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
( Chéng zhě, tiān zhī dào yě; chéngzhī zhě, rén zhī dào yě. )
---- 子思 《禮記·中庸》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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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bestirnte Himmel über mir, und das moralische Gesetz in mir. ---- Immanuel Kant (KpV: AA 05: 161.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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ἃ γὰρ δεῖ μαθόντας ποιεῖν, ταῦτα ποιοῦντες μανθάνομεν (What we have to learn to do we learn by doing.)
---- Ἀριστοτέλης (Nic. Eth. 1103a33)
Dans le second chapitre, il suppose d’abord certaines vérités peripatétiques. 1°. Que tous les corps naturels ont d’eux-mêmes la force de se remuer : ce qu’il ne prouve point ici ni ailleurs. Il assure au contraire, dans le premier chapitre du second livre de physique, qu’il est ridicule de s’efforcer de le prouver, parce que, dit-il, c’est une chose évidente par elle-même, et qu’il n’y a que ceux qui ne peuvent discerner ce qui est connu de soi-même de ce qui ne l’est pas qui s’arrêtent à prouver ce qui est évident par ce qui est obscur. Mais on a fait voir ailleurs qu’il est absolument faux que les corps naturels aient dans eux-mêmes la force de se remuer, et que cela ne paraît évident qu’à ceux qui, comme Aristote, suivent les impressions de leurs sens et ne font aucun usage de leur raison. [547]
아리스토텔레스는 2장에서 우선 자기 학파에서 내세우는 어떤 진리들을 가정한다. 첫째, 모든 자연물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런데 이 점은 이곳에서도, 또 다른 곳에서도 입증되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자연학 2권 1장에서 이를 증명하려고 노력을 기울이는 일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확신한다. 그의 말로는 그 자체로 명백한 것이고, 그 자체로 알려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사람들뿐인데, 이들은 모호한 것을 통해 명백한 것을 증명하는 데 집중하는 이들이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자연물이 스스로 운동하는 힘을 가졌다는 것은 완전히 거짓임을 보여 주었다. 이 점은 아리스토텔레스 같이 감각의 자극을 따르고 이성이라고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명백해 보일 뿐이다. [137]
Synaulia: Music of Ancient Rome, Vol. I – Wind Instruments (P) 1996 Amiata Records ARNR 1396, Florence Synaulia: Music of Ancient Rome, Vol. II – String instruments (P) 2002 Amiata Records, ARNR 0302, Rome
Carl Orff (1935-1936) Carmina Burana: Cantiones profanae cantoribus et choris cantandae comitantibus instrumentis atque imaginibus magicis ("Songs of Beuern: Secular songs for singers and choruses to be sung together with instruments and magical images") based on 24 poems from Carmina Burana ("Songs from Benediktbeuern") Sarah Aristidou soprano / Wolfgang Ablinger-Sperrhacke tenor / Markus Werba baritone WDR Radio Choir / NDR Vocal Ensemble / Boys and girls of the Cologne Cathedral Music / WDR Symphony Orchestra / Cristian Măcelaru conductor 2022-10-29 Kölner Philharmonie
이 곡이었구먼. 무서워... 어릴 때부터.
한쪽의 (특히 ceremonial) code인 것이 그 code를 공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어떻게, 또 사람마다 얼마나 다양하게 인식/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 사실 난 청년기를 그 감각을 경험을 통해 키우는 데 소진했다고까지 할 수 있으니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가 예나 지금이나 고마움을 아는 마음이 부족했다는 것을 깨닫느라 요즘 자꾸 심란하다.
이제 나의 골반은 앉은 자세를 거부한다. 밤잠 못 자는 default 통증은 많이 가셨는데도 아직 밥 먹기도 힘듦. 그럴 만하니까... 불평을 못 하겠다. 천만다행으로 자고 싶은 만큼 잘 수 있어서 마구 은혜롭기는 한데, 디펜스 앞두고 이렇게 편해도 되나???
Андрей Арсеньевич Тарковский (Andrey Arsenyevich Tarkovsky, 1986): 시나리오 집필 이후에 나는 나의 구상이 실현될 수 있을지를 두고 깊은 의구심에 빠졌다. 그러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미래의 영화가 어떤 경우에도 역사물이나 전기물로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위대한 러시아 화가의 시적 재능에 깃든 성격을 탐구하는 것이다. 루블료프의 사례를 통해서 나는 예술 창작의 심리 문제를 탐구하고 싶었고 초시간적 의미가 있는 정신적 보고를 창조한 한 예술가의 정신과 시민적 감정을 분석해 보고 싶었다. [49]
이 이야기들은 전통적인 연대기 방식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루블료프가 <성 삼위일체> 성상화를 그리게 된 내적/시적 논리로 연결되어 있다. 바로 이 논리가 에피소드들의 통일성으로 이어지는데, 각 에피소드에는 특별한 플롯과 고유한 사상이 담겨 있다. 에피소드들은 내적으로 서로 충돌하며 상호 작용을 거쳐 발전한다.
그러나 시나리오의 순서상 이러한 충돌은 삶과 창작의 모순과 복잡성이 이미지로 표현되는 것처럼 시적 논리에 상응하여 일어나야만 했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마치 우리의 동시대인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인상을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면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 속에서, 물질문화의 잔재 속에서 미래의 기념비를 위한 동기가 아니라 살아 숨 쉬듯이 생생하면서 심지어 일상적이기까지 한 무엇인가를 찾아야만 했다. [50]
모든 예술의 목적이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고 인간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지를 예술가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해준다는 것임은 자명하다. 그것은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그들에게 설명해주는 데 있다. 설명해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이런 질문을 사람들에게 제기하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다. [53]
'자연의 화관'이라고 하는 인간은 다름 아닌 바로 인간이 무엇을 위해 나타났는지, 또는 보내졌는지 알기 위해 지구에 나타났다. 그리고 인간의 도움을 통해 창조주는 자기 자신을 알게 된다. 이러한 길은 진화라고 불린다. 이 길은 인간의 자기 인식이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수반한다. [54]
예술의 발견은 매번 새롭고도 독보적인 세계의 이미지로, 절대 진리의 상형문자로 나타난다. 그것은 계시로 나타난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인간적인 것과 잔인한 것, 무한한 것과 유한한 것 등 세계의 모든 법칙을 한꺼번에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싶은 순간적이고 열정적인 바람으로 나타난다. 예술가는 예술적 이미지를 창조하면서 이런 것들을 표현한다. 그는 독특한 절대의 포획자다. 무한한 것의 느낌은 이미지의 도움으로 유지되는데, 여기서 무한한 것은 유한한 것을 통해서, 정신적인 것은 물질적인 것을 통해서, 광대한 것은 프레임을 통해서 표현된다. [55]
시나리오에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쓰여 있었다. 농부가 날개를 만들어 교회 위로 올라가서 뛰어내리다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난다. 우리는 이 에피소드를 '재구성하고' 에피소드의 심리적 본질을 검토해보았다. 어떻게 하면 하늘을 날 수 있을지 평생 생각해온 사람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실제로 어떻게 일어났을까? 사람들이 그를 쫓아오고 그는 서둘렀다. 이윽고 그가 뛰어내렸다. 최초로 날았던 사람은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그는 뭔가 볼 새도 없이 곧장 떨어져 박살이 났다. 그는 기대하지 않은 끔찍한 자신의 추락만 느꼈을 뿐이다. 비행의 열정, 비행의 상징은 사라졌다. 여기서 의미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연상들과 비교하여 매우 직접적이고 기초적이기 때문이다. 스크린에는 흙 묻은 순박한 농부가 나와서 곧장 땅으로 떨어져 박살 나 죽어야만 했다. 이것은 구체적인 사건이며, 누군가가 달려오는 자동차에 뛰어들었다가 만신창이가 되어 아스팔트 위에 쓰러져 있는 것을 지금 우리가 보는 것처럼,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관찰되는 인간 참사이다.
우리는 이 에피소드를 구축하고 있는 조형적 상징을 무너뜨릴 기회를 오랫동안 찾다가 악의 근원이 바로 날개에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에피소드의 '이카로스' 콤플렉스를 무너뜨리고자 열기구가 고안됐다. 가죽과 밧줄, 넝마로 만든 볼품없는 열기구였다. 우리가 볼 때 열기구는 에피소드에서 그릇된 열정을 제거하고 사건을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가장 먼저 묘사해야 하는 것은 사건이지, 사건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아니다. 사건에 대한 태도는 영화 전체에 의해 규명되어야 하고 영화의 총체성 안에서 나와야 한다. 이것은 하나의 모자이크 안에서 모든 조각이 각자 나름대로 동등한 색깔을 띠고 있는 것과 같다. 푸른색이나 하얀색, 아니면 빨간색으로 각기 다르다. 그러나 나중에 완성된 그림을 보면 작가가 무엇을 고려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108-109]
수도원 밖에 펼쳐진 현실을 왜곡하는 장벽 안에서 보호를 받던 안드레이가 바깥 세계의 삶과 부딪혔을 때 얼마나 속수무책이었을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고통의 길을 거치며 민중의 운명과 하나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안드레이는 현실과는 괴리된 선善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간다. 다시 말해 사랑과 자비, 박애 사상으로 회귀한다. 하지만 그는 이미 고통받는 민중의 열망을 표현한 데서 이 사상의 위대하고 고매한 진리를 감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