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Db / @naver
공자: 예와 악을 위한 큰 꿈은 후세에 맡길 수밖에...
공자: 그들이 법을 지키는 건 형벌이 두렵기 때문인데, 사람들이 예를 지키고 염치를 알아서 법을 지키는 게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군주 노정공이 나라를 강하게 하는 방법으로써 제나라의 법치에 대해 묻자)
공자: 인이 우선일진데 살인은 전통이 될 수 없소. (노나라 대부 계손사가 부친의 장례에 순장 풍습에 따라 어린 노비를 죽이려 하면서 전통임을 주장하자)
공자: 자신이 원하지 않는 건 남에게도 시키지 말아야죠. (노나라 계손사가 선친의 유언에 따라 어린 노비를 순장하여 죽이려 하는 것은 효심이라고 공산유가 주장하자)
공자: 기꺼이 살신성인해야지, 어찌 살기 위해 인을 저버리십니까! (노정공이 삼성을 허무는 국책을 중단하려 하자 항변하며)
안회: 제게도 말씀하셨잖아요. 세상을 바꿔 놓을 수 없다면 자신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요. (노나라에서 축출된 공자가 자신을 따라 쫓아온 제자 안회에게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냐고 묻자)
남자: 어진 자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가르치셨다지요? 그 사람 속에는 저처럼 평판이 나쁜 여자도 속하나요?
공자: 군자는 미인을 얻고자 할 때도 예의를 지킨다는 뜻입니다. (위나라 남자가 [시경]의 한 구절 '요조숙녀 군자호구'에 대해 묻자)
공자: 시 삼백 편을 한마디로 간추리자면, 정이 넘치되 사념이 없는 거죠. (위나라 남자가 [시경]의 남녀 애정에 대해 묻자)
남자: 재물과 미색을 탐하는 게 사내의 본성이라, 차지하려 피를 흘리며 싸우죠. 그것도 천성이니 극복하기 어렵고요.
공자: 어렵기에 군자가 두드러지죠.
공자: 저는 믿습니다. 아침에 도를 알면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다고. (위나라 남자가 공자에게 군자로서 고상한 덕망을 갖추는 것을 진정 중요하게 보느냐고 묻자)
공자:전 불편합니다. 속세의 아름다움과 미덕을 함께 원하시니까요.대충 내가 옮기면 ==> (부인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불편합니다. 덕을 좋아하기를 색을 좋아하듯이 하는 사람을 소신은 아직 보지 못했으니까요. (다음에 한 번 더 볼 수 있겠느냐는 남자의 물음에)
남자: 세인들은 공 대인의 고통을 이해할진 몰라도 그 속에서 일궈낸 진리는 모를 거예요.
공자: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마라. (제자 자로가 위나라 조정의 부름을 받아 떠나게 되자 기뻐하면서도 그의 성급한 성미를 걱정하며)
공자: 후세에 날 이해하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일 테고, 날 오해하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일 것이다.
2016.08.29 낮 @내 방
최소한의 배경 지식이 없었다면 지루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었을 듯하다. 다행히 이제야 뒤늦게 보게 되어서 떨리는 재미가 있었다. 평전적인 성격이 강해 시간 순서에 따르기는 하지만 차분히 흘러가기보다는 압축적으로 건너뛰기가 많다. 과감히 특정 에피소드들을 선별하는 방식이라서 자세한 지식이 있는 관객이라면 빠진 내용들에 대해 아쉬움이 많을 수도 있겠다. 현재의 내게는 안성맞춤. 고증에 충실한 세밀한 묘사들에 감탄할 수 있었던 건 역시 근래에야 알게 된 지식들 덕분이다. 건축과 실내 기구, 수레나 각종 무기 등 전쟁 장비, 의복부터 배우들의 자세나 몸짓, 어법(말투는 다소 현대화했지만 시대상 정확한 호칭들을 구사. 비록 한글 자막에선 전부 무효화됐지만.)까지 속속들이 꼼꼼했다. 무엇보다도 각본이 (영화사에라기보다) 역사에 남을 만하다. 그리고 서양인과 서구화된 관객들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듯한 욕심이 느껴지는 촬영. 특히 각본과 고증에 홀려서 두 번 연속으로 본 다음 스크롤링 해 가면서 두어 번 더 봤다.
노나라 최고 권력가 계 씨의 노비의 목숨을 구하고 제자로 거두는 일화는, 그동안 고민하면서 나름 정리해 두기는 했었지만 혼자서는 확신할 수 없었던 공자의 인과 예의 관계에 대해 명쾌하고도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어서 깨달은 것이 많다. 틀리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도 했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측면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다운로드 파일을 재생하며 본 것이라 수없이 정지 버튼을 누르면서 실시간으로 성장하는 기분이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한계가 영화를 통해 상당히 보충되었다. 현대 어원학의 발전으로 인해 구체적인 것(두 명의 사람)에서 추상적인 것(사람 사이의 관계)으로 그 의미의 폭이 넓어지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인'이란 단어를 공자가 자기 식대로 개념화하면서, 모호한 언어적 규정이 아닌 당면 상황에 즉각적으로 인을 적용하는 논리적 근거로서 매번 다르게 실체화되는 '예' 그리고 실증적 근거로서 역사(춘추)의 사례로서의 주공을 제시했던 것이었다. 현재의 과학적 기준으로도 이론과 증거가 합치할 때, 가설과 실례가 일관됨을 증명했을 때 해당 주장을 반박할 수는 없다. 반박하려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론 자체의 결함 또는 증거 자체의 오류 또는 양자의 관계의 틈을 제시해야만 한다. (아니라면, 이성주의 또는 합리주의가 아니므로 과학적 방법이 아니니까 일단 논외의 문제가 된다. 뭐 꼭 과학적이어야만 하는 건 아닐 테니. 하지만 누구든 특권적 자격 제한 없이 자기 이성의 자유에 따라 제시하기만 하면 되는데, 이걸 폭력이라고 하고, 논외의 상황을 끌어 들여서 문제를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폭력이 아닌가? 나는 후자의 폭력이 더 특권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폭력적이라고 본다. 다른 문제를 제시하고 싶다면 새로운 문제로 제시하면 된다. 자유롭게. 문제 자체를 유물론적으로 대상화시키면서 독점하려고 하지 말고. 생각이 무슨 땅따먹기도 아니고.)
계손사는 결국 "당신 말에 틀림이 하나도 없구려."라며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말이 칼보다 강하다'는 표현이 나한테 이렇게까지 깊게 와닿은 적이 없다. 현세의 숱한 오해로, 뜬구름 잡는 이상으로서 약자를 억압하는 유교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지금 말로 '정치', 권력이 강한 자가 주도하는 쟁론의 현장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어도 시퍼렇게 날을 세워 모든 불인과 불의와 무례를 처단하기 위한 최강의 설득력으로서의 인을 지극히 현실적이고 효과적으로 발휘했던 것이다.
더구나 내가 요즘 가장 치열하게 고민 중인 논제에 대한 언급이 노자와 공자와의 대화에서 건드려진다. 한자어 하나의 개념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 중인데, 이것이 보통 알려지거나 연구되는 유가적 인의예지에서 내용상 직접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확신할 순 없지만 글자 자체가 잘 등장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아직 문외한인 처지에서 관련 자료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어 벽에 부딪힌 상태다. 양명학을 살펴봐야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완전 깜깜이라 어느 세월에... 이러고 덮어 두었다. (이런 거 고민하고 있는 자신이 참 궁상스럽기도 한 현실이고.)
아무튼, 역사적 실존 자체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도 하고 세인들에게 친근한 도교적 신선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노자와의 회상 또는 가상 대화의 장소가 역시 도교적으로 구름 위의 산봉우리인 데 반해, 마치 땅바닥으로 추락하듯,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군자'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변하는 현실의 군주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 공자는 노정공의 장막 안에서 신하의 예로 꿇어 앉아 있다. 시각적으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 은유는 노자와 공자가 공유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달랐는지 영화적으로 말하고 있다. 공자의 좌절은 노정공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그가 은자의 길이 아닌 세속의 길을 자신의 삶으로 이미 이전에 선택했기 때문에 자연히 따라온 고통으로 보인다. 그래서 더 이상 선택하지 않고 일체의 항거도 없이 버려진다. 나는 이것이 유가적 '자연'이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공자가 나자렛 예수와 만난다고 생각한다. 흔히 공자가 모국의 군주에게 실망한 끝에 자신의 이상에 맞는 군주를 찾아내어 자신의 정치를 실현시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유랑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후 메이는 공자의 퇴출이 철저히 정치적 패배였고 최후까지 충심과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애절한 기다림에 대한 냉정한 배신이었기에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는 모습을 큰 뜻을 품고 나아갔다기보다는 비참하게 쫓겨나 구차하게 떠돌게 되었던 것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공자는 자신이 버려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버려졌다는 현실에 대해서도 받아들이는 것을 끝까지 힘들어 한다. 내가 후 메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버려지는 것에 대한 공자의 결코 원치 않았고 준비도 대책도 없었던 고통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친 예수가 기어이 죽어야 했던 것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한편 안회의 대답에서 공자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감을 알 수 있다. 자신을 바꾸는 데에는 끝이 없기에. (자신을 바꾸기를 그치지 않고 살기에는 나도 한가락 하건만. 나는 왜 멀리서는 커녕 가까운 거리 안에서도 혼자지?)
내가 여자인지라 더욱 위나라 군부인 남자와의 대화는 경악스러울 지경이었다. 촌철살인으로 넘치는 대화로 거의 백미 같은 장면이었다. 만나는 예를 마친 후 남자는 첫마디부터 핵심을 찌른다. "어진 자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가르치셨다지요? 그 사람 속에는 저처럼 평판이 나쁜 여자도 속하나요?" 지적 편력과는 별개로 그저 생생히 일상이 힘들어서 새삼스레 공자를 찾게 된 것이니까. 요즘 살기가 이렇게까지 힘든 건 내가 여자이기 때문인데, 이걸 이제와서 인정하기에는 참 마음의 저항이 남은 데다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으니, 그러니까 나도 최선을 다했기에, 이 점에 있어서만은 공자 님도 인정해 줄 것이라 믿는다. 각종 성욕제어불구 소인배들에게 시달리다 못해 역겨운 지경이라 공자 만나면 울음부터 쏟아질 것 같았는데, 내가 완전 사랑하는 배우 저우쉰이 나보다 훨씬 강단 있게 물어봐 주니... 그 어떤 하소연보다 위로가 된다.
+ 아무래도 이상해서 정확한 대사("微臣从未见过如斯好德如好色的人.")를 찾아보니, 한글 자막 오역이 너무 창의적이었군. 짐작대로 [논어] 20장: 子曰: "吾未見好德如好色者."이란 유명한 구절인데. 어쨌든, 그렇다면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나? 덕까지는 안 바라니 제발 예의 좀 갖추길. ("교수님"을 "오빠야"로 듣는
좀 진지하게는, 공자가 구설을 무릅쓰고 일단 남자를 만났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자. 특히 자로가 격렬하게 반대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한데. 공자는 남자가 단순히 베갯머리 송사를 통한 경국지색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정치적 안목을 가지고 위나라 정치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만남의 이유로 댄다. 훗날 남자가 살해당할 때 숨을 거두며 공자의 모습을 회상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세상의 이해를 받지 못한 공자가 역시 세상의 이해를 받지 못한 자신을 꿰뚫어 보고 이해하며 인정하고 있었다는 사실. 내 가슴에도 박혔었으니까.
닫는 장면에서의 공자의 독백 "후세에 날 이해하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일 테고, 날 오해하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일 것이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감독 후 메이가 이 작품을 통해서 공자에 대한 현재의 세인들의 대표적인 오해들을 몇 가지만이라도 바로잡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영화 처음부터 명확히 느낄 수 있다. 노정왕과의 대화에서 법가적 법치 체계와의 차이점을, 삼환에 대한 공자의 복잡하고 얼핏 보면 일관성 없어 보이지만 실은 굉장히 일관된, 역사적으로 빈번했던 유생들의 파벌주의와는 상반되는 원래의 유가적 원칙주의와 정명론적인 태도를, "정은 없고 사념이 넘치는" 문란하거나 폭력적인 관계가 아닌 남녀간의 애정 관계에 대한 공자의 아름다운 가치관을, 망명을 떠나던 당시의 처신이나 남자와의 독대를 감행하는 모습에서는 체면이나 평판에 연연하지 않는 대쪽 같은 신념과 용기를, 제자들을 맞아들이거나 떠나보내고 함께 생활하는 모습에서 특유의 소탈함과 다정함을. 하지만... "세인들은 공 대인의 고통을 이해할진 몰라도 그 속에서 일궈낸 진리는 모를 거예요."라고 했던 남자의 말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물론 계몽주의적이라거나 고리타분하다는 비판을 받기에 딱 알맞겠는데, 도무지 소위 평론가들의 반주지주의적 주지주의의 강박 또는 비도덕주의적 도덕주의의 횡포가 특히나 매체 예술마저 감금하려는 것을 보면, 뭐, 본인 인생만 재미없을 뿐이니. ('공가점'을 때려 부수던 공산당이 공묘 복원으로 관광 특수를 누리게 된 이후 국책 마케팅 영화로 제작하였으나 흥행과 평가 모두 망한 것은 사실이다.)
취향 저격 장면은 제나라 대부 여조의 책략으로 제경공이 노정공에게 제안한 회동을 당시 대사구로 있었던 공부자님께서 완벽하게 처리해 주시는 (내 여심을 마구 흔들어 주시는) 일화. 일차적으로 주군의 신변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강국의 권세에 맞서 동등한 권위를 세우며, 무엇보다 영토와 공물 등 예상되는 외교적 요구의 탈을 쓴 패권적 횡포에 대하여 실리적으로 밑지지 않는 협상을 성사시키는 세 가지 일을 동시에 깔끔하게 해결해 주신다. 첫 번째는 사병을 보유한 계 씨와 맹 씨 등을 협력시키기 위해 미리미리 최선을 다하지만 실패하자 기지를 발휘하여 허허실실의 책략으로 병법전을, 두 번째는 예법을 빌어 상대의 자연스러운 협조를 이끌어 내는 우아하고 우호적인 방식으로 심리전을, 세 번째는 역사와 명분을 내세운 날카로운 언변으로 외교전을. 아아, 진정한 완벽남이 여기에... 실은 다방면으로 철저한 사전 준비로 충심을 다하는 헌신적인
한 시퀀스에서 진행 중인 사건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작은 몸짓이나 지나가는 중얼거림, 배우들의 무의식적인 듯한 자세나 스쳐지나가는 표정 등을 통해서 여러 인물들의 성격과 생략된 많은 일화들을 농축적으로 전달하는 연출 덕분에 일일이 풀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계 씨가 보낸 무사에 맞서 스승을 지키기 위해 가장 먼저 칼을 뽑는 자로의 반사신경이라든가 (다 뽑기 전에 손으로 막는 스승님의 스피드가 역시 한 수 위?) 방랑 중 다같이 굶을 때 증삼과 안회의 대사라거나 등등 아는 만큼 재미있는 영화다.
가오시시 (2010, CCTV) 삼국 95부작에서 각기 조조와 제갈량 역으로 철천지 원수 사이로 나오는 첸빈천과 류이가 같은 해에 상영된 영화에서 노나라 삼환 중 첫째인 계 씨 가문의 부자지간으로 찰떡 출연하는 재미는 덤. 그러고 보니, 역사이든 원작이든 최대한 재현하기보다는 스크랩하듯이 선별한 일화에 집중하는 연출 방식이 공통점이기도 하네. 첸빈천은 신삼국에서 굉장히 복합적인 성격으로 그려지는 조조의 다면적인 면모를 맛깔나게 연기했는데, 이 작품에서도 계손사가 공자에게 느끼는 복잡미묘한 애증을 보여준다. 참으로 능란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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