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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December 21, 2023

소심심고(素心深考) by 広中 平祐 (Hironaka Heisuke)

[지식인사이드] 박문호의 '학문의 즐거움'


1. 소심심고(素心深考) 

2. 대국적으로 보라 

3. 가설을 세워라 <= 유연하라 


울 아빠 평생 작업이 이건데...

이 분도 내 올해 허리가 아물지 않은 덕에 은인이 되었다. 마음이 괴로울 때 한결 가벼워지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 듣다 보면 맑아진다. 나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꽤 되기도 했는데... 모자르다. 우선 자립이 시급. 

학문의 즐거움 고대하며 용돈 모아 샀던 날이 엊그제 같이 생생하건만... 중학생 시절. 이후 몇 번이고 애독했던. 아저씨 일화도 기억난다. 설마 그래서 나 굳이 아줌마 된 거?

아니, 근데 난 하얀 마음만 넘쳐서 문제인 쪽이라고요! ......지금은 그냥 위로만 받자. 피곤하다. 


Sunday, October 08, 2023

Schubert (1826) Symphony No. 9 in C major, 'The Great'

Franz Schubert (1824-1826) Die Große Sinfonie in C-Dur, D 944 
Dresdner Philharmonie / Marek Janowski conductor 
for the 150th anniversary of Dresden Philharmonic Orchestra
2020-11-29 



위대한 정신들을 보다 보니 내 병과 상처들까지 치유될 지경. 나보다 월등히 나은 인간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뺏는 시간만큼은 갚아 줘야 하는데... 교수님께서도 이런 학생이셨을 것 같다... 최소한. 이런 학생들이 제자였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조금은 이해가 간다.

또 난생 처음 겪는 증상들인데 누가 봐도 경악할 수준이라 복구가 안 되는 성질인가 걱정했지만 잤더니 신기하게 얼추 회복됐다. 정상인이라면 결석하고 병원 가는 게 당연한 상황인데 나야 투명 인간이지만 무서운 교수님이라 못 감. 한시름 놓으니 말랑해진 차원의 노곤. 매번 특공 작전 하는 난 구제불능. 


Sunday, September 18, 2022

孟夏紀 · 勸學 (Quàn xué in the 4th Lunar Month)

한문을 좋아하기도 하니 기꺼이 다짐대로 받아쓰기를 하는데, 꿈틀꿈틀. 3분도 안 걸리는 사이에 토할 것 같기도 하고, 날이 가도 어쩐지 개운하지가 않았다. 자책은 잘 해도, ritual이라니... 비위 맞추기를 전혀 못 하는 천성을 고치고 예를 익히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너무 나답지가 않은데. 왜 자꾸 찜찜하고 뭔가 더 가야 한다고 강력히 느끼는 걸까? 문제의 뒷부분. 


《呂氏春秋 · 孟夏紀 · 尊師》 : 
Lǚ shì chūnqiū - mèng xiàjì - zūnshī :
君子之學也,說義必稱師以論道,聽從必盡力以光明。
Jūnzǐ zhī xué yě, shuō yì bì chēng shī yǐ lùn dào, tīngcóng bì jìnlì yǐ guāngmíng.

군자의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담론을 펼 때에는 반드시 스승을 칭하면서 도(道)를 논(論)해야 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귀담아 실천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스승의 학풍을 빛내야 한다. 

聽從不盡力,命之曰背;說義不稱師,命之曰叛;
Tīngcóng bù jìnlì, mìng zhī yuē bèi; shuō yì bù chēng shī, mìng zhī yuē pàn; 

귀담아 따르는 데 있는 힘을 다하지 않는 것을 배(背)라고 이름짓고, 담론을 펼치면서 스승의 이름을 거론치 아니 하는 것을 반(叛)이라 이름짓는다. 

背叛之人,賢主弗內之於朝,君子不與交友。
bèipàn zhī rén, xián zhǔ fú nèi zhī yú cháo, jūnzǐ bù yú jiāoyǒu.

현명한 임금은 배반(背叛)의 인간들을 조정에 들이지 아니하고, 군자는 더불어 교우(交友)하지 아니 한다. 

故教也者,義之大者也;學也者,知之盛者也。
Gù jiào yě zhě, yìzhī dà zhě yě; xué yě zhě, zhīzhī shèng zhě yě.

그러므로 가르침(敎)이야말로 정의의 대체(大體)이다. 배움(學)이야말로 지식의 융성함이다. 

義之大者,莫大於利人,利人莫大於教。
Yìzhī dà zhě, mòdà yú lì rén, lì rén mòdà yú jiào.

정의의 대체는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은 가르침보다 더 큰 것이 없다. 

知之盛者,莫大於成身,成身莫大於學。
Zhīzhī shèng zhě, mòdà yú chéng shēn, chéng shēn mòdà yú xué.

지식의 융성함이란 몸을 이루는 것(成身: [대학]의 수신修身과 완전히 일치하는 개념)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몸을 이루는 것은 배움(學)보다 더 큰 것이 없다. 

身成則為人子弗使而孝矣,為人臣弗令而忠矣,
Shēn chéng zé wéi rén zǐ fú shǐ ér xiào yǐ, wéi rén chén fú lìng ér zhōng yǐ, 

배움이 이루어지면, 사람의 아들된 자로서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효성스럽게 되며, 사람의 신하된 자로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저절로 충성스럽게 되며, 

為人君弗彊而平矣,有大勢可以為天下正矣。
wéi rén jūn fú jiàng ér píng yǐ, yǒu dàshì kěyǐ wéi tiānxià zhèng yǐ.

사람의 임금된 자로서 강압을 가하지 않아도 저절로 공평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대세를 장악하는 자라야 천하의 바른 기준이 되는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도올 옮김(2009/2016:224-226) 


도올(2009/2016:226): 너무도 강렬한 언사이며 《대학》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모든 논리가 제공되고 있다. 먼저 우리가 흔히 "배반背叛"이라고 쓰고 있는 단어의 실내용이 아주 리얼하게 규정되어 있다. 배반의 가장 큰 것은 가르침과 배움 사이의 배반이다. 

[...]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성신"이 "지식知"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또 "배움學"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수신은 어디까지나 배움을 통하여 몸을 이루어가는 것이며 그 과정에 깔려있는 것은 지식의 융성함이다. 수신과 격물치지가 연결될 수밖에 없는 논리적 고리가 여기 이미 〈존사〉편에 드러나 있는 것이다. [...] 


아니, 내 사전이 배반을 당한 일들로 점철되어 있지, 배반을 한/할 일이 있을 리가 있겠니? 삐딱하게 부러울 지경인데. 근데 왜 자꾸 찔리는 것 같고 슬퍼지려는지...  


故子貢問孔子曰:「後世將何以稱夫子?」
Gù Zǐgòng wèn kǒngzǐ yuē: "Hòushì jiāng héyǐ chēng fūzǐ?"

그러므로 자공이 공자에게 여쭈어 말하였다: "후세사람들이 장차 선생님을 어떻게 상찬하오리이까?" 

孔子曰:「吾何足以稱哉?勿已者,則好學而不厭,好教而不倦,其惟此邪。」
Kǒngzǐ yuē:`Wú hé zúyǐ chēng zāi? Wù yǐ zhě, zé hào xué ér bùyàn, hǎo jiào ér bù juàn, qí wéi cǐ xié.'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내가 어찌 상찬을 받기에 족한 인물이겠는가? 부득불 나보고 어떤 사람이냐고 말하라고 한다면, 끊임없이 배우며 싫증내지 않았고, 남을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며 게으름이 없었다는 것, 그것을 말할 수 있을 뿐이로다." 

天子入太學,祭先聖,則齒嘗為師者弗臣,所以見敬學與尊師也。
Tiānzǐ rù tàixué, jì xiān shèng, zé chǐ cháng wéi shī zhě fú chén, suǒyǐ jiàn jìng xué yǔ zūnshī yě.

천자가 태학(太學)에 들어가 지나간 성인들의 제사를 올릴 때, 일찌기 스승이었던 사람을 신하의 반열에 세우는 짓은 하지 않는다. 이러한 행동을 통하여 학문을 숭상하고 스승을 존경하는 자세를 천하에 보이는 것이다. 

-- 도올 옮김(2009/2016: 226-228) 


원망이 자책으로 설움이 슬픔으로 바뀌었을 뿐이라면 뭔가 아직 아니올시다. 존사 편은 존사의 방법을 알려 주고 있다. 그걸 몰라서 본 손실이 아까우니 익혀서 써먹겠다고 하는 심사는 또 뭐냐. 흉하다. (그런데 왠지 교수님은 그렇게라도 좀 잘 받아먹는 게 있었으면 차라리 좋다고 하셨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생각은 더 슬프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 답은 뒤가 아니라 앞에서 찾을 수 있었다. 권학 편은 존사가 왜 필요한지 내면(수신)에서부터 경륜(치세)까지 단계적으로 설명한다.(소름끼친다.) 그리고, 나에게 결정적이었던 것은 바로, 존사란 기실 무엇인지. 


《呂氏春秋 · 孟夏紀 · 勸學》 :
Lǚ shì chūnqiū - mèng xiàjì - quàn xué
疾學在於尊師,師尊則言信矣,道論矣。
Jí xué zàiyú zūnshī, shī zūnzé yán xìn yǐ, dào lùn yǐ.

Intense study depends on honoring teachers. When teachers are honored, their doctrines are accepted on faith and their way is advocated. 

故往教者不化,召師者不化,
Gù wǎng jiào zhě bù huà, zhào shī zhě bù huà, 

Therefore, a teacher who instructs in response to a summons does not transform the person who summoned him, and the person who summons the teacher is not transformed by his teachings. 

自卑者不聽,卑師者不聽。
zìbēi zhě bù tīng, bēi shī zhě bù tīng.

Those who debase themselves are not heeded, and those who debase teachers do not heed their teachings. 

師操不化不聽之術而以彊教之,欲道之行、身之尊也,不亦遠乎?
Shī cāo bù huà bù tīng zhī shù ér yǐ jiàng jiàozhī, yù dào zhī xíng, shēn zhī zūn yě, bù yì yuǎn hū?

If the teacher upholds methods that do not transform and are not heeded, yet insists that others be instructed in them, is this not far indeed from his desire to have his Dao practiced and his person honored! 

學者處不化不聽之勢,而以自行,欲名之顯、身之安也,
Xuézhě chù bù huà bù tīng zhī shì, ér yǐ zìxíng, yù míng zhī xiǎn, shēn zhī ān yě, 

If the student lives in a situation where he can neither be transformed nor heed instructions, but does whatever suits him, then his hope of making his name eminent and his person secure is 

是懷腐而欲香也,是入水而惡濡也。
shì huái fǔ ér yù xiāng yě, shì rùshuǐ ér è rú yě.

like "holding something rotten but wanting to smell perfume" or "hating to get wet and yet going in the water." 

-- tr. John Knoblock & Jeffrey Riegel (2001) The Annals of Lü Buwei, p.119



疾學在於尊師,師尊則言信矣,道論矣。 순간 너무 아파서 이것이 답이고 모든 원인인 줄 절로 알았다. 난 마지막까지도 고작 이렇게 적지 않았던가. 매번 즉각 답을 주셨는데, 그것이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그때는 뉘우치는 마음으로 괴롭지만 굳이 끌어내 적어 놓자는 것이었는데, 조금만 더 생각하면 이 말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삿되이 비틀려 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부터 일파만파 꼬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대학원이란, 내가 공부하는 동기란(그래도 가장 중요하지만), 잘도 이래 가면서. 더 많지만 차마 다 적지 못하겠다. 칼 맞은 것처럼 신체의 격통에 한참 꼼짝 못 하고 숨을 못 쉬었다.  

인터넷 검색으로는 적절한 번역을 찾을 수가 없어서(내가 읽는 것보다도 못하시면 어쩌란...), 이럴 때가 아닌데 어쩔 수 없이 한나절을 날린 끝에(인용들은 어째 비유에 불과한 마지막 문장만 선호되는지...) 아쉬운 대로 영역을 찾았다. 양심의 힘이었는지 그냥 내가 읽은 게 제일 나았지만. (도올 선생님 제발 여씨춘추 전체 번역 좀 해 주세요. cJ2 글항아리 건 왠지 안 내켜요.) 

疾學在於尊師,師尊則言信矣,道論矣。

평생 못 잊을 것이다. 근원적 환부가 도려내졌다. 頓 ! 그래서 받아쓰기 같은 건 안 해도 되지만. 이 역사적인 사건을 남겨 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漸에 해당하는 문제의 존사 부분 받아쓰기는 내년 1월 1일까지는 해야지. 왜냐하면, 여기서 돈이 이루어진 것은 무엇보다 애초 내가 師를 찾은 게 맞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제 내가 먼저 포기하거나 포기하기를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고려하는 일은 절대 없다. (이제 생각하니 도대체 다른 건 다 몰라도 나의 그런 망발을 어떻게 용서하셨는지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다. 졸업은 내가 이미 스스로 자격을 잃었으므로 나로서는 아무 불만이 없지만, 내가 짐작하기에 교수님께서는 내가 業을 다하지 않으면, 敎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보시고 師弟가 성립하지 않는다 여기실 것 같다.)  

化聽이 되지 않으면 깨달은 것도 아니겠지만, 化聽을 이루리란 보장은 없어도 그나마 발동은 걸린 듯. 다 늦어서. 

교수님 + 세 명의 과학철학자 + 도올 선생님 + 북부여가 세워졌던 해(기원전 239년)의 여불위와 3천 문사들이 나의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 동원되어야 했으니, 병이 참 깊었구나. (절연이 마땅한 과거나 그리워하고 앉아 있었다니... 사실, 석사 지도교수님이 나에게는 정확히 배신의 상처였다는 것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는 師로 여기는 마음이 없었으므로, 관계적으로는 아무것도 원하는 바가 없었는데도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 바라는 마음이 있고, 너무나 강한 상태로 인해 끔찍한 불안을 느꼈던 거였다.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되면 죽는 게 낫겠다고 여기니 당연하다. 극도의 불안이 공포가 되어 스스로 도리어 불안을 실현시키는 쪽으로 진행한 것. 갖가지 차원의 망상들은 분석하자면 그 방어기제였다고 할 수 있겠지만, 경험상 분석 작업에 집착한다면 또 다른 도피일 뿐이고 그게 또 무가치한 망상을 낳을 뿐이다.)   

요약하면, 그토록 찾으려 애썼던 학문적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고작 과거의 상처를 핑계로 존사를 안 하려고 한 당장의 마음이 문제였다. 아주 치장이 장엄했소. (그래도 그 모색 자체는 가치가 없지는 않았다고 위안하고 싶다.) 요약하면, 인문학이나 유리 벽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수신(正心)이 안 되어 장애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교수님께서 받으셨던 건 학생이 아닌 곪은 알... 알이 어떻게 논문을 쓰겠나... 그래도...

저 다 나았어요! 

(생쇼 그만하고 그 기력으로 논문을 쓰라는 소리가 들린다... 늘 뜻을 모르겠다고, 나아가서, 모를 수밖에 없지 않냐고, 속으로 잘도 뇌여 왔는데, 이제 잘 들리는 걸 보니 정말 나은 듯. 교수님의 지성을 이런 식으로 소모하다니 하늘이 노하지 않을까 무섭기는 하다.) 

어쨌든 이제 없애야 할 잡념 자체가 사라졌다. 비로소 편하다. 😭 

논문을 쓰기 위한 짓, 논문을 안 쓰기 위한 짓, 논문을 쓰고 난 다음을 위한 짓, 논문을 못 쓰고 난 다음을 위한 짓... 논문을 쓰는 짓만 빼고 죄다 해 보느라고 얼마나 힘들었겠어. 남은 한 가지 일이 차라리 쉬울 듯. 잘해야 되는 것도 아니니 걱정도 없고. 물론 몇 달 후부턴 생계가 걱정이겠지만. 그동안 한껏 누려야겠다. 

날린 하루였지만, 굉장한 하루였다. 수술 받은 날. 아프지만, 희망적인 아픔. 


+

化 = 人(산 사람)이 匕(죽은 사람)으로 되어 다른 사람으로 모양을 바꾸어 다시 태어나다. 윤회(輪廻) 

聽 = 直(숨어 있는 것을 바르게 보고) + 耳(듣고) + 心(느끼는) + 壬(사람). (남의 의견·권고 따위를) 받아들이다. (명령·지시에) 따르다.


++

《禮記 · 中庸》 : 

Lǐjì · Zhōngyōng

其次致曲。

Qícì zhì qū. 

다음으로 힘써야 할 것을 치곡(致曲)의 문제이다. 

曲能有誠,

Qū néng yǒu chéng, 

그것은 소소(小小)한 사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지극하게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다. 그리하면 소소한 사물마다 모두 성(誠)이 있게 된다.  

誠則形,形則著,

chéng zé xíng, xíng zé zhù,

성(誠)이 있게 되면 그 사물의 내면의 바른 이치가 구체적으로 형상화된다. 형상화되면 그것은 외부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著則明,明則動,

zhù zémíng, míngzé dòng, 

드러나게 되면 밝아진다. 밝아지면 움직인다. 

動則變,變則化。

dòng zé biàn, biàn zé huà. 

움직이면 변(變)한다. 변하면 화(化)한다. 

唯天下至誠為能化。

Wéi tiānxià zhìchéng wéi néng huà.

오직 천하의 지성(至誠)이야 능히 화(化)할 수 있다. 


-- 도올 옮김(2011:544) 



Friday, May 27, 2022

Community of practice

 https://en.wikipedia.org/wiki/Community_of_practice

ref. Jean Lave & Etienne Wenger (1991) Situated Learning 


cf.

설문원 (2021:19, f.1): 여(Yeo)는 앞의 글에서 "공통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고 유사한 방식으로 체계를 이해하도록 학습된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정의를 채택하고 있으며, 경영학이나 조직학에서는 "특정한 주제에 대한 문제점과 생각들을 끊임없이 나누면서 서로의 지식이나 전문성을 발전시키는 비공식 집단"이라는 정의가 사용되고 있음.  


20중-30초 십 년 정도 이러한 활동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지만, 서울에서였기 때문인지, 그러니까 주로 한국인, 조직이 없어서였는지, 그러니까 한국...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개개인의 목표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공통의 목표란 표방일 뿐, 동상이몽. 표리부동의 괴리가 너무 멀다. 문제는 위장하는 것은 좋은데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 의도적으로 낚시하려고 작정하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별도로 대응할 수 있으니 의외로 위협이 되지 못한다. 깔끔하게 치고 빠져 주면 오히려 활력을 주기도 하고.) 아무튼 그 어떠한 경우에도 누구의 마음도 다치지 않게 하는 길을 만드는 방법만 알게 되었다. 그것이 결국 가장 중요하다는 진실과. 새옹지마의 취약한 공동체 버전. 그러나 결국 나 자신은 사람을 가리는 사람이 되었다. 조금 현명해졌다고 해 줄까. 모르겠지만, 여전히 아쉽다. 조직 안에서는 어떨지 궁금하긴 하네. 희망적으로. 내 희망은 안 되더라도.


Monday, May 23, 2022

Learn by doing


누구는 이걸 보고 "어른의 태도"를 배우는데, 어째 난 아이와 동질감을... 나보다 낫다.

1. 눈치를 볼 줄 안다. (내게 선천적으로 결여된 능력.)

2. 낙천적이다. (너무 자책한다. 그리고 대책 없이 낙관적이다.)

3. 과감하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런데, 반면 결정하는 일을 너무 어려워한다.)

4. 금방 잊는다. (그만한 가치를 가리지 않고 평생 되새김질할 태세를 갖춘다.)

5. 분위기/기류를 읽는다. (나는 선천적으로 심하게 타고난 능력.)

6. 몰입한다. (못지 않다. 다만 툭하면 아무데나 중독에 빠진다는 문제. 뭐든 무한 반복하려고 하고 모드 체인지가 잘 안 된다.) 

7. 맺고 끊음이 확실하다. (전혀 못 한다. 특히 끊기 위해서는 타인의 도움이 필수 불가결하다. 그런데 원래 타인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 두 방법밖에 없다. (i) 나를 굴복시킬 수 있는 희귀한 사람이 피존경심이나 사랑의 힘으로 끊어 주는 경우 (ii) 팀웍이거나 소속이 있거나 돈을 받는 일이라서 남 또는 우리의 성취가 목표가 되는 경우)

8. 타인의 의사를 살피고 정황을 파악한다. (그만한 예의가 없다. 사람을 어려워할 줄 모른다. 비교적 최근 발생한 일인만 빼고. 어려운 건 사람이 아닌 관계.)

9. 자신의 역량을 가늠한다. (가늠하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쓴다. 쓸데없다.)

10. 자신의 성취를 기뻐한다. (성취감을 누릴 새 없이 급격히 관심을 다른 데로 옮긴다.)

11. 습득이 빠르다. (느리다.)

결론: 그대만 따라 한다면 나도 앞으로 대성할 듯. 


Monday, June 28, 2021

천여임 (Cheon, Yeo Im, 2015) 도깨비 글 창고 Dokkaebi Store of Words

도깨비 글 창고

천여임 (2018) 


아침에 쌓았다가 
저녁에 열어보면 빈 창고 
낑낑대고 만들어서 
어렵게 들여 놓으면 
다음날 도망가고 없는 글 창고   
영감 눈치 보고 사위 눈치 보고 
손자 녀석 눈치 봐가며 
열심히 만들어서 쌓아두어도
며칠 후 열어보면 빈 창고   
그래도 언젠가 열어보면 
서울도 있고 광주도 있고 
농협도 있고 우체국도 있는 
도깨비 글 창고


* 2015년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특별상

* 2015-09-01 [완도신문] 천여임 씨 전국성인문해교육 시화전 특별상 수상 

https://en.wikipedia.org/wiki/Dokkaebi


내 창고는 며칠은 커녕 하루도 안 가고, 한 칸 뛸 때마다, 줄 바뀌는 순간마다 비어요. 음소마다 눈에는 안 보이지만 깨알같은 도깨비들이 있어요. 소리 내어 외면 겨우 한 톨씩 쌓여요. 그러다 책장 넘기면 또 싹 사라져요. 


Monday, June 21, 2021

김춘남 Kim, Choon Nam (2017) 장하다 우리 딸! Proud of My Daughter

장하다 우리 딸! 



오늘은 문해학교 입학하는 날 
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우리 아들 입학식 때 손잡고 갔던 학교를 
엄마도 없이 나 혼자 갔어요 

장하다 우리 딸! 학교를 가다니 
하늘나라 계신 엄마 오늘도 많이 울었을 낀데 

엄마! 울지 마세요 
춘남이 공부 잘하겠습니다 

엄마가 살아 계셨더라면 
서명도 못 하냐고 무시하던 택배 아저씨도 
이름도 못 쓰냐고 눈 흘기던 은행 아가씨도 
우리 엄마한테 혼났을 낀데 

언젠가 하늘나라 입학하는 날 
내가 쓴 일기장 펴놓고 
동화책보다 재미있게 읽어드릴게요


* 2017년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글꿈상(최우수상)  

* 2017-08-22 [프레시안] 함양군 김춘남 할머니 성인문해교육시화전 최우수상  

* 2019-06-28 경상남도 함양군 - 시와 음악으로 만나는 상림의 저녁 - 작가 낭송 (영상)


Sunday, March 06, 2016

concepts of function

2016.02.23 수리 논리 - 명제 논리 중 선언 표준 형식 부분

함수에 대한 definition, realization, exemplification, instantiation, initialization 각각의 의미에 대한 차이. 함수를 도구로만 사용했던 경험에 의한 선지식 또는 애벌 염색에 의한 나의 혼란. 즉, 물리학과 공학이 공유하는 개념과 수학과 철학이 공유하는 개념 사이의 차이. 그 차이를 쓸데없다 안 하시고 함께 음미해 주셨다. 그것도 논제들의 역사가 아닌 일차적 기술적 지식을 일방적으로 학습하는 과정에서. 튼튼했던 부분들마저 흔들릴 뻔한 상태에 있던 나는 덕분에 내가 따르고 있지만 구별짓지 못했던 하나의 관점을 비추어 볼 수 있게 되었고, 같은 대상을 놓고 말하는 것 같지만 실상 서로 다른 대상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경우들의 주범인 단어(어휘)의 문제로 탓을 잘못 돌릴 뻔했던 것을 막게 되었다. 나는 보통 '관점이 다른 것이 아니라 대상이 다른 것'이라고 믿는 편이지만, 정말 같은 대상인데 그것을 기술하는 관점이 다른 경우가 있다.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휘가 다른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런 부분까지 잡아 주시는 것은 사부의 특별한 미덕이다. 상황상 또는 정서적으로 무시당하느니 마느니 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용상 올바르게 상정한 논제 자체를 근거 없이 무효화시키는 피드백은 특히 배우려는 입장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받지 않느니만 못하다. 생각을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극장의 우상에는 잘 빠지지 않아서 곧잘 피해 가는 나도 때로는 내가 제기한 문제 자체의 심각성을 스스로 느끼지 못할 때가 있는데, 흘려 듣지 않으시고 대토론으로 이끌고 들어가셔서 결국 최소한의 일단락을 맺을 때까지 매번 놀랄 정도로 많이 들으시고 충분히 말씀하신다. 뒤늦게야 내가 문득 진도나 시간을 걱정하는 척하면 오히려 무슨 중학생이냐고 타박하신다. 공방, 세련, 재공방, 수용, 정정, 승패 또는 neutral 합의. 나도 찜찜한 채로 덮는 법이 없다. 일단은 끝까지 간다. 그래야 다음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