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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ugust 30, 2022

화용론적 설명 이론 pragmatic theory of explanation

어떤 느낌이 있기는 했었다. 아픈 덕분에 바로 확인하지를 못했는데, 아직 상태도 안 좋고 치워 놓을 수 있는 책을 고르는 일을 하려다 보니 잠시 펼쳐 본다는 것이... 

결과만 가져오라고 하신다, 고 나로서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께는 이것도 말하자면 일종의 아름다움의 문제인가, 하는 의심이 처음 들었던 것은 "정도의 차이"라는 말씀의 뜻을 무려 두 달 동안 고민했던 끝. 덧붙여 철학이 아닌 '문학' 박사라는 미처 몰랐던/과중한 타이틀. "너무 급하지"와 "잡다하다"라는 힌트. 그리고 나서야, 설명항과 피설명항을 심사 후 삭제하려던 부록(원문)/본문 대비가 아니라 본문에서 구분해 주어야 하나 보다는 생각. 대조군이 있어야 하나 보다 하는 생각. 한두 가지만 선별해야 하나 보다 하는 생각. 무려 삼 년에 걸쳐서야 이해했다는 것을 이 책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사후약방문일 뿐인 현실일 수 있지만. 어쨌든 내가 처한 현실을 파악하게 되었다.  


배경지식 + 대조 집합 + '두드러진 요인'     =>     좋은 설명 


여영서(2022: 109): 두드러진 요인으로 거론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서는 좋은 설명을 할 수 없다. 두드러진 요인으로 거론되지 않던 것을 새로 거론하면서 좋은 설명을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그렇게 새로 거론된 요인이 두드러진 요인이 되는 새로운 설명이 제시되는 것이다. 


나에게 논문이란 학적 기여(contribution)에 대한 자기 증명/방어, 즉 [입증]의 문제일 뿐이었다. 우리나라 전공들 90% 이상이 그럴 듯. 이걸 안 하고도 학술 논문이 성립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뜻을 이해를 못 함. 이건 절대 정도의 문제가 아님. 책도 달라요. 결국 '네가 무슨 연구를 하겠다고 그러느냐'는 뜻으로 이해함. 무엇이든 지적해 봐야 개선의 여지가 없는 학생이라서 안 하시는 줄로 믿음. (이건 여전 유효할지도.) 그래서 일반 논문을 쓰려면 필수인 정기 브리핑도 금하신다 믿음.  

하여간 '두드러진 요인' 때문에 바슐라르가 아쉽긴 한데, 이 선택을 싫어하실 것 같은 느낌이 있는데, 먼저 여쭈는 건 안 된다고 하시고, 대안은 못 찾겠어서 무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한편, 내가 고민을 안 했던 것은 아니었구나. 결론의 내용이 입문 수준 교과서용 책에 나와 있는 걸 보니. 묘하게 안심되면서도 완전 허탈. 

또 한편, 난 (초/중/고 매번 문예반으로 강제 이송되고, 재미로 인소 연재까지 해 본 자이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설명하기 위한 글은 써 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음. 

기력뿐 아니라 기운도 없다. 왠지 멘붕. (아웃이라고 하시면 그냥 사극로맨스물에 도전하는 걸로...)

+

여영서(2022)그럼 설명과 관련된 두드러진 요인이 무엇인지는 어떻게 밝혀낼 수 있는가? 여기에서도 맥락이 작동한다. 대개 한 사건의 원인으로 지칭될 수 있는 후보 요인은 여럿이 있다. 그 모두가 객관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관련이 있는 요인일 수 있다. 그중에서 두드러진 요인으로 뽑혀 그 사건의 원인으로 지칭되는 데에는 무엇이 두드러진 요인인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사람의 관심과 배경지식 등을 포함하는 맥락이 작동한다. [...] 다시 한번 설명이 맥락 의존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09-110]
 

두드러진 요인들만 하도 많이 찾아서 내 재작년에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미 몇 편을 썼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는데, 각각 정당화 가능하며(= 학문의 지형과 동원 가능한 장비 파악) 그럴 필요가 있는(= 내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 있는지 검토하는 데 또 엄청난 시간을 쓰고 있었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하나씩 해 봤으면 좋았겠다. 이후에 쓸거리만 십 년치는 쌓은 듯. 그리고 이제 정말 시간이 없어짐.   


여영서(2022)상충하는 답변이라면 하나가 좋은 것일 때 다른 하나는 나쁜 것이어야 하겠지만, 두 과학자의 답변이 모두 좋은 설명일 수 있는 것은 각각의 맥락, 특히 서로 다른 배경지식을 전제로 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설명은 맥락 독립적인 특성을 지니는 진리와 지식과 다르다. [117] 설명은 각각의 맥락 속에서 평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118] 


일반 논문은 물론 수성전이다. 성패, 생사의 문제다. 학생과 지도교수의 관계는 축구/권투 선수와 감독과 비슷하다. 훈련도 그렇지만 적어도 정기적 연습시합(모의전투)이 없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건 경연 대회 같은 건가 보다는 생각이 요즘 겨우 들긴 했었다. 피겨 스케이팅의 프리 부문 예술 점수 같은. 


여영서(2022)반 프라센의 화용론적 설명 이론은 설명이 이론과 사실 그리고 맥락 사이의 삼항 관계임을 밝혔다. [...] 설명에 성공했다는 말도, 따지고 보면 맥락에 맞는 적절한 수준의 유의미한 정보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이 설명을 추구한다고 할 때 설명이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은, 결국 과학이 경험적으로 적합한, 그래서 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과학 이론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설명이 추구하는 이해를 객관적인 경험을 통해 확인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고, 그런 측면에서 설명의 맥락 의존성을 강조하며 설명 자체가 과학의 목표는 아니라는 반 프라센의 입장은 경험주의 원칙에 철저하게 충실한 것이다. [120] 
인과관계 같은 것만이 연관 관계 R의 제대로 된 후보자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보면, 설명항과 피설명항을 연결시키는 연관 관계 R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모든 것을 맥락이 결정할 것이라는 반 프라센의 이론은 미완성이다. [121]


그러니까,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따르려고 했던 교수님의 기준과 동시에 만족시키려고 했던 일반적인(과학적인) 기준이 결국 R의 문제임을 진작 느끼고는 있있던 셈. 구체적으로 최소한의 '학술적 가치'가 있는지의 문제. 그리고 그 정당화 방법. 여기까지 고민하고 있으니 힘들지. 

여기까지 제시해야 한다고 공학 교수님들로부터 교육받기도 했다. 과학의 '세계 이해'를 넘어, 공학은 '문제 해결'이니까. 문학(?)에서는 이 부분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이건 단순히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다. 


++

이영의(2022): 이해는 심리 상태라는 점에서 주관적 개념이며, 그런 주관적 개념을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124] 


세상은 넓구나. 

그러나 이 세상에서 내가 지도받고 싶은 분을 찾았고, 온갖 우여곡절 끝에야 받아들여졌다. 도통 실감이 안 났었는데... 그랬는데 난...... 


+++ 

자동 재생으로 우연히 듣게 된 영상. 베스트셀러들도 단 한 권도 읽지 않아서 잘 모르는 학자다. 기본적인 존경심은 있지만 나와 세계관이 다르다고 느껴서 좋아하지는 않는다. (가치관이 다르지 않더라도, 말하자면 내가 강하게 문제의식을 느끼는 지점들이 이 분한테는 맹점으로 남아 있다.)  


[최재천의 아마존] 살인의 진화심리학


교수님께 좀 보여 드리고 싶다. 세계적인 과학자가 뚜렷한 학술적인 목적을 가지고 이미 확립된 선행 연구를 준거로 연구를 수행하고 국제 학술대회에서 발표하여 큰 호응을 얻은 성과가 나왔어도 '논문'으로 성립시키지 못하는 경우란 이것 말고도 무수히 많이 일어난다. 자료 수집과 분석에 동원된 학생은 정황상 아마 석사 과정 신입생일 확률이 높을텐데 일 년의 수고가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이 가장 치명적인 시기이다. 하지만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국내 논문을 썼더라도 자연계에서 국내 논문의 학술적 가치는 0이다. 산업계에서는 국내 실적을 선호하지만.) 하루하루 생활은 물론 강의 진행과 핵심인 세미나/정기 미팅, 교수님과의 관계부터 모든 것이 너무 다르다. 하나하나 모든 성공 가능성과 실패 가능성과 발전 가능성과 위험 가능성을 상시 검토한다. 교차 검증/비판해 준다. 그래도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다. 교수 연구실이 늘 열려 있는 이유다. 예전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8년을 바친 박사과정생 연구가 논문심사 당일 심사 시작 불과 몇 시간 전에 다른 나라에서 동일한 결과가 먼저 나왔다는 이유로 심사 자체가 취소된 일화. 나도 석사과정 심사 당일 새벽 지도교수님으로부터 내 주제는 그 교수님 전문 분야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불과 이틀 사이에 새로 발표된 해외 연구로 겹치는 것이 없는지 재차 확인하라는 연락을 받았었다. 박사과정 말년차라면 이미 자기 분야에서 피어-리뷰어로 요청을 받는 정도가 되기에 그때까지 훈련을 위해서라도 지도교수와 연구교수들로부터 끊임없이 리뷰를 받게 되고 물론 일상적인 페이퍼 리딩을 통해 관심 분야를 위주로 집중적인 리뷰를 하는 것은 더욱 기본으로 대학원 과정 내내 진행된다. 이곳에서는 줄곧 마치 퇴역 군인 또는 다시 고등학생이 된 듯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알을 깨기가 너무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