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
( Chéng zhě, tiān zhī dào yě; chéngzhī zhě, rén zhī dào yě. )
---- 子思 《禮記·中庸》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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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bestirnte Himmel über mir, und das moralische Gesetz in mir. ---- Immanuel Kant (KpV: AA 05: 161.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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ἃ γὰρ δεῖ μαθόντας ποιεῖν, ταῦτα ποιοῦντες μανθάνομεν (What we have to learn to do we learn by doing.)
---- Ἀριστοτέλης (Nic. Eth. 1103a33)
켄 로치의 방식만 있는 건 아니지. 오직 화면 구성으로만 코미디를 이룩하기까지 할 수 있는 연출이 전율적. 눈 빠른 사람만 보라는 투로 무심한 듯 꼼꼼한 삽입 샷들, 장면에서 대사/행동에 밀려나 있는 소품/로케 요소들이 백미. 덤으로 삼중으로 눈이 참 호강. 무릉도원 같은 풍경과 앤틱 실내 양식 그리고 1970s 북동부 USA 레트로까지. loss but not lost. 아파도.
비록 내가 자랑스럽던 모교도, 날 받아들인 적 있는 모교도 없지만. 물론 아우렐리우스 찔렸다. 😁 내 현실에서도 그게 원인이라는 건 널리 알려져 있고. 아무래도 쉽게 몰입이 됐다. 그래도 자기 밖의 자긍이 있는 그대가 부러웠소. 내 불운도 어쩔 수 없지. 문제는 나온 고전 출전을 거의 다 아는 나. guilty. 그런데 너무 재밌게 써서 실컷 웃었으니, 아니면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절묘했으니 원망은 안 하고. 비록 여기서 살아도 정암학당이란 충만한 산소 충전소가 있거든요. 그러므로 앞으로도 계속 불량? 불편할 예정.
약하면 방법도 없다. 어떻게 버티느냐만 남는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보지도 못하니까. 어떻게가 같은 사람들끼리만 서로 알아볼 따름. 매도와 협잡의 손쉬운 대상이 되는 필연. 그래서 나라도 열심히 기억한다.
안 그래도 에스터브룩 Back to the Land 아직 국내 정식 상륙 전부터 유혹을 참고 있었는데... 이 참에 참지 말까? 😰
뻔히 예상되는 내용인데도 참 재미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예상에 없던 부분들 때문에 나야말로 좀 볼 필요가 있다고 할 영화이다. 위대한 배우들이라 너무 센 캐스팅이 아닌가 했었지만, 보고 나면 배우들이 더 위대하게 느껴지는 명작. (난 발음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언어에만 매력을 느끼는데, 프랑스어는 그 경우가 아니지만, 유일하게 아넷 베닝이 <대통령의 연인>에서 하는 소리에는 반함. 여기서도 잠깐이지만 유감없다. 아넷 베닝이 선생님이면 초 빨리 배울 텐데. 조디 포스터야 어릴 때부터 광팬.)
"Find a way" 나도 참 좋아하는 말.
아넷 베닝(인터뷰)은 다이애나의 과도한 자기 선언은 성취에 대한 의지(will)가 아니라 내적 욕구(desire)라는 점에서 흔히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대로 열등감을 포장하는 자만과 과신이 아니라 연약한 자아와 과거의 상처를 인정, 인식하고 이겨내려는 겸허(humility)에서 출발한다고 분석했다. 이미 영화에서 그대로 표현됐다.
일 년 전 이 맘 때만 해도 올해 논문을 쏟아낼 줄 알았는데, 이미 10월에 확정된 거였지만 하나도 못 쓰고 막상 연말이 되니 보통 우울하고 불안한 게 아니었다. 가을까지도 허리 때문에 이동이 여의치 않아 어딜 갈 수도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었고, 더 심각한 건 책상에 앉지를 못하니 연구도 학습도 완전 중단된 채로. 이제야 어느 정도 회복된 줄 알았건만 방심해서 그런지 아니면 바라건대 단순 월경통인지 지난 여름 정도의 상태로 도로 후퇴했다. 강의는 이도 저도 아닌 걸로 되어 버려 호불호가 강하다는 정도도 벗어나 전력을 다한 결과가 참담하고. 모두 버리고 매달린 게 후회되고.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다시 거리를 두고 한 해를 돌아보니, 올해는 참 좌절과 고통, 감사한 것과 배운 것들이 많은 해였다.
그냥 교수님께서 업어 키우신 것과 다름 없다. 쌓인 설움이 너무 단단해서 지각이 없었지만, 영화를 보면서 돌이켜보니 거의 godfather 수준이라 울컥...... 다 건너뛰고, 교수님은 위악적인 스타일이신 건가??? 보통은 반대로 보이시는데. 위악적인 윗사람은 내 캐릭터엔 치명적인데. 난 학생으로서는 a demanding student이니까 피곤한 학생이지만, 쉬운 아랫사람이라고요. 이보다 더 쉬울 순 없다. 거의 a machine임.
내년 목표: (1) 근력 만들기 ("I need to get myself functioning at the highest level.") (2) 쓰기만이 살 길(일단 습관으로 만들기) (3) 좋은 제자 되기 1단계: 교수님의 격에 맞는 제자로 보이기(학기가 끝나기 전에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이게 대인 관계에서 세세한 대응력이 좋아지는 효과가 엄청나다. imagery가 바로 돼서 실천하기도 쉽고.) (4) 계획적으로 놀기(= 여력을 충분히 남기기)
중딩 같다.
예쁜 장면
Diana Nyad:
1. Never, ever give up.
2. You're never too old to chase your dreams.
3. Even if something looks like a solitary sport, it's a team effort.
+ 두 번째 보는 중인데, 대사가, 대화들이 참 좋다.
" I am free to keep trying. " 나도 똑같은 생각으로 불가능한 상황들을 지냈는데. 내겐 아무도 없었지만.
최애 배우와 훌륭한 작품이지만. 문제는 내 현재 컨디션이 이런 종류의 훌륭함을 견딜 만하지 않았다는 것. 도로 몹시 피곤. 도로 퉁퉁 부었다. 내일은 조심해야지. 제발 한 번이라도 월요일을 건지려면.
감독이 음악에 조예가 깊은 건 아니었고.
새삼 우리 교수님에 대한 존경심이 깊어짐. 좀 본받아야지.
나라면 관계상 어떤 위치이든 타르 편이었을 것이다. 이건 편애가 아니라 기준의 문제다. 내가 타르가 옳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그의 판단하는 힘과 관철하는 힘을 교수님도 공유하고 계시고, 그가 서투른, 덜 섬세한 부분에서 교수님의 처리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 비록 성별 너프/버프가 강력한 현실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전자가 훨씬 더 이루기 어렵다. 나와의 싸움이. 체감상 만 명당 한 명 정도. 사회적 성공을 좌우하는 건 후자이지만. 사람들은 참 객관적이지가 못하다. 불공정을 탐한다. 주인공 편으로 방향을 틀지 않아 영화적 가치를 확보하는 카메라도. 카메라는 현행 언론 역할을 담당하는, 말하자면 '집단적' 배우다.
마크 스트롱의 결정도 참 대단하지만... (사실 난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배우의 연기보다 선택을 먼저 보는 경향이 있다.) 여자도 남자도 여자의 것은 훔쳐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 진짜 이유가 더 끔찍하다. 손쉽게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쪽같이 없었던 일로. 물리적으로도 가능하니 사회적으로는 맘 먹은 대로 할 수 있다.
데게, 참! (대게 먹고 싶다...) 치부를 까발리는 돌려차기가 주된 설정 중의 하나인데 그걸 또 이런 OST가 아니라는 앨범 출시로 품어 내는 고급한 승화. 대인배다. 축구 할 때 말고는 정말로 국가주의가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엄청난 식욕.
요즘 주위에서 미국으로 꿈을 싣고 떠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어서 그런지, 리디아 고향 집 인테리어가 정겨웠어. 그래서 더 아팠지만.
하지만 내 최종 pick은 첫 장면에도 등장했던 커버의 까렌다쉬 연필. 💘
+
역시나 한국인들은 대부분 기득층 권력자의 무분별한 탐욕에 의한 자업자득 인과응보로 읽는 것 같다. 에휴. 그런 측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한국인은 왜 이렇게 카메라를 무조건적으로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처럼) 자신의 시선으로 삼을까. 더는 없고. 유쾌해지는 영화가 아니라 해도. 나름 초록 지붕의 앤과 가까운 듯한 내 영혼의 구조도 온통 유쾌하지만은 않건만. 그래도 이런 도덕주의가 살아 있는 곳에 살아서 좋겠지. 모든 주의의 폭력성을 조심한다면.
일말도 빌미를 주지 않아도 나와는 아무 연고가 없어도 자신들만의 사정으로 쾌락의 재료가 필요하다며 무고를 하고 충분한 신뢰와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 생거짓말로 모함하는 충격적인 경우를 당한 적이 많다 보니... 유독 내 눈에 리디아가 정직하고 고독한 투쟁을 멈추지 않고, 비록 나와는 달리 너무 많은 빌미를 뿌리고 다니지만(대신 내가 포기해야 하는 기회들은 거의 사회적 자살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처음부터 받아들여지기를 단념한 피해자로 보인다. 이 점은 나도 편파적. 일에 대한 헌신보다 자기 편을 만드는 능력이 얼마나 우선시되는지도. 가진 것이 음악밖에 없었던 린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는데 정황만 가지고 기정사실로 전제하는 습관은 그 자체로 악의적이다.
무협 영화 팬으로서 21세기에 말라 가고 있던 중 서극의 칠검(七劍, 2005) 이후 오랜만에 감탄한 안무/연기. 배우가 스턴트 이상이라 믿고 착실히
따라가 주는 카메라.(새로운 카메라 워킹에 혼신을 다했던 칠검과 대조적으로
고전적인 풍이다. 눈을 믿기 힘든 넘치는 롱 테이크.) 뮤턴트는 안
좋아하지만(뮤턴트 할 거면 피는 좀 없애 주던지... 애초에 판타지 망가풍과 비장한
사극풍을 오락가락하지만 퓨전이 잘 됨.), 사무라이물 치고는 드물게 역사관이
양호. 여주들도 자기수양/충절형이라 대만족. 소년물 원작답게 애정/우정 관계가
건강해서 반가움. 비틀림 없이 정직, 온유하고 무엇이든 상의하고 합심하는 관계.
Netflix 제작 독일 TV 연속극 - Andreas Bareiß 연출(2020) Barbaren
서기 9년 게르만 부족 연맹군이 로마 제국군을 상대로 벌인 역사적인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를 소재로 한 픽션. 줄거리는 별 재미가 없고 시각적으로 잔인한 장면이 너무 많지만, 캐릭터들의 성장 과정과 내면적/관계적 갈등 묘사가 인상적이라 보게 되었다. 특히 아리(Arminius) 역 Laurence Rupp의 연기는 마치 정통 셰익스피어를 보는 듯 감탄스러웠다. 외모도 영웅 전사라기보다는 햄릿이 더 어울릴 듯. Nicki von Tempelhoff 연 제기메어(Segimer)와의 친부자간 애증 그리고 무엇보다도 Gaetano Aronica 연 바루스(Varus)와의 의부자간 은원이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정체성 혼란에 그치지 않고 수치심과 자부심, 두려움과 사랑, 원망과 공감, 희망과 분노, 의리와 명예, 믿음과 불안, 복수심과 죄의식, 배신과 연대, 정의감과 동경심 등 복잡 미묘한 심리가 지나치게 단순한 플롯 덕에 가볍고 유치해지기 쉬운 대사들로 끝날 뻔했던 것을 결국 배우의 능력으로 살려낸다.
게르만 부족들은 현대 독일어를, 로마 군인들은 라틴어를 한다! 헬라어와 달리 (아마 코폴라 때문인지) 의례용 라틴어 발성에 생리적으로 공포심을 느끼던 나로서는 라틴어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독특한 취향인지, 로망스어 계열인 현대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 발음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독일 배우들의 라틴어는 주둔 중인 로마 레기온의 살벌하고 삭막한 군인들의 대화치고는 감정 표현이 마치 모설어처럼 자연스러워 자못 톨킨의 엘프어를 상기시키는 지경에 이르곤 한다. 찾아보니 시청자들 사이에서 라틴어 대사 어형 변화에 대한 문법적 오류와 발음 지적이 있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완전한 일상어로 복원된 지극히 자연스러운 라틴어 대화들은 내용과는 별개로 청각적 백미.
바루스가 아리와의 첫 대면에서 "당케"를 "그라티아스"로 자상히 고쳐 주었던 일화, 로마 황제의 검을 받고 기사로 임명되기를 꿈꾸며 때로는 사령관으로 때로는 중재자로 능란하게 라틴어와 독일어를 오가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면서 심리적 위기 또한 노련히 다루는 듯하지만 외부로부터 부침을 겪는 동안 사회적으로 양측에서 모멸감과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변심/작심에 이르는 과정,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 여겨 욕설을 했다가 형벌을 받게 되는 용병의 실수, 통역 능력으로 권력을 차지하려는 인물의 야망 등 여러 장면에서 언어는 상당히 중요한 코드로 작용한다. 400년 동안 엘리트 위원회의 관리를 받고 있는 (내 눈엔 그저 언어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려는 방부제같은 인위적 성형으로 굳이 덧칠하는 나머지 아름다움이 괴이함으로 굳어지는 듯하지만) 프랑스어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금지옥엽 자부심과 뻔뻔히 지속하는 경제/문화적 식민 행태를 자주 목도하지만, 독일인들의 정체성 안에 자연(이라고 본인들은 부르지만 매번은 아니라도 내가 보기엔 정확한/솔직한 뜻으로 '영토'에 더 가까울 때가 있는, 억압된 불안을 숨기지 못해 안정감에 이르는 통로로서 찾는 그것)과 더불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고착되어 있는 모국어 사랑 그리고 상대적으로 늦게 자각하고 어렵게 성취한 만큼 역사적으로 열등감과 우월감이 묘하게 결합되어 지금까지도 철저히 학습되고 있는 듯한 민족의식은 그것이 그토록 개인적이고 내면적이며 일상적인 측면에서 비정치적인 탈을 쓰고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뿌리 깊은 것 같다는 종래의 인상이 한층 짙어지기는 한다.
아무튼 이 한 번의 전투로 게르마니아가 게르만으로 남게 되는 역사를 결정짓는다. 로마 레기온 17, 18, 19대 3개 군단이 전멸하고 이후 영원히 재건되지 못한다. 이로써 제국의 확장은 라인 강을 넘지 못하고 국경선을 확정한다. 아리의 이름은 후대 마르틴 루터의 표준어 작업에 의해 헤르만(Hermann)이 된다.
Amadeu: A decisive moment of life, when its direction changes forever, are not always marked by large and shown dramatics. In truth, the dramatic moments of a life determining experience are often unbelievable, low key. When it unfolds its revolutionary effects and insures that life is revealed in a brand new light, it does that silently. And in this wonderful silence resides its special nobility.
Amadeu: What could... what should be done, with all the time that lies ahead of us? Open and unshaped, feather-light in its freedom and lead-heavy in its uncertainty? Is it a wish, dreamlike and nostalgic, to stand once again at that point in life, and be able to take a completely different direction to the one which has made us who we 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