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
( Chéng zhě, tiān zhī dào yě; chéngzhī zhě, rén zhī dào yě. )
---- 子思 《禮記·中庸》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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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bestirnte Himmel über mir, und das moralische Gesetz in mir. ---- Immanuel Kant (KpV: AA 05: 161.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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ἃ γὰρ δεῖ μαθόντας ποιεῖν, ταῦτα ποιοῦντες μανθάνομεν (What we have to learn to do we learn by doing.)
---- Ἀριστοτέλης (Nic. Eth. 1103a33)
Konzert für Frieden Staatskapelle Berlin + Staatsopernchor / Daniel Barenboim 2022-03-06 Staatsoper Unter den Linden, Berlin
[6:06] Mychajlo Werbyzkyj (1863) Ще не вмерла Україна (Schtsche ne wmerla Ukrajina) NATIONALHYMNE DER UKRAINE auf das Gedicht »Noch ist die Ukraine nicht gestorben« von Pawlo Tschubynskyj
타르코프스키에게 방법인 것이 베리만에게 소재이다. 배타적이지 않을 뿐. 이래저래 나에게는 마치 갈릴리의 예수와 타르소스의 파울로스 같다. 성공한 예술에서 작가의 의도란 관객에게 전달된다기보다는 관객 안에서 피어난다. 고유하게.
연출에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는데 책에 그 형편이 나와 있다. 속 뻔한 작태들과 입장 없음이라는 강력한 입장을 무력증의 핑계로 대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 철학 고전과 미학 페이퍼는 예술-공학자들과 읽게 되겠지. 변명 없이.
Андрей Арсеньевич Тарковский (Andrey Arsenyevich Tarkovsky, 1986): (네 번의) 모든 꿈은 상당히 구체적인 연상을 근거로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첫 번째 꿈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엄마, 저기 뻐꾸기가 있어!"라고 외치는 대목까지, 나의 어린 시절의 첫 추억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세계와 처음 만나는 시간이었다. 그때 나는 네 살이었다.
인간에게 회상은 소중하다. 따라서 회상이 항상 시적인 색채로 장식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회상은 어린 시절의 회상이다. 사실, 기억은 과거의 예술적 재구성에서 토대가 되기 전에 일정한 손질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특별한 감정적 분위기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분위기가 없다면, 자연주의식으로 자세하게 재구성되는 회상은 모두 쓰라린 환멸감만 불러일으킬 것이다. 당신이 태어난 집이지만, 이미 오랫동안 보지 못한 집을 상상하는 것과 시간의 거대한 간극을 통해 이 집을 직접적으로 관조하는 것 사이에서 나오는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보통 회상의 시적 특성은 회상의 구체적인 원천과 충돌하게 되면 깨지기 마련이다. 나는 바로 이런 기억의 특성으로부터 발전해 나오는 어떤 독특한 원리 위에서 최고로 흥미로운 영화가 탄생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행위와 사건의 논리, 주인공의 행동 논리는 외적으로 깨지게 된다. 이것은 그의 회상과 몽상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되면, 심지어 주인공 자신을 보여주지 않고도, 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전통적인 연출로 만들어진 영화에서 흔히 그런 것처럼 주인공을 보여주지 않고도 커다란 의미를 표현할 수 있고 독특한 성격을 묘사할 수 있으며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드러내 보일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문학과 시에서 주인공의 서정적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과 일치한다. 주인공 자신은 부재하지만, 그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그에 관한 분명하고 확실한 관념을 만들어낸다.
2019-11-01 hr-Sinfoniekonzert ∙ Alte Oper Frankfurt
나에게는 좋아하던 곡이 아닌데도 귀가 특별히 즐거운 연주일 따름이지만, 예술의 초월적 권능과 어쩔 수 없이 부러워지는 문화. 이렇게 다시 만난 러시아(작곡), 독일(악단), 핀란드(지휘)라니, 나도 이런데 이들에게는 더욱 만감이 서릴 장면. 아무튼 단번에 기억하게 된 클라우스 매켈라는 96년생으로 현재 노르웨이의 오슬로 필 상임 지휘자라니 다른 의미로 orz. 그렇다면 문제의 도시에서는?
2018-05-05 Saint Petersburg Philharmonic Orchestra Grand Hall
저음부의 무게감이 굉장한데 묘하게 우아한 기품이 있다. 확실히 도저히 못 살겠는 괴로움과 압박을 주기도 하고, 의외로 발랄한 모습에는 소박함이 넘쳐 매력적이다. 해석이 이렇게나 다르다니 애써 찾은 보람을 준다. 매켈라의 쇼스타코비치가 시적이라면 테미르카노프의 오케스트라는 영화적이랄까. 완전히 다른 종류의 생생함이 의미심장하군.
"An hour ago, I finished the score of two parts of a large symphonic composition. If I succeed in writing this composition well, if I succeed in completing the third and fourth parts, then it will be possible to call this composition the seventh symphony.
Why do I announce this? So that the radio listeners who are listening to me now will know that the life of our city goes on as normal.
We are all now doing our military duty. Soviet musicians, my dear friends and numerous brothers-in-arms, my friends! Remember that our art is now in great danger. Let us defend our music, let us work honestly and selflessly!"
로 봤을 때, 반히틀러였느냐 반스탈린이었느냐의 문제에 대한 논란과 관련해서는 증언의 내용이 사실에 가까운 것 같다. 저 정도면 단순히 민족/애국주의라고도 소비에트 정부의 선전에 무조건 협력했다고도 할 수 없다. 오히려 당시 참혹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입장이 분명하다 못해 강경한데, 인기와 이용가치 때문에 양쪽에서 얼버무림을 당한 거겠지.
다만, 심리전의 수단으로 무리하게 강행된 초연을 위해 기아 상태에서 연습에 강제 동원되어 급사당한 무명의 민간인 음악가들과 더불어 압력을 받아 고난을 겪은 가족들이 있었음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