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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February 06, 2025

김용구(金容九, Kim, Yong-Koo, 2008) Conceptual History in Korea

김용구(2008)<한국개념사총서 발간사>:    

우리는 외국 학자들처럼 개념의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분석, 의미론이나 명의론에 안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 장소의 개념들의 충돌을 연구해야만 합니다. 더욱이 우리의 한반도는 독특한 역사적 성격을 지닌 장소입니다. 유럽 열강의 세계 팽창 대상 지역 중에서도 오지奧地에 속하는 곳입니다. 오지의 특징은 외래 개념에 대한 저항과 오해가 그 어느 지역보다 강렬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저항이 강하다는 것은 이미 지켜 온 개념들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른바 가정假晶 pseudo-morphosis의 현상이 두드러진 곳입니다. 가정은 광물이 그 내부 구조에 따른 본래의 결정형과는 다른 결정형을 나타내는 현상을 지칭하는 광물학의 용어입니다. 다른 장소의 개념이 전파되는 경우, 본래의 의미가 왜곡되는 사회 현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슈펭글러O. Spengler가 광물학에서 차용한 낱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는 중국이나 일본과도 판이한 역사적 경험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오지라는 장소의 특징은 시간의 역사적 성격에도 반영됩니다. 세계 정치 중심 지역의 개념들이 뒤늦게 전파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지와 세계사의 접목은 세계사 흐름의 최후 단계에 이루어져서 오지의 세계화는 난항을 겪게 됩니다. [6] 

 

[...] 같은 동북아 질서에 속하였던 중국과 일본의 변모로 동북아 삼국 사이에도 개념의 갈등이 야기됩니다. 교린 질서 안에 살고 있던 한국와 일본은 1868년부터 개념의 충돌이 시작되어 1876년까지 8년의 위기를 맞습니다. 이 위기를 거치면서 일본은 개념의 세계화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이런 개념에 의한 담론을 세계에 전파합니다. 

같은 사대 질서에 살고 있던 중국이 1880년을 전후하여 사대 질서의 변형을 주장해 한국은 중국과 충돌하고 그리고 고민합니다. 유길준의 '양절체제兩截體制'라는 천재적인 직관은 사대 질서의 개념들을 서양 공법 질서의 개념으로 전환시키려는 중국에 대한 우리의 처절한 저항입니다. 이런 역사적 특징을 지닌 한반도라는 장소에서 인문/사회과학의 근대적인 기본 개념 형성에 중요한 시기tempos는 1850년에서 1950년에 이르는 1백 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질 문명권과 만나 충돌하면서 동시에 동북아 삼국 사이에 개념의 마찰이 병행하는 시기입니다. [7]

 

[...] 이런 개념사 연구를 우리는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서술해야 합니까?

시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분석을, 그리고 장소의 문제에 관해서는 비교문명권의 입장에 입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방법론에 따라 다음과 같은 순서로 주요 개념들을 서술할 것입니다.

먼저 동서양의 어원을 고찰합니다. 어원은 통시적 분석의 출발점입니다. 개념이 19세기 이전에도 동양 세계에서 통용된 경우에는 그 동양적인 의미와 19세기 이후의 변천 과정을 추적합니다. 그리고 19세기 중엽 새로 동양에 전파된 서양의 개념인 경우에는 서양 세계에서 통용된 의미와 동양에 전파되는 과정을 추적합니다. 

그러나 서술의 중심은 한반도라는 장소에서 일어난 개념들의 해석, 번역, 굴절, 선택, 그리고 오해를 포함한 모든 충돌 현상에 관한 분석입니다. 그리고 1950년 이후 이 개념들이 한국 학계에 정착되는 데에 따르는 오늘날의 문제점들을 제시합니다. 정착 문제는 우리 학계의 수준을 폭로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볼 때 개념사 연구는 인문/사회과학의 모든 분야에 걸친 연구입니다. 이른바 "전체의 역사 l'histoire totale'를 시도하는 지적 작업입니다. 이른 학술 사업을 진행하기에는 우리 학계의 수준이 아직 일천하다고 걱정하는 소리도 있습니다. 그리고 개념사 연구 자체에 관한 회의와 냉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장소 topos의 인문/사회과학 기본 개념에 관한 연구는 단지 학문상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 연구는 우리의 생존에 관한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개념의 정확한 인식에 의한 학술적인 담론의 세계화는 21세기에 우리가 한반도에서 한국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담론의 세계화를 이룩하지 못한 것이 1910년의 불행을 자초한 한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8-9] 


pro!!!!!

고달파요. 빨리 좀... 😭 2대째 기다리는데 후손 없는 2대도 이미 늙음. 

그런데 이 다음이 또 영영 없으시고. 십이 년 기다림이 헛물이다. 

그래도 나 학위 논문 쓰고 아프느라 정신 없던 (무려 五년 😱) 사이에 이제 국내에서도 인문학 좀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 시작. 15년만 빨리 하지 좀. 😭 


Monday, February 14, 2022

René Descartes (1628) Regulae ad directionem ingenii 정신지도규칙

René Descartes (1628?):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모든 학문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따로 분리해서 하는 것보다 그것들을 함께 탐구하는 것이 훨씬 더 쉽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진지하게 사물의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개별적인 학문을 취해서는 안 된다. 학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유념할 것은, 이성의 자연적인 빛을 증대시키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것도 이런저런 학적인 난제를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각의 삶의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를 지성이 의지에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렇게 되면 조만간에 자신이 개별적인 것을 연구한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진보를 했음을 알게 될 것이고, 또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도달했음도 알게 될 것이다. 

-- 이현복 옮김(2019: 22) 


정말? 전학 갈 텐데. 


Sunday, November 21, 2021

raza 근대과학-식민주의/미학-인종주의/대공황-반공주의

Alain Supiot (2005): 서구사회가 나머지 다른 세계를 지배하려고 했던 생각의 밑바탕에는 서구사회에 곧 진리가 존재하며, 다른 모든 인간사회보다 서구 사회가 더 뛰어나다는 확신이 깔려 있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취하기는 했으나, 서구사회에는 여전히 이러한 확신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를 초래한 건 일단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리였다. 서양이라는 개념 자체가 동로마 제국의 그리스 정교에 대한 반대적 개념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리는 비기독교세계에 대한 정복 및 개종 시도를 정당화하는 데에도 소용됐다. 곧이어 과학이 종교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이민족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한다. 이에 따라 인간들 사이에 생물학적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하나의 '과학적 진리'로 여겨졌으며, 이는 특히 신교 지역을 중심으로 후기 다윈주위자들에 의해 널리 확산됐다. 프랑스 같은 가톨릭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들에서는 서구권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생각이 더 우세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여전히 우매한 상태에서 미신을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계몽주의로 교화하기 위해 문명을 전파하는 것이라며 식민지 건설을 정당화했다. 나치의 만행을 겪고 난 후 인종 간의 불평등은 사라졌고, 문명을 전파한다던 사명도 식민제국이 붕괴하며 함께 무너졌다. 하지만 서구사회를 관통하는 역사의 법칙들은 그 형태만 조금 달라졌을 뿐 여전히 유효하다. 이제 인류는 선진국과 후진국으로 나뉘게 되었으며, 최근에는 '후진국'이라는 말이 '개발도상국'이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나아가 의욕 충만한 경제학자들은 서구권에 비해 다른 지역 사람들이 얼마나 더 뒤쳐져 있는지 가늠하는 지표인 '인간개발지수'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역사 종말론자들은 서구권 국가들이 경제 법칙을 준수한다는 점이 곧 이들이 나머지 세계를 지배하는 객관적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신조는 국제 기구와 유럽공동체 기구들로 계승되는데, 이들 조직은 탈규제화한 경제가 가져다준다는 이점들을 전 세계에 확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어찌 되었든, 서구권 국가들은 역사의 진행 방향 속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데, 그 방향을 믿는 건 오직 이들뿐이다. 
-- 박제성 · 배영란 옮김(2015: 25-27)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내용이지만, 참 본인들이 알기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칸트-니체-푸코-사이드의 힘인가? 

내가 어릴 적만 해도 꿈이 과학자라고 하면 야단치는 어르신들이 매우 드물지만 계셨다. 사람 죽이는 무기나 만드는 양 것들 짓이라고. 난 전혀 상처받지 않았고 그렇다면 더욱 그들이 아닌 '잘' 써먹을 줄 아는 우리가 많이 맡는 게 좋은 분야라고 생각했다. (나에겐 "윤리학"과 "정치학" 그리고 "형이상학"에 있어서는 우리가 훨씬 더 나은 상태였었다고 하는 나름의 비밀스러운 인식이 이미 있었다. 프랑스 혁명? 교과서에서 아메리카 대륙을 콜럼버스가 '발견했다'고 하는 것을 보고 결국 모든 인내심을 잃은 나는 교과서와 교사들에 대한 불신 덕에 가급적 자료를 직접 찾는 습관이 있었는데, 한국에서 여성 참정권이 법적으로 보장된 것은 1948년으로 프랑스와 동일하다. 그들도 그때서야 투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첫 투표에서 우리의 참여율이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보다 훨씬 더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자신의 체험 당시에 벌어지고 있는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그토록 정확히 파악하고 있던 윗세대의 지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수십 년간 반대로 세뇌를 당하셨는데도. 

내가 잘 모르던 내용은 한국인 교수님이... 

전에 우연히 놀면서 듣다 노트까지 하게 됐던 교양 강의:  


[티앤씨 컨퍼런스] 전진성 (2020) 왜 독일인은 유대인을 혐오하게 되었나? 
— [지성사] 인종주의적 반유대주의


전진성: "인종이 자연적으로 존재한다기보다는, 인종이라는 개념이 과학적으로 발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Saturday, September 11, 2021

methodology

Max Weber: 경험과학은 그 누구에게도 결코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가르쳐줄 수 없으며, 단지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 경우에 따라서는 —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가르쳐줄 수 있을 뿐이다. (김덕영 옮김, 2021: 5)


김덕영 (2021): 왜 같은 과학자 공동체 내에서, 그것도 역사학파 경제학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 있는 과학자 공동체 내에서 세대 간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투쟁이 일어났을까? 왜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내부에서는 심지어 아들인 제3세대가 아버지인 제2세대를 살해하는 사태가 일어났을까? [221-222] 

이에 대한 답은 일차적으로 두 집단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지적-정신적 입장에서 찾을 수 있다.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제3세대는 —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베버를 위시한 일군의 제3세대 학자들은 — 사회학과 사회정책에 대해 제2세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 젊은 세대는 독일이 자본주의적 산업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질서와 세력의 다양화, 집단들이나 계급들 간의 대립과 갈등 및 투쟁의 일상화 그리고 사회적 관계의 물화 및 탈도덕화를 인지하게 되었으며, 이 모든 것은 사회정책학회, 아니 역사학파 경제학이 추구하는 이론과 실천의 직접적인 결합 및 사회과학과 사회정책의 직접적인 결합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사회과학의 과제를 객관적 현상과 과정에 대한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인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사회정책학회와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젊은 세대는, 엄밀한 의미에서 — 단순히 시간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행위와 관계 그리고 사회질서를 규정하고 근거짓는 이념과 원리의 의미에서 — 진정한 근(현)대성을 발견하고 이를 실증적인 방법으로, 그러니까 객관적 사실에 대한 경험적 인식에 입각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통찰했으며, 이에 따라 인식과 행위, 이론과 실천, 과학과 정치, 존재와 당위, 사실과 가치, 분석과 판단 그리고 사회과학과 사회정책 사이의 노동분업과 이에 기반을 둔 상호 협력관계의 의미와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요컨대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제2세대와 제3세대는 공히 근대를 대상으로 하는 과학, 즉 근대의 과학을 추구했지만, 구스타프 폰 슈몰러를 위시한 노장 세대와 이 세대를 추종하는 일군의 젊은 세대는 근대적인 과학을 구축하지 못한 반면, 막스 베버를 위시한 또 다른 일군의 젊은 세대는 근대적인 과학을 구축했다. 전자는 근대(적인 것)에 대한 전(前)근대적 과학에 머물렀던 반면, 후자는 근대(적인 것)에 대한 근대적인 과학으로 나아갔다. 바로 이 두 유형의 과학이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과 사회정책학회에 공존하면서 대립, 갈등 및 투쟁은 불가피해졌으며, 이것이 공적인 형태로 표출된 것이 1909년 1914년 두 차례에 걸쳐 벌어진 가치판단 논쟁이다. [222-223] 


그러니까 내가 '근대성' 개념/역사에 우연히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단지 메이지 때문이 아니라 이것을 알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어느 길을 다시 골라도 여기서 꼭 걸렸으니까. 


Max Weber (1910): 만약 그대가 한 특정한 당위에 대한 관심사에서 진정으로 명료한 이 특정한 가치판단에 따라 행위하기를 원한다면, 그렇다면 그대는, 과학적 경험에 따라 볼 때, 상기한 가치공리에 상응하는 그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수단들을 사용해야 한다. 만약 이 수단들이 그대에게 적합하지 않다면, 그대는 수단들과 목적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그대는, 과학적 경험에 따라 볼 때, 그대의 가치판단을 실현하는 데 불가결한 수단으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다른 부차적 결과들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 그대에게는 이 부차적 결과들도 바람직한 것인가; "그렇다"인가 또는 "아니다"인가? 과학은 그 사람을 이 "그렇다"와 "아니다"의 경계까지 이끌 수 있다 — 왜냐하면 이 경계의 차안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경험적 과학분야가, 또는 논리학이 답을 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다시 말해 순수한 과학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그렇다" 또는 "아니다" 자체는 더 이상 그 어떤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 또는 주관적 취향의 문제이다 — 어쨌든 그에 대한 답이 다른 정신적 영역에 있는 문제이다. 

-- 김덕영 옮김(2021: 236)


내가 썼는 줄. "가치공리"란 말만 빼고. 나의 시대와 정반대 방향의 흐름 속에서 같은 문제의식을 가졌던 베버. 덤으로 사회학자인 그가 왜 문화 연구를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 내가 어릴 때부터 싫어하는 사회학의 방법론 텍스트를 고통스럽게 읽고 있는 이유와 매한가지.      


김덕영: 방법론이란, 연구의 절차나 수단을 기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절차와 수단이 무엇인가를 들여다보는 ‘메타’적인 것 -- 이혜인@경향신문


김덕영: 막스 베버의 '창조적 절충주의' -- 최원형@한겨레 


정독도서관에서 공개 연속 강의하셨을 때 정말 많이 배웠고 복도에서 잠시 뵈었을 때 기억도 강하게 남았다. 면식이 없는 상태였음에도 온전히 100% 제자를 바라보는 눈빛을 받아서. 여태 국내에 chair가 없으시다니, 하여튼 여기 인문계는 만사가 전도되어 있다. 그런데 더이상은 오래갈 수가 없을 텐데.  


Saturday, October 21, 2017

夏目 漱石 Natsume Sōseki (1906) 草枕 Kusamakura (The Grass Pillow)

夏目 漱石 나쓰메 소세키 Natsume Sōseki (1906) 草枕 Kusamakura (The Grass Pillow)
국역 송태욱 (2013) 풀베개

86쪽
그들의 즐거움은 사물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다. 동화하여 그 사물이 되는 것이다. 온전히 그 사물이 되었을 때 나를 수립할 여지는 망망한 대지를 다 뒤져도 발견할 수 없다.

88쪽
보통의 동화에는 자극이 있다. 자극이 있어야 유쾌할 것이다. 나의 동화는, 무엇과 동화했는지 분명하지 않으니 추호의 자극도 없다. 자극이 없으니 오묘하고 형용하기 어려운 즐거움이 있다. 바람에 이리저리 밀려 건성으로 물결을 일으키는 경박하고 소란스러운 정취와는 다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깊은 곳을 대륙에서 대륙까지 움직이고 있는 깊고 드넓은 바다인 창해의 모습이라 형용할 수 있다. 그저 그 정도로 활력이 없을 따름이다. 하지만 오히려 거기에 행복이 있다. 위대한 활력의 발현에는 이 활력이 언젠가 다하고 말 것이라는 걱정이 깃들어 있다. 평소의 모습에는 그런 걱정이 따르지 않는다. 평소부터 아련한 내 마음의 지금 상태는, 나의 격렬한 힘이 소진되지 않을까 하는 근심을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평소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마음의 경지도 벗어나 있다. 아련하다는 것은 단지 포착하기 힘들다는 의미일 뿐, 너무 약하다는 염려는 담고 있지 않다. 충융이라든가 담탕이라는 시인의 말은 이 경지를 가장 절실하고도 충분히 말한 것이리라. 이 모습을 그림으로 그러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통의 그림이 되지 않을 건 뻔하다. ++

90쪽
보통의 그림은 느낌이 없어도 물체만 있으면 된다. 제2의 그림은 물체와 느낌이 양립하면 된다. 제3의 그림에 이르면 존재하는 것은 오직 마음뿐이기 때문에 그림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마음에 적합한 대상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 대상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나온다고 해도 쉬이 완성되지 않는다. 완성된다고 해도 자연계에 존재한 것과는 정취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보통 사람이 보면 그림처럼 보이지 않는다. ++

138쪽
하지만 인간을 떠나지 않고 인간 이상의 영원이라는 느낌을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연민은 신이 모르는 정이고, 게다가 신에게 가장 가까운 인간의 정이다.

182쪽
기차만큼 개성을 경멸하는 것은 없다.문명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개성을 발달시킨 후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그 개성을 짓밟으려고 한다.

2017.10 초독

탐독. 그런데 나의 첫 소세키가 풀베개라니... 계획도 생각도 없이 하게 되는 짓이란 알고 보면 대개 신의 등떠밈이라는 걸 또 실감할 수밖에 없는 걸까. 고마울 때고 있고 든든할 때도 있지만 이번엔 좀 소름이 끼쳤다.

아마 오늘 즈음, 지금 즈음 전화해서 등등을 읽어 드렸을 텐데. 주말이니까 만났다면 가지고 나갔을 거고. 동경화랑에서 연락이 왔다. 내 초능력으로는 십 년 뒤 즈음일 거라 느꼈었는데... 그들의 '근대의 초극'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이제는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지도는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은 채로 그리기 시작하는 것임을 다시 깨닫는다. 목록이 채워지는 속도가 확실히 빨라졌다.

한국은 여태까지도 메를로퐁티와 라깡, 옥터버 필진들의 문제의식을 학습하느라 바쁘다. 점점 더 길어지는 절망 속에서 더 이상 고민의 여지가 점점 더 사라진다. 그래서 점점 더 편해진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최고 실세의 국회의원의 장녀와 결혼한 다음 국가의 지원을 받아 떠난 유학을 중단하고 돌아와 교수가 되었다가 사직하고 (아사히의 제안을 거절하며) 요미우리에 입사했다가 그마저 관두고 칩거에 들어가 아내의 자살 시도와 이혼의 위기를 방관하고 있던 중의 소세키의 분열의 고통에서 우러난 긍정의 힘, 갈등하지 않고 싸우지 않기를 포기하게 된 결말이 가져다 준 모순적인 평온감이 풀잎에서 배어 나와 묻어 난 녹색처럼 신선하고 불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