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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May 16, 2021

Hans Blumenberg (1957) Nachahmung der Natur. Zur Vorgeschichte der Idee des schöpferischen Menschen 자연의 모방 - 창조적 인간 이념의 전사에 대하여

Hans Blumenberg (1957): 이 무학자 illiteratus가 학계의 권위자들을 마주할 때 보인 어조의 아이러니는, 전제조건들이 같지 않음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도 대화에 끼워 주도록 요구하는 데에서 나타나는 말하자면 민주적 양식은 또 다른 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 사람은 자기가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토대로 —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가치를 정당화하는데, 이 새로운 각인이 눈길을 끈다. 수행과 자의식의 결합은 역사적으로 결코 자명하지 않지만 쿠자누스의 이디오타에게서 포착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여기에서 몰두하는 바로 그 관점에서 포착될 수 있다. 

정신에 대한 대화의 제2장에서 "문외한"은 대화의 상대자들인 철학자와 수사학자에게 자신의 수작업이, 즉 이 직업의 종사자를 근근이 먹여 살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 직업 순위에서는 그렇게나 낮은 등급으로 매겨지는 숟가락 만들기가, 자신의 자기이해와 자기평가를 위하여 자신에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설명한다. 물론 이 "예술"도 모방이긴 하지만, 자연의 모방이 아니라 신 자신의 무한한 아르스 infinita ars의 모방이다. 이 아르스가 참신하고 자연발생적이고 창조적인 한에서는 그렇지만, 사실상 이 세계를 창조해 온 한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 정신의 이념 밖에 있는 숟가락은 표본을 안 갖고 있다." 숟가락이 곧 예술의 고품위 생산품은 아니지만, 절대적으로 새로운 무엇이고, 자연에 미리 주어져 있지 않은 하나의 형상이며, 단순한 "문외한"은 그 형상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나는 여기서 자연의 사물로부터 그 형태를 모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숟가락, 냄비, 접시 등 "문외한"이 만드는 형태들은 순수하게 기술적인 형태들이다. 그리고 그가 이러한 정황에 대해 기뻐하는 단계에서 현대 "산업 디자인"의 기본 특징인 생산품 자체의 부각 단계에 이르는 데에는 더 이상의 도약이 필요하지 않다. 인간은 존재하는 것에서 자신의 지위를 읽어 내기 위하여 더 이상 자연을, 우주를 바라보지 않고, 오로지 인간의 아르스에 의해서 생겨난 사물세계를 바라본다. 우리의 자리에서 또 중요한 것은 이디오타가 자신의 "수행"을 특히 화가와 조각가가 완성하는 것과 대비시킨다는 점이다. 이들은 사물에서 표본을 가져오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이디오타는 말한다. 여기서 창조적이고 참신한 인간의 모든 파토스 그리고 모방원칙과의 결별이 예술적 인간이 아니라 기술적 인간에게서 드러난다는 것은 평가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차이점은 아마도 여기에서 처음 실증적으로 강조되고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증명서의 가치는 바로 이 점에 있다. 창조적인 것을 입증하려는 이후의 태도, 즉 거의 전적으로 조형예술과 시문학에 집중하는 태도를 현재에도 취한다면 말이다. 거기서 작가가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고 창조하는 자발성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중세 말 이후부터는 예술의 출현형식에 속한다. 반면에 기술 정신의 역사에서는 역사 담지자들의 그러한 자기증명서들이 훨씬 빈약하다. [...] 그것은 무엇보다도 기술의 "할 말 없음" 현상이다. [74-76] 

[...] 우리는 쿠자누스의 이디오타를 역사적 지표로 여겨야 하지, 역사를 형성하는 에너지로 여길 필요는 없다. [80] 

-- 양태종 옮김 (2011: 69-124) 


"존재와 자연의 동일성" 문제와 "창조적 인간" 이념 사이의 관계를 "역사의 현상학"으로 탐구한 논문. 최고! 이쯤은 그냥 오지게 재밌는 부분. 밑줄이 민폐. 부분 인용은 실례. 눈부신 해석 수준에 압도된다. 순결한 오라클. 해석의 힘을 무차별로 권력욕에 할당하여 중화하는 시도가 저 아래로 보이는 재미는 덤.  

헤겔을 직접 소화한 학자와 마르크스의 필터로 헤겔을 읽은 학자들의 길이 서로 얼마나 갈리는지 보여 준다. 중고딩 때부터 어찌어찌 지금까지 지식 없이 그저 "직성"으로 느껴 왔던 생리적 거부감의 대상이 특정하게 무엇인지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마르크스가 아닌 줄은 독일 이데올로기와 정치경제학비판을 부분이나마 읽자마자 선입관을 깨어 주는 그 지독한 인간주의에 반했기에 첫눈에 알았다. 헤겔도 비슷하다. 최강 난이도라기에 전공자의 개인 번역본과 직강으로 살짝 구경이나 하면서야 굳이 싫달 거리도 없었다. 상호주관성에는 개념 자체보다 그 고투에 어설피 감동받기도 했으니까. 주범이 누구인지 입증해 주는 것 같은 논문을 어렵게 구했던 날의 기억도 생생하고, 명저의 느낌이 나서 답인 줄 알고 서문만 읽은 오지랖도 어언 8년 전이네. 따지면 수십 년 동안 마음 한 켠에 풀리지 않는 실뭉치 같은 걸림돌로 남아 있었는데, 그 정체가 비로소 밝혀지다니, 뜻밖의 감회다. 마치 공범들을 알지만 범행을 밝힐 수 없어 답답했던 미제 사건이 해결된 기분. 그렇다고 지금 다윈을 읽지는 좀 말자. 어차피 내가 아는 정도의 학자 중에 간단한 도식으로 정리될 수 있는 경우는 없으니까. 중요한 건, 인용은 없어도 내 눈에도 읽히는 헤겔까지 멋져 보이게 만드는 하지만 니체와 후썰 정신으로 무장한, 위대한 이 분 블루멘베르크! 


Monday, January 08, 2018

Thupten Jinpa (2017) Science and Philosophy in the Indian Buddhist Classics - Volume 1: The Physical World


어젯밤 달라이 라마의 트윗에 담긴 영상을 스크랩해 두었다가,


오늘 보고 감이 와서 바로 샀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아래와 같다. (이 프랑스인이 남아시아라고 부른 곳에 국한되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해야겠지만.)
“The genesis of science that took place in South Asia was just as demanding in terms of empirical accuracy, explanatory standards, and theoretical ingenuity as science in the West. Unlike modern science, however, it included the experience of meditation among its basic sources of knowledge. This broadening of the empirical horizon promises to trigger a new Renaissance. We are fortunate that the editors here have offered us such a clear presentation of this exceptional resource."
--- Michel Bitbol, CNRS (The National Center for Scientific Research(Research), Paris
달라이 라마가 서문에서 인용한 문구:
Monks and scholars, just as you test gold
by burning, cutting, and polishing it,
so too well examine my speech.
Do not accept it merely out of respect.
--- Buddha

Dalai Lama: The Buddha says, we must test its validity for ourselves through experimentation and the use of reason. The testimony of scriptures alone is not sufficient. This profound advice demonstrates the centrality of sound reasoning when it comes to exploring the question of reality.

정신분석학의 임상조사, 인지심리학의 실험분석, 현대물리학의 발견들, 현대형이상학과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그 결과들을 해석적으로 포괄가능한 사유체계로 불교의 존재는 독보적이다. (와이트헤드도 있지만.) 이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들의 개인적이고 지극히 내면적인 경험은 잊혀질 수가 없다. '불교논리학'의 선도지가 놀랍게도 '아직' 오스트리아임을 최근 알게 되었다. 아직인 이유가 대충 짐작이 간다.


+
유교 연구의 중심은 이제는 무슨 쐐기라도 박듯이 이론의 여지없이 하버드-옌칭 연구소이다. 재작년에 마지막으로 확인한 결과 [논어]의 영역이 이제는 여러 대학에서 강의마다(대학원도 학부 전공도 아닌 학부 교양 강의에서까지) 새로 이루어지고 초벌 원고가 공개되어 학계를 넘어선 토론을 유도한다. (즉 3세대 연구자들이 활발히 독립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고, 자연히 이들은 수도 많다. 더 이상 동경대와 국립대만대에서 교수와 박사들을 수입해 가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군자'가 noble men이나 gentleman이 아니라 junzi로 번역되는 경우가 더 많아졌고, 그 주석을 보면 고대 그리스 철학의 유사 개념들과의 차이를 상술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불과 십여 년 전에야 책의 형태로 출간된 최신의 고고학, 문헌학, 문자학의 공동 연구 성과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세계초특급이 아닌 대학의) 경영학을 전공하는 스무 살의 학생이 선택교양 강의에서 배워 알고 있는 내용이 이 정도 수준이다. (솔직히 내가 논어를 본문만이라도 당장 외워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이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는데, 여태 반도 못 외우고 있지만.) 일례로 仁의 어원 전개 과정에 대한 학계의 최신의 합의 내용을 살펴보려면 영어 텍스트를 배제하고서는 너무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일면이겠으나, 한국에 갑골문 학자는 지금까지도 몇 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중국의 유교와 일본의 유교와 한국의 유교의 사상사적 차이와 문화적 차이를 이론적으로 가장 엄밀하게 분석하고 있는 것은 현재 미국인들이고, 그들은 이것이 조선 전기와 후기의 여성의 지위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그러한 미시사적 응용분야의) 학술서 등등을 이미 일반 서점에 단행본으로 출간했을 만큼 성숙한 단계를 지났다. (단행본 출간이란 의미가 대충, 학계에서는 숱한 논문과 토론이 집적되어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가지는 동의에 이르러 십 년 전에 정리된 것이라고 봤을 때, 자연계에서는 이쯤 되면 나머지 연구자들은 이제 다른 영역을 알아봐야 하는데, 인문학계는 좀 다르려나?) 고전번역원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는데 요즘 출간 목록이 폭발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한강의 기적'급 속도감이 느껴지긴 했다. 그 내실을 알아볼 역량이 내게 없으니 따질 일도 아니고 일단 희망이 생기긴 하는데, 지고한 시간을 바쳐야만 하고 대를 이어 가야만 되고 평생을 바쳐 봐야 고작 일원으로 사라져도 간신히 이루어지는 종류의 작업들도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Monday, August 29, 2016

胡玫 Mei Hu (2010) 孔子 (Kong Zi) Confucius

胡玫 후 메이(Mei Hu) 孔子 (Kong Zi) Confucius 공자: 춘추전국 시대

@iMDb / @naver

공자: 예와 악을 위한 큰 꿈은 후세에 맡길 수밖에...

공자: 그들이 법을 지키는 건 형벌이 두렵기 때문인데, 사람들이 예를 지키고 염치를 알아서 법을 지키는 게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군주 노정공이 나라를 강하게 하는 방법으로써 제나라의 법치에 대해 묻자)

공자: 인이 우선일진데 살인은 전통이 될 수 없소. (노나라 대부 계손사가 부친의 장례에 순장 풍습에 따라 어린 노비를 죽이려 하면서 전통임을 주장하자)

공자: 자신이 원하지 않는 건 남에게도 시키지 말아야죠. (노나라 계손사가 선친의 유언에 따라 어린 노비를 순장하여 죽이려 하는 것은 효심이라고 공산유가 주장하자)

공자: 기꺼이 살신성인해야지, 어찌 살기 위해 인을 저버리십니까! (노정공이 삼성을 허무는 국책을 중단하려 하자 항변하며)

안회: 제게도 말씀하셨잖아요. 세상을 바꿔 놓을 수 없다면 자신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요. (노나라에서 축출된 공자가 자신을 따라 쫓아온 제자 안회에게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냐고 묻자)

남자: 어진 자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가르치셨다지요? 그 사람 속에는 저처럼 평판이 나쁜 여자도 속하나요?

공자: 군자는 미인을 얻고자 할 때도 예의를 지킨다는 뜻입니다. (위나라 남자가 [시경]의 한 구절 '요조숙녀 군자호구'에 대해 묻자)

공자: 시 삼백 편을 한마디로 간추리자면, 정이 넘치되 사념이 없는 거죠. (위나라 남자가 [시경]의 남녀 애정에 대해 묻자)

남자: 재물과 미색을 탐하는 게 사내의 본성이라, 차지하려 피를 흘리며 싸우죠. 그것도 천성이니 극복하기 어렵고요.
공자: 어렵기에 군자가 두드러지죠.

공자: 저는 믿습니다. 아침에 도를 알면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다고. (위나라 남자가 공자에게 군자로서 고상한 덕망을 갖추는 것을 진정 중요하게 보느냐고 묻자)

공자: 전 불편합니다. 속세의 아름다움과 미덕을 함께 원하시니까요. 대충 내가 옮기면 ==> (부인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불편합니다. 덕을 좋아하기를 색을 좋아하듯이 하는 사람을 소신은 아직 보지 못했으니까요. (다음에 한 번 더 볼 수 있겠느냐는 남자의 물음에) 
남자: 세인들은 공 대인의 고통을 이해할진 몰라도 그 속에서 일궈낸 진리는 모를 거예요.

공자: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마라. (제자 자로가 위나라 조정의 부름을 받아 떠나게 되자 기뻐하면서도 그의 성급한 성미를 걱정하며)

공자: 후세에 날 이해하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일 테고, 날 오해하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일 것이다.


2016.08.29 낮 @내 방

최소한의 배경 지식이 없었다면 지루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었을 듯하다. 다행히 이제야 뒤늦게 보게 되어서 떨리는 재미가 있었다. 평전적인 성격이 강해 시간 순서에 따르기는 하지만 차분히 흘러가기보다는 압축적으로 건너뛰기가 많다. 과감히 특정 에피소드들을 선별하는 방식이라서 자세한 지식이 있는 관객이라면 빠진 내용들에 대해 아쉬움이 많을 수도 있겠다. 현재의 내게는 안성맞춤. 고증에 충실한 세밀한 묘사들에 감탄할 수 있었던 건 역시 근래에야 알게 된 지식들 덕분이다. 건축과 실내 기구, 수레나 각종 무기 등 전쟁 장비, 의복부터 배우들의 자세나 몸짓, 어법(말투는 다소 현대화했지만 시대상 정확한 호칭들을 구사. 비록 한글 자막에선 전부 무효화됐지만.)까지 속속들이 꼼꼼했다. 무엇보다도 각본이 (영화사에라기보다) 역사에 남을 만하다. 그리고 서양인과 서구화된 관객들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듯한 욕심이 느껴지는 촬영. 특히 각본과 고증에 홀려서 두 번 연속으로 본 다음 스크롤링 해 가면서 두어 번 더 봤다.

노나라 최고 권력가 계 씨의 노비의 목숨을 구하고 제자로 거두는 일화는, 그동안 고민하면서 나름 정리해 두기는 했었지만 혼자서는 확신할 수 없었던 공자의 인과 예의 관계에 대해 명쾌하고도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어서 깨달은 것이 많다. 틀리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도 했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측면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다운로드 파일을 재생하며 본 것이라 수없이 정지 버튼을 누르면서 실시간으로 성장하는 기분이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한계가 영화를 통해 상당히 보충되었다. 현대 어원학의 발전으로 인해 구체적인 것(두 명의 사람)에서 추상적인 것(사람 사이의 관계)으로 그 의미의 폭이 넓어지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인'이란 단어를 공자가 자기 식대로 개념화하면서, 모호한 언어적 규정이 아닌 당면 상황에 즉각적으로 인을 적용하는 논리적 근거로서 매번 다르게 실체화되는 '예' 그리고 실증적 근거로서 역사(춘추)의 사례로서의 주공을 제시했던 것이었다. 현재의 과학적 기준으로도 이론과 증거가 합치할 때, 가설과 실례가 일관됨을 증명했을 때 해당 주장을 반박할 수는 없다. 반박하려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론 자체의 결함 또는 증거 자체의 오류 또는 양자의 관계의 틈을 제시해야만 한다. (아니라면, 이성주의 또는 합리주의가 아니므로 과학적 방법이 아니니까 일단 논외의 문제가 된다. 뭐 꼭 과학적이어야만 하는 건 아닐 테니. 하지만 누구든 특권적 자격 제한 없이 자기 이성의 자유에 따라 제시하기만 하면 되는데, 이걸 폭력이라고 하고, 논외의 상황을 끌어 들여서 문제를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폭력이 아닌가? 나는 후자의 폭력이 더 특권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폭력적이라고 본다. 다른 문제를 제시하고 싶다면 새로운 문제로 제시하면 된다. 자유롭게. 문제 자체를 유물론적으로 대상화시키면서 독점하려고 하지 말고. 생각이 무슨 땅따먹기도 아니고.)

계손사는 결국 "당신 말에 틀림이 하나도 없구려."라며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말이 칼보다 강하다'는 표현이 나한테 이렇게까지 깊게 와닿은 적이 없다. 현세의 숱한 오해로, 뜬구름 잡는 이상으로서 약자를 억압하는 유교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지금 말로 '정치', 권력이 강한 자가 주도하는 쟁론의 현장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어도 시퍼렇게 날을 세워 모든 불인과 불의와 무례를 처단하기 위한 최강의 설득력으로서의 인을 지극히 현실적이고 효과적으로 발휘했던 것이다.

더구나 내가 요즘 가장 치열하게 고민 중인 논제에 대한 언급이 노자와 공자와의 대화에서 건드려진다. 한자어 하나의 개념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 중인데, 이것이 보통 알려지거나 연구되는 유가적 인의예지에서 내용상 직접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확신할 순 없지만 글자 자체가 잘 등장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아직 문외한인 처지에서 관련 자료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어 벽에 부딪힌 상태다. 양명학을 살펴봐야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완전 깜깜이라 어느 세월에... 이러고 덮어 두었다. (이런 거 고민하고 있는 자신이 참 궁상스럽기도 한 현실이고.)

아무튼, 역사적 실존 자체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도 하고 세인들에게 친근한 도교적 신선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노자와의 회상 또는 가상 대화의 장소가 역시 도교적으로 구름 위의 산봉우리인 데 반해, 마치 땅바닥으로 추락하듯,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군자'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변하는 현실의 군주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 공자는 노정공의 장막 안에서 신하의 예로 꿇어 앉아 있다. 시각적으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 은유는 노자와 공자가 공유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달랐는지 영화적으로 말하고 있다. 공자의 좌절은 노정공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그가 은자의 길이 아닌 세속의 길을 자신의 삶으로 이미 이전에 선택했기 때문에 자연히 따라온 고통으로 보인다. 그래서 더 이상 선택하지 않고 일체의 항거도 없이 버려진다. 나는 이것이 유가적 '자연'이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공자가 나자렛 예수와 만난다고 생각한다. 흔히 공자가 모국의 군주에게 실망한 끝에 자신의 이상에 맞는 군주를 찾아내어 자신의 정치를 실현시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유랑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후 메이는 공자의 퇴출이 철저히 정치적 패배였고 최후까지 충심과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애절한 기다림에 대한 냉정한 배신이었기에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는 모습을 큰 뜻을 품고 나아갔다기보다는 비참하게 쫓겨나 구차하게 떠돌게 되었던 것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공자는 자신이 버려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버려졌다는 현실에 대해서도 받아들이는 것을 끝까지 힘들어 한다. 내가 후 메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버려지는 것에 대한 공자의 결코 원치 않았고 준비도 대책도 없었던 고통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친 예수가 기어이 죽어야 했던 것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한편 안회의 대답에서 공자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감을 알 수 있다. 자신을 바꾸는 데에는 끝이 없기에. (자신을 바꾸기를 그치지 않고 살기에는 나도 한가락 하건만. 나는 왜 멀리서는 커녕 가까운 거리 안에서도 혼자지?)

내가 여자인지라 더욱 위나라 군부인 남자와의 대화는 경악스러울 지경이었다. 촌철살인으로 넘치는 대화로 거의 백미 같은 장면이었다. 만나는 예를 마친 후 남자는 첫마디부터 핵심을 찌른다. "어진 자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가르치셨다지요? 그 사람 속에는 저처럼 평판이 나쁜 여자도 속하나요?" 지적 편력과는 별개로 그저 생생히 일상이 힘들어서 새삼스레 공자를 찾게 된 것이니까. 요즘 살기가 이렇게까지 힘든 건 내가 여자이기 때문인데, 이걸 이제와서 인정하기에는 참 마음의 저항이 남은 데다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으니, 그러니까 나도 최선을 다했기에, 이 점에 있어서만은 공자 님도 인정해 줄 것이라 믿는다. 각종 성욕제어불구 소인배들에게 시달리다 못해 역겨운 지경이라 공자 만나면 울음부터 쏟아질 것 같았는데, 내가 완전 사랑하는 배우 저우쉰이 나보다 훨씬 강단 있게 물어봐 주니... 그 어떤 하소연보다 위로가 된다.

+ 아무래도 이상해서 정확한 대사("微臣从未见过如斯好德如好色的人.")를 찾아보니, 한글 자막 오역이 너무 창의적이었군. 짐작대로 [논어] 20장: 子曰: "吾未見好德如好色者."이란 유명한 구절인데. 어쨌든, 그렇다면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나? 덕까지는 안 바라니 제발 예의 좀 갖추길. ("교수님"을 "오빠야"로 듣는 미친 무례한 것들. 그냥 무례한 것보다 상대의 예를 무례로 응대하는 게 더 나쁜 거거든. 자고로 "죄질이 나쁜" 것으로 여겨져 왔는데, 어디서 서양 봉건제 궁전에서 볼모로 지내던 왕족, 귀족들이 자기 목숨이 언제 달아날까 공포에 떨다 탄생시킨 매너를 예로 잘못 배워 가지고 그저 권력 우열의 관계에서 작동하는 사회적 코드라고 여기고 있는 자신에 대한 자각이나 있는 건지 예를 무슨 한쪽이 그보다 약한 한쪽으로부터 받아 먹는 건 줄로 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정책을 하필 이 땅에서 헌병대가 담당했기에 유독 졸렬하고 잔악한 방식이었던 것을 우리 고유의 삼강오륜적 장유유서 풍습으로 잘못 알고 둔갑시키고 있는가 하면... 성욕=권력이라고 고대인들도 알고 있었던 것을 나만 모르쇠 혼자 타조 놀이 하고 앉아 있으면서 적반하장이질 않나... 무식(=무례)하면 세상이 슬퍼진다.)

좀 진지하게는, 공자가 구설을 무릅쓰고 일단 남자를 만났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자. 특히 자로가 격렬하게 반대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한데. 공자는 남자가 단순히 베갯머리 송사를 통한 경국지색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정치적 안목을 가지고 위나라 정치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만남의 이유로 댄다. 훗날 남자가 살해당할 때 숨을 거두며 공자의 모습을 회상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세상의 이해를 받지 못한 공자가 역시 세상의 이해를 받지 못한 자신을 꿰뚫어 보고 이해하며 인정하고 있었다는 사실. 내 가슴에도 박혔었으니까.

닫는 장면에서의 공자의 독백 "후세에 날 이해하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일 테고, 날 오해하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일 것이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감독 후 메이가 이 작품을 통해서 공자에 대한 현재의 세인들의 대표적인 오해들을 몇 가지만이라도 바로잡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영화 처음부터 명확히 느낄 수 있다. 노정왕과의 대화에서 법가적 법치 체계와의 차이점을, 삼환에 대한 공자의 복잡하고 얼핏 보면 일관성 없어 보이지만 실은 굉장히 일관된, 역사적으로 빈번했던 유생들의 파벌주의와는 상반되는 원래의 유가적 원칙주의와 정명론적인 태도를, "정은 없고 사념이 넘치는" 문란하거나 폭력적인 관계가 아닌 남녀간의 애정 관계에 대한 공자의 아름다운 가치관을, 망명을 떠나던 당시의 처신이나 남자와의 독대를 감행하는 모습에서는 체면이나 평판에 연연하지 않는 대쪽 같은 신념과 용기를, 제자들을 맞아들이거나 떠나보내고 함께 생활하는 모습에서 특유의 소탈함과 다정함을. 하지만... "세인들은 공 대인의 고통을 이해할진 몰라도 그 속에서 일궈낸 진리는 모를 거예요."라고 했던 남자의 말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물론 계몽주의적이라거나 고리타분하다는 비판을 받기에 딱 알맞겠는데, 도무지 소위 평론가들의 반주지주의적 주지주의의 강박 또는 비도덕주의적 도덕주의의 횡포가 특히나 매체 예술마저 감금하려는 것을 보면, 뭐, 본인 인생만 재미없을 뿐이니. ('공가점'을 때려 부수던 공산당이 공묘 복원으로 관광 특수를 누리게 된 이후 국책 마케팅 영화로 제작하였으나 흥행과 평가 모두 망한 것은 사실이다.)

취향 저격 장면은 제나라 대부 여조의 책략으로 제경공이 노정공에게 제안한 회동을 당시 대사구로 있었던 공부자님께서 완벽하게 처리해 주시는 (내 여심을 마구 흔들어 주시는) 일화. 일차적으로 주군의 신변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강국의 권세에 맞서 동등한 권위를 세우며, 무엇보다 영토와 공물 등 예상되는 외교적 요구의 탈을 쓴 패권적 횡포에 대하여 실리적으로 밑지지 않는 협상을 성사시키는 세 가지 일을 동시에 깔끔하게 해결해 주신다. 첫 번째는 사병을 보유한 계 씨와 맹 씨 등을 협력시키기 위해 미리미리 최선을 다하지만 실패하자 기지를 발휘하여 허허실실의 책략으로 병법전을, 두 번째는 예법을 빌어 상대의 자연스러운 협조를 이끌어 내는 우아하고 우호적인 방식으로 심리전을, 세 번째는 역사와 명분을 내세운 날카로운 언변으로 외교전을. 아아, 진정한 완벽남이 여기에... 실은 다방면으로 철저한 사전 준비로 충심을 다하는 헌신적인 공무원 능력자. 국서가 도착하자마자 공자는 지도부터 펼쳐 놓고 회동 장소의 지형을 파악하는 작업을 가장 먼저 한다. 삼환에게서 호위 군사들을 받아내기 위해 직접 활쏘기 내기를 하는 등 (도올 선생님 강의에서 배웠던 '사'로서의 공자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애초에 부친이 무장이었고 대를 이어 기골이 장대했던) 실무자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고대에는 전쟁과 정치가 따로 나뉜 것이 아니었다는 실정을 확인할 수 있다.

한 시퀀스에서 진행 중인 사건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작은 몸짓이나 지나가는 중얼거림, 배우들의 무의식적인 듯한 자세나 스쳐지나가는 표정 등을 통해서 여러 인물들의 성격과 생략된 많은 일화들을 농축적으로 전달하는 연출 덕분에 일일이 풀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계 씨가 보낸 무사에 맞서 스승을 지키기 위해 가장 먼저 칼을 뽑는 자로의 반사신경이라든가 (다 뽑기 전에 손으로 막는 스승님의 스피드가 역시 한 수 위?) 방랑 중 다같이 굶을 때 증삼과 안회의 대사라거나 등등 아는 만큼 재미있는 영화다.
 
가오시시 (2010, CCTV) 삼국 95부작에서 각기 조조와 제갈량 역으로 철천지 원수 사이로 나오는 첸빈천과 류이가 같은 해에 상영된 영화에서 노나라 삼환 중 첫째인 계 씨 가문의 부자지간으로 찰떡 출연하는 재미는 덤. 그러고 보니, 역사이든 원작이든 최대한 재현하기보다는 스크랩하듯이 선별한 일화에 집중하는 연출 방식이 공통점이기도 하네. 첸빈천은 신삼국에서 굉장히 복합적인 성격으로 그려지는 조조의 다면적인 면모를 맛깔나게 연기했는데, 이 작품에서도 계손사가 공자에게 느끼는 복잡미묘한 애증을 보여준다. 참으로 능란한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