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ne 09, 2021

William Wordsworth (1802) My Heart Leaps Up

Maurice Merleau-Ponty (1964): 진실적인 것은 사물처럼, 타인처럼, 정서적이고 거의 살적[肉的; 관능적]인 경험을 통해 빛을 발하거니와, 이 경험에서 '관념들' — 타인의 관념들과 우리의 관념들 —은 타인이나 우리의 생김새의 면면이라 할 수 있으며, 이해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사랑 또는 미움 속에서 받아들여지거나 배척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매우 일찍부터 추상적인 동기들, 범주들은 이러한 야생적 사유 가운데서 작용하거니와, 이러한 점은 어린 시절 가운데 성인의 삶이 엄청나게 예시되고 있는 데서 잘 나타나 있다. 결국 우리는 인간 전체가 이미 여기 어린 시절에 들어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어린이는 말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이해하며, 정의는 못 내릴지언정 답변은 잘할 수 있다. 게다가 성인도 마찬가지이다. 진정한 대담(entretien)은 내가 머릿속에 품고 있었음을 나 자신이 알고 있지 못했던 사유들에, 내가 가질 능력은 없었지만 때로 낯선 길에서 나를 좇고 있음을 느낀 사유들에, 그리고 이제 타인에 의해 탄력을 받아 나의 담론이 나를 위해 개척하고 있는 중인 사유들에 도달하게 해 준다.

cf. 기다 겐(木田 元) 해설 in: 이신철 옮긴(2001) [현상학 사전]

샛길이지만 자연히 떠오른 

My heart leaps up


William Wordsworth (1802)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So is it now I am a Man;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
Or let me die!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자연히 생각난 내 책상 서랍 속의 

내 손바닥보다 작은 책. (원시는 1904년 판본에서는 제목이 The Rainbow로 수정되었다.) 초등 2년 여름방학이 끝나가던 며칠 머물렀던 외가의 아파트 단지 내 상가 문구점에서 외할머니가 아무거나 사 주시겠다 해서 골랐던 선물. 조르진 않았다. 어린 시절 이상하리만치 욕심이 없었기에 여러 번 거부하는 바람에 한참 실랑이가 오가고 가게 주인 아주머니까지 거들고 나서야 탐색에 나섰던 기억이 난다. 이미 예의와 도리를 배운 나이였지만, 그래서는 아니었고, 세상에 좋은 것을 굳이 내가 가진다는 것이 마치 들판의 꽃을 꺾어 내 방에 가둬 놓는 것처럼 여겨져서 죽여 버리는 것처럼 느껴져 진심 싫었던 기억들이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안 그렇다. 

가격 700원. ISBN도 없는 1986년 8월 5일 무려 8판 인쇄되고 20일 발행된 한림출판사(발행인 임인수) 편집부의 이름 없는 번역자(들)의 우리말들은 오늘까지 날마다 내 마음속에 고스란히 펼쳐져 있다. 내일도 살아 있다면 그럴 것이다. 나는 여기의 시들에서 처음 배운 낱말들이 많으니까. 백합, 몸서리, 몽기몽기, 첫사랑, 키스, 햇발, 살포시, 라이너 마리아 릴케(여자인 줄 알았다), 아스라이, 강변, 에메랄드, 시몬(남자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중에 게이라는 낱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구르몽과 시몬을 떠올렸다. 물론 낙엽 밟는 소리와 함께), 나그네, 이니스프리, 소네트, (누나 말고) 누이... 셀 수 없다. '프로스트'는 서리이기 전부터 시인이었던 세월이 쌓여 있었고. 무엇보다 교과서에는 학년이 올라가도 잘 나오지 않은 다채로운 어미들과 섬세한 조사들. 그리고 처음 만난 '은유'(라는 낱말은 그때는 몰랐지만), "봄은 고양이로다". 

아홉(만 여덟) 살 때까지 살면서 무지개를 몇 번밖에 보지 못했다. 그러니 그 단어가 얼마나 강렬했던지! 책을 펼치기만 하면 진짜 무지개가 나왔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삽화에 무지개가 없다는 점이야말로 시집다운 미덕이라고 생각한다.(이거야말로 모피어스들이 갖추어야 할 핵심 능력인데.) 사실 삽화는 무려 150편의 시 중 처음 몇 편에만 있다. 나에게 이 포켓북보다 작은 6cm x 9cm "미니 책"은 책이라기보다는 마술 상자였다. 처음 만나는 낱말이라면 그것이 그대로 세계가 되었다. 하지만 이 시는 좀 어려웠다. 특히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이. 그래서 강하게 남기는 했어도, "내 마음을 뛰게" 한 시들은 다른 시들이었다. 

뒷부분에는 원문과 함께 실린 시들이 있는데, 그래서 학교에서 '조사', '어간/어미' 등의 문법을 배우기 한참 전에, 우리말의 조사라는 것 그리고 특히 어미라는 것이 외국어와는 다른 우리말의 특징임을 곧 눈치채게 되었다. 그때의 놀라움과 자부심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다. 여기에 번역된 시가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졌으니까. 그렇다, 나는 그 8월 말의 어느 날부터 수 년이 지나 영어를 처음 배울 때까지, 그리고 중딩 때까지, 이 책을 작은 주머니에 넣고 어디를 가든, 학교에 가든 화장실에 가든, 목욕이나 샤워 할 때만 빼고, 밤에 이불 속에 들어가서도 불 끌 때까지, 친구랑 놀러 나가든, 주말에 부모님을 따라 공원이나 미술관에 가든, 방학 때 계곡이나 바다로 여행을 가든, 소풍이나 캠프나 수련회를 가든, 속상한 일로 잠시 바람이나 쐬러 나가든, 침대에서 뒹굴 때든, 수시로 꺼내 보며 종이가 마르고 닳도록 읽었다. 고딩 때가 되어서야 서랍 속에 두었다. 그것도 미친 교사들 때문에 학교 생활이 너무 험악해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미 버젓한 시집들이 몇 권이나 있어서 덜 찾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몸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 멀어졌다. 그래도 이것 없는 나는 상상할 수 없다. 이 책이, 시들이 없었더라면, 그런 나는 지금의 나와는 분명 아주 다른 사람이다.

게슈탈트에서 외도의 외도의 외도의 외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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