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bert Spiegelberg (1960/1982): 실존주의 사상의 조류가 현상학의 대의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실존주의가 현상학에서 다루는 현상들의 범위에다 하나의 주제 혹은 여러 주제들을 보탠 것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라면 그것은 환영받을 수 있었다. 더구나 몇몇의 실존적인 주제들은 확실히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주제들은 '실존'에 빠져 있는 현상학의 일방적인 치우침에 대해 염려를 불러일으킬 만큼 '비실존적인' 현상들을 희생시키면서 강조되었다. 그리하여 실존주의의 주목할 만한 성공은 다소 의심스러운 명성과 함께 현상학에 대한 보다 심각한 위험을 수반했다. 그것은 특히 철학에 보다 큰 학적인 엄밀성을 주려는 후설 현상학의 기본 목표를 방해했다. 왜냐하면 너무도 많은 현상학적 실존주의자들의 저작물들이 학의 역사적인 예증화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학의 이념에 대해 다소 공개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보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메를로-뽕띠의 경우에서와 같이 이러한 반과학적인 진술들은 실제로 오류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진실들은 단지 학에 대한 객관주의적인 해석 혹은 기계주의적인 해석만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늘 보듯이 알 수 없고, 모호하고 신비화시키는 분위기만이 남았을 뿐이다. 또 한편으로 현상학적인 실존주의자들은 자주 현상학의 원래 기풍인 끈기있는 탐구의 정신과는 거리가 먼 예언자적인 각성자의 역할을 취하고 있다. [26]
보다 더 정확히 말하여 기술의 임무는 종종 다소 가볍고 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의미있는 현상에 대해 전 범위에 걸쳐 추적하는 충분한 주의를 쏟지 않는다. 이러한 불충분한 주의마저 포괄적이고, 그리고 위험한 일반화의 기초로서 너무나 급속히 선택된 몇몇의 현상들에 대해서 자주 전혀 다른 조명을 던지곤 하였다. 여기서 현상의 여러 가능한 대안적인 의미들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 해석학적인 해석이 즉시 도입된다. 이러한 해석은 자주 야심적인 존재론적, 그리고 형이상학적 구조들과 연결되어 있다. 실존적인 현상들로부터 존재 일반의 해석에로의 전이가 쉽게 이루어져 보다 비판적인 독자들을 자주 숨차게 만든다. [26-27]
-- 최경호 옮김(1992)
Pro! 보편주의적 객관성, 인과, 기계론을 '과학'과 동일시하는 오류는 french theories가 공유하는 착각이다. 그런 '과학'이라면 이미 케플러도 갈릴레오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과학'을 깨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근대 과학(오늘날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이었으니까. 자력과 중력의 발견이 대표적이다.(연역적 이성에 반하는 연금술적 신비주의 전통의 경험주의 또는 기술자의 생업.) 프랑스의 실증주의가 베이컨의 스키엔티아, 즉 귀납적 지식과 콩트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도 보인다. 맥락과 인식 상황에 의한 구속을 전제로 하는 현대 수학과 현대 물리학의 성립 이후로 개진된 '현대' 사상들에서 이러한 외면/무지가 나타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늘 당황스럽다. 과연 이해할 필요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구세대인 나도 전자기력을 이미 초등 교과과정에서 배웠고, 현대 물리학에 대한 교양적 소개 또한 이제 고등 교과과정에 들어 있다. 인과와 기계론에 따랐다면 내가 '공학' 석사 논문을 쓸 수가 없었다. 온라인을 벗어난 시스템 (개발은 물론) 설계부터가 불가능하니까. 모든 과학들은 이미 인간적인 한계에 의한 것이다. 그것이 근대의 각성이었다. 그 한계들을 일반론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모든 과학적 이론의 출발이며, 구체적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기술의 학술적 도전이 성공한 경우의 결과이다. 존재하지 않는 대립 구도에 의한 공격을 방어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학자는 없는 것으로 보이므로 다행히 고민할 거리가 남아 있지는 않지만. 다만 양쪽에서 아무런 실질적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지켜보기 답답할 뿐. 반과학주의에서의 '과학'이 실제/역사적 과학인 적이 있기나 한가 싶다. 차라리 그것의 내용은 퓌타고라스교나 데카르트주의가 아닌가? 새삼스레 비교조주의 정도인 것이 아닌가? 20세기에 살았으면서 왜 20세기를 살지 않았는지 의아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멀어서 그랬다 쳐도 뉘른베르크에서는 그럼 뭐였는지? 그래서 자꾸 'post'를 붙이려고 하나?
후설에 있어서 가장 감동적인 것들 중의 하나는 생의 진실로 생생하고 절박한 문제들, 혹은 그 자신이 궁극적으로 '실존'이라고 부른 것에 아직 도달할 수 없다는 대가를 치로고서라도 정초에 대한 헌신적이고 끈기있는 느린 작업의 필요성을 고집한 점이다. 현대의 무대 속에서 충분한 구실을 발견했다는 이유로 현상학은 너무나 자주 이러한 문제들에 충분한 준비도 없이 달
려려들었다. [27]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초기의 현상학적인 철저함의 정신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그리하여 프랑스 현상학이 그 개척자들에 의해 얻은 득점을 높일 수 있는 충분한 암시가 있다. 다음에 오는 장들은 주로 그 장래성 있는 기여들을 제시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27]
-- 최경호 옮김(1992)
나의 첫 논문이 내용보다 동기에 있어서는 더욱 순진한, 물론 어설픈, 현상학적인 것이었음을... 그 방법도 프랑스 쪽에서. 다만 그 시도의 대상이 어떤 '개념'이었을 뿐. (사소하게는, 독일식 문헌학적 개념사가 아닌 프랑스식 계보학적 방법이라는 점과 함께.) '연구 대상의' 내용이 주류 철학적/전통 과학철학적/비주류 미학적이라는 사실은 연구 자체의 '방법'과 무관하다. 학술적 가치가 있었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무슨 의욕이 남았겠어? 따라가기 위해서라면 더 이상 해 볼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설령 언제가 능력을 갖춘다고 하더라도 자격 조건상 현상학의 해설자가 될 수 없고, 그것을 방법으로 쓸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