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Elliot director / Stuart Burge producer
(B) 1974. 3. 15 - 6. 7 BBC1
Part 1. Death Waltz
Part 6. Absolute Beginners
review: John Williams @BFI Screenonline: Absolute Beginners (1974)
선풍기 틀다. 내면이 더 암담한 여름.
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 ( Chéng zhě, tiān zhī dào yě; chéngzhī zhě, rén zhī dào yě. ) ---- 子思 《禮記·中庸》22:7 _____ Der bestirnte Himmel über mir, und das moralische Gesetz in mir. ---- Immanuel Kant (KpV: AA 05: 161.33–36) ________________________ ἃ γὰρ δεῖ μαθόντας ποιεῖν, ταῦτα ποιοῦντες μανθάνομεν (What we have to learn to do we learn by doing.) ---- Ἀριστοτέλης (Nic. Eth. 1103a33)
Part 1. Death Waltz
Part 6. Absolute Beginners
review: John Williams @BFI Screenonline: Absolute Beginners (1974)
선풍기 틀다. 내면이 더 암담한 여름.
중1 때 학교 갔다 왔더니 책상 위에 놓여 있던 CD. 그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빠.
책상 바로 앞 책장 선반 위, 일본 다녀온 선물로 준 SONY 멀티 플레이어로 실컷 듣고.
500원짜리(대학생 땐 1500원으로 오름) 악보 피아노로 정말 많이 쳤는데, 메인이랑 여옥(러브) 템, 몇 년 후 늦게 나온 하림 템 모두. 옷 갈아 입고 간식 먹고 나서 매일의 루틴. 그때도 몸이 참 고단.
중딩이라 너무 바빠서 본방을 못 보고 토일 재방을 봄.
내가 3부부터 봤구나... 우연의 검열.
여는 타이틀 opening title
결정적인 부분에서 개연성이 없어지는 결점이 있기는 하지만, 유비 사후 촉한 제갈량의 3차에 걸친 북벌은 배경일 뿐, 르 카레를 기본으로 미션 임파서블을 섞고, 장면 연출보단 캐릭터에 집중한 첩보 추리물. 고증은 멀리 날려 버리는 손쉬운 위험을 선택. 그래도 정사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연의를 따르고 있어 삼국지 팬이라면 드라마 전개상 지루해지거나 황당한 부분에서도 아련한 애틋함에 기대게 된다. 구성이야 원작이 일반적인 경우라면 더 낫겠지만, 조명/촬영이 훌륭. 테이크가 섬세하다.
가치관은 나와 안 맞지만, 최소 이 정도가 내가 집중할 수 있는 복잡도. 생각을 멈출 순 없다면 다른 내용으로 치환하는 치유책. 이렇게 암에 걸린다는 거였구나.
곽회[17]: " 누군가에겐 가장 확고하고 굳은 신념이 약점이 되기도 하지. "
곽회[17]: " 무슨 일이든 마음먹고 공을 들이면 남다른 수준에 이를 수 있지. 일시적인 승패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왜 이렇게 공명이 이해가 잘 가는지. 그에게 애초에 선택지가 너무 없었다. 반대 세력들도 이해가 잘 되고. 여하튼, 고작 삼십 년을 내다보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자녀들도 있는 이들이. 물론 이 시각으로 개인사가 보이진 않지만. 살리려고 나아간 건데. 키우려고가 아니라.
+
마지막에 직접 정리해 주시네.
좀 더 복잡한 거 없나?
중3 때 영화로 먼저 봤는데, 부러워서 심장 터지는 줄 알았다. 이제는 아드소도 부럽소. 나도 길 잃는 게 특기인데, 마스터가 없어. guilt-free가 편하긴 해도.
라디오 드라마 (8부작)
Jtbc (2021) 시지프스: The Myth => 보기 @netflix
터미네이터 + 스타 트렉 + 토털 리콜 + 맥가이버 + 매트릭스 + 공각기동대 + 동쪽의 에덴 +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 ... 다 가져온 광폭의 아쌍블라주 오마주도 이쯤 되면 조립/편집 능력에 감탄. 이야기 내용뿐 아니라 설계가 공학적.
서사-영상-음악 구조에 남-녀, 가족-인류, 과거-현재, 현재-미래, 미래-과거, 사랑-정의, 후회-구원, 희생-희망 등 대칭적 긴장 관계들 속에 무한 루프를 암시하는 유한 반복 순환 고리들. 또 그 안의 고리들. 어떤 차원, 어떤 조건, 어떤 크기에서도 포기를 모르는 의지. 매번 절망하고 다시 도전하고 그래도 감동하는 저주를 받은, 처절해서 아름다운 삶.
여주 캐릭터 주제가. 타임 루프 주제에 맞춘 과잉 반복 선율. 또한 남주 캐릭터 주제가와 음악적 대칭쌍을 이룬다.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는 타협해서, 타협하면서 대신 내가 타협했던 모든 일들을 절대 잊지 말자고 다짐해서, 내가 막지 못하고 공범이 되었던 직접적 폭력들과 간접적, 잠재적 피해들도 잊지 않으려 노력해서, 그 이후로는 타협할 수 없었다. 처음엔 내가 굴복했었던 물리적인 폭력에 대한 공포가 재발되어 신체적인 저항감 때문에 힘들었는데 나중에는 사회적인 폭력, 폭력을 넘어선 사회적인 살해가 더 손쉽고 또 더 무서우며 방어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갈등이 일었다. 그래도 계획대로, 타협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은, 타협하는 나를 다행히도 용서하지 않았던 때문이다. 인색했던 과거의 마음이 현재의 계산적인 머리를 이기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타협하지 않는 것도 힘이 있을 때에나 조금이라도 유효하다는 깨달음이었다.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힘을 가질 수 있으려면 미리부터 평소에, 그러니까 늘, 나에게 훨씬 더 엄격해야 가능하다. 예외나 모자람이 있으면 안 된다. 뒤늦게 깨달은 것도 오래전인데, 아직도 그렇게 되지 못했다.
타협하지 않는다 해도 힘이 없으면 사회적 생매장이나 무고를 당하고, 단지 상대방에게 그 방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 하나만을 은밀하게만 알려줄 수 있을 뿐이다. 그것으로는 누군가의 심기를 잠시 조금 불편하게 할 수 있을 뿐 아무런 유익이 없다. 보복, 제거하는 경험과 그것을 목격하는 경험을 하게 하면 원래의 행위와 동기가 더 강화되고 정당화되어 고착될 뿐이다. 무엇이든 어설프거나 모자란 것은 아니함만 못하다. 강할 정도로 착한 경우에만 착하다. 선을 달성하려면 어떠한 타협도 없이 휴식도 없이 지극하고 투철해야만 한다. 지선(至善)만이 선이다. 중간은 없다. 아니면 나와는 타협하면서 남과는 타협하지 못하는 꼴밖에 되지 못한다. 그러니까 좋게 말해 봐야 미련하게 버티기만 할 뿐인 표리부동한 내가 한심하고 못미덥다.
독일에 있을 때 유일하게 또 몇 년만에 본 한국 방송이었기에 이번에 2기를 챙겨 보았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황시목이 말이 없어지는 장면에서 나도 같이 가슴이 철렁했다. 드라마가 아닌 나의 상황으로. 살면서 숱한 도움을 받았지만 내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청한 적은 없다가 처음 그러고 있었다. 그 마음을 먹기까지도 죽을 만큼 어려웠고, 실행하면서는 도저히 나 자신을 유지할 수가 없어 새로운 자아에 이름을 붙이기까지 했다. 남들은 보통 거절당할까 봐 걱정하는 것 같던데 나는 그것은 두렵지 않았다. 사정이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나로선 절실했다. 단지 묻는 것까지는 되겠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고 생각할 뿐. 아무튼 "도와 주세요"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말한 것과 다름 없었다. 그래서 위에서 선배 검사장이 지적할 때 나도 깜짝 놀랐다. 나 때문에 곤란해지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리고 선택권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도 있었기에, 그런 식의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었던 것도 내용은 다르지만 드라마 상황과 비슷하다. 게다가 황시목과 달리 나는 이전에는 그렇게 산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늘 검토하고 의식하고 있었기에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익숙해진 마음이 생겼구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바라면 안 되는 것을 나도 모르게 바라고 있는 것은 없는지 다시 점검해야겠다고.
황시목: 어떻게 끝날지는 최 부장님께서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 저는 그런 한여진 경감의 안목을 믿고 지금 여기에 왔습니다. 어떠한 양심에 기대를 걸어서가 아니라요.
그래도 이 심정 안다고 말할 자격은 있는 것 같다. 두나 님과 같이 울 자격.
미친 현실 도피 중.
서기 9년 게르만 부족 연맹군이 로마 제국군을 상대로 벌인 역사적인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를 소재로 한 픽션. 줄거리는 별 재미가 없고 시각적으로 잔인한 장면이 너무 많지만, 캐릭터들의 성장 과정과 내면적/관계적 갈등 묘사가 인상적이라 보게 되었다. 특히 아리(Arminius) 역 Laurence Rupp의 연기는 마치 정통 셰익스피어를 보는 듯 감탄스러웠다. 외모도 영웅 전사라기보다는 햄릿이 더 어울릴 듯. Nicki von Tempelhoff 연 제기메어(Segimer)와의 친부자간 애증 그리고 무엇보다도 Gaetano Aronica 연 바루스(Varus)와의 의부자간 은원이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정체성 혼란에 그치지 않고 수치심과 자부심, 두려움과 사랑, 원망과 공감, 희망과 분노, 의리와 명예, 믿음과 불안, 복수심과 죄의식, 배신과 연대, 정의감과 동경심 등 복잡 미묘한 심리가 지나치게 단순한 플롯 덕에 가볍고 유치해지기 쉬운 대사들로 끝날 뻔했던 것을 결국 배우의 능력으로 살려낸다.
게르만 부족들은 현대 독일어를, 로마 군인들은 라틴어를 한다! 헬라어와 달리 (아마 코폴라 때문인지) 의례용 라틴어 발성에 생리적으로 공포심을 느끼던 나로서는 라틴어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독특한 취향인지, 로망스어 계열인 현대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 발음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독일 배우들의 라틴어는 주둔 중인 로마 레기온의 살벌하고 삭막한 군인들의 대화치고는 감정 표현이 마치 모설어처럼 자연스러워 자못 톨킨의 엘프어를 상기시키는 지경에 이르곤 한다. 찾아보니 시청자들 사이에서 라틴어 대사 어형 변화에 대한 문법적 오류와 발음 지적이 있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완전한 일상어로 복원된 지극히 자연스러운 라틴어 대화들은 내용과는 별개로 청각적 백미.
바루스가 아리와의 첫 대면에서 "당케"를 "그라티아스"로 자상히 고쳐 주었던 일화, 로마 황제의 검을 받고 기사로 임명되기를 꿈꾸며 때로는 사령관으로 때로는 중재자로 능란하게 라틴어와 독일어를 오가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면서 심리적 위기 또한 노련히 다루는 듯하지만 외부로부터 부침을 겪는 동안 사회적으로 양측에서 모멸감과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변심/작심에 이르는 과정,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 여겨 욕설을 했다가 형벌을 받게 되는 용병의 실수, 통역 능력으로 권력을 차지하려는 인물의 야망 등 여러 장면에서 언어는 상당히 중요한 코드로 작용한다. 400년 동안 엘리트 위원회의 관리를 받고 있는 (내 눈엔 그저 언어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려는 방부제같은 인위적 성형으로 굳이 덧칠하는 나머지 아름다움이 괴이함으로 굳어지는 듯하지만) 프랑스어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금지옥엽 자부심과 뻔뻔히 지속하는 경제/문화적 식민 행태를 자주 목도하지만, 독일인들의 정체성 안에 자연(이라고 본인들은 부르지만 매번은 아니라도 내가 보기엔 정확한/솔직한 뜻으로 '영토'에 더 가까울 때가 있는, 억압된 불안을 숨기지 못해 안정감에 이르는 통로로서 찾는 그것)과 더불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고착되어 있는 모국어 사랑 그리고 상대적으로 늦게 자각하고 어렵게 성취한 만큼 역사적으로 열등감과 우월감이 묘하게 결합되어 지금까지도 철저히 학습되고 있는 듯한 민족의식은 그것이 그토록 개인적이고 내면적이며 일상적인 측면에서 비정치적인 탈을 쓰고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뿌리 깊은 것 같다는 종래의 인상이 한층 짙어지기는 한다.
아무튼 이 한 번의 전투로 게르마니아가 게르만으로 남게 되는 역사를 결정짓는다. 로마 레기온 17, 18, 19대 3개 군단이 전멸하고 이후 영원히 재건되지 못한다. 이로써 제국의 확장은 라인 강을 넘지 못하고 국경선을 확정한다. 아리의 이름은 후대 마르틴 루터의 표준어 작업에 의해 헤르만(Hermann)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