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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February 06, 2025

김용구(金容九, Kim, Yong-Koo, 2008) Conceptual History in Korea

김용구(2008)<한국개념사총서 발간사>:    

우리는 외국 학자들처럼 개념의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분석, 의미론이나 명의론에 안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 장소의 개념들의 충돌을 연구해야만 합니다. 더욱이 우리의 한반도는 독특한 역사적 성격을 지닌 장소입니다. 유럽 열강의 세계 팽창 대상 지역 중에서도 오지奧地에 속하는 곳입니다. 오지의 특징은 외래 개념에 대한 저항과 오해가 그 어느 지역보다 강렬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저항이 강하다는 것은 이미 지켜 온 개념들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른바 가정假晶 pseudo-morphosis의 현상이 두드러진 곳입니다. 가정은 광물이 그 내부 구조에 따른 본래의 결정형과는 다른 결정형을 나타내는 현상을 지칭하는 광물학의 용어입니다. 다른 장소의 개념이 전파되는 경우, 본래의 의미가 왜곡되는 사회 현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슈펭글러O. Spengler가 광물학에서 차용한 낱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는 중국이나 일본과도 판이한 역사적 경험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오지라는 장소의 특징은 시간의 역사적 성격에도 반영됩니다. 세계 정치 중심 지역의 개념들이 뒤늦게 전파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지와 세계사의 접목은 세계사 흐름의 최후 단계에 이루어져서 오지의 세계화는 난항을 겪게 됩니다. [6] 

 

[...] 같은 동북아 질서에 속하였던 중국과 일본의 변모로 동북아 삼국 사이에도 개념의 갈등이 야기됩니다. 교린 질서 안에 살고 있던 한국와 일본은 1868년부터 개념의 충돌이 시작되어 1876년까지 8년의 위기를 맞습니다. 이 위기를 거치면서 일본은 개념의 세계화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이런 개념에 의한 담론을 세계에 전파합니다. 

같은 사대 질서에 살고 있던 중국이 1880년을 전후하여 사대 질서의 변형을 주장해 한국은 중국과 충돌하고 그리고 고민합니다. 유길준의 '양절체제兩截體制'라는 천재적인 직관은 사대 질서의 개념들을 서양 공법 질서의 개념으로 전환시키려는 중국에 대한 우리의 처절한 저항입니다. 이런 역사적 특징을 지닌 한반도라는 장소에서 인문/사회과학의 근대적인 기본 개념 형성에 중요한 시기tempos는 1850년에서 1950년에 이르는 1백 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질 문명권과 만나 충돌하면서 동시에 동북아 삼국 사이에 개념의 마찰이 병행하는 시기입니다. [7]

 

[...] 이런 개념사 연구를 우리는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서술해야 합니까?

시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분석을, 그리고 장소의 문제에 관해서는 비교문명권의 입장에 입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방법론에 따라 다음과 같은 순서로 주요 개념들을 서술할 것입니다.

먼저 동서양의 어원을 고찰합니다. 어원은 통시적 분석의 출발점입니다. 개념이 19세기 이전에도 동양 세계에서 통용된 경우에는 그 동양적인 의미와 19세기 이후의 변천 과정을 추적합니다. 그리고 19세기 중엽 새로 동양에 전파된 서양의 개념인 경우에는 서양 세계에서 통용된 의미와 동양에 전파되는 과정을 추적합니다. 

그러나 서술의 중심은 한반도라는 장소에서 일어난 개념들의 해석, 번역, 굴절, 선택, 그리고 오해를 포함한 모든 충돌 현상에 관한 분석입니다. 그리고 1950년 이후 이 개념들이 한국 학계에 정착되는 데에 따르는 오늘날의 문제점들을 제시합니다. 정착 문제는 우리 학계의 수준을 폭로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볼 때 개념사 연구는 인문/사회과학의 모든 분야에 걸친 연구입니다. 이른바 "전체의 역사 l'histoire totale'를 시도하는 지적 작업입니다. 이른 학술 사업을 진행하기에는 우리 학계의 수준이 아직 일천하다고 걱정하는 소리도 있습니다. 그리고 개념사 연구 자체에 관한 회의와 냉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장소 topos의 인문/사회과학 기본 개념에 관한 연구는 단지 학문상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 연구는 우리의 생존에 관한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개념의 정확한 인식에 의한 학술적인 담론의 세계화는 21세기에 우리가 한반도에서 한국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담론의 세계화를 이룩하지 못한 것이 1910년의 불행을 자초한 한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8-9] 


pro!!!!!

고달파요. 빨리 좀... 😭 2대째 기다리는데 후손 없는 2대도 이미 늙음. 

그런데 이 다음이 또 영영 없으시고. 십이 년 기다림이 헛물이다. 

그래도 나 학위 논문 쓰고 아프느라 정신 없던 (무려 五년 😱) 사이에 이제 국내에서도 인문학 좀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 시작. 15년만 빨리 하지 좀. 😭 


Tuesday, September 14, 2021

Peter Janich (1994) Die konstruktive Wissenschaftstheorie 구성주의 과학철학

이기흥(2004) : 인간의 기술적(技術的) 활동들이 과학의 방법적 근간이 된다는 주장을 통해 과학은 인간의 활동과 떼어놓을 수 없다는 테제를 내세우는 방법적 구성주의는 반객관주의 혹은 반실증주의를 추구하는 현상학과 해석학 혹은 생철학 전통(그리고 더 나아가 실존주의 전통)에 가까이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현상학이나 해석학적 입장들은 공히 (위에서 기술한) 실증주의 경향의 과학철학들에 반대해 과학 문제의 해명에서 인간 주체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러는 가운데 그들은 모든 이론적 견해들이나 지식 구성의 시원(始原)을 의식 현상이나 문화 혹은 삶 현상에서 찾고자 할 뿐 아니라 이 영역들은 그 자체로 또한 그들의 철학적 이론화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논리실증주의에서의 감각 기관에 의해 포착되는 관찰 명제도 실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이를 단순히 일종의 자연 과정으로 치부한다. 다른 한편, 해석학에서 말하는 전이해의 영역은 위에서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 및 그 이후의 과학철학적 발전들과 관계해 논해졌던 이론 의존적 관찰 혹은 패러다임 내지 연구 프로그램 혹은 과학 연구 전통 개념들과 비교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상학과 해석학의 이러한 입장은 분명 방법적 구성주의자들의 논의 맥락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철학적 입장들은 자신들이 이론화하겠다는 연구 영역을 종종, 방법적 구성주의와는 달리, 그 자체로 연구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으며, 그리고 그러한 작업들이 과학의 근원을 연구하는 이론이라 손치더라도 그들의 작업이 갖는 과학과의 관계는 내적 성격의 것이라기보다는 외적 성격의 것이었다. 사실 그들의 "과학철학적" 작업은 실제의 과학 이론들이 어떻게 해서 성공적 이론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어떤 유효한 설명을 제공하지도 않으며 또한 그 부분에 대한 논의는 그들의 논의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 이유는 종종 그들 내부의 문제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과학에 근거를 마련해주는 작업은 고사하고 그 철학들 스스로의 토대 자체가 종종 의심되기도 해 그들은 이 일에 몰두해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후설이 선험적 주체와 생활 세계 사이를 오가며 고민한 흔적은 이에 대한 징표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이데거는 후설과는 다른 철학적 토대를 찾아나서지 않았던가? 그러나 실증주의자들 또한 실존주의가 말하는 세계의 근본 현상들이 다시 어떻게 유효한 방식으로 근거지워질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하기도 한다. 해석학의 경우 자기 근거의 문제는 "해석학적 순환"이란 테제를 통해 공공연히 피하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해석학의 해석학적 순환론 자체는, 마치 상대주의자들의 주장이 그 주장 자체의 상대화를 함의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해석학적 순환 고리로부터 떨어져 있을 경우에나 그 타당성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해석학적 이론들은 인간의 이해 혹은 해석 과정에 대한 하나의 객관적 이론이고자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러한 해석학적 진술들에서 주장되고 있는 사실들 자체는 자기 근거를 갖는 것인가? 이러한 종류의 시원적 근거 추적 시도들과 연관해 한스 알베르트가 주장하는 테제는, 하나의 주장을 다른 주장을 통해 최종적으로 근거지우려는 시도들은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주장적" 성격의 언술들을 근거짓는 작업과 관련해서는 이 테제는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철학 자체에도 해당된다. 철학이 이렇게 자기 집안 단속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철학은 과학에 과연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단 말인가? 요약하자면, 과학 토대화 작업과 관련해, 현상학이나 해석학에서의 작업들은 과학과 아주 느슨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방법적 구성주의는, 상황이 이러한데도, 여전히 과학을 토대화하겠다는 프로그램을 갖는다. 가능한 일인가? 그러나 독자들이 알아두어야 할 사항 하나는, 방법적 구성주의의 경우 과학 토대화 개념은 현상학 및 해석학의 그것과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이 철학 사상은 과학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위와 같은 류의 절대적 자기 토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방법적 토대화다. 이러한 류의 토대화는 (마치 빵을 구워내기 위해서는 제빵 과정을 수행하면 되는 것처럼) 목적 수행을 위한 수단이 강구됨으로써 그 임무가 완수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예를 들어 과학이 추구하는 (철학적 시각에서의) 목적이 완수될 수 있는 수단들이 과학철학적 재구성 작업에 의해 강구될 수 있으면, 과학의 (철학적) 토대화 작업은 완수될 수 있다. [...] 방법적 구성주의는 이렇게 토대화 개념을 사실 관계에서가 아니라 목적과 수단 관계, 즉 방법적 시각에서 이해한다. 이는 방법적 구성주의가 현상학이나 해석학적 전통의 과학철학과 갖는 작지 않은 차이점이다(방법적 구성주의자들에게 방법론적 시각은 존재론적 혹은 사실론적 시각과 서로 대조된다). [290-293]


그러니까 뒤프렌을 처음 열었을 때 5장부터 확인한 것은 (한국의 고졸자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이론으로 (한국의 고졸 이상 학력자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현상학에 대한 나의 막연한 이미지에 따르면 그 점이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니체와 하이데거 이후 근거짓기나 합리성의 타당성 개념 자체를 도마 위에 올렸다가 쓰레기통에 버린 학자들이라면 내가 습득하지 못한 다른 설명 방법이나 대안적 노선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리좀 등등. 하지만 이쪽으로는 등록금만으로 해결이 안 되는 현실에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결국 아무런 훈련을 받지 못했다. (교양 강의나 독서는 훈련이 아니다. 경기 비디오 관람만으로 운동선수가 되는 훈련이 이루어지지 않듯이.) 스타들의 후광과 귀국자들의 영광뿐. 있다 해도 그림의 떡인 셈.     


방법적 구성주의의 입장은 반객관주의, 반(절대적)토대주의, 반사실관계적 시각 혹은 반인지주의적 시각들이다. 반면, 방법적 구성주의 철학은 영 · 미 철학 전통의 간주관성 혹은 초주관적 테스트 가능성을 강조하는 반형이상학적 입장을 공유하며, 현상학 혹은 해석학적 전통의 실천성 테제 혹은 문화주의적 시각을 공유하며, 또한 구성주의와 같이 인식 성취에서의 인간의 능동성에 시선을 준다. 그리고 이 모든 입장을 끌어안는 핵심 테제는 행위론적 시각 및 방법론적 시각이다. 이와 함께 방법적 구성주의는 또 합리주의적 입장도 취한다(게다가 방법적 구성주의에서는 지식의 초주관성이 강조되고 있다). 방법적 구성주의의 이러한 입장들은 현대 철학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상 중의 하나인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와 적절한 우호 및 긴장 관계를 이룬다. [...] 방법적 구성주의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논하지도 않으며 또한 인간의 본질이 이성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이성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 여하에 달린 문제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자연 존재가 아니라 행위하는 존재이기에 가능한 얘기들이다. 즉, 인간이 이미 어떤 본질을 가지고 있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행위를 통해 그들 스스로를 규정한다는 것이 방법적 구성주의의 입장이다. 그리고 행위를 제한하는 요소들 또한 다양할 수 있다. 인간들은 완벽한 조건이 갖추어진 인큐베이터에서 자라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 환경들은 (항상은 아니지만) 때때로 인간들 스스로에 의해 통제 혹은 구성되기도 한다. 이는 인간 행위들이 인간의 본질과 인간의 환경 요소의 그 어느 중간에 위치하고 있음을 말한다. 즉, 방법적 구성주의는 모더니즘 주체 철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반주체 철학의 중간에 위치한다. 다른 한편, 방법적 구성주의는 조건적 진리관을 견지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다: 어떤 목적이 주어지고 그에 대한 수단이 강구될 때, 이 수단들의 적절성 혹은 옳고 그름은 언제라도 결정될 수 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의 목적에 다수의 수단들이 동일한 기능을 발휘할 수도 있고, 하나의 수단이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다른 목적들에 기여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때의 수단들이 보여주는 기능 자체는 개인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간주관적 혹은 초주관적으로 검증되고 또한 인정될 수 있다. 이러한 진리관은 주장과 사고 및 견해들의 수렴과 분산을 적절한 수준에서 조정해준다. 달리 말해, 위와 같은 조건적 진리관 하에서는, 한편으로는 합리성, 이성, 보편성 개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상 내지 문화의) 상대성 혹은 다양성은 서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수준에서 서로 조화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방법적 구성주의는 다시 모더니즘의 진리 절대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진리 상대주의 사이에 위치한다. [293-295]   


그러니까 학부 때 교양 수업에서 처음 제대로 접한 매클루언은 곧바로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 역사 유물론에 대한 생리적 반감의 2차적 양상이었달까. 그런 그가 한국에서 1990년대에 베스트셀러였던 현실은 정권의 IT 산업정책과 무관하지 않았다. (4차산업 시대라는 지금은 대입 논술고사 대비 고교생들의 필독서가 되었고.) 어쩌면 그가 아니었다면 인문계로 넘어올 필요까지는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북해의 소용돌이라니, 차라리 외계인 지구 대침공이라고 하지 그래. 인간의 행위와 우리의 선택에 다른 이름들을 붙이고 싶어하는 저의가 학계라는 프로페셔널 시장에서 파이를 점유하기 위한 경쟁력 전략인 것은 차라리 괜찮다. 자기 인생이니까. '적'을 과장해야 자신의 힘과 값이 올라간다는 세속의 인심을 아는 데 별다른 지성이 필요하지 않다. 그 '적'의 정체와 전략이 또한 모호하고 전면적이어야 조직적 해결 절차가 진행되는 걸 원천적으로 방해할 수가 있겠고. 그렇게 부정하는 데 성공한 책임과 회피하는 데 성공한 고통은 어떤 다른 사람이 맡으라는 말인가? 부정하고 회피하는 데 실패하여 '무능력'을 증명한 사람? 소용돌이에 뛰어들 용기와 의지가 부족해서 '생존력'이 낮은 사람? 엘륄도 그 점에서는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공부할 필요는 있겠지만.  


방법철학은 이렇게 딩글러의지주의, 로렌첸의 행위주의 그리고 야니히에 와서는 문화주의로 변모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 번역서는 그[페터 야니히]가 방법적 구성주의 철학의 행위론적 시각을 이어받아 그것을 문화주의적 시각을 가미해 각색하기 시작했던 시기의 저작이다. [296]


잘만 쓰면 취지에 딱인 것 같기도 한데 판단이 안 되네. 페이퍼는 커녕 이 입문서조차 숙독할 시간이 없는 현실로서는 일단 보류. 이 상태로 보고하면 보고하는 시점이 늦었다고 벼락 먼저 떨어지던 과거는 그저 그리움의 대상으로. (난 더이상 단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지 않았을 때 바로가 아니라 그런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온갖 불필요하거나 무리수인 난리를 다 쳐 본 다음에야 여쭈었기 때문에 적절 시점에 비해 결과적으로 두세 배의 시간이 낭비된 다음이 되곤 했다. 과유불급. 이 감은 참 늦게 생겼기에 괜한 고생을 많이 했는데, 여기서는 뭐 이러나저러나 쓸모가 없다.)


Peter Janich (1994): 게다가 학문을 대상으로 하는 메타론적 판단 문제에서는 문외한들도(각각의 과학자들 또한 자신의 학문 분야 이외의 다른 모든 학문 분야에서는 역시 문외한일 것이다), 그들이 과학의 결과들에 의해 일정 방식으로 영향을 받자마자, "과학의 영향권에 든 사람은 과학에 대해 언급할 자격이 있다"는 식의 신념을 가지고는, 자신도 과학 이론들에 대한 나름의 판단 능력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경향을 종종 보인다. 과학에 대한 이러한 식의 사고방식은 마치 누군가가 한 번 의학이나 심리학이 실천되고 있는 병원 같은 기관의 환자나 고객이 되고난 후 이러한 과학적 의학이나 심리학에 대해 자기 자신도 나름의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유사하다. 다시 말해, 위와 같은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유기화학, 인류사, 뇌의 신진 대사 혹은 천체 사건 등과 같은 특수한 과학적 물음들은, 일반적으로 그렇게 이해되고 있듯이, 당연히 특수 전문 지식을 통해 설명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는 반면, (과학 바깥에서 제기되는 주제인) 과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담론에는, 마치 어느 누구라도 그러한 문제에 관한 한 거기서 요구되는 능력들을 충분히 갖추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같이 끼여 논쟁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일상 삶에서의 아주 간단한 경험이 이 같은 사고 방식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우리 삶에는, 한편으로는 그림을 그리고 소나타를 작곡하고 기계를 제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림에 대해, 작곡에 대해, 기계 제작에 대해 하나의 이론이나 과학을 발전시키는 인간의 능력들이 있다는 사실에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과학 활동을 몸소 직접 행하는 것과 과학에 대해 논하는 일이 전적으로 서로 다른 과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즉시 한편으로는 과학 연구 때 사용되는 언어와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에 대해 논의할 때 사용되는 언어가 서로 다른 언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5-16] 

"생활 세계적"이라는 개념은, 여기서 우리가 이 개념에 대한 다른 철학적 의미, 예를 들어 그것에 대한 현상학적 의미는 도외시하고 논하자면, 삶을 헤쳐나가는 실천(Praxen der Lebensbewältigung)과 연계되어 사용되는 개념으로, 이는 다시 기존하는 인간의 실천 영역들은 삶에서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인간의 욕구들을 해결해주고 있음을 말한다. 다른 말로 표현해, 생활 세계적 실천이란 우연히 출현하는 인간의 사치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조건과 삶의 요구 조건 하에서, 즉 빠듯한 생필품과 인간의 여러 요구 조건들 하에 나타나 실천되는 그러한 인간 행위 영역을 말한다. [38]    

-- 이기흥 옮김(2004) 


(영미의) "과학철학에서의 구성주의" 영어 위키와 본서의 "방법적 구성주의"를 차별되는 (독일의) "철학적(급진적) 구성주의"와 함께 하위의 일파인 "에어랑엔 학파"로 다루고 있는 독일어 위키의 내용이 많이 다르다. 역사적 전개만 다르고 뿌리는 같다고 봐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배경만 통하고 다른 내용인지 모르겠네. (한국미학회에서 "구축주의"로 합의한 예술에서의 constructivism과는 별개.) 이래저래 어설픈 상황이라 놀이터에 스크랩. 

주인이 주인 노릇 좀 하게 하려고 그 손에 고삐를 단단히 쥐어 주려고, 먼저 그럴 힘을 갖고자 십 년을 바쳤는데 어차피 위험한 선택이었으니까 결과적으로 실패해도 어쩔 수 없지만 마땅히 거쳐야 할 과정들은 유실된 채로 이처럼 소모적인 비효율로 하루하루가 날아가다니. 뭔가 쌓기는 커녕 그 혹독한 훈련으로 만든 근육들이 많이도 허물어졌다. 여기서는 교육이 엄격하다고 하면 전문성 없이 ad hominem이나 하거나 기껏해야 호사스럽게 (실은 학생의 연구 능력 성장을 저해하는) micro-managing을 받는 건 줄로나 착각들 한다. 이제 오래 못 갈 텐데. 


Saturday, September 11, 2021

methodology

Max Weber: 경험과학은 그 누구에게도 결코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가르쳐줄 수 없으며, 단지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 경우에 따라서는 —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가르쳐줄 수 있을 뿐이다. (김덕영 옮김, 2021: 5)


김덕영 (2021): 왜 같은 과학자 공동체 내에서, 그것도 역사학파 경제학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 있는 과학자 공동체 내에서 세대 간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투쟁이 일어났을까? 왜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내부에서는 심지어 아들인 제3세대가 아버지인 제2세대를 살해하는 사태가 일어났을까? [221-222] 

이에 대한 답은 일차적으로 두 집단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지적-정신적 입장에서 찾을 수 있다.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제3세대는 —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베버를 위시한 일군의 제3세대 학자들은 — 사회학과 사회정책에 대해 제2세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 젊은 세대는 독일이 자본주의적 산업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질서와 세력의 다양화, 집단들이나 계급들 간의 대립과 갈등 및 투쟁의 일상화 그리고 사회적 관계의 물화 및 탈도덕화를 인지하게 되었으며, 이 모든 것은 사회정책학회, 아니 역사학파 경제학이 추구하는 이론과 실천의 직접적인 결합 및 사회과학과 사회정책의 직접적인 결합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사회과학의 과제를 객관적 현상과 과정에 대한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인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사회정책학회와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젊은 세대는, 엄밀한 의미에서 — 단순히 시간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행위와 관계 그리고 사회질서를 규정하고 근거짓는 이념과 원리의 의미에서 — 진정한 근(현)대성을 발견하고 이를 실증적인 방법으로, 그러니까 객관적 사실에 대한 경험적 인식에 입각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통찰했으며, 이에 따라 인식과 행위, 이론과 실천, 과학과 정치, 존재와 당위, 사실과 가치, 분석과 판단 그리고 사회과학과 사회정책 사이의 노동분업과 이에 기반을 둔 상호 협력관계의 의미와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요컨대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제2세대와 제3세대는 공히 근대를 대상으로 하는 과학, 즉 근대의 과학을 추구했지만, 구스타프 폰 슈몰러를 위시한 노장 세대와 이 세대를 추종하는 일군의 젊은 세대는 근대적인 과학을 구축하지 못한 반면, 막스 베버를 위시한 또 다른 일군의 젊은 세대는 근대적인 과학을 구축했다. 전자는 근대(적인 것)에 대한 전(前)근대적 과학에 머물렀던 반면, 후자는 근대(적인 것)에 대한 근대적인 과학으로 나아갔다. 바로 이 두 유형의 과학이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과 사회정책학회에 공존하면서 대립, 갈등 및 투쟁은 불가피해졌으며, 이것이 공적인 형태로 표출된 것이 1909년 1914년 두 차례에 걸쳐 벌어진 가치판단 논쟁이다. [222-223] 


그러니까 내가 '근대성' 개념/역사에 우연히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단지 메이지 때문이 아니라 이것을 알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어느 길을 다시 골라도 여기서 꼭 걸렸으니까. 


Max Weber (1910): 만약 그대가 한 특정한 당위에 대한 관심사에서 진정으로 명료한 이 특정한 가치판단에 따라 행위하기를 원한다면, 그렇다면 그대는, 과학적 경험에 따라 볼 때, 상기한 가치공리에 상응하는 그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수단들을 사용해야 한다. 만약 이 수단들이 그대에게 적합하지 않다면, 그대는 수단들과 목적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그대는, 과학적 경험에 따라 볼 때, 그대의 가치판단을 실현하는 데 불가결한 수단으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다른 부차적 결과들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 그대에게는 이 부차적 결과들도 바람직한 것인가; "그렇다"인가 또는 "아니다"인가? 과학은 그 사람을 이 "그렇다"와 "아니다"의 경계까지 이끌 수 있다 — 왜냐하면 이 경계의 차안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경험적 과학분야가, 또는 논리학이 답을 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다시 말해 순수한 과학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그렇다" 또는 "아니다" 자체는 더 이상 그 어떤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 또는 주관적 취향의 문제이다 — 어쨌든 그에 대한 답이 다른 정신적 영역에 있는 문제이다. 

-- 김덕영 옮김(2021: 236)


내가 썼는 줄. "가치공리"란 말만 빼고. 나의 시대와 정반대 방향의 흐름 속에서 같은 문제의식을 가졌던 베버. 덤으로 사회학자인 그가 왜 문화 연구를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 내가 어릴 때부터 싫어하는 사회학의 방법론 텍스트를 고통스럽게 읽고 있는 이유와 매한가지.      


김덕영: 방법론이란, 연구의 절차나 수단을 기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절차와 수단이 무엇인가를 들여다보는 ‘메타’적인 것 -- 이혜인@경향신문


김덕영: 막스 베버의 '창조적 절충주의' -- 최원형@한겨레 


정독도서관에서 공개 연속 강의하셨을 때 정말 많이 배웠고 복도에서 잠시 뵈었을 때 기억도 강하게 남았다. 면식이 없는 상태였음에도 온전히 100% 제자를 바라보는 눈빛을 받아서. 여태 국내에 chair가 없으시다니, 하여튼 여기 인문계는 만사가 전도되어 있다. 그런데 더이상은 오래갈 수가 없을 텐데.  


Sunday, August 29, 2021

Stephen Toulmin (1958) The Uses of Argument

Stephen Toulmin (1958/2003): 실질적 논변은 자료와 지지작용으로부터 결론으로 이행할 때 빈번하게 유형전환을 행한다. 다시 말하면 이는 바로 우리가 실질적 논변의 각각의 영역을 그 자체에 관련된 기준에 의해 판단해야 함을 의미한다. 인식론에서 근본적인 오류는 이런 유형의 비약을 논리적인 심연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모든 지식 주장이 분석적으로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요구와 그렇게 정당화될 수 없는 모든 것들에 대한 거부는 이런 오류가 도달하는 첫 번째 유혹이다. 다음 단계는 상황을 치유하겠다는 희망을 갖고서, 선험론과 현상론을 거쳐서 회의론이나 혹은 실용주의로 이르는 지루한 열차에 몸을 싣는 것이다. 논변에 있어서 실질적인 단계가 논리적 심연을 나타낸다는 생각을 버리자. 그러면 논리학과 지식론 모두는 좀 더 생산적인 문제들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362]   

-- 고현범/임건태 옮김(2006) 


최초의 지점으로 되돌아옴. 급기야 이럴 것 같은 강력한 느낌에 시달리지 않은 적이 없건만, 선험론, 현상론, 회의론, 실용주의란 네 협곡을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번인지 세는 것도 진즉 잊고 갈팡질팡하는 것도 모자라, 상위의 입증론과 과학적 설명의 문제, 하위의별도의 측정과 계산가능성의 문제 들에 제대로 돌진했다기보다 접근가능한 자료 수색만 하면서 일 년을 보냈다고 여쭐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이 문장으로 지난 일 년이 거의 잘 요약되는 이 사태를 어쩌람? 마치 나에 대한 조서를 보는 듯, 무척 잘 쓰였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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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en Toulmin: '인간 오성의 본성'에 관한 물음들은 많은 경우 심리학으로 가장한 논리학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논리학에서의 혼동은 너무 쉽게 지식론에 있어서의 잘못된 개념으로도 이어졌다. 이런 식으로 논점을 벗어난 경우에도 — 즉 실질적 논변들에 있어서도 — 분석성에 도달하려는 욕망은 회의론으로 이어지거나 회의론에 대한 공포 때문에 마찬가지로 과격하게 실제 행동을 중단해 버리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런 논리학적인 시초의 혼동을 제거할 때만 인식론에 적합한 길은 회의론을 껴안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야심을 조절하는 것이란 점이 분명해진다. 즉 어떤 분야에서건 논변과 지식론이 분석적 기준들에 따를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현실적으로 해당 분야에서 적합하게 요구될 수 있는 그 어떤 종류의 설득력이나 훌륭한 근거를 갖추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형식논리학에서 분석적 이상은 자신의 매력을 수학의 명성으로부터 빌려왔던 것 같다. 고대 아테네와 과학 혁명의 시기 모두 철학사는 수학사와 긴밀히 연관되었다. 그래서 그런 결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명문 기하학 학교의 창립자이자 선생인 플라톤이 모든 학문의 가치 있는 이상을 기하학적 증명에서 발견했다는 사실에 놀랄 필요는 없다. 근대 물리학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데카르트 기하학'의 창시자인 데카르트가 자연과학과 신학의 모든 근본적인 진리를 유사기하학적인 방법으로 세우려는 생각에 매료되었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근대미분법의 발명자인 라이프니츠가 어떻게 철학을 수학처럼 '실재적이고 증명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려는 전망에 환호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것들에 놀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우리가 그와 동일한 이상에 의해서 이끌려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는 그보다 그런 이상을 경계해야 하며, 어느 지점에서 그 이상의 영향이 해로운지를 재빨리 알아채야 한다. 물론 일반적으로 보아서 이런 생각이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석적 이상을 포기하는 것의 일련의 결과들이 명백해지려고 한다면, 모든 필연적인 논리적 구별들을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명심해야만 한다. [383-384] 

우리의 인식론적 문제들의 상세한 원천에 대한 조명은 오직 좀 더 복합적이고, 영역 의존적인 논리적 범주들의 체계를 구축할 때만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 이래로 그가 제기한 감각의 오류 가능성에 관한 문제들은 철학자들을 괴롭혔다. 특히 우리의 모든 감각 경험이 교활한 악마에 의해서 감쪽같이 조작될 수 있으며, 우리를 둘러싼 대상들의 존재와 성질에 관한 기만적인 믿음들을 계속 고수하도록 설정되었을 가능성 — 물론 논리적 가능성이지만 — 이 그러하다. 

처음 봐서는 어떤 문제도 그보다 더 우리의 자존심이나 진정한 지식 주장에 심각하게 도전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사물들이 보이는 방식으로부터 존재방식으로 진행되는 논변들이 여기서 문제를 만들어 내는 바로 그 분석적 타당성을 이상적으로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은 헛된 기대에 불과하다. 데카르트가 주의를 기울인 모든 것은 '논리적 가능성'이며, 이런 '논리적 가능성'(즉 자기모순의 부재)은 사태의 필연적 특성이다. 다른 한편 우리가 실제 논변에서 요구하는 것은 그에 대한 추정들이 실질적 목적에 비추어 반박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결론들이다. [384-385]  

플라톤처럼 데카르트에서도 분석적 이상의 기하학적 연결들은 아주 분명하다. 실질적 논변들이 — 모든 종류의 유형의 비약에 대한 의혹을 포함해서 — '논리적 심연'을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은 순수수학을 위해 만들어진 척도에 비추어서 그 논변들을 측정할 때 초래되는 자연스런 결과이다. 하지만 유형의 비약과 영역의 차이들은 우리가 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우리는 절대로 그것들을 없앨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결론과 그것을 지탱하는 정보 사이의 유형의 전이는 심연이나 결함이 아니라, 논변의 영역에 특징적인 성질이다. 실질적 논변들에는 필연적 함축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 그것들이 분석적 기준에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유감스럽거나 변명이 필요한 것 혹은 심판하거나 변화시켜야 할 것이 아니다. 

실용적인 견지에서 분석적인 보증들이 그러한 경우들에 요구되어지는 것은 과도하다고 말할 필요조차 없다. 정당한 이유가 작동한다는 확신이 우리가 합리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거나 필연적 함축을 논외로 하고 이것을 수용해야 한다는 확신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그런 말이 (우리가 지금까지 도달한 입장과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는 없고) 겸손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관점조차 오해를 유발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논외로 하고'와 같은 말을 쓸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 말들에는 상황이 보증하지 않는 함축된 변명이 있다.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이 논의를 마치는 것이 유익할 것 같다. '논리적 심연'이라는 말에 간직된 경쟁적 이미지가 야기하는 효과를 무마시킬 만한 이미지 말이다. 우리에겐 그런 말처럼 혼란스런 연상을 가져오지 않는 유형 전환의 추론을 그려내는 길이 필요하다. 다양한 가능성들이 제기된다. 즉 하나의 논리 유형을 가진 정보로부터 다른 유형의 결론에로의 이행은 '심연'을 건너는 걸음이라기보다는 '수위'의 변화나, '방향'의 변화, 또는 태도의 변화로 간주될 수는 없는가? 아마도 이 마지막 비유가 가장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태도의 변화라는 것은 적합한 기준으로 판단할 때 시기적으로 부적절하거나, 성급하거나, 시기상조일 수 있거나 그렇지 않다면, 적절하거나, 정당하거나, 시기적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태도가 — 미세하게 구별되는 신호나 동작은 차치하고 — 명확하게 언어적인 것이 되는 지점이 있다. 그래서 두 개의 발화들 간의 논리 유형의 차이는 — 바로 이런 식으로 확장된 의미에서 — 두 유형의 의사소통적 태도 간의 차이이다. 

운전자는 전방도로에 차가 없는 것을 보고서, 뒤차에 추월신호를 보낼 수 있다. 도로가 비었다는 것을 보는 것은 이런 식으로 신호를 보내는 하나의 이유를 제공한다. 다시 말하면 전자는 후자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비록 보는 것과 신호하는 것이 별개의 것이라 해도, 보는 것과 그렇게 하는 것 간에 '심연'은 없다. 다만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신호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만 전방 도로 상태를 지적하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시각과 행위 간의 간격을 메워줄 더 나아간 원칙들을 제공할 필요가 없다. 이제 실질적인 물음은 '신호하기 자체가 보는 것에 필적할 수 있는가, 또는 보는 것이 신호하기에 필적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경우에 보는 것이 신호하기와 같은 (전적으로 구별되는) 활동을 정당화하는가?'이다. [385-387] 

-- 고현범/임건태 옮김(2006)  


툴민으로부터 배운 건 전혀 아니었지만, 그에겐 지적의 대상이었던 것이 나에겐 폭력의 두 원천으로 여겨졌고, 그의 결론이 나에겐 신조로 이미 구축되어 있었다. 구별하지 못했던 고통들도 아니었고, 인식하지 못했던 목표들도 아니었다. 일단은, 이라며 비켜 가려 했던 마음의 수법에 자꾸만 발목을 잡혔는지, 아니면, 사안의 내부 관계적 순서와 진행의 실천 절차를 달리하지 못하는 우둔함인지 모르겠네. 현실적으로 후자에 무게가... 執迷. 

전략에 허점과 기복이 있을 수 있다. 전술을 철회해야만 할 수 있다. 전투에서 패배할 수 있다. 총알에 불량품이 있을 수도 있으면 안 된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글이 있다. 그 말이 알차고 훌륭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할 가치가 충분하더라도. 


Friday, June 11, 2021

just a model

Maurice Merleau-Ponty (1964): 보기와 감각하기를 이해하는 것, 그것은 그들을 잠시 정지시키는 것이다. [60] [...] 그러니까 철학자가 본연의 시각을 일시 정지시키는 것은 다만 표현된 것의 차원 가운데로 본연의 시각을 이행시키기 위해서뿐이다. 요컨대 본연의 시각은 철학의 모델 또는 척도로 남는다. [61] 

-- 남수인 옮김 (2004) 


다음 문장부터가 중요하겠지만, 내 용건은 저자를 이해하기 위함이 아니라서. 그제-어제는 죄의식과 파멸의 시간이었는데, 어제-오늘은 응답과 투정으로 변했다. 자포자기의 상태. 덮지를 못하고 낑낑댔더니, 후회도 못 하게 하네. 대상을 정하는 것부터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방법도 주시려던 거였나 아차 싶어 뒤늦게 한 것도 없이 어렵게 찾아갔었지만, 역시 오해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방법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를 다시 이어갔다. 결과가 없다고는 못해도 당장 쓰기에 적합하지는 않다. 만약 다음들이 있다면 방향은 맞추어야 할 것 같다 보니 순서가 바뀌었을 뿐. 2절이 사정상 술술 읽히기에 이어지는 부분도 한번 기웃거려나 보려던 거였는데, 혼자 어디서 해결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분명한 것 같아서 여쭈려던 질문들에 대한 답이 줄줄 나오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문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왜 (데카르트를 빼고) 여러 프랑스 철학자들은 자신의 전제에 대해서 명시하지 않고 말하기 시작하는 걸까? (출발점과 전제는 엄연히 다르다. 출발점은 장황하리만치 늘어 놓던데. 자기 선생님들과 선학에게 인정받아야 해서 그런지?) 해설이 상납되기를 기다리는 건가? 학위가 없어도 연구 지망이 아니라도 이과생들은 늦어도 학부 과정을 거치며 그 점만은 가차없는 훈련을 받는다. 물론 우리는 그 전제들에 대해 성찰하지 않고 대개는 심지어 검토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의식/선택하지 않고는 어떤 출발도 할 수가 없고, 다만 습관이 안 되어 표현상의 기술을 누락하는 실수를 하는 미숙한 단계가 있을 뿐이다. 마치 축 설명이 빠져 있는 그래프 같은 상태로는 읽어도 읽기가 시작이 안 된다고요. 

이거 순환 논리가 아닌가, 그것도 서로 다른 두 개의 차원에서 2중으로, 했던, 갑갑한 부분들을 조목조목 지적해 주니, 비판이 목적이 아니라 이해가 목적이었던 나에게는 그 자체로 답들이 되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동시대를 철학자로 살았네. 와이트헤드는 안 읽은 것 같지만, 적어도 코펜하겐 해석은 잘 이해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입장에 대한 인식도 면밀하고 정확하다. 1950년대 말이라면 당연한 일 아닌가 생각하지만, 프랑스 문과인들은 20세기에도 과학을 아마 콩트인지 시절의 의미로 일컫는 경우가 많아 보이던데. 아무튼 이 분은 건전하고 정직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차피 따라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나에게는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다.      

게슈탈트는 포기해야겠다. 포기라는 판단을 하는 데 이렇게나 오래들 걸려서야...     

Wednesday, June 09, 2021

William Wordsworth (1802) My Heart Leaps Up

Maurice Merleau-Ponty (1964): 진실적인 것은 사물처럼, 타인처럼, 정서적이고 거의 살적[肉的; 관능적]인 경험을 통해 빛을 발하거니와, 이 경험에서 '관념들' — 타인의 관념들과 우리의 관념들 —은 타인이나 우리의 생김새의 면면이라 할 수 있으며, 이해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사랑 또는 미움 속에서 받아들여지거나 배척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매우 일찍부터 추상적인 동기들, 범주들은 이러한 야생적 사유 가운데서 작용하거니와, 이러한 점은 어린 시절 가운데 성인의 삶이 엄청나게 예시되고 있는 데서 잘 나타나 있다. 결국 우리는 인간 전체가 이미 여기 어린 시절에 들어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어린이는 말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이해하며, 정의는 못 내릴지언정 답변은 잘할 수 있다. 게다가 성인도 마찬가지이다. 진정한 대담(entretien)은 내가 머릿속에 품고 있었음을 나 자신이 알고 있지 못했던 사유들에, 내가 가질 능력은 없었지만 때로 낯선 길에서 나를 좇고 있음을 느낀 사유들에, 그리고 이제 타인에 의해 탄력을 받아 나의 담론이 나를 위해 개척하고 있는 중인 사유들에 도달하게 해 준다.

cf. 기다 겐(木田 元) 해설 in: 이신철 옮긴(2001) [현상학 사전]

샛길이지만 자연히 떠오른 

My heart leaps up


William Wordsworth (1802)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So is it now I am a Man;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
Or let me die!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자연히 생각난 내 책상 서랍 속의 

내 손바닥보다 작은 책. (원시는 1904년 판본에서는 제목이 The Rainbow로 수정되었다.) 초등 2년 여름방학이 끝나가던 며칠 머물렀던 외가의 아파트 단지 내 상가 문구점에서 외할머니가 아무거나 사 주시겠다 해서 골랐던 선물. 조르진 않았다. 어린 시절 이상하리만치 욕심이 없었기에 여러 번 거부하는 바람에 한참 실랑이가 오가고 가게 주인 아주머니까지 거들고 나서야 탐색에 나섰던 기억이 난다. 이미 예의와 도리를 배운 나이였지만, 그래서는 아니었고, 세상에 좋은 것을 굳이 내가 가진다는 것이 마치 들판의 꽃을 꺾어 내 방에 가둬 놓는 것처럼 여겨져서 죽여 버리는 것처럼 느껴져 진심 싫었던 기억들이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안 그렇다. 

가격 700원. ISBN도 없는 1986년 8월 5일 무려 8판 인쇄되고 20일 발행된 한림출판사(발행인 임인수) 편집부의 이름 없는 번역자(들)의 우리말들은 오늘까지 날마다 내 마음속에 고스란히 펼쳐져 있다. 내일도 살아 있다면 그럴 것이다. 나는 여기의 시들에서 처음 배운 낱말들이 많으니까. 백합, 몸서리, 몽기몽기, 첫사랑, 키스, 햇발, 살포시, 라이너 마리아 릴케(여자인 줄 알았다), 아스라이, 강변, 에메랄드, 시몬(남자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중에 게이라는 낱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구르몽과 시몬을 떠올렸다. 물론 낙엽 밟는 소리와 함께), 나그네, 이니스프리, 소네트, (누나 말고) 누이... 셀 수 없다. '프로스트'는 서리이기 전부터 시인이었던 세월이 쌓여 있었고. 무엇보다 교과서에는 학년이 올라가도 잘 나오지 않은 다채로운 어미들과 섬세한 조사들. 그리고 처음 만난 '은유'(라는 낱말은 그때는 몰랐지만), "봄은 고양이로다". 

아홉(만 여덟) 살 때까지 살면서 무지개를 몇 번밖에 보지 못했다. 그러니 그 단어가 얼마나 강렬했던지! 책을 펼치기만 하면 진짜 무지개가 나왔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삽화에 무지개가 없다는 점이야말로 시집다운 미덕이라고 생각한다.(이거야말로 모피어스들이 갖추어야 할 핵심 능력인데.) 사실 삽화는 무려 150편의 시 중 처음 몇 편에만 있다. 나에게 이 포켓북보다 작은 6cm x 9cm "미니 책"은 책이라기보다는 마술 상자였다. 처음 만나는 낱말이라면 그것이 그대로 세계가 되었다. 하지만 이 시는 좀 어려웠다. 특히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이. 그래서 강하게 남기는 했어도, "내 마음을 뛰게" 한 시들은 다른 시들이었다. 

뒷부분에는 원문과 함께 실린 시들이 있는데, 그래서 학교에서 '조사', '어간/어미' 등의 문법을 배우기 한참 전에, 우리말의 조사라는 것 그리고 특히 어미라는 것이 외국어와는 다른 우리말의 특징임을 곧 눈치채게 되었다. 그때의 놀라움과 자부심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다. 여기에 번역된 시가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졌으니까. 그렇다, 나는 그 8월 말의 어느 날부터 수 년이 지나 영어를 처음 배울 때까지, 그리고 중딩 때까지, 이 책을 작은 주머니에 넣고 어디를 가든, 학교에 가든 화장실에 가든, 목욕이나 샤워 할 때만 빼고, 밤에 이불 속에 들어가서도 불 끌 때까지, 친구랑 놀러 나가든, 주말에 부모님을 따라 공원이나 미술관에 가든, 방학 때 계곡이나 바다로 여행을 가든, 소풍이나 캠프나 수련회를 가든, 속상한 일로 잠시 바람이나 쐬러 나가든, 침대에서 뒹굴 때든, 수시로 꺼내 보며 종이가 마르고 닳도록 읽었다. 고딩 때가 되어서야 서랍 속에 두었다. 그것도 미친 교사들 때문에 학교 생활이 너무 험악해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미 버젓한 시집들이 몇 권이나 있어서 덜 찾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몸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 멀어졌다. 그래도 이것 없는 나는 상상할 수 없다. 이 책이, 시들이 없었더라면, 그런 나는 지금의 나와는 분명 아주 다른 사람이다.

게슈탈트에서 외도의 외도의 외도의 외도 끝.



Saturday, May 08, 2021

Martin Heidegger (1957) Der Satz vom Grund 근거율

Martin Heidegger (1957): '인포메이션'은 실제로 현대인에게 가능한 한 빠르고 포괄적이며 명료하게 필요, 욕구, 그에 대한 만족의 확보를 성과 있게 전달하는 보고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인간의 언어를 정보 도구로 여기는 생각이 점차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언어를 정보로 규정하는 것은 사고하는 기계와 거대한 계산기의 설치를 위해 충족되어야 할 근거를 가장 먼저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는 형식 속에 넣음(in-formieren), 즉 [형식 속에 넣어] 전달하는 것(benachrichtigen, 뒤쪽으로 향함)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보는 조직하는 일을 한다. 다시 말해 정보는 설치하고 정렬한다(richten ein und aus). 전달로서 '인포메이션'은 이미 인간, 모든 대상, 부속물을 하나의 형식 안으로 들여놓는 장치(Einrichtung)이다. 이 형식은 지구 전체, 나아가 지구 밖의 것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확보하기에 충분한 것이어야 한다. 

'인포메이션'의 형태에는 모든 표상작용을 위해 송달되고 충족되어야 할 근거의 위력적인 원리가 지배하며, 현대라는 세계사적 시대(Weltepoche)를 모든 것이 원자 에너지의 송달에 매달려 있는 시대로 규정한다. 

우리는 성찰적 사유를 준비하기 위해 근대적 인간과 오늘날 인간이 모든 표상작용을 위한 위력적인 근거명제에서 표명되는 요구를 듣고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예'로 대답하고 '어떻게'를 제시하였다. 오늘날 인간은 근거명제에 점차 예속되면서 근거의 근거명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속이 들음의 유일한 방식도 아니며, 본래적인 방식도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한 번 더 물어야 한다. 우리는 근거율의 요구를 듣는가? 그러나 지금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언제 비로소 우리가 그 요구를 참으로 듣는다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본래적으로 말을 건네는 것에 대해 우리가 응답할 때이다. 도대체 근거율의 요구 속에 말을 건네는 것이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위력적인 근거명제가 말하는 곳을 향해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우리는 '아니오'라고 고백해야 한다. 어떤 점에서 '아니오'인가? 우리가 명백하고 결정적으로 근거율이 본래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을 충분히 듣고 숙고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305-307] 


우리가 '존재는 근거로서 경험된다'고 말할 때, 사태연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드러난다. 여기에서 근거는 '라치오', 즉 해명(Rechenschaft)으로 제시된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해명을 요구하고 해명을 부여하는 생명체, 즉 이성적 동물(animal rationale)이다. 인간은 방금 언급한 규정에 따라 계산적으로 고려하는 (rechnen) 생명체이며, 이때 계산적으로 고려함은 넓은 의미에서 이해된다. 그 의미를 로마상인의 낱말인 '라치오'라는 낱말이 물려받았다. 이 의미는 그리스의 사유가 로마의 표상작용으로 옮겨지는 시기에 있었던 키케로(Cicero)에게서도 이미 등장한다. 

존재는 근거로서 경험된다. 근거는 '라치오', 해명으로 제시된다. 인간은 계산적으로 고려하는 생명체이다. 이 모든 것은 아주 상이한 변천 속에서도 서양 사유의 전체 역사를 통해 일치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사유는 근대적이고 유럽적인 사유로서 오늘날의 세계시대, 즉 원자시대로 세계를 옮겨놓았다.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단순하면서도 섬뜩한 사태연관에 직면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위에서 언급한 규정, 즉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라는 규정이 인간의 본질을 다 드러내고 있는가? '존재는 근거를 뜻한다'는 말이 존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최종적인 말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인간의 본질, 존재에 대한 인간의 귀속성, 존재의 본질은 여전히 계속해서 놀라움을 일으킬 만큼 사유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한다면 오로지 계산적으로 고려하는 사유의 질주와 그것의 엄청난 성과를 위해 사유할 가치가 있는 것을 포기해도 되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면 계산적으로 고려하는 사유에 현혹되어 사유할 가치가 있는 것을 지나치는 대신에 사유가 그것에 응답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우리는 애쓰고 있는가? 

물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사유가 물어야 할 세계 물음(Weltfrage)이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에서 이 땅과 이 땅 위의 인간 현존재에서 무엇이 일어날 것인지가 결정된다. [316-318] 

-- 김재철 옮김(2020)  


프레게를 읽은 직후 [동일성과 차이]를 읽었으니 어설피 의분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겠나. 이만큼 술술 읽히는 건 그토록 열받은 상태로 보낸 세월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부끄럽다고요. 그래도 지금 이런 촉박한 시점에 이 책을 제목만 보고 펼칠 줄 아는 능력이 생긴 게 다 그 덕이라 후횐 없다네. Danke für Ihre Hilfe!  


Secret Garden (2002) You Raise Me Up 
ft. Johnny Log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