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实甫(Wang Shi-Fu, 1260-1336) 《紫花儿》(元代 越调 散曲)
李祥霆 (Li Xiang-Ting) guqin
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 ( Chéng zhě, tiān zhī dào yě; chéngzhī zhě, rén zhī dào yě. ) ---- 子思 《禮記·中庸》22:7 _____ Der bestirnte Himmel über mir, und das moralische Gesetz in mir. ---- Immanuel Kant (KpV: AA 05: 161.33–36) ________________________ ἃ γὰρ δεῖ μαθόντας ποιεῖν, ταῦτα ποιοῦντες μανθάνομεν (What we have to learn to do we learn by doing.) ---- Ἀριστοτέλης (Nic. Eth. 1103a33)
러시아 형
러시아에서 형이 왔다
반복을 싫어하는 형은
나름 노력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형은 아직도 컵에 물을 따르다 흘린다
머리를 감다 윗옷을 버린다
형은 말한다, 반복은 많은 것을 앗아간다고
그중엔 신비도 있다고
노래는 하면 할수록 잘 부르게 되는데
살면 살수록 잘 살아지지 않습니다
당연합니다
잘되는 게 이상한 겁니다
형은 조언한다, 인생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져보라고
실패는 반복할 수 있지만 늘 새롭다고
그래서 신비롭다고
이런, 21세기라서 가능한, 호사가...
영향은 존 윌리엄스와 모짜르트, 쇤베르크가 지분이 제일 큰 듯. 묘하네.
의외로 순진한. 거기에 구원교.
왠지 프랑스인들이 좋아할 것 같진 않은데, 우리나라에서 잘될 듯.
마감 괴롭다. 가능성도 별로 없는데.
« Le pain »
in: Francis Ponge (1942) Le Parti pris des choses
(en= Taking the Side of Things)
빵
우선 빵의 표면이 경이로운 이유는 알프스나 토로스 산맥을, 또는 안데스 산맥을 마음껏 주무르는 듯한 파노라마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트림을 해대는 무정형의 덩어리 하나가 우리를 위해 별천지 오븐으로 미끄러진다. 그리고 단단해져... 계곡으로, 능선으로, 일렁임으로, 균열로 빚어진다. 면면이 말끔히 나뉘어, 빛은 얇은 포석들에 — 그 밑에 숨겨진 천박한 물렁거림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서 — 열심히 불길을 드리운다.
빵 속이라 불리는 헐겁고 차가운 하층토 조직은 스펀지나 나뭇잎 또는 꽃들을 닮았으며, 샴쌍둥이 자매처럼 팔꿈치를 한데 붙이고 있다. 빵이 눅눅해지고 꽃이 진다. 말라비틀어진다. 전체가 결속을 풀고서 푸석해지는...
하지만 이쯤에서 끊도록 하자. 왜냐, 빵이란 우리의 입에 경외보다는 소비의 대상이 되어야 하기에.
— 최성웅 옮김(2022)
cf. poésie littérale 축어시
D’après Charif Majdalani, la scène poétique française est partagée en deux espaces : celui de la poésie littérale et celui de la poésie lyrique. La poésie littérale est la poésie autoréférentielle ; dans le cadre de cette poésie le poème vaut alors pour lui-même en tant que réseau signifiant et constitue en soi une œuvre complète que l’on peut aborder et étudier comme telle. La poésie littérale est une poésie expérimentale où les mots sont des outils, et remet en cause l’idée même de poésie. A l’inverse, dans la poésie lyrique, la parole est réappropriée par un sujet, qui passe au premier plan. La poésie redevient alors une expérience du monde à part entière, une expérience « pathique » (Jean-Claude Pinson), mais sans effusions ni lamentations. La poésie lyrique est plus proche du roman que la poésie littérale.
in: Corinne Saunier, « États de la poésie contemporaine », Acta fabula, vol. 8, n° 5, Octobre 2007
(tr. google :) According to Charif Majdalani, the French poetic scene is divided into two spaces: that of literal poetry and that of lyric poetry. Literal poetry is self-referential poetry; within the framework of this poetry, the poem then stands for itself as a meaningful network and constitutes in itself a complete work that can be approached and studied as such. Literal poetry is experimental poetry where words are tools, and challenges the very idea of poetry. Conversely, in lyric poetry, the word is reappropriated by a subject, which comes to the foreground. Poetry then becomes an experience of the world in its own right, a “pathic” experience (Jean-Claude Pinson), but without effusions or lamentations. Lyrical poetry is closer to the novel than literal poetry.
cf. metapoetry 메타시
cp. https://en.wikipedia.org/wiki/Metaphysical_poets
#7. L’IMPORTANCE de la Poésie selon BRETON, PONGE & REVERDY (Chaîne Nationale, 1952)
Une intervention des trois poètes, interrogés par André Parinaud, le 19 octobre 1952 sur la Chaîne Nationale dans l’émission « Rencontres et témoignages ».
https://fr.tipeee.com/arthuryasmine
🐎 소 아니고 말 띠.
The Joys and Sorrows of Young Yuguo 젊은 위고의 기쁨과 슬픔
by Ilinca Calugareanu (2022) 일린카 칼루가레아누
2023-07-12 물의 저녁: 거실, 뮤젠
cf. Mihai Eminescu (1850-1889, rou) 미하이 에미네스쿠
[알릴레오 북's] 74회: 이오덕 (1992) 우리글 바로쓰기 - 1부
[알릴레오 북's] 75회: 이오덕 (1992) 우리글 바로쓰기 - 2부
하지만 '아이다움'에 대한 편견과 제한이 있기도 하네. 그 때문에 나날이 너무 자주 피해를 입었던(일례로, 나 혼자 한 나의 일을 어떤 어른이 시켰거나 대신 해 준 것이었으리라는 오인과 추궁을 많이 받으며 자랐고 지금까지도 신뢰가 충분하지 않은 상대와 교류하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는) 나로서는 더욱 '교학상장'이란 단순히 학생을 관찰하고 그 결과에 일방적으로 맞추어 주거나 편하게 소통할 거리들을 만들기 위해 똑같이 대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생각. 교육은 생태학이나 동물 행동학이 아니다. 재능이 없고 별다른 노력을 해 보지 않은 어른보다 감각을 타고나거나 어떤 자극에 익숙해진 아이가 훨씬 더 뛰어난 상태일 수 있다. 직업이 교사라면 그런 것들을 찾아내는 눈과 귀가 필요하고. 세상의 모든 아이가 그런 것을 꼭 두 가지 이상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귀납적으로 알게 된 것은 나도 아이였을 때였다. 아이는 교사의 자의식이 원하는 안정감과 보람을 주기 위해 하향 기대치에 정확히 맞추어 줄 수 있는 연기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자신의 가정에 갇혀 있는 교육은 폭력이고, 가르치는 사람의 권위와 배우는 과정에서의 좌절이나 상상을 넘어서는 잠재력을 겪어 볼 기회를 빼앗는 '열린' 평준화 교육이란 그저 인간에 대한 불신이고 허울만 좋은 닫힌 억압일 뿐 방임보다 못한 반교육이다. 나는 나쁜 교사들(덕분에 대체로 사회인으로서 튼튼해졌고, 공의에 대한 성숙한 의식을 기르게 되었다.)보다 '좋은' 교사들(때문에 물론 미처 처리해 놓지 못한 내 탓이지만 늦깍이 대학원생의 논문 지도에 환장하게 육아와 치료의 차원이 끼어들게 되었다. 문학의 힘을 겪었다.)로부터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기억한다.
이런 거 듣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피곤해서 집중을 못 한다.
cf.
이오덕 (1977) 일하는 아이들
Gerry Bevers@blogger: Is the Chinese character 的 (적) destroying the Korean language?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이오덕(李五德, 1925-2003)
손 감독 최고! 😭 도저히 안 볼 수가 없어! orz 언제 내려갈지 모르고.
하지만 즐거운 만큼 괴로운 현실... 정확히는 무서운. 부디 통신 단절 중이시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 아니면 외국에... (설마 저 현장에 계시진... 부러운데...)
B2까지만이라도 하는 게 차라리 편해질 지경인데, 그래도 낭독은 안 들리겠지?
대금 같은 플룻 연주 사랑해요. 다들 연주가 왠지 고려적이야. 😍
오랜만에 너무 행복해요~ 😇 흐엉~ 💘
Michael Radford (1994) Il Postino (The Postman) 일 포스티노
based on Antonio Skármeta (1985)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Pablo: Here on the island, the sea... so much sea. It spills over from time to time. It says yes, then no... then no. In blue, in foam, in a gallop... it says no, then no. It cannot be still. My name is sea, it repeats... striking a stone but not convincing it. Then with the seven green tongues of seven green tigers... of seven green seas... it caresses it, kisses it, wets it... and pounds on its chest, repeating its own name. Well? What do you think?
Mario: It's weird.
Pablo: What do you mean, weird? You're a severe critic.
Mario: No, not your poem. Weird... Weird... how I felt while you were saying it.
Pablo: How was that?
Mario: I don't know. The words went back and forth.
Pablo: Like the sea then?
Mario: Exactly. Like the sea.
Pablo: There, that's the rhythm.
Mario: I felt seasick, in fact.
Pablo: Seasick!
Mario: Because ... I can’t explain it. I felt like ... like a boat tossing around on those words.
Pablo: Like a boat tossing around on my words? Do you know what you’ve done, Mario?
Mario: No, what?
Pablo: You’ve invented a metaphor. Yes, you have!
Mario: Really? But it doesn’t count because I didn’t mean to.
Pablo: Meaning to is not important. Images arise spontaneously.
Mario: You mean then that... for example, I don't know if you follow me... that the whole world... the whole world, with the sea, the sky... with the rain, the clouds...
Pablo: Now you can say etc., etc.
Mario: Etc., etc. The whole world is the metaphor for something else? I'm talking crap.
Pablo: No, not at all. Not at all.
Mario: You pulled a strange face.
Pablo: Mario, let's make a pact. I'll have a nice swim... and ponder your question. Then I'll give you an answer tomorrow.
Mario: Really?
Pablo: Yes, really.
그렇지만 배달하러 자전거 타고 가는 길이 제일 좋았다. 화이자 맞고 괜히 놀고 있음.
cf. Ilan Stavans · Ivana Bosnjak · Thomas Johnson (2017) Romance and revolution: The poetry of Pablo Neruda
뛰어난 애니/강의. 어릴 때 가장 가고 싶은 나라였는데.
花開不竝百花叢 (花开不并百花丛),Huā kāi bù bìng bǎi huācóng,獨立疏籬趣未窮 (独立疏篱趣未穷)。dúlì shū lí qù wèi qióng.寧可枝頭抱香死 (宁可枝头抱香死),Nìngkě zhī tóu bào xiāng sǐ,何曾吹落北風中 (何曾吹落北风中)!hécéng chuī luò běi fēng zhōng!
宋詩 전공하고 싶다. 표의 문자에는 장애도 덜하고. 나에게도 집이 생겼을 텐데. 아무래도 한문학 최고봉은 굴원인 듯하지만 난이도가 너무 높으니. 풍도 제일 마음에 들고, 무엇보다 악비의 숨결이 있는 곳이 좋아. 중공 덕분에 적극 기억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차원이 달라졌다 여겼다.
고조선의 여옥(麗玉) 원작 공후인(箜篌引)
公無渡河 공무도하 임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公竟渡河 공경도하 임은 끝내 물을 건너셨네
墮河而死 타하이사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當奈公何 당내공하 가신 임을 어이할꼬
아직까지도 마음에 드는 해설을 보지 못했다. 듣는 이들이 이미 있어야 노래가 불리고 퍼지던 시절인 것을. 주술에서 서정으로 넘어간다는 국문학사적인 의의보다는, 실제 사건에 냉혹한 현실과 엄중한, 요즘 말로 책임 비슷한, 문제가 있었으리라 느껴진다. 그들 모두가 알고 있었던. 한사군에 편입당할 때 고향에 남지 않고 유랑을 택했던 이들과 그 후손에게라면. 그런 이유들은 운명이 되는 법이다. 그들에게는 숨겨야 할 것들과 지켜야 할 것들이 있으니까.
新海 誠 (Makoto Shinkai, 2013) 言の葉の庭 (Kotonoha no Niwa)
The Garden of Words 언어의 정원
music: 言ノ葉 (Kotonoha) Words by 秦 基博 (Motohiro Hata)
닫는 곡: Rain covered by 秦 基博 (Motohiro Hata)
from the original by 大江千里 (Senri Oe, 1988)
장마가 시작되면 떠오르죠. 여주보다 남주 캐릭터에 공감하는 나로서는 내용이 좀 아쉽지만, 신카이 마코토 영상미학의 절정. 현대 문학에서는 물론 상업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어진 서정의 예스러움이 그대로라 안심된다.
모델이 된 정원은 아니지만 도쿄에 마지막에 갔을 때 지도만 보고 찾아갔던 정원이 정말 저렇게 거짓말처럼 대도시 한복판에 다른 차원의 세상인 듯 있었다. 탁 트인 공원과는 달라서 정자에 앉아 있으면 그곳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멀리 고층 건물이 마치 종이에 오려 붙인 꿈처럼 엉뚱해 보인다. 여기 살았다면 자주 왔겠구나 생각했다. 그때는 애니메이션을 보기 전이었지만, 아마 딱 남주처럼.
도깨비 글 창고
아침에 쌓았다가
저녁에 열어보면 빈 창고
낑낑대고 만들어서
어렵게 들여 놓으면
다음날 도망가고 없는 글 창고
영감 눈치 보고 사위 눈치 보고
손자 녀석 눈치 봐가며
열심히 만들어서 쌓아두어도
며칠 후 열어보면 빈 창고
그래도 언젠가 열어보면
서울도 있고 광주도 있고
농협도 있고 우체국도 있는
도깨비 글 창고
* 2015년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특별상
* 2015-09-01 [완도신문] 천여임 씨 전국성인문해교육 시화전 특별상 수상
* https://en.wikipedia.org/wiki/Dokkaebi
내 창고는 며칠은 커녕 하루도 안 가고, 한 칸 뛸 때마다, 줄 바뀌는 순간마다 비어요. 음소마다 눈에는 안 보이지만 깨알같은 도깨비들이 있어요. 소리 내어 외면 겨우 한 톨씩 쌓여요. 그러다 책장 넘기면 또 싹 사라져요.
장하다 우리 딸!
오늘은 문해학교 입학하는 날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요우리 아들 입학식 때 손잡고 갔던 학교를엄마도 없이 나 혼자 갔어요장하다 우리 딸! 학교를 가다니하늘나라 계신 엄마 오늘도 많이 울었을 낀데엄마! 울지 마세요춘남이 공부 잘하겠습니다엄마가 살아 계셨더라면서명도 못 하냐고 무시하던 택배 아저씨도이름도 못 쓰냐고 눈 흘기던 은행 아가씨도우리 엄마한테 혼났을 낀데언젠가 하늘나라 입학하는 날내가 쓴 일기장 펴놓고동화책보다 재미있게 읽어드릴게요
* 2017년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글꿈상(최우수상)
* 2017-08-22 [프레시안] 함양군 김춘남 할머니 성인문해교육시화전 최우수상
* 2019-06-28 경상남도 함양군 - 시와 음악으로 만나는 상림의 저녁 - 작가 낭송 (영상)
Maurice Merleau-Ponty (1964): 진실적인 것은 사물처럼, 타인처럼, 정서적이고 거의 살적[肉的; 관능적]인 경험을 통해 빛을 발하거니와, 이 경험에서 '관념들' — 타인의 관념들과 우리의 관념들 —은 타인이나 우리의 생김새의 면면이라 할 수 있으며, 이해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사랑 또는 미움 속에서 받아들여지거나 배척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매우 일찍부터 추상적인 동기들, 범주들은 이러한 야생적 사유 가운데서 작용하거니와, 이러한 점은 어린 시절 가운데 성인의 삶이 엄청나게 예시되고 있는 데서 잘 나타나 있다. 결국 우리는 인간 전체가 이미 여기 어린 시절에 들어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어린이는 말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이해하며, 정의는 못 내릴지언정 답변은 잘할 수 있다. 게다가 성인도 마찬가지이다. 진정한 대담(entretien)은 내가 머릿속에 품고 있었음을 나 자신이 알고 있지 못했던 사유들에, 내가 가질 능력은 없었지만 때로 낯선 길에서 나를 좇고 있음을 느낀 사유들에, 그리고 이제 타인에 의해 탄력을 받아 나의 담론이 나를 위해 개척하고 있는 중인 사유들에 도달하게 해 준다.--- 남수인 옮김(2004: 30)
cf. 기다 겐(木田 元) 해설 in: 이신철 옮긴(2001) [현상학 사전]
샛길이지만 자연히 떠오른
My heart leaps up
William Wordsworth (1802)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A Rainbow in the sky:So was it when my life began;So is it now I am a Man;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Or let me die!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자연히 생각난 내 책상 서랍 속의
내 손바닥보다 작은 책. (원시는 1904년 판본에서는 제목이 The Rainbow로 수정되었다.) 초등 2년 여름방학이 끝나가던 며칠 머물렀던 외가의 아파트 단지 내 상가 문구점에서 외할머니가 아무거나 사 주시겠다 해서 골랐던 선물. 조르진 않았다. 어린 시절 이상하리만치 욕심이 없었기에 여러 번 거부하는 바람에 한참 실랑이가 오가고 가게 주인 아주머니까지 거들고 나서야 탐색에 나섰던 기억이 난다. 이미 예의와 도리를 배운 나이였지만, 그래서는 아니었고, 세상에 좋은 것을 굳이 내가 가진다는 것이 마치 들판의 꽃을 꺾어 내 방에 가둬 놓는 것처럼 여겨져서 죽여 버리는 것처럼 느껴져 진심 싫었던 기억들이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안 그렇다.
가격 700원. ISBN도 없는 1986년 8월 5일 무려 8판 인쇄되고 20일 발행된 한림출판사(발행인 임인수) 편집부의 이름 없는 번역자(들)의 우리말들은 오늘까지 날마다 내 마음속에 고스란히 펼쳐져 있다. 내일도 살아 있다면 그럴 것이다. 나는 여기의 시들에서 처음 배운 낱말들이 많으니까. 백합, 몸서리, 몽기몽기, 첫사랑, 키스, 햇발, 살포시, 라이너 마리아 릴케(여자인 줄 알았다), 아스라이, 강변, 에메랄드, 시몬(남자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중에 게이라는 낱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구르몽과 시몬을 떠올렸다. 물론 낙엽 밟는 소리와 함께), 나그네, 이니스프리, 소네트, (누나 말고) 누이... 셀 수 없다. '프로스트'는 서리이기 전부터 시인이었던 세월이 쌓여 있었고. 무엇보다 교과서에는 학년이 올라가도 잘 나오지 않은 다채로운 어미들과 섬세한 조사들. 그리고 처음 만난 '은유'(라는 낱말은 그때는 몰랐지만), "봄은 고양이로다".
아홉(만 여덟) 살 때까지 살면서 무지개를 몇 번밖에 보지 못했다. 그러니 그 단어가 얼마나 강렬했던지! 책을 펼치기만 하면 진짜 무지개가 나왔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삽화에 무지개가 없다는 점이야말로 시집다운 미덕이라고 생각한다.(이거야말로 모피어스들이 갖추어야 할 핵심 능력인데.) 사실 삽화는 무려 150편의 시 중 처음 몇 편에만 있다. 나에게 이 포켓북보다 작은 6cm x 9cm "미니 책"은 책이라기보다는 마술 상자였다. 처음 만나는 낱말이라면 그것이 그대로 세계가 되었다. 하지만 이 시는 좀 어려웠다. 특히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이. 그래서 강하게 남기는 했어도, "내 마음을 뛰게" 한 시들은 다른 시들이었다.
뒷부분에는 원문과 함께 실린 시들이 있는데, 그래서 학교에서 '조사', '어간/어미' 등의 문법을 배우기 한참 전에, 우리말의 조사라는 것 그리고 특히 어미라는 것이 외국어와는 다른 우리말의 특징임을 곧 눈치채게 되었다. 그때의 놀라움과 자부심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다. 여기에 번역된 시가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졌으니까. 그렇다, 나는 그 8월 말의 어느 날부터 수 년이 지나 영어를 처음 배울 때까지, 그리고 중딩 때까지, 이 책을 작은 주머니에 넣고 어디를 가든, 학교에 가든 화장실에 가든, 목욕이나 샤워 할 때만 빼고, 밤에 이불 속에 들어가서도 불 끌 때까지, 친구랑 놀러 나가든, 주말에 부모님을 따라 공원이나 미술관에 가든, 방학 때 계곡이나 바다로 여행을 가든, 소풍이나 캠프나 수련회를 가든, 속상한 일로 잠시 바람이나 쐬러 나가든, 침대에서 뒹굴 때든, 수시로 꺼내 보며 종이가 마르고 닳도록 읽었다. 고딩 때가 되어서야 서랍 속에 두었다. 그것도 미친 교사들 때문에 학교 생활이 너무 험악해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미 버젓한 시집들이 몇 권이나 있어서 덜 찾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몸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 멀어졌다. 그래도 이것 없는 나는 상상할 수 없다. 이 책이, 시들이 없었더라면, 그런 나는 지금의 나와는 분명 아주 다른 사람이다.
게슈탈트에서 외도의 외도의 외도의 외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