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social.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social. Show all posts

Wednesday, October 18, 2023

Relationships

인간 관계 거리 설정


대학원 과정 자체가 평균 이상의 사회화/관계력 교육과 분리불가하게 진행되는 자연계와 압도적 차이가 난다. 박사 말년 차엔 최소 과장급 능력자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기준도 있고. 이미 반 세기 넘게 실천되어 왔고. 

    자연계 >> 예술계 > 인문계

일머리란 갖추어야 하는 것이지만, 일터에서 불필요한 눈치 보기로 소모적 비효율이 발생해도 문제가 없다는 건 역시 그 세계의 특정 작동 원리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상황. 눈 가리고 아웅의 미덕. 한가하다. 교육자나 연구원도 ai로 대체 가능해지는 건, 그것이 더 낫다고 인식되는 경우.


Thursday, July 13, 2023

post-crisis growth 위기 후 성장

위기 후 성장 post-crisis growth



Wednesday, December 02, 2020

비밀의 숲 Stranger (tvN, 2017/2020)

비밀의 숲 Stranger (tvN, 2017/2020)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는 타협해서, 타협하면서 대신 내가 타협했던 모든 일들을 절대 잊지 말자고 다짐해서, 내가 막지 못하고 공범이 되었던 직접적 폭력들과 간접적, 잠재적 피해들도 잊지 않으려 노력해서, 그 이후로는 타협할 수 없었다. 처음엔 내가 굴복했었던 물리적인 폭력에 대한 공포가 재발되어 신체적인 저항감 때문에 힘들었는데 나중에는 사회적인 폭력, 폭력을 넘어선 사회적인 살해가 더 손쉽고 또 더 무서우며 방어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갈등이 일었다. 그래도 계획대로, 타협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은, 타협하는 나를 다행히도 용서하지 않았던 때문이다. 인색했던 과거의 마음이 현재의 계산적인 머리를 이기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타협하지 않는 것도 힘이 있을 때에나 조금이라도 유효하다는 깨달음이었다.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힘을 가질 수 있으려면 미리부터 평소에, 그러니까 늘, 나에게 훨씬 더 엄격해야 가능하다. 예외나 모자람이 있으면 안 된다. 뒤늦게 깨달은 것도 오래전인데, 아직도 그렇게 되지 못했다. 


spoiling!

타협하지 않는다 해도 힘이 없으면 사회적 생매장이나 무고를 당하고, 단지 상대방에게 그 방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 하나만을 은밀하게만 알려줄 수 있을 뿐이다. 그것으로는 누군가의 심기를 잠시 조금 불편하게 할 수 있을 뿐 아무런 유익이 없다. 보복, 제거하는 경험과 그것을 목격하는 경험을 하게 하면 원래의 행위와 동기가 더 강화되고 정당화되어 고착될 뿐이다. 무엇이든 어설프거나 모자란 것은 아니함만 못하다. 강할 정도로 착한 경우에만 착하다. 선을 달성하려면 어떠한 타협도 없이 휴식도 없이 지극하고 투철해야만 한다. 지선(至善)만이 선이다. 중간은 없다. 아니면 나와는 타협하면서 남과는 타협하지 못하는 꼴밖에 되지 못한다. 그러니까 좋게 말해 봐야 미련하게 버티기만 할 뿐인 표리부동한 내가 한심하고 못미덥다.  




독일에 있을 때 유일하게 또 몇 년만에 본 한국 방송이었기에 이번에 2기를 챙겨 보았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황시목이 말이 없어지는 장면에서 나도 같이 가슴이 철렁했다. 드라마가 아닌 나의 상황으로. 살면서 숱한 도움을 받았지만 내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청한 적은 없다가 처음 그러고 있었다. 그 마음을 먹기까지도 죽을 만큼 어려웠고, 실행하면서는 도저히 나 자신을 유지할 수가 없어 새로운 자아에 이름을 붙이기까지 했다. 남들은 보통 거절당할까 봐 걱정하는 것 같던데 나는 그것은 두렵지 않았다. 사정이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나로선 절실했다. 단지 묻는 것까지는 되겠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고 생각할 뿐. 아무튼 "도와 주세요"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말한 것과 다름 없었다. 그래서 위에서 선배 검사장이 지적할 때 나도 깜짝 놀랐다. 나 때문에 곤란해지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리고 선택권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도 있었기에, 그런 식의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었던 것도 내용은 다르지만 드라마 상황과 비슷하다. 게다가 황시목과 달리 나는 이전에는 그렇게 산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늘 검토하고 의식하고 있었기에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익숙해진 마음이 생겼구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바라면 안 되는 것을 나도 모르게 바라고 있는 것은 없는지 다시 점검해야겠다고. 


spoiling!
황시목: 어떻게 끝날지는 최 부장님께서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 저는 그런 한여진 경감의 안목을 믿고 지금 여기에 왔습니다. 어떠한 양심에 기대를 걸어서가 아니라요.  

그래도 이 심정 안다고 말할 자격은 있는 것 같다. 두나 님과 같이 울 자격. 

미친 현실 도피 중. 

Saturday, January 02, 2016

강헌 (2015) 전복과 반전의 순간

강헌 (2015) 전복과 반전의 순간 - 강헌이 주목한 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 (Music in History, History in Music) :

p. 9: 20세기 이후 인간의 일상에 음악이 개입하지 않는 순간은 거의 없다. 어떤 순간, 어떤 공간에도 음악은 유령처럼 존재하며,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p. 10: 기나긴 인류의 음악사 속에서 시대와 지역, 장르를 넘어 어떤 특수한 음악적 현상이 이끌어내는 특별한 역사적 장면을 주목하고자 했다. 과연 어떤 동기와 역학이 음악사적 진화의 도약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정치경제적 요소와의 상호작용을 이끌어내게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p. 18: "재즈는 가장 가난한 민중의 일상에서 탄생해 주류의 문화가 된 극히 보기 드문 첫 번째 예이다." --- 에릭 홉스봄

p. 40: 낯선 곳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힘든 육체노동과 학대, 말조차 나누지 못하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고통과 외로움을 토로하는 유일한 방법이 하늘을 향해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을 통해서 흑인들은 자신들의 가슴속에 가득 잠겨 있는 울분과 분노의 슬픔을 토해냈다. 이게 말인지, 노래인지, 신음인지, 구원의 기도인지,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 왜? 그들이 토해낸 것이 무슨 의미였느지, 그들은 글을 배운 적이 없어서 기록을 남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혹시 여러분이 재즈를 듣다가 문득 말하는 것조차 금지된 노예 농장에서 어떤 흑인 노예가 하늘을 향해서 뭔가를 부르짖는 듯한 소리가 느껴진다면, 그 순간 재즈는 온전히 여러분의 음악이 된다. / 흑인 노예가 하늘을 향해서 부르짖던 소리인 필드홀러는 당연히 음악이라고 볼 수 없다. 그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절망의 소리일 뿐이다. 그런데 재즈에는 바로 이것이 들어 있다.


cf.
저술의 바탕이 된 저자의 강의(2013, 벙커1) 전복과 반전의 순간 (녹음 목록)

Tuesday, December 22, 2015

Dear Daddy

dear daddy at www.kjaerepappa.no




페미니즘은 공부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유.
또한 캠페인에 참여하고 집회에 나가는 것보다도,
일상에서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이야기하다가도 입을 다물고 자리에서 일어나 버리는
까다롭고 피곤한 여자가 되는 것이 더 낫다고.
그러한 사람들 중의 한 명이 되는 것.

+
목숨이 아깝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일도,
유능하고 창의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상사도,
옳은 것을 추구하고 취미가 많고 나를 잘 이해해 주는 친구도
이것을 이유로 놓치거나 떠날 때마다 가슴이 아팠지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인 사람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존경받기에 충분한 그 사람들을 포기할 때에는 더욱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