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writing.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writing. Show all posts

Friday, July 07, 2023

손열음 Yeol Eum Son @EBS Space 공감

[ebs/Space 공감] 손열음 Yeol Eum Son piano
2023-05-26 EBS 



어라리요? ㅎㅎ 신기방기. 더구나 공대 명예교수님. 

몇 달 동안 작성한 노트나 몇 년의 노력이 들어간 연구 보고서, 심지어 일기 성격의 글까지 남의 것으로 둔갑당한 적은 많았어도, 이렇듯 번듯하게 스크랩 된 것을 보니 생각보다 더 기분이 좋으네. 더구나 장애인을 위한 공학 기술 연구에 평생을 바치신 훌륭한 분이라니. 😊 영광. 

+

마법사들과 마법학교 예비입학생들의 모임에 다녀왔다. 교수님께서 말씀 주신 일을 아직 못 하고 있는데 놀러 가려니 많이 망설여졌지만, 처음으로 간 만년필 동호회 번개. 무려 '쓰기' 님으로부터 쓰기를 사사받았다. 두둥. 내 상태가 그토록 심각한 줄 몰랐다. 그래도 스틸 닙이라면 악력을 빼는 연습을 하는 동안 필압을 견뎌 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몇 글자 쓰지도 않았는데, 내 손 모양만 보고도 이미 팁이 서로 어긋났을 줄 알고 계속 다시 고쳐 주신... 너무 고마워서 그 자리에서 바로 맹렬히 연습을 시작했고, 심지어 꼼꼼한 격려까지... 감동. 내 본래 필체까지 복원하려면 십 년도 어려울 것 같은데, 쓰기 님은 두 달이면 된다고 했다.

종이도 야무지게 얻어 왔다. 역시! 난 미끄러운 로디아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마법사들로부터는 외면받는 종이였다. 그리고 잉크의 위험성 등등... 많은 진실을, the real world의 삶을 경험할 수 있었다. 유튜버들과 블로거들이 양산하는 오정보의 심각성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대강 오염의 정도를 제대로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거의 챗GPT 수준이었던 것이다. 마법적 인간과 거짓말쟁이 챗봇 사이에 온라인 존재자들이 있는 셈. 

어떻게든 라틴어 암기와 악력 없는 필기 연습을 녹여 보아서 꾸준히 반드시 고쳐야지! 그리고 앞으로 번개에 꼬박꼬박 나가야지. 연예인 같은 소장님을 실시각으로 봄. 

   

Wednesday, January 25, 2023

신영복 Shin, Young Bok (2011) 특강: 글과 글씨 (Lecture: Writing & Lettering)

신영복 선생 7주기 - 리마인드 특강: 글과 글씨‚ 어떻게 보다 무엇을 쓸 것인가
2011-10-22 파주 돌베개 북카페 행간과 여백 



날 풀리고 허리 아물면 가야지. 가장 사랑하는 출판사. 


Saturday, October 08, 2022

이오덕 (Lee O-doek, 1992) 우리글 바로쓰기 (Writing Right in Korean)

[알릴레오 북's] 74회: 이오덕 (1992) 우리글 바로쓰기 - 1부


[알릴레오 북's] 75회: 이오덕 (1992) 우리글 바로쓰기 - 2부


하지만 '아이다움'에 대한 편견과 제한이 있기도 하네. 그 때문에 나날이 너무 자주 피해를 입었던(일례로, 나 혼자 한 나의 일을 어떤 어른이 시켰거나 대신 해 준 것이었으리라는 오인과 추궁을 많이 받으며 자랐고 지금까지도 신뢰가 충분하지 않은 상대와 교류하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는) 나로서는 더욱 '교학상장'이란 단순히 학생을 관찰하고 그 결과에 일방적으로 맞추어 주거나 편하게 소통할 거리들을 만들기 위해 똑같이 대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생각. 교육은 생태학이나 동물 행동학이 아니다. 재능이 없고 별다른 노력을 해 보지 않은 어른보다 감각을 타고나거나 어떤 자극에 익숙해진 아이가 훨씬 더 뛰어난 상태일 수 있다. 직업이 교사라면 그런 것들을 찾아내는 눈과 귀가 필요하고. 세상의 모든 아이가 그런 것을 꼭 두 가지 이상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귀납적으로 알게 된 것은 나도 아이였을 때였다. 아이는 교사의 자의식이 원하는 안정감과 보람을 주기 위해 하향 기대치에 정확히 맞추어 줄 수 있는 연기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자신의 가정에 갇혀 있는 교육은 폭력이고, 가르치는 사람의 권위와 배우는 과정에서의 좌절이나 상상을 넘어서는 잠재력을 겪어 볼 기회를 빼앗는 '열린' 평준화 교육이란 그저 인간에 대한 불신이고 허울만 좋은 닫힌 억압일 뿐 방임보다 못한 반교육이다. 나는 나쁜 교사들(덕분에 대체로 사회인으로서 튼튼해졌고, 공의에 대한 성숙한 의식을 기르게 되었다.)보다 '좋은' 교사들(때문에 물론 미처 처리해 놓지 못한 내 탓이지만 늦깍이 대학원생의 논문 지도에 환장하게 육아와 치료의 차원이 끼어들게 되었다. 문학의 힘을 겪었다.)로부터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기억한다. 

이런 거 듣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피곤해서 집중을 못 한다.  


cf. 

이오덕 (1977) 일하는 아이들

Gerry Bevers@blogger: Is the Chinese character 的 (적) destroying the Korean language?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이오덕(李五德, 1925-2003) 


Thursday, May 26, 2022

A.N. Whitehead

Gustav Emil Müller (1950, 2/e: 183): 그의 저작들에서 풍겨 나오는 정신 — 나는 그것을 그의 많은 제자들에게서도 발견했다 — 은 모든 것을 관통하는, 참으로 너그러운 친절함의 온화한 정신이다. 
-- Michael Hauskeller (1994) 국역 양우석(2018: 48) 


나도 이걸 노리고 물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랬는데. 무모함의 대가가 컸네. 

아직도 모르시고 부담스럽다고 하시려나. 소속부터가 다르다고나. 

십 년 전에도 다 설명할 수 있었다. 다만 그런 게 있으리라 여기시지 않으실 것 같았지.

지금 아는 것들 그때도 다 알았다. 문제는 그때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여전히 잘 모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