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ugust 02, 2022

자연철학 Philosophy of Nature for 21 C

[접힘과 펼쳐짐: 라이프니츠와 현대]  

이정우(2000/2012): 과학들과 형이상학은 서로를 배척하기보다는 상보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형이상학과 단절된 과학들은 결국 기술 및 자본주의의 하수인이 될 뿐이고, 과학들과 단절된 형이상학은 근거 없는 사변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개별 과학들이 형이상학을 멸시하거나 형이상학이 개별 과학들을 무시한다면, 기술, 자본주의, 종교, 이념, 대중문화, ......등만 존재할 수 있을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유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과학들은 형이상학으로부터 메타적인 사유(비판적이고 종합적인 사유)를 배워 각각의 한계를 돌파해 나가고, 형이상학은 자신의 사유를 개별 과학들의 성과를 매개해 구체화해야 합니다. [15] 

오늘날 '사물'은 무엇이고, '인간'이란 무엇이고, '리얼리티'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해 새롭게 답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존재론과 자연철학이 오늘날처럼 일상 속에서 절실하게 요구되었던 시대도 드물 것입니다. 

그런데 20세기의 철학은 대체적으로 자연/사물과 절연되어 있었어요. 20세기 철학의 전반적인 경향을 논할 때 흔히 언급되는 것이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죠. 무슨 자랑스러운 것이나 되는 듯이 언급되는데, 사실은 철학이 사물과 세계를 상실했다는 것을 뜻할 따름입니다. 20세기의 철학은 주로 언어나 논리, 사고나 문화를 다루어 왔습니다. 세계, 자연, 사물, 우주를 잘 다루지 않았어요. [17-18] 

오늘날 의미 있는 형이상학이 제시되려면 그것은 반드시 과학의 역사를 매개한 형이상학이어야 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강의 첫머리에서 언급한 '과학사의 외삽으로서의 형이상학'인 것이죠.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의 대립은 바로 이러한 과정의 최초의 예입니다. 17세기에 처음으로 근대 과학이 성립했고, 또 처음으로 그 근대 과학에 대한 비판이 성립했던 것이죠(그 비판을 통해 고대와 근대를 잇는 끈이 마련됩니다). 그후의 역사는 이 최초의 대립으로부터 이어져 나오는 것이죠. [54-55]

 


재작년에만 봤어도 좋았을 걸. 훨씬 덜 힘들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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