身莫大於學。
Zhīzhī shèng zhě, mòdà yú chéng shēn, chéng shēn mòdà yú xué.지식의 융성함이란 몸을 이루는 것(成身: [대학]의 수신修身과 완전히 일치하는 개념)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몸을 이루는 것은 배움(學)보다 더 큰 것이 없다.
身成則為人子弗使而孝矣,為人臣弗令而忠矣,
Shēn chéng zé wéi rén zǐ fú shǐ ér xiào yǐ, wéi rén chén fú lìng ér zhōng yǐ,배움이 이루어지면, 사람의 아들된 자로서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효성스럽게 되며, 사람의 신하된 자로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저절로 충성스럽게 되며,
為人君弗彊而平矣,有大勢可以為天下正矣。
wéi rén jūn fú jiàng ér píng yǐ, yǒu dàshì kěyǐ wéi tiānxià zhèng yǐ.사람의 임금된 자로서 강압을 가하지 않아도 저절로 공평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대세를 장악하는 자라야 천하의 바른 기준이 되는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도올(2009/2016:226): 너무도 강렬한 언사이며 《대학》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모든 논리가 제공되고 있다. 먼저 우리가 흔히 "배반背叛"이라고 쓰고 있는 단어의 실내용이 아주 리얼하게 규정되어 있다. 배반의 가장 큰 것은 가르침과 배움 사이의 배반이다.
[...]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성신"이 "지식知"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또 "배움學"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수신은 어디까지나 배움을 통하여 몸을 이루어가는 것이며 그 과정에 깔려있는 것은 지식의 융성함이다. 수신과 격물치지가 연결될 수밖에 없는 논리적 고리가 여기 이미 〈존사〉편에 드러나 있는 것이다. [...]
아니, 내 사전이 배반을 당한 일들로 점철되어 있지, 배반을 한/할 일이 있을 리가 있겠니? 삐딱하게 부러울 지경인데. 근데 왜 자꾸 찔리는 것 같고 슬퍼지려는지...
故子貢問孔子曰:「後世將何以稱夫子?」
Gù Zǐgòng wèn kǒngzǐ yuē: "Hòushì jiāng héyǐ chēng fūzǐ?"그러므로 자공이 공자에게 여쭈어 말하였다: "후세사람들이 장차 선생님을 어떻게 상찬하오리이까?"
孔子曰:「吾何足以稱哉?勿已者,則好學而不厭,好教而不倦,其惟此邪。」
Kǒngzǐ yuē:`Wú hé zúyǐ chēng zāi? Wù yǐ zhě, zé hào xué ér bùyàn, hǎo jiào ér bù juàn, qí wéi cǐ xié.'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내가 어찌 상찬을 받기에 족한 인물이겠는가? 부득불 나보고 어떤 사람이냐고 말하라고 한다면, 끊임없이 배우며 싫증내지 않았고, 남을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며 게으름이 없었다는 것, 그것을 말할 수 있을 뿐이로다."
天子入太學,祭先聖,則齒嘗為師者弗臣,所以見敬學與尊師也。
Tiānzǐ rù tàixué, jì xiān shèng, zé chǐ cháng wéi shī zhě fú chén, suǒyǐ jiàn jìng xué yǔ zūnshī yě.천자가 태학(太學)에 들어가 지나간 성인들의 제사를 올릴 때, 일찌기 스승이었던 사람을 신하의 반열에 세우는 짓은 하지 않는다. 이러한 행동을 통하여 학문을 숭상하고 스승을 존경하는 자세를 천하에 보이는 것이다.
-- 도올 옮김(2009/2016: 226-228)
원망이 자책으로 설움이 슬픔으로 바뀌었을 뿐이라면 뭔가 아직 아니올시다. 존사 편은 존사의 방법을 알려 주고 있다. 그걸 몰라서 본 손실이 아까우니 익혀서 써먹겠다고 하는 심사는 또 뭐냐. 흉하다. (그런데 왠지 교수님은 그렇게라도 좀 잘 받아먹는 게 있었으면 차라리 좋다고 하셨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생각은 더 슬프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 답은 뒤가 아니라 앞에서 찾을 수 있었다. 권학 편은 존사가 왜 필요한지 내면(수신)에서부터 경륜(치세)까지 단계적으로 설명한다.(소름끼친다.) 그리고, 나에게 결정적이었던 것은 바로, 존사란 기실 무엇인지.
疾學在於尊師,師尊則言信矣,道論矣。
Jí xué zàiyú zūnshī, shī zūnzé yán xìn yǐ, dào lùn yǐ.Intense study depends on honoring teachers. When teachers are honored, their doctrines are accepted on faith and their way is advocated.
故往教者不化,召師者不化,
Gù wǎng jiào zhě bù huà, zhào shī zhě bù huà,Therefore, a teacher who instructs in response to a summons does not transform the person who summoned him, and the person who summons the teacher is not transformed by his teachings.
自卑者不聽,卑師者不聽。
zìbēi zhě bù tīng, bēi shī zhě bù tīng.Those who debase themselves are not heeded, and those who debase teachers do not heed their teachings.
師操不化不聽之術而以彊教之,欲道之行、身之尊也,不亦遠乎?
Shī cāo bù huà bù tīng zhī shù ér yǐ jiàng jiàozhī, yù dào zhī xíng, shēn zhī zūn yě, bù yì yuǎn hū?If the teacher upholds methods that do not transform and are not heeded, yet insists that others be instructed in them, is this not far indeed from his desire to have his Dao practiced and his person honored!
學者處不化不聽之勢,而以自行,欲名之顯、身之安也,
Xuézhě chù bù huà bù tīng zhī shì, ér yǐ zìxíng, yù míng zhī xiǎn, shēn zhī ān yě,If the student lives in a situation where he can neither be transformed nor heed instructions, but does whatever suits him, then his hope of making his name eminent and his person secure is
是懷腐而欲香也,是入水而惡濡也。
shì huái fǔ ér yù xiāng yě, shì rùshuǐ ér è rú yě.like "holding something rotten but wanting to smell perfume" or "hating to get wet and yet going in the water."
-- tr. John Knoblock & Jeffrey Riegel (2001) The Annals of Lü Buwei, p.119
疾學在於尊師,師尊則言信矣,道論矣。 순간 너무 아파서 이것이 답이고 모든 원인인 줄 절로 알았다. 난 마지막까지도 고작 이렇게 적지 않았던가. 매번 즉각 답을 주셨는데, 그것이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그때는 뉘우치는 마음으로 괴롭지만 굳이 끌어내 적어 놓자는 것이었는데, 조금만 더 생각하면 이 말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삿되이 비틀려 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부터 일파만파 꼬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대학원이란, 내가 공부하는 동기란(그래도 가장 중요하지만), 잘도 이래 가면서. 더 많지만 차마 다 적지 못하겠다. 칼 맞은 것처럼 신체의 격통에 한참 꼼짝 못 하고 숨을 못 쉬었다.
인터넷 검색으로는 적절한 번역을 찾을 수가 없어서(내가 읽는 것보다도 못하시면 어쩌란...), 이럴 때가 아닌데 어쩔 수 없이 한나절을 날린 끝에(인용들은 어째 비유에 불과한 마지막 문장만 선호되는지...) 아쉬운 대로 영역을 찾았다. 양심의 힘이었는지 그냥 내가 읽은 게 제일 나았지만. (도올 선생님 제발 여씨춘추 전체 번역 좀 해 주세요. cJ2 글항아리 건 왠지 안 내켜요.)
疾學在於尊師,師尊則言信矣,道論矣。
평생 못 잊을 것이다. 근원적 환부가 도려내졌다. 頓 ! 그래서 받아쓰기 같은 건 안 해도 되지만. 이 역사적인 사건을 남겨 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漸에 해당하는 문제의 존사 부분 받아쓰기는 내년 1월 1일까지는 해야지. 왜냐하면, 여기서 돈이 이루어진 것은 무엇보다 애초 내가 師를 찾은 게 맞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제 내가 먼저 포기하거나 포기하기를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고려하는 일은 절대 없다. (이제 생각하니 도대체 다른 건 다 몰라도 나의 그런 망발을 어떻게 용서하셨는지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다. 졸업은 내가 이미 스스로 자격을 잃었으므로 나로서는 아무 불만이 없지만, 내가 짐작하기에 교수님께서는 내가 業을 다하지 않으면, 敎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보시고 師弟가 성립하지 않는다 여기실 것 같다.)
化聽이 되지 않으면 깨달은 것도 아니겠지만, 化聽을 이루리란 보장은 없어도 그나마 발동은 걸린 듯. 다 늦어서.
교수님 + 세 명의 과학철학자 + 도올 선생님 + 북부여가 세워졌던 해(기원전 239년)의 여불위와 3천 문사들이 나의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 동원되어야 했으니, 병이 참 깊었구나. (절연이 마땅한 과거나 그리워하고 앉아 있었다니... 사실, 석사 지도교수님이 나에게는 정확히 배신의 상처였다는 것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는 師로 여기는 마음이 없었으므로, 관계적으로는 아무것도 원하는 바가 없었는데도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 바라는 마음이 있고, 너무나 강한 상태로 인해 끔찍한 불안을 느꼈던 거였다.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되면 죽는 게 낫겠다고 여기니 당연하다. 극도의 불안이 공포가 되어 스스로 도리어 불안을 실현시키는 쪽으로 진행한 것. 갖가지 차원의 망상들은 분석하자면 그 방어기제였다고 할 수 있겠지만, 경험상 분석 작업에 집착한다면 또 다른 도피일 뿐이고 그게 또 무가치한 망상을 낳을 뿐이다.)
요약하면, 그토록 찾으려 애썼던 학문적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고작 과거의 상처를 핑계로 존사를 안 하려고 한 당장의 마음이 문제였다. 아주 치장이 장엄했소. (그래도 그 모색 자체는 가치가 없지는 않았다고 위안하고 싶다.) 요약하면, 인문학이나 유리 벽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수신(正心)이 안 되어 장애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교수님께서 받으셨던 건 학생이 아닌 곪은 알... 알이 어떻게 논문을 쓰겠나... 그래도...
저 다 나았어요!
(생쇼 그만하고 그 기력으로 논문을 쓰라는 소리가 들린다... 늘 뜻을 모르겠다고, 나아가서, 모를 수밖에 없지 않냐고, 속으로 잘도 뇌여 왔는데, 이제 잘 들리는 걸 보니 정말 나은 듯. 교수님의 지성을 이런 식으로 소모하다니 하늘이 노하지 않을까 무섭기는 하다.)
어쨌든 이제 없애야 할 잡념 자체가 사라졌다. 비로소 편하다. 😭
논문을 쓰기 위한 짓, 논문을 안 쓰기 위한 짓, 논문을 쓰고 난 다음을 위한 짓, 논문을 못 쓰고 난 다음을 위한 짓... 논문을 쓰는 짓만 빼고 죄다 해 보느라고 얼마나 힘들었겠어. 남은 한 가지 일이 차라리 쉬울 듯. 잘해야 되는 것도 아니니 걱정도 없고. 물론 몇 달 후부턴 생계가 걱정이겠지만. 그동안 한껏 누려야겠다.
날린 하루였지만, 굉장한 하루였다. 수술 받은 날. 아프지만, 희망적인 아픔.
+
化 = 人(산 사람)이 匕(죽은 사람)으로 되어 다른 사람으로 모양을 바꾸어 다시 태어나다. 윤회(輪廻)
聽 = 直(숨어 있는 것을 바르게 보고) + 耳(듣고) + 心(느끼는) + 壬(사람). (남의 의견·권고 따위를) 받아들이다. (명령·지시에) 따르다.
++
《禮記 · 中庸》 :
Lǐjì · Zhōngyōng
其次致曲。
Qícì zhì qū.
다음으로 힘써야 할 것을 치곡(致曲)의 문제이다.
曲能有誠,
Qū néng yǒu chéng,
그것은 소소(小小)한 사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지극하게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다. 그리하면 소소한 사물마다 모두 성(誠)이 있게 된다.
誠則形,形則著,
chéng zé xíng, xíng zé zhù,
성(誠)이 있게 되면 그 사물의 내면의 바른 이치가 구체적으로 형상화된다. 형상화되면 그것은 외부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著則明,明則動,
zhù zémíng, míngzé dòng,
드러나게 되면 밝아진다. 밝아지면 움직인다.
動則變,變則化。
dòng zé biàn, biàn zé huà.
움직이면 변(變)한다. 변하면 화(化)한다.
唯天下至誠為能化。
Wéi tiānxià zhìchéng wéi néng huà.
오직 천하의 지성(至誠)이라야 능히 화(化)할 수 있다.
OST by Hans Zimmer & John Powell
The Piano Guys — Kung Fu Piano: Cello Ascends
„Der Vogel kämpft sich aus dem Ei. Das Ei ist die Welt. Wer geboren werden will, muß eine Welt zerstören. Der Vogel fliegt zu Gott. Der Gott heißt Abraxas.“
-- Hermann Hesse (1919) Demian. Die Geschichte einer Jugend
충격의 순간 떠오른 구절. 그러나 부화 후에도 과연 살아나겠나 싶게 비실비실한 것이 중2 때보다 못한 부실한 정신의 원인을 메일을 받고도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뭔가 무지 억울하다. 아둔해서 잃어 버린 것들이. 객관적으로 3년이나 걸릴 만한 상황이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내가 처음부터 적나라하게 여쭈었고 매번 즉각 답을 주셨었다. 그게 동문서답이라고 생각한 건 나고. 부질없지만 그렇다고 외양간을 아니 고쳐 놓을 수도 없다.
凡學必務進業,心則無營。
Fán xué bì wù jìn yè, xīn zé wú yíng.
대저 배운다는 것은 반드시 수업의 진도가 나아가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가슴에 의혹이 남은 채 넘어가서는 아니 된다.
疾諷誦,謹司聞,
Jí fèngsòng, jǐnsī wén,
경전을 읽고 외우는 데 전념하여 서둘러야 하며, 또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열심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觀驩愉,問書意,
Guān huān yú, wèn shū yì,
의문이 생길 때는 선생님께서 기분이 좋으실 때를 틈타 경전의 뜻을 여쭈어 보아야 한다.
順耳目,不逆志,
Shùn ěrmù, bù nì zhì,
이때 묻는 방식이 선생님의 이목을 거슬리면 안 되며 그 심지를 불쾌하게 만들면 안 된다.
退思慮,求所謂,
Tuì sīlǜ, qiú suǒwèi,
그리고 물러나서는 혼자 반추하면서 생각을 깊게 해야 한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바의 핵심적 도리를 탐구해야 한다.
時辨說,以論道,
Shí biàn shuō, yǐ lùn dào,
수시로 같이 배운 사람들과 더불어 변론하면서 도(道)의 요체를 논구해야 한다.
不苟辨,必中法,
Bùgǒu biàn, bìzhōng fǎ,
그러나 구차스럽게 변론하면 안 되고 반드시 합리적 논리에 적합해야 한다.
得之無矜,失之無慚,必反其本。
Dé zhī wú jīn, shī zhī wú cán, bì fǎn qí běn.
변론에서 이겨도 자긍(自矜)하지 아니 하며 져도 부끄럽게 생각치 아니 하며 항상 그 근본으로 되돌아가 다시 변론할 것을 기대한다.
십 년 전 정말 얼마나 고심하고 다 버린 선택이었는데... 하여 나만 이해할 수 있는 원망심에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눌려 있었던 것도 맞지만 이런 습관이 없는 것도 맞다. (그럴 만한은 커녕 그래도 되는 인간을 통 만난 적이 있었어야지.) 집중을 못 하고 잡념이 계속되어 안 되겠다. 시간이 없다고 느껴서 더 그러는 것 같다. 와신상담 정신으로 아침마다 한 번씩 쓰기로 한다. 그리고 하루 동안 딱 끊어야지.
+
必恭敬,和顏色;
Bì gōngjìng, hé yánsè;학생된 자는 항상 선생님을 공경히 응대하여 안색을 순화롭게 하여 임한다.
審辭令,疾趨翔,必嚴肅;
Shěn cílìng, jí qū xiáng, bì yánsù;지시하시는 말씀을 잘 살피어, 즉각적으로 그것을 시행하고, 무슨 일이든지 엄숙하게 잘 마무리짓는다.
此所以尊師也。
Cǐ suǒyǐ zūnshī yě.이것이 바로 스승님을 존경하는 마음이다.
-- 도올 옮김 (2009/2016: 222-223)
白露. 이슬 총총한 날.
[簡單百科] 白露時節承載了多少古代的好詩詞,這個冬天,世界會怎麼樣?
시를 다 모아 놨어~ 💘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것!
白露不僅僅是節氣,還承載了中國人的愛情、思念及豐收的喜悅
大家好,這裡是簡單生活頻道,今天,和大家聊聊二十四節氣中的,白露。白露是一年中的第十五個節氣,也是反應天氣變化的一個重要節氣,《月令七十二候集解》對“白露”的詮釋是這樣的:
水土濕氣凝而為露
Shuǐtǔ shī qì níng ér wéi lù.
秋屬金 金色白
Qiū shǔ jīn, jīnsè bái.
白者露之色 而氣始寒也
Bái zhě lù zhī sè, ér qì shǐ hán yě.
天氣的變化,讓世界寒生露凝,也就給白露這個節氣帶來了詩意,帶來了靈性,中國古代以白露為詩詞的很多,
一、白露是愛情的畫卷
春秋戰國時期的人們已經感受到了白露這個節氣的美,雖然此時還沒有白露這個名稱的節氣,但這首詩百分之九十的人都聽過:
蒹葭蒼蒼
Jiānjiā cāngcāng,白露為霜
báilù wèi shuāng.
所謂伊人suǒwèi yīrén,
在水一方
zài shuǐ yīfāng
這句詩出自於《詩經·國風·秦風》,想像一下在河邊生長著茂盛的蘆葦,顏色蒼青, 而在那蘆葦葉上凝結了一層露水,遠遠望去就像白霜,那微微的秋風送著襲人的涼意,而朝思暮想的佳人正佇立在河岸邊。這充分錶現了一個年輕人看到自己喜愛的佳人時候那種緊張、激動而又興奮的情緒。
二、白露是秋天的畫卷
漢武帝時期,公元前一百零四年,由鄧平等製定的《太初歷》(태초력)把二十四節氣定於曆法,中國正式有了二十四節氣,而白露節氣所代表的由熱轉涼的秋意也被詩人利用起來。唐朝時期,時任丞相的元稹向全國頒布了二十四節氣詩,其中《詠廿四氣詩 白露八月節》說的就是白露節氣:
露霑蔬草白 天氣轉青高
Lù zhān shū cǎo bái tiānqì zhuǎn qīng gāo
葉下和秋吹 驚看兩鬢毛
yè xià hé qiū chuī jīng kàn liǎng bìn máo
養羞因野鳥 為客訝蓬蒿yǎng xiū yīn yěniǎo wèi kè yà pénghāo
火急收田種 晨昏莫辭勞
huǒjí shōu tián zhǒng chénhūn mò cí láo
元稹通過節氣詩描述了一個白露時節美秋的畫卷,白露到了,晶瑩的露水凝聚在草木和蔬菜上,天氣也慢慢變的秋高氣爽,高大的樹木開始落葉,意味著深秋即將來臨,而當你照鏡子的時候會發現,兩鬢的頭髮又白了一些,不知不覺又要老一歲了。大自然的野鳥開始活躍起來,在戶外捕捉蟲子,儲存食物,為了即將到來的寒冬做好準備,人類也開始忙碌起來了,開始收割豐收的糧食,早出晚歸也不覺得辛勞,這是豐收的季節。元稹的寥寥幾句詩,就把白露時節秋天的畫卷徐徐展開,一方面感嘆時光過得飛快,另外一方面也展示了豐收的喜悅。
三、白露是思念的畫卷
杜甫是詩聖,他所處的時代是開元盛世後期,又趕上了安史之亂,所以杜甫的詩中總是表達對老百姓的關心,對國家的擔憂。
戍鼓斷人行 邊秋一雁聲
Shù gǔ duàn rénxíng biān qiū yī yàn shēng
露從今夜白 月是故鄉明
lù cóng jīnyè bái yuè shì gùxiāng míng
有弟皆分散 無家問死生yǒu dì jiē fēnsàn wú jiā wèn sǐshēng
寄書長不達 況乃未休兵
jìshū cháng bù dá kuàng nǎi wèi xiū bīng
這是在安史之亂期間,杜甫寫下的《月夜懷舍弟》,表達了杜甫在白露時節對自己兄弟的思念。白露節氣的到來,意味著豐收時節的到來,天氣逐漸轉涼,越是這個時節越容易勾起人們的相思慾望,因為安史之亂的爆發,導致杜甫和自己的弟弟分散兩地,白露時節到了,露水從今夜開始掛滿草木,月亮掛在了天空,但怎麼看都感覺還是家鄉的月亮更加明亮,這分明是在表達思念之情。杜甫和弟弟想通過書信進行聯繫,但總是送不到弟弟手上,只因為戰亂沒有結束,阻塞了送信的道路。或許只有經歷過分離和戰亂,才懂得團聚和和平的彌足珍貴,中國古老的家國深情,在這首詩中得到最大的展現和昇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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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을 못 쉬겠... 영어/간체자 자막까지! 복배하는 아이콘은 없나? o2 (오~ 괜찮)
cJ2 (이게 더 나은 듯?) cJㄹ (매사 발전)
사극 팬으로 보건대 왼쪽은 중국풍(팔을 올리고 배를 당기고 머리를 숙여 이마를 댄다. 오래 유지하기 힘드니 보통 곧 해제 허가가 떨어진다. 때로 직접 일으켜 주는 후덕한 반응이 나온다.) 오른쪽은 일본풍(손을 옆으로 짚고 목을 늘이고 등을 편다. 어깨로 버티는 방어 불가 상태.)에 가깝다. (한국은 중국풍에 더 가깝지만, 차이는 상체보다 하체에 치중한다는 점. 결국 안정적인 자세로 내려앉는 식. 하여 대기하기엔 용이하지만 바로 일어나기 어렵다. 자세라기보다는 동작. 안 살벌하다.) 혼놀의 경지.
1부 주제 강연: 수사학자가 본 노회찬의 말과 글
[15:50] 김헌(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고전 수사학에 비춰 본 노회찬의 말
[31:36] 안성재(인천대학교 교육대학원) 기버(Giver)의 전언(傳言) : 노자와 공자 그리고 노회찬의 수사(修辭) -
[53:50] 하병학(가톨릭대학교 학부대학) 현대 수사학으로 소환하는 노회찬의 말하기
[1:32:10] 2부: 우리시대 정치인의 말과 글
花開不竝百花叢 (花开不并百花丛),Huā kāi bù bìng bǎi huācóng,獨立疏籬趣未窮 (独立疏篱趣未穷)。dúlì shū lí qù wèi qióng.寧可枝頭抱香死 (宁可枝头抱香死),Nìngkě zhī tóu bào xiāng sǐ,何曾吹落北風中 (何曾吹落北风中)!hécéng chuī luò běi fēng zhōng!
宋詩 전공하고 싶다. 표의 문자에는 장애도 덜하고. 나에게도 집이 생겼을 텐데. 아무래도 한문학 최고봉은 굴원인 듯하지만 난이도가 너무 높으니. 풍도 제일 마음에 들고, 무엇보다 악비의 숨결이 있는 곳이 좋아. 중공 덕분에 적극 기억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
這一生 也在進取 這分鐘 卻掛念誰我會說 是唯獨你不可失去好風光 似幻似虛 誰明人生樂趣我會說 為情為愛 仍然是對誰比你重要 成功了敗了也完全無重要誰比你重要 狂風與暴雨都因你燃燒一追再追 只想追趕生命裡一分一秒原來多麼可笑 你是真正目標一追再追 追蹤一些生活最基本需要原來早不缺少 Ha...有了你 即使平凡卻最重要好光陰 縱沒太多 一分鐘那又如何會與你 共同渡過 都不枉過瘋戀多 錯誤更多 如能從新做過我會說 願能為你 提前做錯只得你 會叫我彷彿人群裡最重要有了你 即使沈睡了也在笑
微微略略緩緩慢慢擦過 是否真的有過 一分半秒戀火無情或是有意或是怎麼 即使多不清不楚 目光早侵占我偷偷看是無心 有意也是無意再看也是無意 只得一個意思多麼的一致 你說這是誰人在說 愛意即使初看像無心 有意也是無意眼角卻是情意 只得一個意思
你說為何在這時 眼望眼竟這般如此 不分真心假意眉來或是眼去或是看錯 是真不想錯過 假的怎可這麼無情或是有意或是怎麼 即使多不清不楚 目光早親吻我
幻變的一生 默默期待一份愛踏過多少彎 段段情路也失望我不甘心說別離 仍舊渴望愛的傳奇不捨不棄 無懼長夜空虛風中繼續追風裡笑著風裡唱 感激天意碰著你
縱是苦澀都變得美天也老 任海也老 惟望此愛愛未老
願意今生約定他生再擁抱是你的雙手 靜靜燃亮這份愛是你的聲音 夜夜陪伴我的夢交出真心真的美 無盡每日每天想你今生今世 寧願名利拋開 瀟灑跟你飛
寂寞也揮發著餘香 原來情動正是這樣曾忘掉這種遐想 這麼超乎我想像但願我可以沒成長 完全憑直覺覓對象模糊地迷戀你一場 就當風雨下潮漲如果真的太好 如錯看了都好
不想證實有沒有過傾慕
是無力 或有心 像謎 像戲誰又會 似我演的更好從眉梢中感覺到 從眼角看不到
彷彿已是最直接的裸露是無力 但有心 暗來 明往誰說 這算是 情愫
miss you much, gorgor.
心若倦了 淚也乾了這份深情 難捨難了曾經擁有 天荒地老已不見你 暮暮與朝朝這一份情 永遠難了願來生還能 再度擁抱愛一個人 如何廝守到老怎樣面對一切 我不知道回憶過去 痛苦的相思忘不了為何你還來 撥動我心跳愛你怎麼能了 今夜的你應該明瞭緣難了 情難了
종이 사전 뒤적여 병음과 성조 다느라 며칠이나 걸리고, 발음 연습 하는데 그때만 해도 짱깨말 시끄럽다고 구박받던 시절이 소롯한데. 영화를 여태 못 봤네. 문화 개방 전이라 민중서국에서 씨디/비디오테이프 어렵게 구하고 했는데. 만방 지금도 활동이 활발한 것 같아 반가움.
공자: 예와 악을 위한 큰 꿈은 후세에 맡길 수밖에...
공자: 그들이 법을 지키는 건 형벌이 두렵기 때문인데, 사람들이 예를 지키고 염치를 알아서 법을 지키는 게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군주 노정공이 나라를 강하게 하는 방법으로써 제나라의 법치에 대해 묻자)
공자: 인이 우선일진데 살인은 전통이 될 수 없소. (노나라 대부 계손사가 부친의 장례에 순장 풍습에 따라 어린 노비를 죽이려 하면서 전통임을 주장하자)
공자: 자신이 원하지 않는 건 남에게도 시키지 말아야죠. (노나라 계손사가 선친의 유언에 따라 어린 노비를 순장하여 죽이려 하는 것은 효심이라고 공산유가 주장하자)
공자: 기꺼이 살신성인해야지, 어찌 살기 위해 인을 저버리십니까! (노정공이 삼성을 허무는 국책을 중단하려 하자 항변하며)
안회: 제게도 말씀하셨잖아요. 세상을 바꿔 놓을 수 없다면 자신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요. (노나라에서 축출된 공자가 자신을 따라 쫓아온 제자 안회에게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냐고 묻자)
남자: 어진 자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가르치셨다지요? 그 사람 속에는 저처럼 평판이 나쁜 여자도 속하나요?
공자: 군자는 미인을 얻고자 할 때도 예의를 지킨다는 뜻입니다. (위나라 남자가 [시경]의 한 구절 '요조숙녀 군자호구'에 대해 묻자)
공자: 시 삼백 편을 한마디로 간추리자면, 정이 넘치되 사념이 없는 거죠. (위나라 남자가 [시경]의 남녀 애정에 대해 묻자)
남자: 재물과 미색을 탐하는 게 사내의 본성이라, 차지하려 피를 흘리며 싸우죠. 그것도 천성이니 극복하기 어렵고요.
공자: 어렵기에 군자가 두드러지죠.
공자: 저는 믿습니다. 아침에 도를 알면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다고. (위나라 남자가 공자에게 군자로서 고상한 덕망을 갖추는 것을 진정 중요하게 보느냐고 묻자)
공자:전 불편합니다. 속세의 아름다움과 미덕을 함께 원하시니까요.대충 내가 옮기면 ==> (부인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불편합니다. 덕을 좋아하기를 색을 좋아하듯이 하는 사람을 소신은 아직 보지 못했으니까요. (다음에 한 번 더 볼 수 있겠느냐는 남자의 물음에)
남자: 세인들은 공 대인의 고통을 이해할진 몰라도 그 속에서 일궈낸 진리는 모를 거예요.
공자: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마라. (제자 자로가 위나라 조정의 부름을 받아 떠나게 되자 기뻐하면서도 그의 성급한 성미를 걱정하며)
공자: 후세에 날 이해하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일 테고, 날 오해하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일 것이다.
祭如在,祭神如神在。子曰:「吾不與祭,如不祭。」
(tr. D. C. Lau:) 'Sacrifice as if present' is taken to mean ‘sacrifice to the gods as if gods were present.' The Master, however, said, 'Unless I take part in a sacrifice, it is as if I did not sacrif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