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
( Chéng zhě, tiān zhī dào yě; chéngzhī zhě, rén zhī dào yě. )
---- 子思 《禮記·中庸》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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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bestirnte Himmel über mir, und das moralische Gesetz in mir. ---- Immanuel Kant (KpV: AA 05: 161.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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ἃ γὰρ δεῖ μαθόντας ποιεῖν, ταῦτα ποιοῦντες μανθάνομεν (What we have to learn to do we learn by doing.)
---- Ἀριστοτέλης (Nic. Eth. 1103a33)
[1:13:19] Sulkhan Tsintsadze (1950) 5 Pieces on Folk Themes for Cello and Piano
지금 나로서 이럴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연속성(continuity)에 한정해서, 전해 듣기만 했는데도, 러셀이 맞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베르그손 쪽에서는 반박해 볼 궁리는 안 하고 거의 ad hominem이면서 논점 회피만 하고 있다. 내 시간이 새삼 아깝다. '경험적' 시간은 별개의 논제이다. 그렇다고 말하면서도 반대로 덮어씌우네. 수학적 접근과 철학적 접근의 구별이라는 대립 구도를 전선으로 그은 것은 그쪽이었기 때문에 그에 따라 대응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논리주의에 공감한 적이 아직 한 번도 없는 사람인데 나도. 동일률에서조차 꽤 radical 상대주의자 진영이고.
그래서 말인데, 추상적 사유 과정의 경험은 왜 경험이 아닌가? 감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체험은 왜 체험이 아닌가? 늘 궁금하지만. 누가 진짜 충실한 플라톤주의자이고 데카르트주의자인지 모르겠어. (단위 문제에 대한 명쾌한 정리는 재작년엔가 번역을 뚫고 눈이 부신 원문에서 보았던 미친 문장력 때문에 더욱 존경스러웠지만, 철학사의 관점에서라면 19세기에라기엔 늦어도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이과 입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