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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June 13, 2026

백낙청 Paik Nak-Chung @ Jung, Jun Hee's Commentary

[정준희의 논] 변혁적 중도의 때, 정말 왔나?ㅣ2026년 6월 11일 목요일 
on: 백낙청 (2026)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 -- 나라다운 나라를 어떻게 만들까 
(P) (주)명랑사회 



중학교 시절부터 용돈을 모아 15년 넘게 뉴턴, 과학동아, 내셔널지오그래픽 한국판,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했다. 매월 책장이 너덜해지고 책등이 헐거워질 때까지 여러 번 탐독하던 중에도 유일한 계간 창비만은 일회도 완독하지 못하곤 했다. 몸집이 작아서 그렇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조숙했던 나는 이미 머리가 너무 컸고, 그런 팔팔한 눈에 백낙청은 처음부터 어쩐지 기회주의로, 상황과 무관하게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교묘한 회피술로 느껴지는 감이 있었다. 판단까지 내리기에 필요한 지식은 없었고. 다만 만약 그런 게 균형 감각이라면 나는 원하지 않겠노라고. 하지만 섣불리 특정 편향에 치우치는 길로 들어섰을 때 내 위치를 감지할 수 있는 지도도 판별력도 없는 상태였기에 말하자면 창비는 내게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임시 경로로 여겨졌던 것.(지금 보니 날카롭게 정확했잖아.) 고진의 명성을 업고 기득권을 휘둘러 '세계 문학'을 밀어 붙이면서도 포스트모더니즘 자체를 우위에 두거나 서정을 폐기하지 않는 신중함이 마음에 들었고.(난 오영수의 딸이므로, 그때나 지금까지나 줄곧 핏줄을 끊긴 기분이거든. 창비는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상태로 끝까지 남아 있었기에 소중했다.) 내가 하필 문학동네 취향이 아니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시류에 영합하지 않아도 되는 그들의 무게는 성장기의 내게 무차별하게 건강한 긴장감을 주었다. 그런 건 마음만 먹는다고 생기는 종류의 무게가 아니라는 것은 알겠었으니까. 뭐랄까, 교감 선생님 같은 존재였달까. 매력적이진 않지만 존경해야 할 것 같은. 경계를 늦추지는 못하지만 잠시 머물러도 되겠다는.   

매일 모욕감을 느끼지 않기 힘든 사정 속에 있으면서도 이런 일엔 비교적 개의치 않는 성격 덕분에 더욱이 MZ 세대에게서 나는 희망을 훨씬 많이 발견하는 편이다. 계속 귀를 열어 놓고 있다 보니, 내가 선거 직후보다 직전에 극심한 불안과 회의감에 시달렸던 것은 꽤 큰 차이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선거일 며칠 전부터 여러 꾀병으로 고생했고, 후에는 오히려 '정상적인' 반응들로 위로와 희망을 얻고 있는 셈이니까. 만 열 살부터 따라가 보았던 백낙청보다는 이십 대에야 전국민과 함께 만난 도올 선생님의 제자라 자부하고, 그가 유튜브 채널들을 살리려고 선생님을 백방으로 이용하는 수도 너무 훤히 보이는 게 거북스럽기는 하지만(정작 선생님께서 어려우셨던 시기에는 접촉이 없었다고), 역시 거대한 시야에서만 나오는 안목은 필수적이다. 이제야 한 수 배울 만큼 내가 컸구나. 그 양분 속에서.         


문학의 힘이 포용력인 한 문학은 영원할 것이다. "Das Ewig-Weibliche, zieht uns hinan." 


Thursday, April 02, 2026

Park Joo-Min's Interview with Chun Woo-Yong

주민, 전우용을 만나다 1편 



주민, 전우용을 만나다 2편 

(P) 박주민TV


> 연대의 가치를 재발견하기 

- Minouche Shafik 지음, 이주만 옮김, 이기적 인류의 공존 플랜: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What We Owe Each Other: A New Social Contract, 2021), 까치, 2022. 

    1) 사람에 대한 투자(교육, 훈련, 평생학습) 

    2) 재난, 실업, 질병, 기후 위기에 따른 고통과 위험을 공평하게 나누는 방식으로 사회계약을 재편하자

- 페르디난트 퇴니스(Ferdinand Tönnies, 1894-1936)의 Gemeinschaft 공동사회 vs. Gesellschaft(사회) 

- '서로' 믿는/돕는/잘 사는 사회 - 국제적/국가간/개인간 연대, 위기에 대한 공동 인식


> 서울의 위상/역할 변화  

- 한강 약탈의 역사 - 1963년 1월 1일 강남 지역 서울 편입, 1966년 이후 개발 착수.  

- 역사에서의 발전 -  물질적 진보, 재산권만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 사람다움이라는 가치



Friday, October 04, 2024

review: Machiavelli (1532) Il Principe 군주론

[알릴레오북스: 5기 30화] 정치란 무엇인가?
박구용(전남대 철학과)
on: Niccolò Machiavelli (1532) Il Principe  군주론
2024-09-27




[알릴레오북스: 5기 31화/최종] 공화주의의 출발
2924-10-03



오랜만에 인생 고민이 많은 나날 중 핵심을 뒤늦게 배움. 


Saturday, September 11, 2021

methodology

Max Weber: 경험과학은 그 누구에게도 결코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가르쳐줄 수 없으며, 단지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 경우에 따라서는 —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가르쳐줄 수 있을 뿐이다. (김덕영 옮김, 2021: 5)


김덕영 (2021): 왜 같은 과학자 공동체 내에서, 그것도 역사학파 경제학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 있는 과학자 공동체 내에서 세대 간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투쟁이 일어났을까? 왜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내부에서는 심지어 아들인 제3세대가 아버지인 제2세대를 살해하는 사태가 일어났을까? [221-222] 

이에 대한 답은 일차적으로 두 집단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지적-정신적 입장에서 찾을 수 있다.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제3세대는 —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베버를 위시한 일군의 제3세대 학자들은 — 사회학과 사회정책에 대해 제2세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 젊은 세대는 독일이 자본주의적 산업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질서와 세력의 다양화, 집단들이나 계급들 간의 대립과 갈등 및 투쟁의 일상화 그리고 사회적 관계의 물화 및 탈도덕화를 인지하게 되었으며, 이 모든 것은 사회정책학회, 아니 역사학파 경제학이 추구하는 이론과 실천의 직접적인 결합 및 사회과학과 사회정책의 직접적인 결합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사회과학의 과제를 객관적 현상과 과정에 대한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인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사회정책학회와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젊은 세대는, 엄밀한 의미에서 — 단순히 시간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행위와 관계 그리고 사회질서를 규정하고 근거짓는 이념과 원리의 의미에서 — 진정한 근(현)대성을 발견하고 이를 실증적인 방법으로, 그러니까 객관적 사실에 대한 경험적 인식에 입각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통찰했으며, 이에 따라 인식과 행위, 이론과 실천, 과학과 정치, 존재와 당위, 사실과 가치, 분석과 판단 그리고 사회과학과 사회정책 사이의 노동분업과 이에 기반을 둔 상호 협력관계의 의미와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요컨대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제2세대와 제3세대는 공히 근대를 대상으로 하는 과학, 즉 근대의 과학을 추구했지만, 구스타프 폰 슈몰러를 위시한 노장 세대와 이 세대를 추종하는 일군의 젊은 세대는 근대적인 과학을 구축하지 못한 반면, 막스 베버를 위시한 또 다른 일군의 젊은 세대는 근대적인 과학을 구축했다. 전자는 근대(적인 것)에 대한 전(前)근대적 과학에 머물렀던 반면, 후자는 근대(적인 것)에 대한 근대적인 과학으로 나아갔다. 바로 이 두 유형의 과학이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과 사회정책학회에 공존하면서 대립, 갈등 및 투쟁은 불가피해졌으며, 이것이 공적인 형태로 표출된 것이 1909년 1914년 두 차례에 걸쳐 벌어진 가치판단 논쟁이다. [222-223] 


그러니까 내가 '근대성' 개념/역사에 우연히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단지 메이지 때문이 아니라 이것을 알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어느 길을 다시 골라도 여기서 꼭 걸렸으니까. 


Max Weber (1910): 만약 그대가 한 특정한 당위에 대한 관심사에서 진정으로 명료한 이 특정한 가치판단에 따라 행위하기를 원한다면, 그렇다면 그대는, 과학적 경험에 따라 볼 때, 상기한 가치공리에 상응하는 그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수단들을 사용해야 한다. 만약 이 수단들이 그대에게 적합하지 않다면, 그대는 수단들과 목적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그대는, 과학적 경험에 따라 볼 때, 그대의 가치판단을 실현하는 데 불가결한 수단으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다른 부차적 결과들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 그대에게는 이 부차적 결과들도 바람직한 것인가; "그렇다"인가 또는 "아니다"인가? 과학은 그 사람을 이 "그렇다"와 "아니다"의 경계까지 이끌 수 있다 — 왜냐하면 이 경계의 차안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경험적 과학분야가, 또는 논리학이 답을 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다시 말해 순수한 과학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그렇다" 또는 "아니다" 자체는 더 이상 그 어떤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 또는 주관적 취향의 문제이다 — 어쨌든 그에 대한 답이 다른 정신적 영역에 있는 문제이다. 

-- 김덕영 옮김(2021: 236)


내가 썼는 줄. "가치공리"란 말만 빼고. 나의 시대와 정반대 방향의 흐름 속에서 같은 문제의식을 가졌던 베버. 덤으로 사회학자인 그가 왜 문화 연구를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 내가 어릴 때부터 싫어하는 사회학의 방법론 텍스트를 고통스럽게 읽고 있는 이유와 매한가지.      


김덕영: 방법론이란, 연구의 절차나 수단을 기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절차와 수단이 무엇인가를 들여다보는 ‘메타’적인 것 -- 이혜인@경향신문


김덕영: 막스 베버의 '창조적 절충주의' -- 최원형@한겨레 


정독도서관에서 공개 연속 강의하셨을 때 정말 많이 배웠고 복도에서 잠시 뵈었을 때 기억도 강하게 남았다. 면식이 없는 상태였음에도 온전히 100% 제자를 바라보는 눈빛을 받아서. 여태 국내에 chair가 없으시다니, 하여튼 여기 인문계는 만사가 전도되어 있다. 그런데 더이상은 오래갈 수가 없을 텐데.  


Monday, May 14, 2018

Simon Stephens/김민정 (2018) 하이젠버그 Heisenberg

하이젠버그

하이젠버그 (Heisenberg)
희곡: Simon Stephens
연출: 김민정
출연: 정동환, 방진의
공연: 두산아트센터


2018-05-13 해의 낮 @두산아트센터: 뮤젠, 야생

'불확정성의 원리' 자체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만(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므로...) 영감을 받아 쓴 대본이라는 소개에 호기심이 동한 주변인들에 딸려 "예정에 없이" 갔다.

'번안'을 완전히 포기한 '번역'이 훌륭했다. 캐스팅이 참 잘 되었다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소감일 듯.

대사의 맛을 즐기는 공연이었기에 ' ∆x ∙ ∆v ≧ h '이라는 식으로 '대강' 표현되는 원리를 인생에 대입한 원작자의 해석의 변주들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다만 그는 너무나 소박하게도 인간 관계에 집중한다. 막연한 사회가 아닌 특정한 남녀간의 춤같은 로맨스를. (여기에 엄청 실망한 야생은 제목에 낚였다며 불평했지만, 그것은 공연이 아니라 원작에 대한 취향의 문제이니까.) 그 점에 관해서 나는 묘하게 베르히트의 향수(휴머니즘, 또는 신이 아닌 인간에 대한 믿음)를 맡은 듯했지만. 


미국 공연

초컬릿 대 바흐 :)


독일 공연

오, 역시 무대가 눈에 확! (좀 너무 모던하기는 한가... 작품에 비해.)



cf.
https://en.wikipedia.org/wiki/Heisenberg_(play)
원작 미국 공연 공식 홈: http://heisenbergbroadway.com

Sunday, December 31,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