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morality.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morality. Show all posts

Wednesday, July 12, 2023

sorry

"어수선한 하루 끝 신선한 얘기"라서 보내 주신 감동의 기사에 나의 못돼먹은 답변: 

Saturday, August 13, 2022

motherhood and civilization 모성애와 문명

[도올의 서양철학사] #04: 모성애는 순수한 생리인가 문명의 도덕인가



어제 대화 후 링크를 보내려고 찾다가 2017년 출국 준비 당시 (대학원 방식으로 진행되는 수업을 철학과와 이후 자연계로 소속을 옮긴 심리학과를 제외하면 재야의 대안 공간들에서만 찾을 수 있었고 그곳에서, 푸코를 예외로, 고강도로 진행되는 세미나에만 주로 참여했더니 개론적 해설 강의나 교양 강의에서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는 기초 지식이 오히려 부족한 상태였기에 애매한 이행기에 보충할 목적이었다.) 그리고 작년에 이어 (놀 시간이 없는데 너무 재밌으니까) 결국 세 번째로 듣게 되었다. 인류사에 평생 나만큼 많은 강의를 들은 인간이 있을지 의심스러운 지경인데, 나 자신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기껏 완벽한 오점에 불과하게 취급되므로 굳이 드러낼 이유가 없다. 아무튼, 추천하라면, 학술적인(=전문적인=직업적인) 측면에서는 (미국식 학제를 따르는 '일반'대학원생인데도 학계에서 완전 배제되어 있는, 국내 상황 치곤 특수한 형편상 취향과 무관히 당연하게도) 물론 정암학당에서 열리는 (현실적으로 대강 콜레지 드 프랑스 강의에 가까운) 호사로운 강의들이었지만, 특정한 크리테이아 없이 최고의 강의를 하나만 꼽으라면 주저없이 이것이라고 하겠다. 공학 석사 백수인 나에게보다는 현재 자신의 지식이 전문적인 사람에게일수록 절실해 보이는 강의. 그리고 비전문 직종일수록 의미 있을 강의. 언제 들어도 나의 상태에 대해서 가장 선명하게 깨닫게 해 주는 강의. 도올 선생님을 존경을 넘어 인간적으로 좋아하게 된 강의. 마음은 넓어지고 머리는 깨끗해진다. 자신을 인정하는 데 냉정해지고, 방향을 조정하는 데 용감해진다.  

'오늘날의 문제의식'. 

사실 2017년에는 여기에서 논하는 고전들의 대부분을 이미 헬라어 등 원문과 함께 가급적 해당 전공자/번역자와 함께 정독하고, 강의에서 다루지 않는 이후의 현대 철학 부분은 비록 분석철학 위주였지만 역시 각 분야 전공 박사 선생님들과 원전은 물론 국제 공인 정통 해설자의 원서와 비교하며 다른 중요 논문들과 함께 리뷰, 논쟁하는 대학원 세미나 수준을 거친 지도 한참 지난 상태였기에,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이 교양용 연강은 아우구스티누스/아퀴나스 부분을 제외하고 아무래도 지루하다고까지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해서 가볍게 쉬거나 청소할 때 틀어 놓는 식이었는데, 지난 수 년 간 의무적 칩거 생활로 너무 외부 자극이 없다 보니 원기 보충이 필요해서 아쉬운 대로 그동안 틈틈이 죽 다시 들어 봤더니, 내가 너무 지식 획득에만 치중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편중이나 왜곡들은 가려 들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배운 다음이니까, 맑은 관점을 가지려면 역시 외부(동아시아 고전학자)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  

도올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SY 선생님의 글이 그토록 위력적인 것은 바로 그런 서로에게 외부인 시각들을 안일하게 피하거나 권위로 뭉개지 않고 고단하게 무전제에서 출발하여 가난한 마음으로 치열하게 고민했던 과정이 녹아 있기 때문이겠다. 


Friday, May 28, 2021

Utilitarianism as philosophical Radicalism 철학적 급진주의로서의 공리주의

가치론의 계보를 통해 니체, 벤덤, 마르크스라는 인물들이 재등장했지만, 댐을 건설할 것도 아니고 쪽배 하나 마련할 셈이라 안 그래도 바다처럼 넓은 강에서 이토록 큰 바위들은 피해 도는 길이 현명하다는 분별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위치 파악을 할 수 있는 자료들만 찾아 놓고, 아무래도 만약을 대비해서 구해도 놓았지만, 못 이길 유혹은 아닐 줄 알았는데... 굳이 손에 쥐지 않아도 충분할 것 같았던 높은 완성도에 고맙게도 짧기까지 한 역자 박동천(2021) 서문과 저자 엘리 알레비(Élie Halévy, 1901) 서문(전문)에 못지않은 본문의 매끄러움. 영국 공리주의의 이론적 뿌리가 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지의 학자들에 있었음을 문헌적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프랑스인 역사학자의 저술인 점을 염두에 두어야겠지만, 역풍보다 순풍을 불어 주는 힘은 이쪽으로 중딩보다 무식한 나에게 엔진이 된다. 두 달 전 더 이상 홀려 들어갈 시간이 없다고 간신히 덮어 둔 고전 (강준호 옮김)을 결국 다시 펼쳤다. 

Jeremy Bentham (1789): 나는 여전히 내게 필요한 지식을 던져줄 희망이 있는 모든 통로를 추적하고 있었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나는 처음에 착수했던 문제와 관련된 여러 부문들을 계속 탐구했다. 그 탐구의 이런저런 부문에서 나의 연구는 입법에 대한 전 분야를 망라했을 정도였다. [10] 

'입법' 대신 소프트웨어 기술과 자유의 문제. 이런 수재(21세에 변호사)가 힘들었고 부족하다고 말하는 규모의 작업을 나 따위가 꿈꾸고 있었나? 지극히 일상적인 문제라서 사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냥 성실하기만 하면 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식탁만 차려 드리려는 거니까. 도마 위에 올려다 드리려는 거니까. 아니면 부엌에 CCTV를. 분신이 두 마리만 있었으면 좋겠다. 인지언어학, 입증이론, 양자역학, 체계이론, ... 3월 말에 이제 4년만 더 주시면 되겠다고 하고 싶었지만... 오리알 신세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네.   

Halévy: 모든 공리주의 철학자가 그렇듯이, 벤담의 목표는 도덕학을 하나의 엄밀한 과학으로 확립하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의 영혼에서 가장 쉽게 측정될 수 있는 느낌을 추려내고자 했다. [34] 엘베시우스와 베카리아의 제자는 사악한 법률을 공중에게 해를 끼치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직업을 통해서 돈을 번다는 데 이미 저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62] 벤담이 바라봤던 목표는 도덕과 입법의 기술을 인간형태에 관한 하나의 객관적 과학을 토대로 삼은 위에 최초로 설립하는 데 있었다. 공리의 원리는 도덕 설교자의 주관적 선호가 아니라 인간 본성에 관한 객관적 법칙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여태까지 꼬리를 물고 제창되어 온 여타 도덕적 격언과는 다르다. [67-68]

Bentham: 입법 과학(legislative science)에는, 수학과 마찬가지로 왕도도 총독의 문도 없다. [24]

신자유주의, 이기심-이타심 논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에 조심해야 하고, 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고민을 함께해 주는 건 오늘도 미학 밖에 있구나. 가치이론이란 다분히 인위적인 영역 구분을 몰랐다면 어쨌을 뻔. 무섭고 외로웠어요. 

페이스북과 네이버가 "알고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정보 통제권을 휘두르고 있으니 말이다. 구글과 머스크가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내 기분이 어떠한지 결정하려 한다. 네트워크가 왕도가 되었고 플랫폼 기업들이 총독의 문이 되었다. 단순히 그러지 말라고 항의하는 것은 투정밖에 안 된다. 차단과 불매로는 자기만 피해를 입게 되었다. 월든은 선택이고 실험이어야지 유배나 위험이 되어서는 안 된다. 수학을 수학으로 깰 필요가 생겼다. 벤덤 사후에야 우리는 수학이 초월적이지도 중립적이도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무엇을 그 수학적 대상으로 삼고 어떤 수학적 도구를 쓸지 판단하고 비평할 수 있는 것은 수학도 논리학도 물리학도 정보이론도 아니고 각종 인문학이다. 그 전문가들은 자신의 귀빈석을 직접 주문해야 한다. 수정안도 대안도 보안책도 친절히 명령해 주어야 한다. 그러한 자잘한 수고 대신으로 이전과는 달리 투쟁할 필요가 없지 않나. 모든 자동화 기술에는 다름 아닌 그 기술적 필요에 따라 supervisor의 자리가 있으니까요. 좀 차지해 주세요. 마음에 들면 칭찬하고 안 들면 질책해 주세요. 자애롭게 구경만 하시지 말고. 살릴 것과 죽일 것을 여태 갈고 닦으신 저마다의 성미대로 좀 골라 주세요. 적응하고 통찰하시느라 바쁘지 말고. 가장 까다롭고 변덕스러울수록 가장 자격이 있으니까요. 오퍼레이터의 소원이다.   

이제 또 자학의 주말이 시작되려 한다. 

Sunday, May 01, 2016

like water

明心寶鑑 - 제8편 戒性篇 (성품을 경계하는 글):
景行錄云 人性이 如水하여 水一傾則不可復이요, 性一縱則不可反이니,
制水者는 必以堤防하고 制性者는 必以禮法이니라.

《경행록》에 말하였다. “사람의 성품은 물과 같아서 물이 한번 기울어지면 회복할 수 없고 성품이 한번 방종해지면 바로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니, 물을 제어하는 것은 반드시 堤防으로써 하고 성품을 제어하는 것은 반드시 예법으로써 하여야 한다.”

용돈과 세뱃돈을 모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심부름으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산 물건이 두 권의 책, [명심보감]과 [니벨룽엔의 반지]였다. 나에게는 거금이었던 돈을 나만의 선택에 의해서 쓴다는 긴장감, 책임감, 설렘 같은 것들 때문에 굉장히 신중하게 골랐다. 전용 서점이 아니라 동네 아파트 단지 옆 상가 건물 1층에 있던 문구점이었는데, 서가에 쌓여 있던 먼지와 다른 손님들로 인한 복작거림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결정은 금방 하고, 그러고 나서 한 시간 넘게 망설였다. 계산할 때 거스름 돈을 제대로 받았는지 여러 번 확인했던 것이 기억난다. 설날이 지난 연초였고, 초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기 직전, 만으로 8살이었다. 그 전에는 '명심보감'이란 말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책 속의 소개글을 보고 마음이 끌렸던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구분이 이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각기 한 권씩 선택하는 것이 꽤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부모님은 내가 그런 조선 시대의 유산을 골라온 것이 환경상 뜻밖이라고 여기셨는지 의아해하셨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는 레고 블럭과 바비 인형이 유행했었다. 나는 명심보감에서 간접적으로 묘사된 위계적 인간관계가 너무나 낯설어서 꽤나 많은 추리를 해야 했고, 시대 변화라는 것을 그런 단어는 몰랐겠지만 최초로 인지하게 되었고, 아이인 나를 충분히 존중해 주는 부모님에게서 태어난 것을 무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옛날에 대해서 아름다움을 느꼈다. 서로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도.


아래는 요즘 많이 와닿는 구절. 책을 많이 읽고 말 잘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용서하고 정당화하는 데 지식들을 쏟아 붓는 모습들을 많이 보면서 한동안 배움에 대해 회의감에 빠졌었는데, 조금 오래 지켜보니 사고력이 없기 때문임을 알겠다. 대신 가진 게 많다는 공통점이 있는 걸 보면 아쉽지 않아서 그러는 것 같다. 이미 얻은 것도 굳이 잃곤 한다. 보통은, 특별히 정의나 윤리, 도덕을 이론적으로 따져서가 아니라도 일단 잘 살기 위해서라도 힘껏 많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의 이익을 위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애쓰고 나의 기쁨이 남에게 고통이 되지 않도록 하는 연습을 늘상 하면서 사는 사람들 눈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쉽게 구별되는 편이니까. 조금은 살 만한 방도가 있는 세상이다. 물론 지위와 재력은 여전히 잘 통할 테니 우월하신 분들은 어떤 식으로든 잘 사시겠지만.


明心寶鑑 - 제7편 存心篇
爾謀不臧이면 悔之何及이며, 爾見不長이면 敎之何益이리오.
利心專則背道요, 私意確則滅公이니라.

너의 꾀가 좋지 못하면 후회한들 어찌 미치겠으며, 너의 소견이 좋지 못하면 가르친들 무엇이 이로우리오? 자기 이익만 생각하면 도에 어그러지고, 사사로운 뜻이 굳으면 公을 滅하게 된다.

Thursday, December 31, 2015

A Most Wanted Man - Anton Corbijn (2014)

A Most Wanted Man - Anton Corbijn (2014)

https://en.wikipedia.org/wiki/A_Most_Wanted_Man_(film)
http://www.imdb.com/title/tt1972571/
모스트 원티드 맨 @네이버

Günther Bachmann: Our sources don't come to us, we find them. We become their friends, their brothers, their fathers, their lovers, if we have to. When they're ours, and only then, we direct them at bigger targets. It takes a minnow to catch a barracuda, a barracuda to catch a shark.


2015-12-30 @내 방

취향 적중. 나중에 알고 보니 John le Carré의 동명 소설 원작.

마지막에 "Fuck! Fuck!"하면서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뒤집어지는 속을 달래 주던 곡은 이거.


엔딩 타이틀: Tom Waits (2004) Real Gone - #2 Hoist That Rag 


음악이 다 좋아서 열심히 찾아보았다.


Roy Orbison (1963) Falling

Jan Akkerman, Kaz Lux 작/ Brainbox 연(1969) Down Man

Robert Görl, Gabi Delgado-Lopez 작/ Deutsch Amerikanische Freundschaft 연(1981) Der Mussolini
+ Deutsch Amerikanische Freundschaft 라이브 영상 (2009, Gothic Festival, Expo Hall Waregem)

David Bowie 작/ Claudia Brücken 연(2012) Everyone Says "Hi"
+ Bowie의 연주가 더 맘에 든다. 비주얼 때문에 고른 라이브 영상 (2002, Berlin)



Phil Phillips, George Khoury 작/ Phil Phillips, The Twilights 연(1959) Sea of Love

Dave Allen, Hugo H. Burnham, Andrew Gill, Jon King 작/ Gang of Four 연(1982) To Hell With Poverty

(공식 발매된 ost 앨범에는 없는) Mike Zarin - The Second Hand Ticks

(공식 트레일러에 삽입된) Boomerang - Caballa


ost 앨범: @allMusic / @iTunes

ost 편곡 piano cover by the Orange Project도 색다르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