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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September 24, 2026

Jung, Jun Hee's Argument EP#203

[정준희의 논] 203회 우리는 왜 자주, 나쁜 사람들을 선택하는가? 권력의 심리학ㅣ브라이언 클라스

on: Brian Klaas (2021) Corruptible: Who Gets Power and How It Changes Us 권력의 심리학

2026-09-04 



Saturday, August 15, 2026

홍사훈쑈 Hong Show 260814

[홍사훈쑈] 박주민 x 최강욱 x 한창민 

2026-08-14 Fri.  


워낙 유능한 사람들만 모여 있으니, 이례적으로 주제가 혼잡한데도 핵심들로만 생산적 논의. 전혀 맞지 않는 상황 속의 나에 대해서도 돌아보고 점검하는 데 도움이 되네. 


Saturday, June 13, 2026

백낙청 Paik Nak-Chung @ Jung, Jun Hee's Commentary

[정준희의 논] 변혁적 중도의 때, 정말 왔나?ㅣ2026년 6월 11일 목요일 
on: 백낙청 (2026)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 -- 나라다운 나라를 어떻게 만들까 
(P) (주)명랑사회 



중학교 시절부터 용돈을 모아 15년 넘게 뉴턴, 과학동아, 내셔널지오그래픽 한국판,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했다. 매월 책장이 너덜해지고 책등이 헐거워질 때까지 여러 번 탐독하던 중에도 유일한 계간 창비만은 일회도 완독하지 못하곤 했다. 몸집이 작아서 그렇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조숙했던 나는 이미 머리가 너무 컸고, 그런 팔팔한 눈에 백낙청은 처음부터 어쩐지 기회주의로, 상황과 무관하게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교묘한 회피술로 느껴지는 감이 있었다. 판단까지 내리기에 필요한 지식은 없었고. 다만 만약 그런 게 균형 감각이라면 나는 원하지 않겠노라고. 하지만 섣불리 특정 편향에 치우치는 길로 들어섰을 때 내 위치를 감지할 수 있는 지도도 판별력도 없는 상태였기에 말하자면 창비는 내게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임시 경로로 여겨졌던 것.(지금 보니 날카롭게 정확했잖아.) 고진의 명성을 업고 기득권을 휘둘러 '세계 문학'을 밀어 붙이면서도 포스트모더니즘 자체를 우위에 두거나 서정을 폐기하지 않는 신중함이 마음에 들었고.(난 오영수의 딸이므로, 그때나 지금까지나 줄곧 핏줄을 끊긴 기분이거든. 창비는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상태로 끝까지 남아 있었기에 소중했다.) 내가 하필 문학동네 취향이 아니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시류에 영합하지 않아도 되는 그들의 무게는 성장기의 내게 무차별하게 건강한 긴장감을 주었다. 그런 건 마음만 먹는다고 생기는 종류의 무게가 아니라는 것은 알겠었으니까. 뭐랄까, 교감 선생님 같은 존재였달까. 매력적이진 않지만 존경해야 할 것 같은. 경계를 늦추지는 못하지만 잠시 머물러도 되겠다는.   

매일 모욕감을 느끼지 않기 힘든 사정 속에 있으면서도 이런 일엔 비교적 개의치 않는 성격 덕분에 더욱이 MZ 세대에게서 나는 희망을 훨씬 많이 발견하는 편이다. 계속 귀를 열어 놓고 있다 보니, 내가 선거 직후보다 직전에 극심한 불안과 회의감에 시달렸던 것은 꽤 큰 차이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선거일 며칠 전부터 여러 꾀병으로 고생했고, 후에는 오히려 '정상적인' 반응들로 위로와 희망을 얻고 있는 셈이니까. 만 열 살부터 따라가 보았던 백낙청보다는 이십 대에야 전국민과 함께 만난 도올 선생님의 제자라 자부하고, 그가 유튜브 채널들을 살리려고 선생님을 백방으로 이용하는 수도 너무 훤히 보이는 게 거북스럽기는 하지만(정작 선생님께서 어려우셨던 시기에는 접촉이 없었다고), 역시 거대한 시야에서만 나오는 안목은 필수적이다. 이제야 한 수 배울 만큼 내가 컸구나. 그 양분 속에서.         


문학의 힘이 포용력인 한 문학은 영원할 것이다. "Das Ewig-Weibliche, zieht uns hinan." 


Thursday, March 19, 2026

검찰 개혁 Prosecution Reformation

2026-03-18 [뉴스공장]





 


천재 대통령한테 농락당하다. 😆오늘부터 발 뻗고 잔다. 실은 내 의심에 걸린 건 총리실이었다. 미안.

나 농락하기 쉽지 않은데, 농락하는 데 성공했다 믿는 멍청한 사람은 가끔 있지만. 인류애의 가능한 크기를 감히 가늠 못 하는. 역행 보살에 그저 감사.  

이제 공장장 좀 덜 보고 살자. 마누라도 아니고. 좀 내 삶도 삽시다. 

이제 우리 그리워해도 될까, 노짱. 

Monday, April 28, 2025

review: Lee Cheol-Hee (2024) Population Crisis in South Korea

[알릴레오북스 6기 1화] Will South Korea disappear due to population decline ?
Lee Cheol-hee / Professor of Economic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on: 이철희 (2024)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 - 새로 쓰는 대한민국 인구와 노동의 미래 
(P) 2025-03-28 Roh Moo-hyun Foundation


유시민: " 학문 연구와 현실 정치 사이에 깊은 밀접한 연관 관계가 있을 때 한 사회, 한 국가의 정책이 바로 설 수 있겠구나, 하고 느꼈어요. "  


여기가 대학원.  


유시민: " 제가 평소에 인문학, 사회과학, 인문과학, 그렇게 얘기를 하지만, 사실 경제학부터 시작해서 문학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사회를 탐구하는 학문을 통칭해서 인문학이라고 하면, 인문학에는 증거가 없이 하는 주장들이 참 많아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증거가 있기 힘든 게 많거든요. "


난 현대 경제학, 현대 사회학, 실증주의 역사학을 '인문학'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지만...


기력이 계속 없어서 할일을 못 하고 있어요... ㅠㅠ 정말 요즘 채점 말곤 한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까지 탈진했지? 감기 걸렸나??

+ 

슬럼프군. 원인은 너무 알고. 싫다. 


Sunday, April 27, 2025

review: Robert O. Paxton (2004) The Anatomy of Fascism

[알릴레오북스 6기 5회] 파시즘 완전 분석
패널: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 
on: Robert O. Paxton (2004) The Anatomy of Fascism  
손명희/최희영 옮긴 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기획: 정선영 / 연출: 정일채 / 작가: 서자영
(P) 2025-04-25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현실과 교류하는 사법 체계" => (연방) 헌법재판소(Bundesverfassungsgericht), 헌법보호청(Bundesamt für Verfassungsschutz)


" 파시즘은 공동체의 쇠퇴와 굴욕, 희생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 에너지, 순수성의 숭배를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이자, 그 안에서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결연한 민족주의 과격파 정당이 전통적 엘리트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 법적인 제약 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 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 [487]  


늘 자각하고 있듯이, 어릴 때부터 폭력에 극도로 민감하고, 아직 채 폭력이 아닌, 폭력과 거의 반대편이라고 흔히 여겨질 만큼 먼 상태에 깃들어 있으나 언제든 폭력으로 드러날 씨앗의 윤곽을 들여다보는 육감이 가장 근원적인 고통이다. 사랑, 권위, 조화, 교육, 친절, 성실, 전통, 관습, 유대, 봉사 등의 이름을 탈로 쓰는 폭력들, 파괴적 욕망들. 진짜 사랑, 권위, 조화, 교육, 친절, 성실, 전통, 관습, 유대, 봉사에는 이중의 탈이 없다. 그것들은 목표도 계획도 결심도 열매도 아니고, 효력이고 꽃이고 기적이고 눈물이다. 덤이다. 정말 순수했다면. 애초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덧 휘감고 사라지는, 다시 올 때를 기약 없이 준비하는, 반짝이는 기억일 뿐. 어쩌면 당사자보다 제삼자의 눈에 더 아름답게 관찰되는. 지나고 나서야 희귀한 선물이었음이 밝혀지는. 

사람들의 자기기만 연출력이 무섭다. 특유의 아름다움이라지만. 천연덕스레 천 가지 얼굴을 한다. 자기 욕망을 포장하는 것은 좋다. 예의고 자제고 때로 승화다. 하지만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을 놓치면 자주 참사가 일어난다. 예뻐서 죽였니? 그냥 한번 꺾기만 했다고?

자기 자신과 친하지 않은 사람은 피하기. 미리 거슬러 주어야 할 의무. 나는 반폭력주의자. 평화주의자의 음침한 폭력이 환히 다 보여서 괴로운. 각종 사랑이라는 이름의 교활한 칼날이 움직이는 속도에 눈이 시린. 세심히도 가공되어 부서지는 원석들이 뼈아픈. 사라져 버린 가능 세계의 그림들이 선명할수록 아까운. 아끼는 마음들을 간직하기. 많은 사람들이 진짜는 너무 멀어 피곤하단다. 체력의 문제다. 농부의 노래, 어부의 냄새. 점수도 월급도 없는. 잊힐 것도 없는. 주인의 삶. 

싸워야 한다. 때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武. 


Friday, October 04, 2024

review: Machiavelli (1532) Il Principe 군주론

[알릴레오북스: 5기 30화] 정치란 무엇인가?
박구용(전남대 철학과)
on: Niccolò Machiavelli (1532) Il Principe  군주론
2024-09-27




[알릴레오북스: 5기 31화/최종] 공화주의의 출발
2924-10-03



오랜만에 인생 고민이 많은 나날 중 핵심을 뒤늦게 배움. 


Monday, September 18, 2023

정치의 사법화 judicialization of politics


[27:20] 정치의 사법화 - 여지, 다양성, 유연성

[34:00] 국가 폭력 범죄 




법을 이용한 지배(rule by law) vs. 법의 지배(rule of law) 


" 보통 식자층 사람들은 했던 말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세월이 지나도 자기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권력 중심 인간형에게는 말의 일관성이나 정합성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지금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말이 무엇인지 생각해서 그 말을 한다. " 


그러니 가능하면 유의미한 발언은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손쉽고 유리하다고 여긴다. 효율적인 현명함의 실행적 노하우라고 자부한다. 가급적 문자 기록을 피하고, 부인 또는 망각할 수 있는 모드와 상대에게 거꾸로 뒤집어 씌우기 편리한 간접 표현을 선호한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끔찍하게 잘 보여 준다.) 그러므로 권위주의는 겪어 보면 실상 실리주의이다. 말을 상급자의 말을 하급자가 따르는 용도로 작동시킬 때, 그로써 우선 공익을 넘어 나아가 평화주의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얻게 된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모든 사람은 기능이다. 평탄한 성공학. 

正名論을 따르는 나와는 상극. 그들 편에서 보면 정명은 십자가라는 흔한 과대망상의 일종으로 취급된다. 기껏해야 어리석은 여유작작, 깨알같은 성질머리. 결국 쉽게 제거할 수 있는 잡풀로 여긴다. 성심도 책무도 어떤 가치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정명의 실천은 막상 명분이나 명예, 단순한 강직과는 차원이 다르다. 당장 중니 선생님의 술책을 보라. 또,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요물 같은 봉지미 캐릭터가 일관되게 정명을 사수하는 방법을 보라. 정명을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는 그의 총명과 충심을 역성 황제마저 아낀다. 협박자와 배반자라는 십자가를 거듭 선택한 한 정치인의 처절한 사명감을 현실에서 보고 있고. 도통 권위주의자에게 권위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던가? 권위란 오직 타인이 기껍게 선사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페티쉬즘이다. 신뢰에서 출발하고. 자신은 세울 수도 지킬 수도 없다. 우리에게는 모든 성공의 원인을 자신에게 두려는 악습이 있다.  

내가 유자임을 알아본 유일한 사람이 독일인이었다. 물론 한국에서는 들키지 않아야 무사하다. 어쩌면 이국에서 난 방심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눈을 알아보지 못했고, 앞뒤가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의식적 제국주의로 오해했다. 볼프를 읽고서야 아팠다. 읽기란 단순히 환경을 뛰어넘는 정도가 아니다. 읽기는 상황보다도 결정적으로 사람을 결정한다. 사람 사이의 일을 결정한다. 애초 난 심지가 무른 사람과는 잘 어울리지를 못한다. 


Friday, May 27, 2022

Community of practice

 https://en.wikipedia.org/wiki/Community_of_practice

ref. Jean Lave & Etienne Wenger (1991) Situated Learning 


cf.

설문원 (2021:19, f.1): 여(Yeo)는 앞의 글에서 "공통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고 유사한 방식으로 체계를 이해하도록 학습된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정의를 채택하고 있으며, 경영학이나 조직학에서는 "특정한 주제에 대한 문제점과 생각들을 끊임없이 나누면서 서로의 지식이나 전문성을 발전시키는 비공식 집단"이라는 정의가 사용되고 있음.  


20중-30초 십 년 정도 이러한 활동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지만, 서울에서였기 때문인지, 그러니까 주로 한국인, 조직이 없어서였는지, 그러니까 한국...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개개인의 목표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공통의 목표란 표방일 뿐, 동상이몽. 표리부동의 괴리가 너무 멀다. 문제는 위장하는 것은 좋은데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 의도적으로 낚시하려고 작정하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별도로 대응할 수 있으니 의외로 위협이 되지 못한다. 깔끔하게 치고 빠져 주면 오히려 활력을 주기도 하고.) 아무튼 그 어떠한 경우에도 누구의 마음도 다치지 않게 하는 길을 만드는 방법만 알게 되었다. 그것이 결국 가장 중요하다는 진실과. 새옹지마의 취약한 공동체 버전. 그러나 결국 나 자신은 사람을 가리는 사람이 되었다. 조금 현명해졌다고 해 줄까. 모르겠지만, 여전히 아쉽다. 조직 안에서는 어떨지 궁금하긴 하네. 희망적으로. 내 희망은 안 되더라도.


Sunday, November 14, 2021

윤흥길 (Yun Heung-Gil, 1977)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The Man Who Was Left as Nine Pairs of Shoes)

[알릴레오 북's] 윤흥길 (1977)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Yun Heung-Gil (1977) The Man Who Was Left as Nine Pairs of Shoes


내용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내게도 재명 씨의 참외나 시민 씨의 구두처럼 마음에 남은 것이 있는데, 대상이라기보다는 낱말인 '소주'다. 읽을 때 소주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그때 난 '아버지'란 말을 잘 몰랐을 정도로 어렸다. 아마 전체 25권짜리 창작동화집에 들어 있던,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소주를 사 오는 것이 일상인 아이가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는 이야기였는데, 나중에 모친께선 네 아빠란 초등학교 고학년 때나 읽을 책을 유치원에 가기는 커녕 한글도 모르고 아직 기어다니고 있는 아이한테 사 온 인물이었다고 짜증내셨다. 하지만 난 그 말을 듣고 아빠는 나를 위해 샀던 것이 아니라 파는 사람을 위해 사 주었던 것이리라 생각했다. 아무튼 그 책들을 '읽기' 전까지 몇 년 동안 장난감처럼 블럭 쌓기를 하느라 양장 제본이 너덜너덜해지도록 가지고 놀다가 나중에 좀 더 커서는 책장마다 크레파스로 온통 떡칠을 해 놨기에 난 유아기 때부터 자신의 성장을 꽤 실시간으로 실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동생은 얌전해서 유아기 때도 그런 짓을 전혀 하지 않았으므로 집안의 모든 범행은 죄다 내가 저지른 것이었다. 모친께선 지금도 있는 칸마다 유리창이 달린 고급 서가의 뒷면에까지 기어 들어가서 낙서를 해 놨다며 질려 하신다. 난 모르는 일이라는 듯 웃고 말지만...) 실은 내가 왜 그렇게 미친 듯이 떡칠과 무얼 그렸다기보다는 갈겨 놓는 짓을 해 놨는지 그 심경을 기억하고 있다. 그림은 알겠는데 도통 정체를 모르겠는 '글씨들'이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어른들끼리만 공유하는 비밀 암호(?)임을 알게 되었을 때는 눈물이 찔끔찔끔 날만큼 분하고(?) 엄청난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절망적인 현실이 버거웠다. (당연히 이건 지식욕이나 학구열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성질머리다...) 나중에는 손으로 물건을 쥐는 힘을 더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되었는지 글씨 흉내를 내려고 지그재그나 물결 같은 식으로 반복적인 모양을 갖추게 된다. 아무튼 그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진이 빠지도록 펑펑 울었고 책이 사람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을 수 있는 위력이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난 문학을 '전공'한다는 사람이 무섭다. 꼭 자기 아이를 수술할 수 있는 외과의사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이래저래 지도교수님이 얼마나 무섭겠어.) 그 책들로 처음 알게 된 것이 너무 많아서 다 쓰자면 책을 몇 권 써도 모자라겠군. 예를 들면 남을 아프게 하는 무섭고 나쁜 사람도 다른 이유로 아픈데 그 아픔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심해서 그러는 걸 수 있다는 사실 등. 그 전집의 창작동화 작가들의 문학성이란 가히 내가 늙으면 늙을수록 떠올릴 때마다 그 위대함이 더욱 크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알게 된 것들이란 사실 글로는 다 생략되어 있었으니까. 자연히 두고두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 이런 것만 공부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학습자의 입장에서는 문학과 수학은 유사 과목이다.)    

그래서 소주는? 소주 때문에 난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악랄하고 멍청한 아귀들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을 나에게 부여하게 된다. 그리고 전력을 다했다. 최선에는 끝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현실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무한한 창의력을 의미한다는 것도. 난 이 아이들 중에 집에 가면 엄마가 없고 소주 사 오라고 하는 어른 남자가 있는, 그리고 나면 그 사람이 잠들 때까지 집에 들어가면 안 되는,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그런 사정들을 전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너무 많은 것들을 요구하면서 폭력이나 일삼는 것들이 저들을 사람 취급해 달라는 강요에 쉴 틈이 없었다. 단적으로, 반에 6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으면 매일 아픈 아이가 한두 명씩은 꼭 있고 많은 날은 대여섯도 된다. 그리고 지금은 더 빠르겠지만 그때도 4학년쯤 되면 친구의 도움을 받을 때에도 자존심을 먼저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아진다. 동시에 교사 중에 아이들이 자신을 어른의 눈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있다는 느낌에 노이로제로 반응하거나 자신보다 상황을 더 잘 처리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분개하는 개체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또 어떤 개체들은 자신의 업무를 나에게 할당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특정 학생에게 그래도 되는 일과 그러면 안 되는 일을 구분하는 것조차 못 한다는 거다. 정말 작전을 보통 잘 짜야 되는 게 아님. 아무도 몰라야 가장 좋다.  

맥주 마셨지롱.   

Monday, April 05, 2021

meritocracy

"노력주의로 변신한 능력주의"(김만권, 2021: 269)란 구절에 극렬히 동감하던 중 근본적인 시각차를 절감하였다.    

능력주의(meritocracy): '지능(I.Q) + 노력(effort) = 능력(merit)'이라는 등식 아래, '개인이 지닌 능력'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개인의 성취를 좌우하는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발상 (Michael Young, 1958) 

이라는데, 공식의 "지능" 항이 출생이라는 운에 달려 있다는 것. 정의상의 "IQ"가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을 인지 심리학이 보증하고 있음을 알지만, 존중하여 "선천적 재능"으로 말을 바꾼다면 무슨 딴지인지 전달될까? 

김만권(2021: 273): 사랑하는 이들에게 능력이란 덕목을 요구하는 대신, 보호라는 제도의 우산을 씌워 주세요. 

또한 같은 내용이라도 이렇게 표현이 다르면 의미도 다르게 느껴지니 맘에 걸리는 데가 있다. 다양한 것들을 일렬의 순서로 세울 수 없기 때문에 하나의 공통의 것(그것이 공정한 복지이든 평등한 권리이든 다른 무엇이든)의 기준이 될 수 없고, 이것은 불평등이나 민주주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야기하는지 침해하는지를 따질 계제 이전에 기본적으로 인권 자체의 문제이다. 결과적으로 인간 존엄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과정을 분석할 사회학이나 성찰할 철학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그러니까, 질적인 것을 서열화할 수 있다는 발상을 전제로 한 모든 다방면의 시도 자체에 생리적으로, 거의 천성적으로, 전폭적으로, 과민하게 반발하는 성질을 가지고서 AM을 비판이 아닌 설명을 어떻게 하겠느냐고요... 그런 이유로 유치원도 다니기 힘들었는데. 친절했던 교사가 우리들을 하나, 둘, 셋... 세는 걸 보고 충격 받았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왜냐하면, 그런 내가 얼마나 이상한 건지 아니면 설마 아닌지 어른이 되면 알겠거니 해서 그때까지 이 사태를 잊지 말자고 다짐했었기 때문에. 학습지에 네 개의 사과와 세 개의 귤 그림 옆에 4+3=7이라고 써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7까지 가기 전에 4부터 문제였다. 아니, 맨 왼쪽 사과와 두 번째 사과가 왜 같다는 것인지 끔찍스러워서 오랜 세월 고민이었다. 사과와 귤 들한테 너무 미안하고 슬펐다. 숙제를 안 할 수는 없고, 아쉬운 대로 서로 다른 색깔 색연필로 칠해 줬다. 아래로 비슷한 문제가 여러 개인데 색연필 개수가 열두 개밖에 안 되어서 애가 탔다. 최대한 다른 색으로 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리했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검은색 사과와 보라색 귤이 생겼다. 그것이 조합론의 문제인 줄은 십 년도 넘게 지나서야 배웠지만.    

나 참 살기 힘들었구나. 확실히 지금이 더 편한 것 같지?  

어쨌든 모든 인간은 서로 다른 면에서 탁월하다. 덧붙여 한 사람이 탁월한 분야는 늘 둘 이상이다. 물론 능력보다 성공이 더 운에 좌우된다. 상황이 바뀌면 강점이 약점 되고 약점이 강점 된다. 어쩔 텐가? 복지가 아니라도 공정성이 아니라도 민주주의가 아니라도 사랑이 아니라도 예의가 아니라도, 신자유주의라도, 다른 어떤 경우라도 일렬로 세우면 안 된다. 사람한테. 

  

Friday, January 29, 2021

postModernism

노선을 정할 수준도 못 되고, 지금 그럴 필요가 꼭 있어야만 하는지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이 세계에 어떤 갈래들이 이미 있는지는 알아 두고 싶다. 나에게는 과거의 개인적인 고민들을 하나씩 해결하려는 희망과 미완성의 지도를 채워 나가려는 내적 동기 말고 남아 있는 것이 이제 없기 때문이다. 자기모순을 감내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만큼 절박하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에서 공부한 사람은 몰라야만 어떤 것들을 유지할 수 있는 어떤 것들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런데 독일 학위자가 그것을 출판될 책에서 보란 듯이 꺼내 놓았다. 

 

이순예(2015): 그런데 이 '몸짓'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자기 토대를 망각한 운동이었다. 자유를 보편이념으로 추대할 수 있게 해준 토대가 다름 아닌 산업혁명을 촉발하고 성공시킨 과학주의였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그 과학적 해명방식을 못마땅해 하면서 자유자재로 해명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더 풍요로운 세상을 위해서라는 깃발도 내걸었다. 누구에게나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으므로 세상을 '제대로' 해명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계몽에 임하는 자는 타인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사안에 맞는 해석을 하겠다는 노력은 해석의 중심을 계속 거머쥐려는 권력의 속성으로 분류되었다. 모든 것이 가능하므로 더 큰 가능성을 위해 모든 제한이 철폐되어야 한다는 주장(anything goes)은 실제로 결실을 거두었다. 자본이 모든 경계를 넘어서 자신의 논리를 관철하는 신자유주의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p. 31)


이 분은 그 어떤 것들 중 하나를 터트릴 셈이셨던 걸까? 그 어떤 것들 중 하나보다 그 셈이 잠시 더 궁금해졌다. 지금의 내가 밑줄 쳐야 했던 부분은 이 다음부터였지만, 파생한 상황들이 아닌 핵심적인 사실로부터 모두의 현실을 연결짓기로 이만큼 깊이 찌른 것을 처음 보았다. 

자신이 규약주의의 정합론에 근거한 경기에 임하고 있음을 모르는 과학자/공학자/기술자는 20세기 이후로 없다. (없는 것이 정상인데, 가끔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문제는 그 소수의 예외 경우 중 대중에게 말을 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규칙에 따라 당락과 점수가 매겨진다. 그 규칙에는 종류들과 변종들이 있고, 세칙과 예외규칙 들로 이루어진 위계가 공개되고 끊임없이 개정된다. 모든 참가자는 개정안을 낼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전공을 벗어나 무언가를 이해하고자 할 때에도 또한 규칙을 먼저 묻게 된다. 내용이나 심지어 권한보다 방식이 절차상으로도 우선될 수밖에 없다. 풍부함 또는 열린 문들, 그리고 모호함이란 탈을 쓴 직무유기의 게으름 또는 접근금지 푯말로 위협하는 폐쇄구역 지정권의 남발 사이에 무슨 은밀한 연락망이나마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받아 주기 어렵다. 언어의 문제로 치부해 줄 수 없는 꿍꿍이가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곳에서는 질문을 듣지 않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자리는 이미 꽉 차 있고, 해가 지지 않는다. 일종의 유토피아는 실제로는 볼 때마다 공포스럽다. 나는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지만, 들어가고 싶지도 않다.  


Tuesday, December 08, 2020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Catholic Priests Association for Justice

[노컷뉴스] 천주교 사제와 수녀 4천 명이 7일 기자회견을 열고 현 정부의 검찰개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천주교 사제·수도자 3951인 선언


사제 김영식: 법을 공부한 사람보다 법을 외우기만 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외우기만 해서 법을 줄줄 읊어대는데, 순리대로, 상식대로, 자연의 이치대로 가고 적용되는 것이 법이라는 사실을 모르니까 법하고 밥을 바꿔치고 장사하는 거죠.  

 

Wednesday, December 02, 2020

비밀의 숲 Stranger (tvN, 2017/2020)

비밀의 숲 Stranger (tvN, 2017/2020)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는 타협해서, 타협하면서 대신 내가 타협했던 모든 일들을 절대 잊지 말자고 다짐해서, 내가 막지 못하고 공범이 되었던 직접적 폭력들과 간접적, 잠재적 피해들도 잊지 않으려 노력해서, 그 이후로는 타협할 수 없었다. 처음엔 내가 굴복했었던 물리적인 폭력에 대한 공포가 재발되어 신체적인 저항감 때문에 힘들었는데 나중에는 사회적인 폭력, 폭력을 넘어선 사회적인 살해가 더 손쉽고 또 더 무서우며 방어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갈등이 일었다. 그래도 계획대로, 타협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은, 타협하는 나를 다행히도 용서하지 않았던 때문이다. 인색했던 과거의 마음이 현재의 계산적인 머리를 이기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타협하지 않는 것도 힘이 있을 때에나 조금이라도 유효하다는 깨달음이었다.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힘을 가질 수 있으려면 미리부터 평소에, 그러니까 늘, 나에게 훨씬 더 엄격해야 가능하다. 예외나 모자람이 있으면 안 된다. 뒤늦게 깨달은 것도 오래전인데, 아직도 그렇게 되지 못했다. 


spoiling!

타협하지 않는다 해도 힘이 없으면 사회적 생매장이나 무고를 당하고, 단지 상대방에게 그 방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 하나만을 은밀하게만 알려줄 수 있을 뿐이다. 그것으로는 누군가의 심기를 잠시 조금 불편하게 할 수 있을 뿐 아무런 유익이 없다. 보복, 제거하는 경험과 그것을 목격하는 경험을 하게 하면 원래의 행위와 동기가 더 강화되고 정당화되어 고착될 뿐이다. 무엇이든 어설프거나 모자란 것은 아니함만 못하다. 강할 정도로 착한 경우에만 착하다. 선을 달성하려면 어떠한 타협도 없이 휴식도 없이 지극하고 투철해야만 한다. 지선(至善)만이 선이다. 중간은 없다. 아니면 나와는 타협하면서 남과는 타협하지 못하는 꼴밖에 되지 못한다. 그러니까 좋게 말해 봐야 미련하게 버티기만 할 뿐인 표리부동한 내가 한심하고 못미덥다.  




독일에 있을 때 유일하게 또 몇 년만에 본 한국 방송이었기에 이번에 2기를 챙겨 보았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황시목이 말이 없어지는 장면에서 나도 같이 가슴이 철렁했다. 드라마가 아닌 나의 상황으로. 살면서 숱한 도움을 받았지만 내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청한 적은 없다가 처음 그러고 있었다. 그 마음을 먹기까지도 죽을 만큼 어려웠고, 실행하면서는 도저히 나 자신을 유지할 수가 없어 새로운 자아에 이름을 붙이기까지 했다. 남들은 보통 거절당할까 봐 걱정하는 것 같던데 나는 그것은 두렵지 않았다. 사정이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나로선 절실했다. 단지 묻는 것까지는 되겠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고 생각할 뿐. 아무튼 "도와 주세요"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말한 것과 다름 없었다. 그래서 위에서 선배 검사장이 지적할 때 나도 깜짝 놀랐다. 나 때문에 곤란해지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리고 선택권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도 있었기에, 그런 식의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었던 것도 내용은 다르지만 드라마 상황과 비슷하다. 게다가 황시목과 달리 나는 이전에는 그렇게 산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늘 검토하고 의식하고 있었기에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익숙해진 마음이 생겼구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바라면 안 되는 것을 나도 모르게 바라고 있는 것은 없는지 다시 점검해야겠다고. 


spoiling!
황시목: 어떻게 끝날지는 최 부장님께서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 저는 그런 한여진 경감의 안목을 믿고 지금 여기에 왔습니다. 어떠한 양심에 기대를 걸어서가 아니라요.  

그래도 이 심정 안다고 말할 자격은 있는 것 같다. 두나 님과 같이 울 자격. 

미친 현실 도피 중. 

Saturday, April 13, 2019

Brian Martin (2007) Obstacles to academic integrity

Brian Martin (2007) Obstacles to academic integrity
연구진실성 문화 확립을 막는 5가지 장애물과 그 대응전략 (국역 연구진실성검증센터)


Brian Martin (2013) Countering supervisor exploitation

이런 글을 찾아 읽으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현실이 새삼...

학생은 학생이 해야 할 일에만 전력을 다하고, 스스로 자신을 책임질 수 있으며,
그에 대한 평가와 결과는 전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느끼도록
해 주는 분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

배우려고 한다는 것은 언제나 죄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Thursday, May 03, 2018

강남 1970 Gangnam Blues (Yoo Ha, 2015)

강남 1970 (Gangnam Blues)
연출: 유하 (Yoo Ha) 2015

KMDb: 강남 1970
iMDb: https://www.imdb.com/title/tt3698118

e-book: 강남 1970


2018-05-02 물의 밤 @내 방

박정희의 대선 자금 마련을 위해 진행되었던 '남서울 개발 계획'에 휘말린 폭력배들의 이야기. 이것은 이명박과 박근혜 덕분에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하고 곧바로 이해가 가는 역사가 되었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그 맥락을 볼 수 있다. 원조 격이다. 국토의 지도와 사회의 계층 구조와 시대적 가치관의 기준을 바꿀 만큼 엄청났던. (자고로 태조만한 인물이란 왕통에 없다 했던가.)

그 사이, 벼락 부자의 속물 근성이 비웃음과 타박거리에서 경외와 꿈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갑질의 정당화 원리와 그보다 더 무서운 동조적 침묵 기제의 탄생. 샤일록의 순진함이 아닌 김선달의 성실함. 아는 사람은 다 알아 모르면 그저 바보일 뿐 아니라 게으름뱅이가 되는 그것. 교사와 상관, 교수와 상사에게서 습득하는 생존 법칙. 학위와 승진 여부를 가르는 기준선이 그어지는 역학 공식. 성욕 자위 도구를 직장에서 제자와 후임으로 사용할 줄 알아야 확실히 안심할 수 있는 권력. 넣어 줄게는 때려 줄게는 살려 줄게인 등식. "가만히 있어라"라는 음성이 이토록 당당해져 갔던 과정. (그 중간을 나도 살아남았다. 중고등 시절 가장 많은 힘을 기울였던 것은 대입 공부가 아니라 교사들로부터 내 몸과 부모의 돈을 지키는 것이었던 현실.)

1985년 초등 1년을 마친 겨울 방학 때 종로구 계동의 단독 주택에서 송파구 방이동의 신축 아파트로 이사 와 1999년까지 성장기를 살았던 나 또한 '강남역 6번 출구 뉴욕 제과 앞' (아니면 '신천역 잠실 성당 골목 지나'도 있었다.) 시절의 일원이다. 나야 타워 레코드와 핏자집 정도에만 갔지만, 친구들은 노래방과 잘 생긴 오빠가 홀 아르바이트를 하는 카페에 드나들었다. 추억거리 하나 없이 모범생 역할로 자기 방에 틀어 박혀 양자역학과 현대 시로 성적 쾌락을 배우며 오로지 공상적으로만 일탈에 허우적댈 수밖에 없었던 학생 여자였기에, 그 시절은 내게 손으로는 결코 잡을 수 없는 단순한 정서로만 남았다. 그래 친구들에 비해서는 지극히 아련하고 미미하지만, 어쨌든 피부에 스며 있다.

유하 감독의 '강남 3부작 시리즈'는 그러니 십 년 전쯤으로 떨어져 있다. 한국이라면, 서울이라면, 특히 강남이라면 십 년은 너무 긴 세월인데, 뭐랄까... 강남 7학군이 "아닌" 강남 8학군, 그러니까 그 제8학군에서 초중고를 보냈다라는 일종의 애매함을 대중매체에서 건드려 주는 경우가 (김성수 감독의 [비트]를 제외하고는) 별로 없기에, 그는 나에게 좀 특별하다. 대체로 비껴가지만 살짝은 건드려 준다고나 할까? 좌우간 나도 배추 밭에 올림픽 경기장과 초고층 국제 선수촌이 지어지는 과정을 매일 등하교길에서 목격했던 것이다. 

감독의 영화를 보는 이유를 꼽으라고 한다면, 고증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고증에 애써 그곳, 그때의 풍파를 그리면서도 늘 한사람의 신발을 벗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고.

Friday, January 05, 2018

Kim Jong-un 김정은 "발은 자기 땅에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

현재의 북한을 담은 영상 자료(진천규 취재)에 대한 jtbc 의 보도 인터뷰 (약 8분)



어제 위에 보도된 원본 영상에 대한 관련 전문가들의 분석을 추가해 편집 방영한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라는 프로그램(131회)을 보았다. 지난 10년 동안의 변화가 예상을 넘어선다.

비록 평양과 원산이라는, (대외 연출용 기획/관광 도시라는 성격을 포함하고 있는) 특수한 지역에 제한된 영상이기는 하지만,

김정은 정권의 표어
"발은 자기 땅에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
를 새긴 비석이 특히 인상에 남는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외교만 잘하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겠다고 안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외교란 것이 우리만 잘하면 되는 종류의 일이 아니라서...



요약 (평양 한정):
- 50층 이상의 현대적 주상복합 건물들 (3층 이하 상점)
- 지열, 태양열 전력 시스템의 보급화
- 휴대폰의 상용화 (총 400만대 보유 통계. 이는 전체 국민 8명 당 1대 꼴.)
- 병원 등 공공 시설의 태블릿 비치 (인트라넷 제한)
- 택시의 보급화 (서너 개 회사 경영)
- 건축 시설의 다채색화 
- 동종 상품의 다양화 - 가격차가 수백 배에 달하는 다양한 제품이 한 진열대에 놓인 상점들
- 이탈리아 등 외국 요리 식당의 대중화
- 야간 조명
- 관광용 공식 언어에 영어 추가 (발음은 남한과 반대로 미국식보다는 영국식에 가까운 듯)


물론 평양, 원산을 제외한 지역과의 격차가 엄청나기는 하지만, 적어도 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흑묘백묘론"이 떠오른다. 극소의 권력층이 (내부에서는 공공연했지만 비밀스럽게) 독점하던 자본주의적 생활이 평양 시민이라는 소수 상류층 정도로 확장되었다는 느낌이다. 더 이상 공식적인 금기가 아니라는 점은 이것이 일시적이거나 내밀한 단면이 아니라 하나의 의도적 흐름임을 알 수 있는데, 여기에는 확고한 추진력에 의한 계획적인 지향이 있음이 느껴진다. 공개 처형과 추적 암살이라는 집요한 끔찍함에 너무나 이성적인 욕망이 심지어 나름 질서정연한 방식으로 함께 하고 있었다니... 역사책 속의 제왕을 눈앞에 보는 것 같다. 그는 18세기 유럽의 '자유주의적 군주(an enlightened prince)'의 자의식으로 자신을 보고 있을까?


+ 오늘에야 우연히 알게 된 건데, 독일인들은 김정은을 '킴용운'이라고 발음하네. 맞지만, 아, 좀. 신종 국수주의도 아니고. 어차피 영어 외래어도 많으면서, 그냥 영어식으로만 읽어도 될 걸. 못 알아듣겠다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