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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June 02, 2025

핵 발전 Nuclear Power Plant

[매일매일불금쇼] 원전 - 박종운 동국대 에너지전기공학과 교수 



이런 게 균형 감각. 이도 저도 아닌 회피형 중립이 아니라. 균형이란, 두루두루 살피고, 이 각도 저 각도를 다양하게 찾을 줄 알고, 동시에 여러 층위를 꿰뚫어 보는 능력. 


Saturday, March 15, 2025

Jung, Jun Hee's Saturday Discussion EP#009

 2025-03-08 [정준희의 토요토론] 9회 쿠데타 군대에서 국민의 군대로 
김병주 국회의원 & 최병욱 교수(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기획: 정선영 / 연출: 네번째달(4thmoonfilm) / 작가: 서자영 
(P) 2025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주블리 러블리~ 💗 소탈 수다 방긋 장군님!

강의할 때 시계 보는 거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탈출 준비 하지 않아도 되게 안심시켜 준. 

최 교수님도 발언이 평소 용기 기본 장착 생활인임을 고스란히 드러냄. 희망을 줌.

극심한 스트레스 폭탄 뉴스에 시달리다가 건강하고 신중하고 강직하고 발전적이고 공익적인 정신들을 너무 오랜만에 접하니 너무 살 것 같다.

상명대 교풍이 좋은가? 미술 전공에 홍대 정치 싸움에서 밀려난 정통 실력파 라인이 shelter처럼 유지되고 있었지만. 

+

열 내리고 몸이 삼 주 만에 말랑말랑해지니 마저 쉬기보단 놀고 싶어지는 간사한 맘.     

Thursday, February 06, 2025

김용구(金容九, Kim, Yong-Koo, 2008) Conceptual History in Korea

김용구(2008)<한국개념사총서 발간사>:    

우리는 외국 학자들처럼 개념의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분석, 의미론이나 명의론에 안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 장소의 개념들의 충돌을 연구해야만 합니다. 더욱이 우리의 한반도는 독특한 역사적 성격을 지닌 장소입니다. 유럽 열강의 세계 팽창 대상 지역 중에서도 오지奧地에 속하는 곳입니다. 오지의 특징은 외래 개념에 대한 저항과 오해가 그 어느 지역보다 강렬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저항이 강하다는 것은 이미 지켜 온 개념들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른바 가정假晶 pseudo-morphosis의 현상이 두드러진 곳입니다. 가정은 광물이 그 내부 구조에 따른 본래의 결정형과는 다른 결정형을 나타내는 현상을 지칭하는 광물학의 용어입니다. 다른 장소의 개념이 전파되는 경우, 본래의 의미가 왜곡되는 사회 현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슈펭글러O. Spengler가 광물학에서 차용한 낱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는 중국이나 일본과도 판이한 역사적 경험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오지라는 장소의 특징은 시간의 역사적 성격에도 반영됩니다. 세계 정치 중심 지역의 개념들이 뒤늦게 전파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지와 세계사의 접목은 세계사 흐름의 최후 단계에 이루어져서 오지의 세계화는 난항을 겪게 됩니다. [6] 

 

[...] 같은 동북아 질서에 속하였던 중국과 일본의 변모로 동북아 삼국 사이에도 개념의 갈등이 야기됩니다. 교린 질서 안에 살고 있던 한국와 일본은 1868년부터 개념의 충돌이 시작되어 1876년까지 8년의 위기를 맞습니다. 이 위기를 거치면서 일본은 개념의 세계화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이런 개념에 의한 담론을 세계에 전파합니다. 

같은 사대 질서에 살고 있던 중국이 1880년을 전후하여 사대 질서의 변형을 주장해 한국은 중국과 충돌하고 그리고 고민합니다. 유길준의 '양절체제兩截體制'라는 천재적인 직관은 사대 질서의 개념들을 서양 공법 질서의 개념으로 전환시키려는 중국에 대한 우리의 처절한 저항입니다. 이런 역사적 특징을 지닌 한반도라는 장소에서 인문/사회과학의 근대적인 기본 개념 형성에 중요한 시기tempos는 1850년에서 1950년에 이르는 1백 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질 문명권과 만나 충돌하면서 동시에 동북아 삼국 사이에 개념의 마찰이 병행하는 시기입니다. [7]

 

[...] 이런 개념사 연구를 우리는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서술해야 합니까?

시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분석을, 그리고 장소의 문제에 관해서는 비교문명권의 입장에 입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방법론에 따라 다음과 같은 순서로 주요 개념들을 서술할 것입니다.

먼저 동서양의 어원을 고찰합니다. 어원은 통시적 분석의 출발점입니다. 개념이 19세기 이전에도 동양 세계에서 통용된 경우에는 그 동양적인 의미와 19세기 이후의 변천 과정을 추적합니다. 그리고 19세기 중엽 새로 동양에 전파된 서양의 개념인 경우에는 서양 세계에서 통용된 의미와 동양에 전파되는 과정을 추적합니다. 

그러나 서술의 중심은 한반도라는 장소에서 일어난 개념들의 해석, 번역, 굴절, 선택, 그리고 오해를 포함한 모든 충돌 현상에 관한 분석입니다. 그리고 1950년 이후 이 개념들이 한국 학계에 정착되는 데에 따르는 오늘날의 문제점들을 제시합니다. 정착 문제는 우리 학계의 수준을 폭로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볼 때 개념사 연구는 인문/사회과학의 모든 분야에 걸친 연구입니다. 이른바 "전체의 역사 l'histoire totale'를 시도하는 지적 작업입니다. 이른 학술 사업을 진행하기에는 우리 학계의 수준이 아직 일천하다고 걱정하는 소리도 있습니다. 그리고 개념사 연구 자체에 관한 회의와 냉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장소 topos의 인문/사회과학 기본 개념에 관한 연구는 단지 학문상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 연구는 우리의 생존에 관한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개념의 정확한 인식에 의한 학술적인 담론의 세계화는 21세기에 우리가 한반도에서 한국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담론의 세계화를 이룩하지 못한 것이 1910년의 불행을 자초한 한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8-9] 


pro!!!!!

고달파요. 빨리 좀... 😭 2대째 기다리는데 후손 없는 2대도 이미 늙음. 

그런데 이 다음이 또 영영 없으시고. 십이 년 기다림이 헛물이다. 

그래도 나 학위 논문 쓰고 아프느라 정신 없던 (무려 五년 😱) 사이에 이제 국내에서도 인문학 좀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 시작. 15년만 빨리 하지 좀. 😭 


Monday, January 13, 2025

차성안 Prof. Cha, Sung An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경호처에게 부당지시 거부하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2025-01-13 1:00 pm 차성안 교수 기자회견


살 것 같아졌다. 본론보다 앞뒤에. 고맙습니다. 



"판사 출신인 차성안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3일 오후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경호처 직원들에게 부당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담긴 자료를 전달하겠다고 예고했다." 

from: 송창안@미디어스: 경호처 직원이 꼭 알아야할 '부당지시 거부 6문 6답' 




2025년 1월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2025년 1월 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Monday, October 28, 2024

인천대 교수 김철홍 Prof. Kim, Cheol Hong

- 이승욱@한겨레: 근정훈장 ‘미신청 확인서’ 낸 김철홍 인천대 교수

- 인천대 산업경영공학과 김철홍

글에 위세도 치장도 없어서 (경험의 한계로 인해 겸연쩍게도) 살짝 의아한 지경이었는데, 공학자. 노동 공학.    


Thursday, December 21, 2023

소심심고(素心深考) by 広中 平祐 (Hironaka Heisuke)

[지식인사이드] 박문호의 '학문의 즐거움'


1. 소심심고(素心深考) 

2. 대국적으로 보라 

3. 가설을 세워라 <= 유연하라 


울 아빠 평생 작업이 이건데...

이 분도 내 올해 허리가 아물지 않은 덕에 은인이 되었다. 마음이 괴로울 때 한결 가벼워지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 듣다 보면 맑아진다. 나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꽤 되기도 했는데... 모자르다. 우선 자립이 시급. 

학문의 즐거움 고대하며 용돈 모아 샀던 날이 엊그제 같이 생생하건만... 중학생 시절. 이후 몇 번이고 애독했던. 아저씨 일화도 기억난다. 설마 그래서 나 굳이 아줌마 된 거?

아니, 근데 난 하얀 마음만 넘쳐서 문제인 쪽이라고요! ......지금은 그냥 위로만 받자. 피곤하다. 


Wednesday, October 25, 2023

Many Kinds of White

Lauren Hanson (2022), in: Monochrome. ZERO and Dansaekhwa, Heidelberg: arthistoricum.net-ART-Books


Formal comparisons reveal both ZERO and Dansaekhwa artists were interested in interrogating the space of painting—its defining characteristics, the tension between flatness and depth, a renegotia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artist’s “hand” and its index—and its metaphysical and phenomenological implications. Both groups, either in the wake or the midst of wartime devastation, political and cultural oppression, and/or sociopolitical and economic turmoil, sought to turn painting inside out, to understand it from all angles, planes, and surfaces. Questioning the very nature of painting, they challenged previous definitions to create works absent what might have been considered painting’s one defining characteristic: the application of liquid pigment on a surface.


Der formale Vergleich offenbart, dass sich sowohl die ZERO- als auch die Dansaekhwa- Künstler*innen dafür interessierten, den malerischen Raum – seine bestimmenden Merkmale, die Spannung zwischen Fläche und Tiefe, eine Neuverhandlung der Beziehung zwischen der »Hand« des Künstlers und ihrer indexikalischen Spur – sowie seine metaphysischen und phänomenologischen Implikationen zu befragen. Ob während oder nach Zeiten kriegerischer Verheerungen, politischer und kultureller Unterdrückung und/oder soziopolitischer sowie wirtschaftlicher Turbulenzen – beide Gruppen versuchten, die Malerei umzukrempeln, um sie in all ihren Winkeln, Ebenen und Oberflächen geistig zu durchdringen. Indem sie das Wesen der Malerei selbst befragten, stellten sie auch bis dahin gültige Regeln infrage. So schufen sie Werke, die ohne das vermeintlich entscheidende Merkmal von Malerei auskamen: das Aufbringen flüssiger Farbpigmente auf einer Oberfläche.


👍😍


Lee’s conception of the color white as “a void for consciousness” or “a vessel for thought” results in paintings that act as propositions of how to represent the emptiness contained within a vessel, in which absence is revealed only when adjacent to a counterbalancing presence. Lee’s previous works from the early 1970s included the outlines of everyday containers, but in the works at the Tokyo Gallery “the outlines have gradually begun to disappear, and … the delineation of objects has been reduced to the point where only a suggestion of their existence remains.”


Lees Verständnis von Weiß als »Leerstelle für das Bewusstsein« oder »Denkbehältnis « lässt Gemälde entstehen, die wie Thesen zur Darstellbarkeit der Leere in einem Gefäß wirken, in dem sich Absenz nur im Kontrast zu einer Präsenz offenbart. Unter Lees vorher entstandenen Arbeiten aus den frühen 1970er- Jahren befanden sich auch Umrisszeichnungen von Alltagsbehältnissen, doch in den Arbeiten, die in der Tokyo Gallery zu sehen waren, »haben sich die Umrisse allmählich aufzulösen begonnen, und […] die Darstellung der Gegenstände wurde derart reduziert, dass sie nur noch andeutungsweise existieren«.


😊💗


😭

😈 

역사의 반복은 대문자 역사에서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역사는 일상에서 이름 없이 반복된다. 강약의 논리다. 생명의 역사가 이분법적 일원론의 세계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다름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가치 체계로 운영되도록 만들 텐가? 

있었던 일을 없는 것으로, 없는 것을 있었던 일로 만들려는 모든 구체적인 시도들은 전부 하나를 가리킨다. 피해가 철저히 사회적인 개념이라고 해서 벌어지는 폭력도 그만히 무마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폭력은 물리적이다. 다음 우주가 안고 간다. 사회적 힘이 바꾼 순서는 가능성의 시공을 뒤튼다. 그 안의 있었던, 있었을, 모든 것들은 타나토스. 


Friday, January 29, 2021

postModernism

노선을 정할 수준도 못 되고, 지금 그럴 필요가 꼭 있어야만 하는지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이 세계에 어떤 갈래들이 이미 있는지는 알아 두고 싶다. 나에게는 과거의 개인적인 고민들을 하나씩 해결하려는 희망과 미완성의 지도를 채워 나가려는 내적 동기 말고 남아 있는 것이 이제 없기 때문이다. 자기모순을 감내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만큼 절박하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에서 공부한 사람은 몰라야만 어떤 것들을 유지할 수 있는 어떤 것들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런데 독일 학위자가 그것을 출판될 책에서 보란 듯이 꺼내 놓았다. 

 

이순예(2015): 그런데 이 '몸짓'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자기 토대를 망각한 운동이었다. 자유를 보편이념으로 추대할 수 있게 해준 토대가 다름 아닌 산업혁명을 촉발하고 성공시킨 과학주의였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그 과학적 해명방식을 못마땅해 하면서 자유자재로 해명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더 풍요로운 세상을 위해서라는 깃발도 내걸었다. 누구에게나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으므로 세상을 '제대로' 해명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계몽에 임하는 자는 타인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사안에 맞는 해석을 하겠다는 노력은 해석의 중심을 계속 거머쥐려는 권력의 속성으로 분류되었다. 모든 것이 가능하므로 더 큰 가능성을 위해 모든 제한이 철폐되어야 한다는 주장(anything goes)은 실제로 결실을 거두었다. 자본이 모든 경계를 넘어서 자신의 논리를 관철하는 신자유주의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p. 31)


이 분은 그 어떤 것들 중 하나를 터트릴 셈이셨던 걸까? 그 어떤 것들 중 하나보다 그 셈이 잠시 더 궁금해졌다. 지금의 내가 밑줄 쳐야 했던 부분은 이 다음부터였지만, 파생한 상황들이 아닌 핵심적인 사실로부터 모두의 현실을 연결짓기로 이만큼 깊이 찌른 것을 처음 보았다. 

자신이 규약주의의 정합론에 근거한 경기에 임하고 있음을 모르는 과학자/공학자/기술자는 20세기 이후로 없다. (없는 것이 정상인데, 가끔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문제는 그 소수의 예외 경우 중 대중에게 말을 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규칙에 따라 당락과 점수가 매겨진다. 그 규칙에는 종류들과 변종들이 있고, 세칙과 예외규칙 들로 이루어진 위계가 공개되고 끊임없이 개정된다. 모든 참가자는 개정안을 낼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전공을 벗어나 무언가를 이해하고자 할 때에도 또한 규칙을 먼저 묻게 된다. 내용이나 심지어 권한보다 방식이 절차상으로도 우선될 수밖에 없다. 풍부함 또는 열린 문들, 그리고 모호함이란 탈을 쓴 직무유기의 게으름 또는 접근금지 푯말로 위협하는 폐쇄구역 지정권의 남발 사이에 무슨 은밀한 연락망이나마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받아 주기 어렵다. 언어의 문제로 치부해 줄 수 없는 꿍꿍이가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곳에서는 질문을 듣지 않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자리는 이미 꽉 차 있고, 해가 지지 않는다. 일종의 유토피아는 실제로는 볼 때마다 공포스럽다. 나는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지만, 들어가고 싶지도 않다.  


Tuesday, February 28, 2006

Anner Bylsma 안너 빌스마

Anner Bylsma 안너 빌스마

Discogs: artist Anner Bylsma
allMusic: artist Anner Bylsma
https://en.wikipedia.org/wiki/Anner_Bylsma



 Anner Bylsma (1979) Bach: the six cello suites


냉철과 열정을 겸비한 그. 파가니니를 삼킨 도스토예프스키 같다.
광기에 이를 순수성을 가지고도 어떻게 품격을 유지할 수 있는지 느끼게 하는 연주.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 더 내한하셨으면...


review/critics:
http://www.cello.org/Newsletter/Articles/bylsma.htm
http://www.bruceduffie.com/bylsma.html
https://www.freitag.de/autoren/der-freitag/lauschangriff-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