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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November 14, 2021

윤흥길 (Yun Heung-Gil, 1977)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The Man Who Was Left as Nine Pairs of Shoes)

[알릴레오 북's] 윤흥길 (1977)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Yun Heung-Gil (1977) The Man Who Was Left as Nine Pairs of Shoes


내용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내게도 재명 씨의 참외나 시민 씨의 구두처럼 마음에 남은 것이 있는데, 대상이라기보다는 낱말인 '소주'다. 읽을 때 소주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그때 난 '아버지'란 말을 잘 몰랐을 정도로 어렸다. 아마 전체 25권짜리 창작동화집에 들어 있던,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소주를 사 오는 것이 일상인 아이가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는 이야기였는데, 나중에 모친께선 네 아빠란 초등학교 고학년 때나 읽을 책을 유치원에 가기는 커녕 한글도 모르고 아직 기어다니고 있는 아이한테 사 온 인물이었다고 짜증내셨다. 하지만 난 그 말을 듣고 아빠는 나를 위해 샀던 것이 아니라 파는 사람을 위해 사 주었던 것이리라 생각했다. 아무튼 그 책들을 '읽기' 전까지 몇 년 동안 장난감처럼 블럭 쌓기를 하느라 양장 제본이 너덜너덜해지도록 가지고 놀다가 나중에 좀 더 커서는 책장마다 크레파스로 온통 떡칠을 해 놨기에 난 유아기 때부터 자신의 성장을 꽤 실시간으로 실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동생은 얌전해서 유아기 때도 그런 짓을 전혀 하지 않았으므로 집안의 모든 범행은 죄다 내가 저지른 것이었다. 모친께선 지금도 있는 칸마다 유리창이 달린 고급 서가의 뒷면에까지 기어 들어가서 낙서를 해 놨다며 질려 하신다. 난 모르는 일이라는 듯 웃고 말지만...) 실은 내가 왜 그렇게 미친 듯이 떡칠과 무얼 그렸다기보다는 갈겨 놓는 짓을 해 놨는지 그 심경을 기억하고 있다. 그림은 알겠는데 도통 정체를 모르겠는 '글씨들'이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어른들끼리만 공유하는 비밀 암호(?)임을 알게 되었을 때는 눈물이 찔끔찔끔 날만큼 분하고(?) 엄청난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절망적인 현실이 버거웠다. (당연히 이건 지식욕이나 학구열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성질머리다...) 나중에는 손으로 물건을 쥐는 힘을 더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되었는지 글씨 흉내를 내려고 지그재그나 물결 같은 식으로 반복적인 모양을 갖추게 된다. 아무튼 그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진이 빠지도록 펑펑 울었고 책이 사람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을 수 있는 위력이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난 문학을 '전공'한다는 사람이 무섭다. 꼭 자기 아이를 수술할 수 있는 외과의사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이래저래 지도교수님이 얼마나 무섭겠어.) 그 책들로 처음 알게 된 것이 너무 많아서 다 쓰자면 책을 몇 권 써도 모자라겠군. 예를 들면 남을 아프게 하는 무섭고 나쁜 사람도 다른 이유로 아픈데 그 아픔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심해서 그러는 걸 수 있다는 사실 등. 그 전집의 창작동화 작가들의 문학성이란 가히 내가 늙으면 늙을수록 떠올릴 때마다 그 위대함이 더욱 크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알게 된 것들이란 사실 글로는 다 생략되어 있었으니까. 자연히 두고두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 이런 것만 공부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학습자의 입장에서는 문학과 수학은 유사 과목이다.)    

그래서 소주는? 소주 때문에 난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악랄하고 멍청한 아귀들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을 나에게 부여하게 된다. 그리고 전력을 다했다. 최선에는 끝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현실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무한한 창의력을 의미한다는 것도. 난 이 아이들 중에 집에 가면 엄마가 없고 소주 사 오라고 하는 어른 남자가 있는, 그리고 나면 그 사람이 잠들 때까지 집에 들어가면 안 되는,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그런 사정들을 전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너무 많은 것들을 요구하면서 폭력이나 일삼는 것들이 저들을 사람 취급해 달라는 강요에 쉴 틈이 없었다. 단적으로, 반에 6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으면 매일 아픈 아이가 한두 명씩은 꼭 있고 많은 날은 대여섯도 된다. 그리고 지금은 더 빠르겠지만 그때도 4학년쯤 되면 친구의 도움을 받을 때에도 자존심을 먼저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아진다. 동시에 교사 중에 아이들이 자신을 어른의 눈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있다는 느낌에 노이로제로 반응하거나 자신보다 상황을 더 잘 처리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분개하는 개체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또 어떤 개체들은 자신의 업무를 나에게 할당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특정 학생에게 그래도 되는 일과 그러면 안 되는 일을 구분하는 것조차 못 한다는 거다. 정말 작전을 보통 잘 짜야 되는 게 아님. 아무도 몰라야 가장 좋다.  

맥주 마셨지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