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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02, 2022

황병기(HWANG Byungki, 1974) 침향무(沈香舞) Chinm-hyang Moo


황병기 (HWANG Byungki, 1987) 침향무(沈香舞; Chinm-hyang Moo)
(P) 2006 씨앤엘뮤직




곡/가야금: 황병기 / 장구: 김웅식
2013-01-26 [국악방송] 국악락락 11회 





장구: 김웅식 
2015-09-21 서울 아르떼홀(폐관)





with 김남순 및 부산가야금 연주단
부산 영화의 전당(Busan Cinema Center) 하늘연극장





2011-11-12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09-04-24 [전주MBC] 얼쑤! 우리 가락





2007-09-06 코아트



2004-12-04 [ebs] space 공감 69회 - 황병기의 가야금 반세기




(1부)

(2부)

[열린 전통문화 배움터] 황병기 명인의 <논어와 우리 음악> 
2011-04-24 한국콘텐츠진흥원 DMS 다목적홀 



Sunday, June 12, 2022

Starobinski (1964) l'invention de la liberté, 1700-1789

Jean Starobinski (1964): 18세기 미학이론의 역사만 봐서는 그 시대 예술이 실제로 어땠는지 규정할 수가 없다. 예술에는 이론가가 보지 못한 면이 많았고, 이론에는 예술가가 거추장스럽다고 오해할 만한 요구가 꽤 많았다. 한편에서는 철학자들이, 다른 한편에서는 예술사가들이 사상은 어떻게 전개되었고 작품은 어떻게 만개하게 되었는지 따로 연구했다. 물론 이런 업무 분담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18세기의 생생한 현실을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에게는 불만스러운 상황이다. 우리의 임무는 (예술 따로 사상 따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 공유하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기원을 고려하면서, 자유로워지려는 예술과 그런 예술을 이해하고 지도하고 고취하고자 하는 까다로운 성찰이 얼마나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 이충훈 옮김(2018: 17-18)


이뿐만이 아니라서 미학/예술학을 하라고 하시는 건 마치 연인에게 공작을 하라는 명령 같은 걸. 자명고 찢을 리도 없지만 난 좀 뜨거운 편이라 곤란한데. 보통 안 드러나지만.

실천을 "이해하고 지도하고 고취"할 능력이 이론에게 없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론은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을 뿐이다. (난 이런 세계가 더 맘에 드는데.) 그걸 활용할 능력은 양쪽 모두에게 있고.

그러니까 FN 교수님도 JM 교수님도 나에겐 소중한 고객. 

우리 나라의... 그러고 보니 북한은 어떨지 다를 것 같은 기대와 함께 궁금하네. 남한의 작가들과 관객들은 자칭 이론가(대개는 백인분들 말씀 전파자)들의 작태에 이골이 나 있다. 일단 예술 현장에 자신의 몸이 있지 않은 자의 예술론이란 절망을 줄 만한 힘조차 없는 것을. 지금까지 살면서 관찰한 바로는 아무래도 이 나라에서만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이다. 우리는 더 이상 입 아픈 얘기는 별로 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잘 살고 있고. 예술 학교에서도 예술가로 살기 위해서는 직접 글을 써야 하는 것으로 가르친 지 오래다. 

그런 의미에서도 LH 씨를 꼭 만나야겠다.

 

++


Jean Starobinski (1964): 교양을 갖춘 사람은 기존의 모든 권위에 반대할 권리를 강력히 요구하다보니 반대자의 입장까지 갖게 된다. 스스로 자신에게 반론을 던지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기에 18세기는 그 시대의 모든 경향과 그 시대에 인기를 끌었던 모든 관례적 표현에 비판의 칼날을 댔던 것이다. 간혹 단호한 의지로 완전히 다른 것을 실험하고자 할 때도 있었다. 그리하여 즉각적 자극을 추구하는 로코코 시대의 취향이 영원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신고전주의 시대의 취향을 대체되었다. 표현의 변동성이 형식의 부동성 속에 숨어버린다. 

-- 이충훈 옮김(2018: 22)


책 쓰실 만하오. 

+++


Jean Starobinski (1964): 예술은 역사의 어떤 지점에서든 사회 전반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는다는 점이 충분히 강조되지 않았다. 예술은 권력과 부를 가진 이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들이 작품을 주문하고, 자기 취향과 문화를 기준으로 작품을 평가했다. 예술사회학은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예술의 생산과 수용의 회로에서 배제된 사회계급이 있는가? 예술작품은 문화의 언어를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말 없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그림과 조각, 건물의 소유자가 되는 후원자가 그것들의 다양한 기능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그는 작품을 개인적 즐거움을 위해 보관할 수도 있고, 반대로 군중을 초대하여 경이로운 작품을 감상하게 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예술가의 영광보다도 비용을 낸 사람의 위신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이때 사회적으로 열등한 조건을 가졌기에 '미'의 생산과 소비의 회로에서 배제된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예술작품을 넋 놓고 바라보고 감화되는 수용자로 재통합된다. 미술 애호가가 혼자 즐기려고 모으는 수집품과 민중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교회나 광장의 예술적 기능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민중은 교회나 광장에서 신앙의 상징, 공동생활의 공간을 찾게 된다. 여기에서 집단적 귀속과 일체화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예술의 기능을 분석한다는 것은 결국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왜 그것을 언급하는지, 나아가 누구를 대상으로 말한 것인지, 수용자가 작품을 이해했는지 묻는 일이다. 

-- 이충훈 옮김(2018: 25-26)



Saturday, December 25, 2021

Tarkovsky (1966) Strasti po Andreyu (Andrei Rublev)


Андрей Арсеньевич Тарковский (Andrei Arsenyevich Tarkovsky, 1966)
Андрей Рублёв (Страсти по Андрею; Strasti po Andreyu) (영/독/프/스 등 자막)
* 칸 영화제(21회)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상 


2021-12-24 쇠의 밤@내 방 

결국 놀았다. 자막 있는 감독판을 못 찾아서 아쉬운 대로. 아빠랑.  



Андрей Арсеньевич Тарковский (Andrey Arsenyevich Tarkovsky, 1986): 시나리오 집필 이후에 나는 나의 구상이 실현될 수 있을지를 두고 깊은 의구심에 빠졌다. 그러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미래의 영화가 어떤 경우에도 역사물이나 전기물로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위대한 러시아 화가의 시적 재능에 깃든 성격을 탐구하는 것이다. 루블료프의 사례를 통해서 나는 예술 창작의 심리 문제를 탐구하고 싶었고 초시간적 의미가 있는 정신적 보고를 창조한 한 예술가의 정신과 시민적 감정을 분석해 보고 싶었다. [49]

이 이야기들은 전통적인 연대기 방식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루블료프가 <성 삼위일체> 성상화를 그리게 된 내적/시적 논리로 연결되어 있다. 바로 이 논리가 에피소드들의 통일성으로 이어지는데, 각 에피소드에는 특별한 플롯과 고유한 사상이 담겨 있다. 에피소드들은 내적으로 서로 충돌하며 상호 작용을 거쳐 발전한다. 

그러나 시나리오의 순서상 이러한 충돌은 삶과 창작의 모순과 복잡성이 이미지로 표현되는 것처럼 시적 논리에 상응하여 일어나야만 했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마치 우리의 동시대인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인상을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면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 속에서, 물질문화의 잔재 속에서 미래의 기념비를 위한 동기가 아니라 살아 숨 쉬듯이 생생하면서 심지어 일상적이기까지 한 무엇인가를 찾아야만 했다. [50] 

모든 예술의 목적이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고 인간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지를 예술가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해준다는 것임은 자명하다. 그것은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그들에게 설명해주는 데 있다. 설명해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이런 질문을 사람들에게 제기하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다. [53] 

'자연의 화관'이라고 하는 인간은 다름 아닌 바로 인간이 무엇을 위해 나타났는지, 또는 보내졌는지 알기 위해 지구에 나타났다. 그리고 인간의 도움을 통해 창조주는 자기 자신을 알게 된다. 이러한 길은 진화라고 불린다. 이 길은 인간의 자기 인식이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수반한다. [54] 

예술의 발견은 매번 새롭고도 독보적인 세계의 이미지로, 절대 진리의 상형문자로 나타난다. 그것은 계시로 나타난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인간적인 것과 잔인한 것, 무한한 것과 유한한 것 등 세계의 모든 법칙을 한꺼번에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싶은 순간적이고 열정적인 바람으로 나타난다. 예술가는 예술적 이미지를 창조하면서 이런 것들을 표현한다. 그는 독특한 절대의 포획자다. 무한한 것의 느낌은 이미지의 도움으로 유지되는데, 여기서 무한한 것은 유한한 것을 통해서, 정신적인 것은 물질적인 것을 통해서, 광대한 것은 프레임을 통해서 표현된다. [55] 

시나리오에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쓰여 있었다. 농부가 날개를 만들어 교회 위로 올라가서 뛰어내리다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난다. 우리는 이 에피소드를 '재구성하고' 에피소드의 심리적 본질을 검토해보았다. 어떻게 하면 하늘을 날 수 있을지 평생 생각해온 사람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실제로 어떻게 일어났을까? 사람들이 그를 쫓아오고 그는 서둘렀다. 이윽고 그가 뛰어내렸다. 최초로 날았던 사람은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그는 뭔가 볼 새도 없이 곧장 떨어져 박살이 났다. 그는 기대하지 않은 끔찍한 자신의 추락만 느꼈을 뿐이다. 비행의 열정, 비행의 상징은 사라졌다. 여기서 의미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연상들과 비교하여 매우 직접적이고 기초적이기 때문이다. 스크린에는 흙 묻은 순박한 농부가 나와서 곧장 땅으로 떨어져 박살 나 죽어야만 했다. 이것은 구체적인 사건이며, 누군가가 달려오는 자동차에 뛰어들었다가 만신창이가 되어 아스팔트 위에 쓰러져 있는 것을 지금 우리가 보는 것처럼,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관찰되는 인간 참사이다. 

우리는 이 에피소드를 구축하고 있는 조형적 상징을 무너뜨릴 기회를 오랫동안 찾다가 악의 근원이 바로 날개에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에피소드의 '이카로스' 콤플렉스를 무너뜨리고자  열기구가 고안됐다. 가죽과 밧줄, 넝마로 만든 볼품없는 열기구였다. 우리가 볼 때 열기구는 에피소드에서 그릇된 열정을 제거하고 사건을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가장 먼저 묘사해야 하는 것은 사건이지, 사건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아니다. 사건에 대한 태도는 영화 전체에 의해 규명되어야 하고 영화의 총체성 안에서 나와야 한다. 이것은 하나의 모자이크 안에서 모든 조각이 각자 나름대로 동등한 색깔을 띠고 있는 것과 같다. 푸른색이나 하얀색, 아니면 빨간색으로 각기 다르다. 그러나 나중에 완성된 그림을 보면 작가가 무엇을 고려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108-109] 

수도원 밖에 펼쳐진 현실을 왜곡하는 장벽 안에서 보호를 받던 안드레이가 바깥 세계의 삶과 부딪혔을 때 얼마나 속수무책이었을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고통의 길을 거치며 민중의 운명과 하나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안드레이는 현실과는 괴리된 선善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간다. 다시 말해 사랑과 자비, 박애 사상으로 회귀한다. 하지만 그는 이미 고통받는 민중의 열망을 표현한 데서 이 사상의 위대하고 고매한 진리를 감지했다.

전통적인 진리는 오직 자기 자신의 경험으로 뒷받침될 때만 진리로 남는다. [120] 

-- 라승도 옮김(2021: 42-43)



+

1964년 11월 제작 착수, 1966년 12월 시사회. 2년이면 이런 불후의 대작을 만드는데 나는 단편 하나를 못 쓰네. 어제 처음 자료가 완전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는 않다는 느낌이 왔다. 이제 읽으면 된다는. "분류압"과 함께. 



OST by Вячесла́в Алекса́ндрович Овчи́нников (Vyacheslav Aleksandrovich Ovchinnikov
비야체슬라프 옵치니코프 


Sunday, May 16, 2021

Hans Blumenberg (1957) Nachahmung der Natur. Zur Vorgeschichte der Idee des schöpferischen Menschen 자연의 모방 - 창조적 인간 이념의 전사에 대하여

Hans Blumenberg (1957): 이 무학자 illiteratus가 학계의 권위자들을 마주할 때 보인 어조의 아이러니는, 전제조건들이 같지 않음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도 대화에 끼워 주도록 요구하는 데에서 나타나는 말하자면 민주적 양식은 또 다른 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 사람은 자기가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토대로 —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가치를 정당화하는데, 이 새로운 각인이 눈길을 끈다. 수행과 자의식의 결합은 역사적으로 결코 자명하지 않지만 쿠자누스의 이디오타에게서 포착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여기에서 몰두하는 바로 그 관점에서 포착될 수 있다. 

정신에 대한 대화의 제2장에서 "문외한"은 대화의 상대자들인 철학자와 수사학자에게 자신의 수작업이, 즉 이 직업의 종사자를 근근이 먹여 살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 직업 순위에서는 그렇게나 낮은 등급으로 매겨지는 숟가락 만들기가, 자신의 자기이해와 자기평가를 위하여 자신에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설명한다. 물론 이 "예술"도 모방이긴 하지만, 자연의 모방이 아니라 신 자신의 무한한 아르스 infinita ars의 모방이다. 이 아르스가 참신하고 자연발생적이고 창조적인 한에서는 그렇지만, 사실상 이 세계를 창조해 온 한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 정신의 이념 밖에 있는 숟가락은 표본을 안 갖고 있다." 숟가락이 곧 예술의 고품위 생산품은 아니지만, 절대적으로 새로운 무엇이고, 자연에 미리 주어져 있지 않은 하나의 형상이며, 단순한 "문외한"은 그 형상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나는 여기서 자연의 사물로부터 그 형태를 모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숟가락, 냄비, 접시 등 "문외한"이 만드는 형태들은 순수하게 기술적인 형태들이다. 그리고 그가 이러한 정황에 대해 기뻐하는 단계에서 현대 "산업 디자인"의 기본 특징인 생산품 자체의 부각 단계에 이르는 데에는 더 이상의 도약이 필요하지 않다. 인간은 존재하는 것에서 자신의 지위를 읽어 내기 위하여 더 이상 자연을, 우주를 바라보지 않고, 오로지 인간의 아르스에 의해서 생겨난 사물세계를 바라본다. 우리의 자리에서 또 중요한 것은 이디오타가 자신의 "수행"을 특히 화가와 조각가가 완성하는 것과 대비시킨다는 점이다. 이들은 사물에서 표본을 가져오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이디오타는 말한다. 여기서 창조적이고 참신한 인간의 모든 파토스 그리고 모방원칙과의 결별이 예술적 인간이 아니라 기술적 인간에게서 드러난다는 것은 평가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차이점은 아마도 여기에서 처음 실증적으로 강조되고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증명서의 가치는 바로 이 점에 있다. 창조적인 것을 입증하려는 이후의 태도, 즉 거의 전적으로 조형예술과 시문학에 집중하는 태도를 현재에도 취한다면 말이다. 거기서 작가가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고 창조하는 자발성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중세 말 이후부터는 예술의 출현형식에 속한다. 반면에 기술 정신의 역사에서는 역사 담지자들의 그러한 자기증명서들이 훨씬 빈약하다. [...] 그것은 무엇보다도 기술의 "할 말 없음" 현상이다. [74-76] 

[...] 우리는 쿠자누스의 이디오타를 역사적 지표로 여겨야 하지, 역사를 형성하는 에너지로 여길 필요는 없다. [80] 

-- 양태종 옮김 (2011: 69-124) 


"존재와 자연의 동일성" 문제와 "창조적 인간" 이념 사이의 관계를 "역사의 현상학"으로 탐구한 논문. 최고! 이쯤은 그냥 오지게 재밌는 부분. 밑줄이 민폐. 부분 인용은 실례. 눈부신 해석 수준에 압도된다. 순결한 오라클. 해석의 힘을 무차별로 권력욕에 할당하여 중화하는 시도가 저 아래로 보이는 재미는 덤.  

헤겔을 직접 소화한 학자와 마르크스의 필터로 헤겔을 읽은 학자들의 길이 서로 얼마나 갈리는지 보여 준다. 중고딩 때부터 어찌어찌 지금까지 지식 없이 그저 "직성"으로 느껴 왔던 생리적 거부감의 대상이 특정하게 무엇인지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마르크스가 아닌 줄은 독일 이데올로기와 정치경제학비판을 부분이나마 읽자마자 선입관을 깨어 주는 그 지독한 인간주의에 반했기에 첫눈에 알았다. 헤겔도 비슷하다. 최강 난이도라기에 전공자의 개인 번역본과 직강으로 살짝 구경이나 하면서야 굳이 싫달 거리도 없었다. 상호주관성에는 개념 자체보다 그 고투에 어설피 감동받기도 했으니까. 주범이 누구인지 입증해 주는 것 같은 논문을 어렵게 구했던 날의 기억도 생생하고, 명저의 느낌이 나서 답인 줄 알고 서문만 읽은 오지랖도 어언 8년 전이네. 따지면 수십 년 동안 마음 한 켠에 풀리지 않는 실뭉치 같은 걸림돌로 남아 있었는데, 그 정체가 비로소 밝혀지다니, 뜻밖의 감회다. 마치 공범들을 알지만 범행을 밝힐 수 없어 답답했던 미제 사건이 해결된 기분. 그렇다고 지금 다윈을 읽지는 좀 말자. 어차피 내가 아는 정도의 학자 중에 간단한 도식으로 정리될 수 있는 경우는 없으니까. 중요한 건, 인용은 없어도 내 눈에도 읽히는 헤겔까지 멋져 보이게 만드는 하지만 니체와 후썰 정신으로 무장한, 위대한 이 분 블루멘베르크! 


Thursday, April 08, 2021

Arnold Schönberg (1913) Die gluckliche Hand, Op.18

Arnold Schönberg (1913) Die gluckliche Hand, Op.18 
 The Simon Joly Chorus + Philarmonia Orchestra conducted by Robert Craft
Koch International Classics, 2001

 => 대본 보기


Theodor W. Adorno (1949/1975): 해명되지 않은 것을 해명되지 않은 채 놓아둠으로써 <행복한 손>에서 나타나는 카오스적인 측면은 가상과 유희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는 쇤베르크의 지적 성실성이다. 그러나 카오스의 현실은 전체 현실이 아니다. 카오스의 현실에서는 교환사회의 법칙이 출현하며, 이 법칙에 따라 교환사회는 맹목적으로, 그리고 인간의 머리 위에서 재생산된다. 이 법칙은 다른 사람들을 제멋대로 다루는 권력의 지속적인 증가를 포함하고 있다. 세계는 가치법칙과 집중에 의해 희생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카오스적이다. 그러나 세계는 "그것 자체로서는" 카오스적이지 않다.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가 혹독하게 짓밟는 대상인 개별 인간만이 세계가 카오스적이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개별 인간에게 세계가 카오스로 나타나게 만드는 폭력들이 종국적으로는 카오스의 재조직을 떠맡는다. 카오스는 폭력이 만들어내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카오스는 코스모스의 기능을 갖고 있으며, 질서에 앞서서 나타나는 무질서이다. 철학에서 카오스와 체계가 함께 속해 있듯이, 사회에서도 카오스와 체계가 함께 속해 있다. 표현주의적으로 나타나는 카오스의 한복판에서 구상된 가치 세계는 기세를 올리면서 떠오르는 새로운 지배의 특징들을 담지하고 있다. <행복한 손>의 그 남자는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연인도 거의 보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갖는 연민을 정신의 비밀스런 왕국으로 끌어올린다. 그는 이 왕국의 우두머리이다. 그의 강력한 힘은 음악에서, 그의 나약함은 가사에서 효과를 발휘한다. 그가 대변하고 있는 사물화 비판은 바그너의 사물화처럼 반동적이다. 그의 사물화 비판은 사회적 생산관계들을 향하고 있지 않으며, 분업을 향하고 있다. 쇤베르크에게 고유하게 나타나는 사물화 비판의 실제는 이러한 혼동으로 인해 병들어 있다. 쇤베르크는 음악에서 고도로 특화된 지식을 문학적인 시도를 통해 보완하려고 하였지만 바로 문학적인 시도에 의해 쇤베르크의 사물화 비판의 실제는 중압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또한 바그너적인 경향이 붕괴되고 있다. 바그너의 종합예술작품에서 예술적 생산과정의 합리적인 조직을 통해 아직도 응집되어 있고 이렇게 해서 바그너 작품의 진보적인 요소를 유지시켜 주던 것이 쇤베르크에서는 괴리되면서 산산조각이 난다. <행복한 손>의 남자는 기존의 질서에 경쟁자로 등장하면서도 기존의 질서에 충실하게 머물러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간단하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쇤베르크가 작품에서 창조한 남자는 "터키 사람들의 수급 2개를 매단 밧줄을 허리띠처럼 몸에 두르고", "칼집에서 빼든 피 묻은 칼을 손에 들고 있다." 그에게는 이 세계에서 이처럼 잘못된 일이 생기고 있지만, 그는 그럼에도 힘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있는 불안이라는 괴물은 그에게 복종을 강요한다. 무력한 자는 자신의 무력함과 스스로 타협을 하면서 그에게 자행된 불의를 다른 사람들에게 자행한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그 남자는 역사적으로 이중의 의미를 갖고 있다. 무대를 "기계기술자의 작업장과 대장장이의 작업장의 중간 정도로 꾸미라는" 연출자의 지시만큼 그 남자가 갖고 있는 역사적 이의성(二義性)을 정확하게 지적해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새로운 즉물성의 예언자인 주인공은 — 장인(匠人)으로서 — 옛 생산방식이 갖고 있는 마력을 살려내야 한다. 쓸모없는 것을 거부하는 그의 단순한 몸동작은 왕관을 생산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가 귀감으로 삼고 있는 지크프리트는 최소한 칼을 만들어냈다. "음악은 장식적이어서는 안 된다. 음악은 진실하여야 한다." 그러나 예술작품은 다시 오로지 예술만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 예술작품은 자신이 사회적으로 속해 있는 현혹의 상호연관관계로부터 예술적 탈출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절대적 예술작품은 실명 상태에 빠진 채 오로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동어반복적으로 관계를 가질 뿐이다. 예술작품의 상징적 중심은 예술이다. 이렇게 해서 예술작품은 공허해진다. (문병호 옮김, 2012: 79-81)


카오스를 폭력으로, 질서를 이성(합리적 체계성)으로, 사회학적으로 해석한 다음 자신의 역사적 변증법을 적용하는 듯. 신기하다. 카오스를 무조로, 질서를 화음으로, 음악적으로 해석한 다음 역시 자신의 역사적 변증법을 사회학적으로가 아니라며 양식사학적으로가 아닌 예술철학적으로 적용한다. 하나의 음에도 음 전체의 상태를 내포하는 역사가 있단다. 이건 멋지다.       

그래도 프랑크푸르트 학파 쪽으로 들어갈 거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버밍엄 쪽 아님을 알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구조주의 쪽은 확실히 아님도 지원하기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의 원망이 언제부터 왜 생겼기에 뒤늦게 부활했는지 모르시겠지. 꿈에 왕림하셨다. 혼비백산했다. 드물게 현실적인 꿈이었다. 아직 안 괜찮다. 현실이 더 무서운 것 같아서. 

하여튼 '행복한 손'보다는 '행운의 손'으로 옮기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사이버네틱 아트에서 백남준을 뺄 수는 없다. 몰르와 교류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슈투트가르트에서는 음악은 안 했나 보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