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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February 06, 2025

김용구(金容九, Kim, Yong-Koo, 2008) Conceptual History in Korea

김용구(2008)<한국개념사총서 발간사>:    

우리는 외국 학자들처럼 개념의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분석, 의미론이나 명의론에 안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 장소의 개념들의 충돌을 연구해야만 합니다. 더욱이 우리의 한반도는 독특한 역사적 성격을 지닌 장소입니다. 유럽 열강의 세계 팽창 대상 지역 중에서도 오지奧地에 속하는 곳입니다. 오지의 특징은 외래 개념에 대한 저항과 오해가 그 어느 지역보다 강렬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저항이 강하다는 것은 이미 지켜 온 개념들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른바 가정假晶 pseudo-morphosis의 현상이 두드러진 곳입니다. 가정은 광물이 그 내부 구조에 따른 본래의 결정형과는 다른 결정형을 나타내는 현상을 지칭하는 광물학의 용어입니다. 다른 장소의 개념이 전파되는 경우, 본래의 의미가 왜곡되는 사회 현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슈펭글러O. Spengler가 광물학에서 차용한 낱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는 중국이나 일본과도 판이한 역사적 경험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오지라는 장소의 특징은 시간의 역사적 성격에도 반영됩니다. 세계 정치 중심 지역의 개념들이 뒤늦게 전파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지와 세계사의 접목은 세계사 흐름의 최후 단계에 이루어져서 오지의 세계화는 난항을 겪게 됩니다. [6] 

 

[...] 같은 동북아 질서에 속하였던 중국과 일본의 변모로 동북아 삼국 사이에도 개념의 갈등이 야기됩니다. 교린 질서 안에 살고 있던 한국와 일본은 1868년부터 개념의 충돌이 시작되어 1876년까지 8년의 위기를 맞습니다. 이 위기를 거치면서 일본은 개념의 세계화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이런 개념에 의한 담론을 세계에 전파합니다. 

같은 사대 질서에 살고 있던 중국이 1880년을 전후하여 사대 질서의 변형을 주장해 한국은 중국과 충돌하고 그리고 고민합니다. 유길준의 '양절체제兩截體制'라는 천재적인 직관은 사대 질서의 개념들을 서양 공법 질서의 개념으로 전환시키려는 중국에 대한 우리의 처절한 저항입니다. 이런 역사적 특징을 지닌 한반도라는 장소에서 인문/사회과학의 근대적인 기본 개념 형성에 중요한 시기tempos는 1850년에서 1950년에 이르는 1백 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질 문명권과 만나 충돌하면서 동시에 동북아 삼국 사이에 개념의 마찰이 병행하는 시기입니다. [7]

 

[...] 이런 개념사 연구를 우리는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서술해야 합니까?

시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분석을, 그리고 장소의 문제에 관해서는 비교문명권의 입장에 입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방법론에 따라 다음과 같은 순서로 주요 개념들을 서술할 것입니다.

먼저 동서양의 어원을 고찰합니다. 어원은 통시적 분석의 출발점입니다. 개념이 19세기 이전에도 동양 세계에서 통용된 경우에는 그 동양적인 의미와 19세기 이후의 변천 과정을 추적합니다. 그리고 19세기 중엽 새로 동양에 전파된 서양의 개념인 경우에는 서양 세계에서 통용된 의미와 동양에 전파되는 과정을 추적합니다. 

그러나 서술의 중심은 한반도라는 장소에서 일어난 개념들의 해석, 번역, 굴절, 선택, 그리고 오해를 포함한 모든 충돌 현상에 관한 분석입니다. 그리고 1950년 이후 이 개념들이 한국 학계에 정착되는 데에 따르는 오늘날의 문제점들을 제시합니다. 정착 문제는 우리 학계의 수준을 폭로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볼 때 개념사 연구는 인문/사회과학의 모든 분야에 걸친 연구입니다. 이른바 "전체의 역사 l'histoire totale'를 시도하는 지적 작업입니다. 이른 학술 사업을 진행하기에는 우리 학계의 수준이 아직 일천하다고 걱정하는 소리도 있습니다. 그리고 개념사 연구 자체에 관한 회의와 냉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장소 topos의 인문/사회과학 기본 개념에 관한 연구는 단지 학문상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 연구는 우리의 생존에 관한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개념의 정확한 인식에 의한 학술적인 담론의 세계화는 21세기에 우리가 한반도에서 한국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담론의 세계화를 이룩하지 못한 것이 1910년의 불행을 자초한 한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8-9] 


pro!!!!!

고달파요. 빨리 좀... 😭 2대째 기다리는데 후손 없는 2대도 이미 늙음. 

그런데 이 다음이 또 영영 없으시고. 십이 년 기다림이 헛물이다. 

그래도 나 학위 논문 쓰고 아프느라 정신 없던 (무려 五년 😱) 사이에 이제 국내에서도 인문학 좀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 시작. 15년만 빨리 하지 좀. 😭 


Monday, January 13, 2025

차성안 Prof. Cha, Sung An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경호처에게 부당지시 거부하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2025-01-13 1:00 pm 차성안 교수 기자회견


살 것 같아졌다. 본론보다 앞뒤에. 고맙습니다. 



"판사 출신인 차성안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3일 오후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경호처 직원들에게 부당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담긴 자료를 전달하겠다고 예고했다." 

from: 송창안@미디어스: 경호처 직원이 꼭 알아야할 '부당지시 거부 6문 6답' 




2025년 1월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2025년 1월 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Friday, July 19, 2024

Ta protera analutika

김재홍 옮김/주석,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론 전서, 서광사, 2024.

http://aladin.kr/p/5R7SW


2024년 내가 태어난 👶🎉 7월 ♌ 한반도 🌏 초대형 💣 사건 💥 발생. 🌟🎇🎆😱

이보다 🎅 더 좋을 순 🎁💎 없다! 📘😍 꿈인가? 😇 생신가? 🎠😵   

온갖 ⛈⛆👢🚫⛺☃⛇ 회한과 🍃🍂😭 갖은 🌈🌿🎈 희망이 🌄🚀😊 피어오른다. 🌱🌷🌸

지금 ⌛ 이 순간 🎯🌠 내 손에 🙌📖 떨린다. 💫💃💓 오늘부터 📅🎎 동침! 💕😘💞

  

Wednesday, June 29, 2022

호모 스피리투알리스 아르티펙스 Homo spiritualis artifex

Jean Clottes (2011)동굴 깊숙한 안쪽에 있는 그림들은 보이길 의도한 것이 아니었고, 이 표현을 통해 현실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죽을 운명인 인간으로서는 작품을 만드는 것 자체가 작품의 결과나 그 시각적 효과보다 더 중요했다. 같은 내벽에 여러 그림들이 겹쳐 있는 현상도 이로써 설명될 수 있었다. 주술 의식이 있을 때마다 그림 위에 또 그렸으니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이다. "일단 이 행위가 끝나면, (...) 그림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22-23] 작품의 결과보다는 새기고 그리는 행위 자체가 더 중요했을 것이다. 

공감 주술은 모든 전통문화에 나타나는 기본 개념으로, 인간종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이는 기도나 현물, 또는 제례 의식을 통해 우리 일상을 좌지우지하는 초자연적인 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런 수단들은 신앙이 다르듯이 문화에 따라 당연히 달라지지만, 이미지에 따라붙는 중요성으로 볼 때, 예술은 이미지를 표현하므로 가장 특화된 수단일 수 있다. [26]  

역사적인 관점에서만 흥미로운 호모 파베르(Homo Faber)와 너무 낙관적인 개념인 호모 사피엔스 대신에, 나는 호모 스피리투알리스(Homo spiritualis)를 제안하고 싶다. 세계는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이들은 비물질적 힘에 호소해 이런 새로운 복잡성을 이해하고 최대한 잘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존재이다. [46-47] 

-- 류재화 옮김(2022)

 

인문학(영문학)이 과학(선사학)할 때, 그야말로 차원이 다름을 보여 준다. 우리 일반인이 기대하는 대로. 비로소 좀 과학적이 된다. 얼렁뚱땅 부지불식으로 넘어가는 것들을 최대한 줄이고, 논의를 거치지 않은 채 가정해 버린 것들을 적어도 지적은 하고. 자신의 어슬픈 진짜 토대를 정직히 밝히고. 모든 분석이 해석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함으로써 성실히 할 일을 하고. 이왕 풍성하게 수행하여 새로운/성숙한 논제들을 추가해 주고.


류재화(2022): 인간을 '호모 파베르' '호모 사피엔스'로 부르기보다 '호모 스피리투알리스'로 부르고 싶은 저자는 특별히 인간의 정신성에 주목한다. 여기서 정신성은 내적 세계만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 세계부터 전제한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보고 느끼며 어우러져 살아간다. 그러는 사이 어떤 강렬한 정신 작용으로 자신의 내적 세계에 이미지들을 투사하고, 그 이미지들을 다시 외적 세계에 투사한 것이 예술일 수 있다. 구조주의 인류학에서 현대인보다 원시인 또는 선사인이 더 상징적 사고를 한다고 보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상징적 형상화 능력이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기술이 아니라 대범한 지각성으로, 설명하기 힘든 무분별한 생략법 또는 환유 기법으로 추상의 단계까지 한달음에 올라가는 힘이다. 물질계와 상상계를 논리적 순차성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전광석화처럼 짧고 강렬하게, 그러나 유연한 정합성으로 이동하는 그야말로 기적적인 힘이다. 선사 예술이건 현대 예술이건 우리 모두가 전율하며 공감하는 예술이 있다면, 이런 감출 수 없는 에너지가 고여 있기 때문일 테다. [283]


어쩌면 저에게 안성맞춤으로 이처럼 환상적인 요약을! (안성탕면 먹고 싶다.)  


잡다하다는 건 편집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보통은 반대로 기초 지식부터가 양적으로 부족할 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라 초심으로 돌아가 있는데, 용서가 되실지 매우 의심스럽네. 결과에 하나도 안 담길 시간들이 훨씬 더 많을 텐데. 

기적적으로 방 정리를 시작했더니 소논문 한 편의 구상이 나옴. 졸업은 더 위험해졌나? 

생존도. 바로바로 K 교수에게 그대로 전해졌을 테고 또 그 인맥과 이권 안에서 흔적도 안 남게, 광영만 남게 진행 중일 테니. 평생 이런 일들을 안 당해 본 삶도 있다니 부럽다. 

 

Saturday, August 29, 2020

Heinrich F. Plett

따라하면 되는 사람을 찾았다. 하인리히 플렛. 

Heinrich F. Plett (2000) Systematische Rhetorik: Konzepte und Analysen  

원서를 구하지 못했는데, 한글판보다 1년 늦게 출판된 영역본은 구했다. 

그렇지만, 실은 재발견이다. 정확하게는 세 번째랄까. 

석사 과정 때였던 것 같다. 랩실에 늘 그렇듯 혼자 있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던 기억이 있다. 그때 심장이 오그라들고 팔다리가 긴장했던 감각이 선명 떠오른다. 이 사람한테 가야겠다고. 

그런데 이미 퇴직한 것 같았다. 게다가 연구 논문 목록에서 '수사학'이라니, 심지어 '중세'라니 하여 좌절감에 앞서 의문스러움이 가득해졌던 기억도 난다. 그때가 처음으로 내가 '비교문학 전공자'를 무서워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후로 몇 번 되풀이되면서 내게 비교문학은 신화보다 더한 계시록의 인상으로 자리잡았다.     

그때 발견했던 논문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다시 찾아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그 처음의 발견을 싹 잊어버린 채 그저 제목의 앞단어에 끌려 국역본을 장바구니에 담아 두고, 뒷단어에 막혀 도대체 지난 몇 년을 보냈었는지, 불과 사흘 전 이 책을 이 시점에서 주문하고 있는 나를 저지해 줄 힘이 좀 어디에 없을까, 했는데... 월경으로 거의 퇴폐적 날들을 보내고 있는 이제야 이 분이 오셨다. 이런 순간 전화했던 그 사람이 지금은 왜 없다.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 것은 나의 증상일 뿐인데, 내가 어느 만큼 외로웠는지, 그게 이십 년이나 되었음이 어이가 없는지 염치가 없어야 하는지 하는 걸...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된 순간에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던 사람이 왜 없는지 모른다.   

아무튼 플렛은 자신의 말을 당연히 실천했다. 

Heinrich F. Plett (2012) Enargeia in Classical Antiquity and the Early Modern Age: The Aesthetics of Evidence

나도 따라가면 된다. 드디어. 


그런데 이제 기력이 없는 것 같아. 아빠랑 얘기를 못 해서. 

Monday, August 29, 2016

胡玫 Mei Hu (2010) 孔子 (Kong Zi) Confucius

胡玫 후 메이(Mei Hu) 孔子 (Kong Zi) Confucius 공자: 춘추전국 시대

@iMDb / @naver

공자: 예와 악을 위한 큰 꿈은 후세에 맡길 수밖에...

공자: 그들이 법을 지키는 건 형벌이 두렵기 때문인데, 사람들이 예를 지키고 염치를 알아서 법을 지키는 게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군주 노정공이 나라를 강하게 하는 방법으로써 제나라의 법치에 대해 묻자)

공자: 인이 우선일진데 살인은 전통이 될 수 없소. (노나라 대부 계손사가 부친의 장례에 순장 풍습에 따라 어린 노비를 죽이려 하면서 전통임을 주장하자)

공자: 자신이 원하지 않는 건 남에게도 시키지 말아야죠. (노나라 계손사가 선친의 유언에 따라 어린 노비를 순장하여 죽이려 하는 것은 효심이라고 공산유가 주장하자)

공자: 기꺼이 살신성인해야지, 어찌 살기 위해 인을 저버리십니까! (노정공이 삼성을 허무는 국책을 중단하려 하자 항변하며)

안회: 제게도 말씀하셨잖아요. 세상을 바꿔 놓을 수 없다면 자신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요. (노나라에서 축출된 공자가 자신을 따라 쫓아온 제자 안회에게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냐고 묻자)

남자: 어진 자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가르치셨다지요? 그 사람 속에는 저처럼 평판이 나쁜 여자도 속하나요?

공자: 군자는 미인을 얻고자 할 때도 예의를 지킨다는 뜻입니다. (위나라 남자가 [시경]의 한 구절 '요조숙녀 군자호구'에 대해 묻자)

공자: 시 삼백 편을 한마디로 간추리자면, 정이 넘치되 사념이 없는 거죠. (위나라 남자가 [시경]의 남녀 애정에 대해 묻자)

남자: 재물과 미색을 탐하는 게 사내의 본성이라, 차지하려 피를 흘리며 싸우죠. 그것도 천성이니 극복하기 어렵고요.
공자: 어렵기에 군자가 두드러지죠.

공자: 저는 믿습니다. 아침에 도를 알면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다고. (위나라 남자가 공자에게 군자로서 고상한 덕망을 갖추는 것을 진정 중요하게 보느냐고 묻자)

공자: 전 불편합니다. 속세의 아름다움과 미덕을 함께 원하시니까요. 대충 내가 옮기면 ==> (부인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불편합니다. 덕을 좋아하기를 색을 좋아하듯이 하는 사람을 소신은 아직 보지 못했으니까요. (다음에 한 번 더 볼 수 있겠느냐는 남자의 물음에) 
남자: 세인들은 공 대인의 고통을 이해할진 몰라도 그 속에서 일궈낸 진리는 모를 거예요.

공자: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마라. (제자 자로가 위나라 조정의 부름을 받아 떠나게 되자 기뻐하면서도 그의 성급한 성미를 걱정하며)

공자: 후세에 날 이해하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일 테고, 날 오해하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일 것이다.


2016.08.29 낮 @내 방

최소한의 배경 지식이 없었다면 지루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었을 듯하다. 다행히 이제야 뒤늦게 보게 되어서 떨리는 재미가 있었다. 평전적인 성격이 강해 시간 순서에 따르기는 하지만 차분히 흘러가기보다는 압축적으로 건너뛰기가 많다. 과감히 특정 에피소드들을 선별하는 방식이라서 자세한 지식이 있는 관객이라면 빠진 내용들에 대해 아쉬움이 많을 수도 있겠다. 현재의 내게는 안성맞춤. 고증에 충실한 세밀한 묘사들에 감탄할 수 있었던 건 역시 근래에야 알게 된 지식들 덕분이다. 건축과 실내 기구, 수레나 각종 무기 등 전쟁 장비, 의복부터 배우들의 자세나 몸짓, 어법(말투는 다소 현대화했지만 시대상 정확한 호칭들을 구사. 비록 한글 자막에선 전부 무효화됐지만.)까지 속속들이 꼼꼼했다. 무엇보다도 각본이 (영화사에라기보다) 역사에 남을 만하다. 그리고 서양인과 서구화된 관객들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듯한 욕심이 느껴지는 촬영. 특히 각본과 고증에 홀려서 두 번 연속으로 본 다음 스크롤링 해 가면서 두어 번 더 봤다.

노나라 최고 권력가 계 씨의 노비의 목숨을 구하고 제자로 거두는 일화는, 그동안 고민하면서 나름 정리해 두기는 했었지만 혼자서는 확신할 수 없었던 공자의 인과 예의 관계에 대해 명쾌하고도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어서 깨달은 것이 많다. 틀리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도 했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측면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다운로드 파일을 재생하며 본 것이라 수없이 정지 버튼을 누르면서 실시간으로 성장하는 기분이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한계가 영화를 통해 상당히 보충되었다. 현대 어원학의 발전으로 인해 구체적인 것(두 명의 사람)에서 추상적인 것(사람 사이의 관계)으로 그 의미의 폭이 넓어지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인'이란 단어를 공자가 자기 식대로 개념화하면서, 모호한 언어적 규정이 아닌 당면 상황에 즉각적으로 인을 적용하는 논리적 근거로서 매번 다르게 실체화되는 '예' 그리고 실증적 근거로서 역사(춘추)의 사례로서의 주공을 제시했던 것이었다. 현재의 과학적 기준으로도 이론과 증거가 합치할 때, 가설과 실례가 일관됨을 증명했을 때 해당 주장을 반박할 수는 없다. 반박하려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론 자체의 결함 또는 증거 자체의 오류 또는 양자의 관계의 틈을 제시해야만 한다. (아니라면, 이성주의 또는 합리주의가 아니므로 과학적 방법이 아니니까 일단 논외의 문제가 된다. 뭐 꼭 과학적이어야만 하는 건 아닐 테니. 하지만 누구든 특권적 자격 제한 없이 자기 이성의 자유에 따라 제시하기만 하면 되는데, 이걸 폭력이라고 하고, 논외의 상황을 끌어 들여서 문제를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폭력이 아닌가? 나는 후자의 폭력이 더 특권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폭력적이라고 본다. 다른 문제를 제시하고 싶다면 새로운 문제로 제시하면 된다. 자유롭게. 문제 자체를 유물론적으로 대상화시키면서 독점하려고 하지 말고. 생각이 무슨 땅따먹기도 아니고.)

계손사는 결국 "당신 말에 틀림이 하나도 없구려."라며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말이 칼보다 강하다'는 표현이 나한테 이렇게까지 깊게 와닿은 적이 없다. 현세의 숱한 오해로, 뜬구름 잡는 이상으로서 약자를 억압하는 유교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지금 말로 '정치', 권력이 강한 자가 주도하는 쟁론의 현장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어도 시퍼렇게 날을 세워 모든 불인과 불의와 무례를 처단하기 위한 최강의 설득력으로서의 인을 지극히 현실적이고 효과적으로 발휘했던 것이다.

더구나 내가 요즘 가장 치열하게 고민 중인 논제에 대한 언급이 노자와 공자와의 대화에서 건드려진다. 한자어 하나의 개념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 중인데, 이것이 보통 알려지거나 연구되는 유가적 인의예지에서 내용상 직접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확신할 순 없지만 글자 자체가 잘 등장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아직 문외한인 처지에서 관련 자료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어 벽에 부딪힌 상태다. 양명학을 살펴봐야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완전 깜깜이라 어느 세월에... 이러고 덮어 두었다. (이런 거 고민하고 있는 자신이 참 궁상스럽기도 한 현실이고.)

아무튼, 역사적 실존 자체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도 하고 세인들에게 친근한 도교적 신선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노자와의 회상 또는 가상 대화의 장소가 역시 도교적으로 구름 위의 산봉우리인 데 반해, 마치 땅바닥으로 추락하듯,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군자'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변하는 현실의 군주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 공자는 노정공의 장막 안에서 신하의 예로 꿇어 앉아 있다. 시각적으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 은유는 노자와 공자가 공유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달랐는지 영화적으로 말하고 있다. 공자의 좌절은 노정공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그가 은자의 길이 아닌 세속의 길을 자신의 삶으로 이미 이전에 선택했기 때문에 자연히 따라온 고통으로 보인다. 그래서 더 이상 선택하지 않고 일체의 항거도 없이 버려진다. 나는 이것이 유가적 '자연'이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공자가 나자렛 예수와 만난다고 생각한다. 흔히 공자가 모국의 군주에게 실망한 끝에 자신의 이상에 맞는 군주를 찾아내어 자신의 정치를 실현시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유랑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후 메이는 공자의 퇴출이 철저히 정치적 패배였고 최후까지 충심과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애절한 기다림에 대한 냉정한 배신이었기에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는 모습을 큰 뜻을 품고 나아갔다기보다는 비참하게 쫓겨나 구차하게 떠돌게 되었던 것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공자는 자신이 버려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버려졌다는 현실에 대해서도 받아들이는 것을 끝까지 힘들어 한다. 내가 후 메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버려지는 것에 대한 공자의 결코 원치 않았고 준비도 대책도 없었던 고통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친 예수가 기어이 죽어야 했던 것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한편 안회의 대답에서 공자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감을 알 수 있다. 자신을 바꾸는 데에는 끝이 없기에. (자신을 바꾸기를 그치지 않고 살기에는 나도 한가락 하건만. 나는 왜 멀리서는 커녕 가까운 거리 안에서도 혼자지?)

내가 여자인지라 더욱 위나라 군부인 남자와의 대화는 경악스러울 지경이었다. 촌철살인으로 넘치는 대화로 거의 백미 같은 장면이었다. 만나는 예를 마친 후 남자는 첫마디부터 핵심을 찌른다. "어진 자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가르치셨다지요? 그 사람 속에는 저처럼 평판이 나쁜 여자도 속하나요?" 지적 편력과는 별개로 그저 생생히 일상이 힘들어서 새삼스레 공자를 찾게 된 것이니까. 요즘 살기가 이렇게까지 힘든 건 내가 여자이기 때문인데, 이걸 이제와서 인정하기에는 참 마음의 저항이 남은 데다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으니, 그러니까 나도 최선을 다했기에, 이 점에 있어서만은 공자 님도 인정해 줄 것이라 믿는다. 각종 성욕제어불구 소인배들에게 시달리다 못해 역겨운 지경이라 공자 만나면 울음부터 쏟아질 것 같았는데, 내가 완전 사랑하는 배우 저우쉰이 나보다 훨씬 강단 있게 물어봐 주니... 그 어떤 하소연보다 위로가 된다.

+ 아무래도 이상해서 정확한 대사("微臣从未见过如斯好德如好色的人.")를 찾아보니, 한글 자막 오역이 너무 창의적이었군. 짐작대로 [논어] 20장: 子曰: "吾未見好德如好色者."이란 유명한 구절인데. 어쨌든, 그렇다면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나? 덕까지는 안 바라니 제발 예의 좀 갖추길. ("교수님"을 "오빠야"로 듣는 미친 무례한 것들. 그냥 무례한 것보다 상대의 예를 무례로 응대하는 게 더 나쁜 거거든. 자고로 "죄질이 나쁜" 것으로 여겨져 왔는데, 어디서 서양 봉건제 궁전에서 볼모로 지내던 왕족, 귀족들이 자기 목숨이 언제 달아날까 공포에 떨다 탄생시킨 매너를 예로 잘못 배워 가지고 그저 권력 우열의 관계에서 작동하는 사회적 코드라고 여기고 있는 자신에 대한 자각이나 있는 건지 예를 무슨 한쪽이 그보다 약한 한쪽으로부터 받아 먹는 건 줄로 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정책을 하필 이 땅에서 헌병대가 담당했기에 유독 졸렬하고 잔악한 방식이었던 것을 우리 고유의 삼강오륜적 장유유서 풍습으로 잘못 알고 둔갑시키고 있는가 하면... 성욕=권력이라고 고대인들도 알고 있었던 것을 나만 모르쇠 혼자 타조 놀이 하고 앉아 있으면서 적반하장이질 않나... 무식(=무례)하면 세상이 슬퍼진다.)

좀 진지하게는, 공자가 구설을 무릅쓰고 일단 남자를 만났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자. 특히 자로가 격렬하게 반대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한데. 공자는 남자가 단순히 베갯머리 송사를 통한 경국지색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정치적 안목을 가지고 위나라 정치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만남의 이유로 댄다. 훗날 남자가 살해당할 때 숨을 거두며 공자의 모습을 회상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세상의 이해를 받지 못한 공자가 역시 세상의 이해를 받지 못한 자신을 꿰뚫어 보고 이해하며 인정하고 있었다는 사실. 내 가슴에도 박혔었으니까.

닫는 장면에서의 공자의 독백 "후세에 날 이해하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일 테고, 날 오해하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일 것이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감독 후 메이가 이 작품을 통해서 공자에 대한 현재의 세인들의 대표적인 오해들을 몇 가지만이라도 바로잡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영화 처음부터 명확히 느낄 수 있다. 노정왕과의 대화에서 법가적 법치 체계와의 차이점을, 삼환에 대한 공자의 복잡하고 얼핏 보면 일관성 없어 보이지만 실은 굉장히 일관된, 역사적으로 빈번했던 유생들의 파벌주의와는 상반되는 원래의 유가적 원칙주의와 정명론적인 태도를, "정은 없고 사념이 넘치는" 문란하거나 폭력적인 관계가 아닌 남녀간의 애정 관계에 대한 공자의 아름다운 가치관을, 망명을 떠나던 당시의 처신이나 남자와의 독대를 감행하는 모습에서는 체면이나 평판에 연연하지 않는 대쪽 같은 신념과 용기를, 제자들을 맞아들이거나 떠나보내고 함께 생활하는 모습에서 특유의 소탈함과 다정함을. 하지만... "세인들은 공 대인의 고통을 이해할진 몰라도 그 속에서 일궈낸 진리는 모를 거예요."라고 했던 남자의 말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물론 계몽주의적이라거나 고리타분하다는 비판을 받기에 딱 알맞겠는데, 도무지 소위 평론가들의 반주지주의적 주지주의의 강박 또는 비도덕주의적 도덕주의의 횡포가 특히나 매체 예술마저 감금하려는 것을 보면, 뭐, 본인 인생만 재미없을 뿐이니. ('공가점'을 때려 부수던 공산당이 공묘 복원으로 관광 특수를 누리게 된 이후 국책 마케팅 영화로 제작하였으나 흥행과 평가 모두 망한 것은 사실이다.)

취향 저격 장면은 제나라 대부 여조의 책략으로 제경공이 노정공에게 제안한 회동을 당시 대사구로 있었던 공부자님께서 완벽하게 처리해 주시는 (내 여심을 마구 흔들어 주시는) 일화. 일차적으로 주군의 신변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강국의 권세에 맞서 동등한 권위를 세우며, 무엇보다 영토와 공물 등 예상되는 외교적 요구의 탈을 쓴 패권적 횡포에 대하여 실리적으로 밑지지 않는 협상을 성사시키는 세 가지 일을 동시에 깔끔하게 해결해 주신다. 첫 번째는 사병을 보유한 계 씨와 맹 씨 등을 협력시키기 위해 미리미리 최선을 다하지만 실패하자 기지를 발휘하여 허허실실의 책략으로 병법전을, 두 번째는 예법을 빌어 상대의 자연스러운 협조를 이끌어 내는 우아하고 우호적인 방식으로 심리전을, 세 번째는 역사와 명분을 내세운 날카로운 언변으로 외교전을. 아아, 진정한 완벽남이 여기에... 실은 다방면으로 철저한 사전 준비로 충심을 다하는 헌신적인 공무원 능력자. 국서가 도착하자마자 공자는 지도부터 펼쳐 놓고 회동 장소의 지형을 파악하는 작업을 가장 먼저 한다. 삼환에게서 호위 군사들을 받아내기 위해 직접 활쏘기 내기를 하는 등 (도올 선생님 강의에서 배웠던 '사'로서의 공자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애초에 부친이 무장이었고 대를 이어 기골이 장대했던) 실무자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고대에는 전쟁과 정치가 따로 나뉜 것이 아니었다는 실정을 확인할 수 있다.

한 시퀀스에서 진행 중인 사건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작은 몸짓이나 지나가는 중얼거림, 배우들의 무의식적인 듯한 자세나 스쳐지나가는 표정 등을 통해서 여러 인물들의 성격과 생략된 많은 일화들을 농축적으로 전달하는 연출 덕분에 일일이 풀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계 씨가 보낸 무사에 맞서 스승을 지키기 위해 가장 먼저 칼을 뽑는 자로의 반사신경이라든가 (다 뽑기 전에 손으로 막는 스승님의 스피드가 역시 한 수 위?) 방랑 중 다같이 굶을 때 증삼과 안회의 대사라거나 등등 아는 만큼 재미있는 영화다.
 
가오시시 (2010, CCTV) 삼국 95부작에서 각기 조조와 제갈량 역으로 철천지 원수 사이로 나오는 첸빈천과 류이가 같은 해에 상영된 영화에서 노나라 삼환 중 첫째인 계 씨 가문의 부자지간으로 찰떡 출연하는 재미는 덤. 그러고 보니, 역사이든 원작이든 최대한 재현하기보다는 스크랩하듯이 선별한 일화에 집중하는 연출 방식이 공통점이기도 하네. 첸빈천은 신삼국에서 굉장히 복합적인 성격으로 그려지는 조조의 다면적인 면모를 맛깔나게 연기했는데, 이 작품에서도 계손사가 공자에게 느끼는 복잡미묘한 애증을 보여준다. 참으로 능란한 배우다.

Sunday, December 25, 2005

조광조 (趙光祖) Jo Gwang Jo

정암(靜庵) 조광조 (趙光祖, 1482-1520)

1519년 (중종 14년) 12월 20일 능주 유배지에서 지은 절명시:

愛君如愛父
憂國如愛家
白日臨下土
昭昭照丹衷

source: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유허비 (전라남도 기념물 제41호: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 애우당 보중 현판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 사랑하듯 하였고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 하였노라
하늘이 이 땅을 굽어보시니
내 일편단심 충심을 밝게 밝게 비추리

--- 최인호 옮김 (source: [유림: 왕도] (2005, 열림원)


한국학종합DB: 정암집(靜菴集)





계보: 공자 - 정몽주 - 김종직(金宗直) - 김굉필 - 조광조

벗: 평생 지기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 1488-1545), 무명의 갖바치, 미지의 운암주인
제자: 장잠(張潛), 성수침(成守琛), 백인걸(白仁傑)

최인호 (2005, 열림원) 유림: 왕도, 278쪽:
"융경(隆慶) 무진년(戊辰年)은 선조의 원년이다. 정암선생에게 영의정을 추중하시고 다음 해에 시호를 도덕이 있고, 견문이 넓으며, 정도로써 사람들을 복종시킨다는 뜻으로 문정(文正)이라고 내리셨다.

최인호 (2005, 열림원) 유림: 왕도, 253-254쪽:
문정공 조광조 영령 치제문:
" 효종 원년(1650년) 심곡서원에 친필로 사액을 내림으로써 정식으로 조광조의 복원을 만천하에 공표한다. 실로 조광조의 사후 130년 만의 일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조좌랑 채지연(蔡之沇)을 직접 심곡서원에 보내어 조광조의 영령 앞에 제사를 지내도록 명령한다. 효종은 이시해(李時楷)로 하여금 처제문을 지어 올리도록 하는 한편 채지연을 보내어 조광조의 신위 앞에서 이를 낭독하도록 하였다.

국왕은 예조좌랑 채지연을 보내어 선정신(先正臣)인 문정공 조광조의 영령에 제를 드리노라.
경의 기상은 산악의 정신인 듯 북두의 결정인 듯
영봉(靈鳳) 같은 상서(祥瑞)며 금옥같이 윤택하다
어려서 학문에 뜻을 두고 개연(慨然)히 분발하여 대도(大道)를 탐구했네
역법(曆法)은 하정(夏正)쓰고 면류관은 주(周)의 제도
일찍부터 지난 포부 왕좌지재(王佐之才) 그 아닌가

이 나라 동녘 땅에 문화가 싹튼 것은 기자(箕子)가 우리 땅에 오면서 시작됐네
그 덕화(德化) 그 교훈이 그 뒤로 침체되어 신라 고려 지나면서 큰 발전 없었도다
두절된 그 학문을 문경공이 창시하고 경 또한 분발하여 정통을 받았도다
방향을 제시하고 앞길을 알려주니 문왕이 아니어도 그침 없이 분기(奮起)한다
흉중(胸中)에 쌓인 지식 자연히 대도(大道)와 부합되며 언어와 동작은 법도에 어김없다
조용히 생각하고 밤낮으로 신칙(申飭)하여 엄연하고 숙연한 그 위의 어긋남이 없었도다
굳건하고 엄밀하게 다듬고 갈고하여 영화가 밖으로 발하여 선명한 그 광채가 옥같고 물과 같네
법도 있는 품위는 일거일동(一擧一動)에 나타나고 고고한 학의 맑은 울음 구천까지 들려주어
임금께 신임받아 천재일우(千載一遇) 되었도다. "



졸부 중종이 부단히 인격을 수양하고 겸허하게 인재들의 직언을 수용하며 군자로서 성군으로 거듭나 약육강식의 편파적인 정세를 타파하고 강력하고 정의로운 왕도정치를 펴기를 바랬던 그의 이상... 도덕적 결벽증과 그로 인한 세상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자기 내부의 모순들에 시달렸던 평범한 사춘기 시절, 그의 순수함과 철저함에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밤을 노린 여인의 유혹을 거듭 거부하고 도리어 그녀를 꾸짖고 달래어 교화시키는 것으로 지아비로서의 정절을 지켰던 그의 자제력과 충실함에 귀중한 이십 대를 방종으로 흘려 보냈다는 후회마저 또 다른 변명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에게 엄격한 이의 모습은 나를 늘 황홀케 하고, 또 무서운 채찍이 된다.

사모하는 이여...
고고한 의욕과 강건한 충심을 배신당하고 젊은 날 눈바람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얼마나 아프셨습니까.
학문도 도덕도 정의도 말고 우선 처자식이 밟혀 어찌 눈을 감으셨습니까. 그리 아끼시지 않으셨습니까.
왜 가장 잔인하게 버림 당하고도 사랑과 걱정을 거두지 않으셨습니까.
그 총명으로 어찌하여 위협을 피하지 못하고 끝까지 그 저열함을 보지 못하고 맹종하셨습니까.
그 죽음이 오늘의 저에게도 감히 남일 같지 않을 만큼 세상은 변함이 없고 사람도 여전합니다.
가신 그 길을 따라야 할지 그저 우선 사는 게 중요한지, 나이가 들수록 더욱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