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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October 12, 2023

Followership

https://en.wikipedia.org/wiki/Followership



직장상사와 소통하는 법


1. Loyalty (마음가짐) : 단점보다 장점에 주목, 배우려는 자세

me: 이 땅에서는, 아마 남자 생물로 태어났다면 맘 놓고 드러낼 수도 있었겠지만, 무려 청소년기 때부터 가학 성욕만 자극/정당화하는 사냥 놀이감 쓰임새로 갈수록 극렬한 악몽을 누차 치러야 했던 나로서는 거의 자동 생리적으로 철저 은폐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그 대상이 처음부터 특정인이 아닌 인류 또는 사회, 분야 또는 주제 그리고 특정한 실천적 가치 등으로 철저 제한되었으며, 기실 desire, drive 차원의 심저로부터 뿌리 내린 평생 괴로운 욕망. 덕분에 안심해도 될 만한 귀인을 극적으로 만나고도 건강한 practice가 잘 안 나옴. 크기만 엄청남. (쓰고 보니 이게 바로 괴물이네. 어쩌면 교수님에 대한 좋은 두려움의 굳센 원천은 기실 여기에 있음. 이걸 처음으로 길들여 주신 분. 그래도 안전하리란 예감이 머리로는 드는데 과거에 축적된 트라우마가 너무 강력하고 복잡해서 가끔 반의지적으로 반응되면 가슴이 찢어진다. 그나마 결과적으로 나만 손해라 다행이랄까.)

2. 업무 능력

me: 부족. 능력보다 의욕만 큼. 그마저 현재로선 과거형. 그리고 난 받아 먹으려는 심리가 많은데, 교수님께서는 자생시키려는 목적이 크신 듯. 머리로는 이해하더라도 심정은 늘 거부되고 유기되는 기분에 시달림. 하지만, 의존하려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데 이공계와 전통이 다른 점을 오해받는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피드백 없이 성장 없다. 창의력이 필요한 일에 있어서는. 

3. 경쟁력 (플러스 알파)

me: 아주 없진 않을까 하지만 불필요로 하심. 

4. 태도: 정중하게. 공/사 구분. 

me: 부족. 지나치게 얼거나 또는 완전히 눈밖에 나 있다고 여긴 나머지 인사를 못 하는 버릇. 수 년간 특정 스트레스가 쌓이면 한순간 폭발하기도 하는 황망한 전력까지... 게다가 안 참은 거다. 호소하고 싶은 심정에. 원랜 너무 잘 참아서 탈인 캐릭터였는데. 내가 졸지에 문과 온 유일한 원인이시다 보니, 만사를 원망하게 된다. 거의 유신론자가 신 탓하는 지경. 나만 이해할 수 있는 사정. 하지만 사연이 좀 드라마틱 하지 않다. 

  

Monday, November 28, 2022

quo vadis?

 ⟪呂氏春秋 · 孟夏紀⟫


Quo Vadis Zunshi? 존사여, 어디로 가심? orz 받아 쓴다고 날로 습관이 될 리가...

내겐 연예인보다 먼 존재라는 한계 상황이 비록 있기는 하지만, 존사에 그런 참작 조항은 없음. 😭

 

Friday, January 21, 2022

신영복 Shin, Young-Bok (1987) Reflections from the Prison





[알릴레오 북스] 신영복 (2015) 담론
Shin, Young-Bok (2015) Discourse: Shin, Young-Bok's Last Lecture Notes



이건 편집 좀 하지 말지.  

난 논어 좋아 죽는데. 너무 부러워서 괴롭고. 이해가 매번 달리 돼서 자꾸 또 읽게 됨. 재미가 끝이 없음. 구절마다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 충격인데, 뻔하다는 건 주해를 통해서라도 원문을 고민하지 않고 번역문만 그대로 읽은 경우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그 '뻔한'  이야기만큼 내 현실들에 위로가 되는 것이 아직까지 없었고. 무엇보다, 살 냄새. 무릎이 스칠 정도의 거리에서 같이 오래 생활한 것 같은, 담담하지만 묵직한 기분. 팔팔한 인물상들. 

정진 닦으며 선정 못 넘어가고 있는 나로서는 인욕은 옛 일. 이미 그런 상태에서 인문계로 왔었으니. 대신 비싼 값을 치렀다. 치르고 있고.  

맹자. 주자. 그러니 정도전이야말로 대단한 것. 실현시키고 나서 사형당했으니. (살인마 이방원 조상님.) '王道'를 이상이 아닌 '제도'로 만들어 버림. (그 道에서 벗어나면 법적으로 더 이상 王이 아니게 됨. 벗어났는지 여부를 가리는 판단은 공무원 시험에 고득점으로 합격하고 차곡차곡 승진해 온 재상들의 협의로 함. 문과 공무원 시험 교과목은 윤리학, 정치철학, 시문학으로 작문.) 종횡으로 修身이 내습된 정치체제를 구현.   

노자는 평생 실천이 힘들어서 늘 부대꼈기 때문에 거꾸로 가깝게 느껴진다. 몰라서 헛손질을 하게 되고 한 걸음도 못 가 자꾸 넘어지니 오히려 눈을 떼지 못하는 것처럼. 이 화백이 하도 좋아라하셔서 그래도 무서워하거나 낯가리진 않게 되었다. 연의나 무협 영화에 기인 광자들이 빠지지 않고 나와서도. 이 분들이 학생 때 공부만 했나 봐. 홍콩 영화도 좀 보고 그러지. 일본 만화를 보거나. 동아시아 영웅상 중에 할리웃 히어로 같이 나이브하거나 상처에 허우적대는 범생은 없음. 제동 씨, 천재네. 하이젠베르크가 겨울 휴가 때 스키장 놀러 갔다가 폭설로 갇히게 되어 날 좋은 날 지붕 위에서 노자 읽다가 낮잠에 들었다 일어나 불확정성의 아이디어가 나왔을 걸. 본인 각색이 있을 수 있지만. 내 십 대의 히어로. 

난 묵자가 좀 무서운 냄새가 있다. 투박한(예리하지 못한) 예수 같아. 

한비자는 앞에 조금 읽다 말아서 읽었다고 할 수 없지만. 극단적인 정신적 위기에 필사의 동아줄처럼 잡았다가, 아예 등떠밀듯 추락당해 바닥을 치자 모든 '이유'가 산산이 깨지면서 결과적으로 '인욕' 바라밀을 훌쩍 넘어가게 된 극적 경험이었다. 지금도 책장 안쪽에서 고이고이 존재감만 띠고 있다.    

그때 반죽음 상태에서 응급실로 찾아갔던 것이 알고 보니 이강수 선생님의 제자이신 이진용 선생님의 문지에서 열린 장자 강의였지. 붕새와 벼룩. 8주 동안 내 모든 질문을 다 풀어 주셨다. 반야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Friday, June 11, 2021

just a model

Maurice Merleau-Ponty (1964): 보기와 감각하기를 이해하는 것, 그것은 그들을 잠시 정지시키는 것이다. [60] [...] 그러니까 철학자가 본연의 시각을 일시 정지시키는 것은 다만 표현된 것의 차원 가운데로 본연의 시각을 이행시키기 위해서뿐이다. 요컨대 본연의 시각은 철학의 모델 또는 척도로 남는다. [61] 

-- 남수인 옮김 (2004) 


다음 문장부터가 중요하겠지만, 내 용건은 저자를 이해하기 위함이 아니라서. 그제-어제는 죄의식과 파멸의 시간이었는데, 어제-오늘은 응답과 투정으로 변했다. 자포자기의 상태. 덮지를 못하고 낑낑댔더니, 후회도 못 하게 하네. 대상을 정하는 것부터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방법도 주시려던 거였나 아차 싶어 뒤늦게 한 것도 없이 어렵게 찾아갔었지만, 역시 오해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방법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를 다시 이어갔다. 결과가 없다고는 못해도 당장 쓰기에 적합하지는 않다. 만약 다음들이 있다면 방향은 맞추어야 할 것 같다 보니 순서가 바뀌었을 뿐. 2절이 사정상 술술 읽히기에 이어지는 부분도 한번 기웃거려나 보려던 거였는데, 혼자 어디서 해결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분명한 것 같아서 여쭈려던 질문들에 대한 답이 줄줄 나오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문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왜 (데카르트를 빼고) 여러 프랑스 철학자들은 자신의 전제에 대해서 명시하지 않고 말하기 시작하는 걸까? (출발점과 전제는 엄연히 다르다. 출발점은 장황하리만치 늘어 놓던데. 자기 선생님들과 선학에게 인정받아야 해서 그런지?) 해설이 상납되기를 기다리는 건가? 학위가 없어도 연구 지망이 아니라도 이과생들은 늦어도 학부 과정을 거치며 그 점만은 가차없는 훈련을 받는다. 물론 우리는 그 전제들에 대해 성찰하지 않고 대개는 심지어 검토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의식/선택하지 않고는 어떤 출발도 할 수가 없고, 다만 습관이 안 되어 표현상의 기술을 누락하는 실수를 하는 미숙한 단계가 있을 뿐이다. 마치 축 설명이 빠져 있는 그래프 같은 상태로는 읽어도 읽기가 시작이 안 된다고요. 

이거 순환 논리가 아닌가, 그것도 서로 다른 두 개의 차원에서 2중으로, 했던, 갑갑한 부분들을 조목조목 지적해 주니, 비판이 목적이 아니라 이해가 목적이었던 나에게는 그 자체로 답들이 되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동시대를 철학자로 살았네. 와이트헤드는 안 읽은 것 같지만, 적어도 코펜하겐 해석은 잘 이해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입장에 대한 인식도 면밀하고 정확하다. 1950년대 말이라면 당연한 일 아닌가 생각하지만, 프랑스 문과인들은 20세기에도 과학을 아마 콩트인지 시절의 의미로 일컫는 경우가 많아 보이던데. 아무튼 이 분은 건전하고 정직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차피 따라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나에게는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다.      

게슈탈트는 포기해야겠다. 포기라는 판단을 하는 데 이렇게나 오래들 걸려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