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
( Chéng zhě, tiān zhī dào yě; chéngzhī zhě, rén zhī dào yě. )
---- 子思 《禮記·中庸》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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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bestirnte Himmel über mir, und das moralische Gesetz in mir. ---- Immanuel Kant (KpV: AA 05: 161.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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ἃ γὰρ δεῖ μαθόντας ποιεῖν, ταῦτα ποιοῦντες μανθάνομεν (What we have to learn to do we learn by doing.)
---- Ἀριστοτέλης (Nic. Eth. 1103a33)
이런 미친 극화 실력/상상력 때문에 도무지 독일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 물론 최애국은 가공스러운 위력의 리투아니아이지만. 영국의 시류를 읽는 초절정 감각과는 또 다른. 바로크 전문으로 알았던 지휘자의 색다른 면모도 방가!
실은 나도 그의 죽음에 대한 희곡을 쓴다면 사악한 마음으로 재밌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긴 한데. Peter Shaffer 스타일로 가능하다면.(이라는 점에서 걸림. 😅) 이미 단막 오페라가 있었네. (Michael Finnissy, 1995, Shameful Vice)
아무리 사랑을 받아도 동정을 얻지 못하면 굶주린 것 같은 상태에 이르는 여자가 있다. 아무리 인정을 받아도 굴복을 얻지 못하면 늪에 빠진 것 같은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남자가 있다. '인간적인 모든 것은 내게 낯설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정신도 괜찮겠지만,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운 채로 남겨 두는 것들이 있는 삶도 꼭 나쁘지만은 않겠다. 규칙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캐릭터일수록 자기 연극에 강제로 출연시키는 재미가 있고 그러한 상대일수록 더 공들여 좌절시키는 보람을 느끼기에 우선적 표적이 된다는 문제가 있기는 한데. 이들은 자신의 목적만 빼고 다른 모든 것들을 거는 집요한 특성이 있기에 파괴당하지 않으려면 좀 피곤하더라도 잘 도망다니는 수밖에. 서로 찰떡궁합으로 보이니 부디 나처럼 지루한 부류는 놔두고 그냥 효율적으로 저들끼리 잘 살면 될 텐데. 원작도 영화들도 본 적이 없지만, '나사의 회전'과 '여인의 초상'이 한 쌍이 된다면 행복하지 않겠나.
음악과 무대가 참 훌륭한 공연. 취향은 아니지만. 니홍이나 잉글랜드나. 상습적 피해자로서 위로된다.
chorus: Chœur de Paris / Till Aly orchestra: Les Talens Lyriques / Philippe Pierlot direction: Calixto Bieito, revival by Lucía Astigarraga 2021-05-11 Théâtre du Châtelet, Paris 2021-12-04까지 재생 가능 (영/프 자막)
요즘따라 9년 전 5월이 자꾸 생각난다. 그때와 비슷한 심정이라서 그런 듯. 자멸하는 듯한.
다니게 된다면 필요한데 볼 여유가 없을 것 같아 처음 읽기 시작했던 신약에 빠져들어 혼자 전도되고, 그리고 교수님 논문... 지금 나 좀 궁상스러운 것 같아...
어쨌든 요한복음과 로마서를 안 읽고 서양 인문학을 이해할 수는 없다. 에라스무스의 실행도, 칸트의 용기도, 니체의 분노도. 난 마가, 마태, 누가, 히브리서, 갈라디아서를 좋아하지만.
고린도서 읽고 상사병에 걸렸을 때만 해도 코린토스에 진짜 가 보게 될 줄이야 어찌 상상이야 했었겠어! 꿈같은 여행 또 가고 싶다. 이번엔 꼭 델로스로. 밀레토스랑.
오페라는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심해 편식쟁이다. 작곡가를 따라간다. 푸치니, 레온카발로, 마스카니, 마스네. 베리스모니 뭐니 하지만 리브레토보다 무조건 음악이다. 내적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오페라에 있어서 만큼은 나에게 감히 모차르트가 곁가지랄까. <마술 피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2막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이중창이다.
Pa-, pa-, pa- (Act 2: Scene 8: A garden with a tree) in: Wolfgang Amadeus Mozart (1791) Die Zauberflöte (The Magic Flute), K. 620 by Roderick Williams and Christina Gansch
음반이나 공연보다 TV에서 (찾아보니 1989년 MBC 방영) 영화 <Amadeus 아마데우스>(1984, Miloš Forman)를 봤던 때부터였을 텐데, 조금 사연이 있다. 아마 그 이 년 전쯤 우연히 피아노 학원에서 읽은 동화책에 <마술 피리>의 캐릭터들이 액자 형식으로 등장했다. 줄거리는 생각이 안 나지만 원작과는 무관한 내용이었다. 액자 안의 이야기는 환상적인 데 반해 밖은 너무나 현실적이었고, 무엇보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가 주인공에게 (주위 어른들의 위협적 경고로 인해) 묘하게 두려운 분위기로 느껴지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어 겹겹으로 긴장감이 굉장했다. 따져 보면, 그 어떤 측면에서도 선악의 이분법이라든지 동화책을 구성하는 각종 클리셰들을 비켜가는 복합적 설정과 일상의 편견들에 간편히 빠지지 말 것을 권고하는 듯한 미묘한 상황들이 펼쳐졌던 것 같다. 외국 작가의 창작 동화를 번역한 것이었다고 기억하는데, 따져 보니 훌륭하네. 찾고 싶다.
Wolfgang Amadeus Mozart (1791) Die Zauberflöte (The Magic Flute), K. 620
밤의 여왕이 부르는 총 세 번의 아리아 중 가장 유명한 두 번째. 2017년 당시 로열 오페라가 기부 모금 이벤트로 유튜브 공식 채널에 공개한 이래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어릴 때는 사디스트가 되는 기분이 들어서 마음놓고 감탄하지를 못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보낸 하루가 부끄러워져서 역시 마냥 즐기고 말지 못한다. 그래도 밤의 여왕 이미지가 이보다 더 생생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참고로 모차르트에게 영감을 준 실제 인물은 장모가 아니라 처형이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재밌었다기보다 깊은 존경심을 품게 되었던 장면이기도 하다. 한편, 녹음과 저작권 문제가 있지만 조수미의 연기가 어떻게 특별히 아름다운지 느낄 수 있는 영상도 있다. 그리고 이 곡으로 콜로라투라들의 기량을 비교하는 잔인한(?) 영상들이 떠돌고 있지만 실수로가 아니면 클릭하지 않는다. 그런데 혼자 듣기 아까운 연주를 또 만났으니, 가수가 메릴 스트립이다. 응?
실화보다 영화에서 만들어진 감동이 더 크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명배우로서 연기력 이외에 음악적 재능 또한 특출남을 알 수 있다. 음치 연기에도 묘하게 현대음악적인 조화미(?)가 있달까 처음엔 그저 웃느라 눈물이 다 났었지만 은근 다시 들어 보게 된다. OST 수록 버전. 그리고 실제 플로렌스의 녹음본도 있네. 예술보다 숭고한 남편의 사랑과 재력.
그러다 맙소사! 작년 말 로열 오페라에서 COVID-19 상황을 위로할 겸 기부 이벤트 겸 아예 전편을 공개한 공연 실황 녹화 영상(영어 자막)을 발견했다. 대사가 중요한 작품이 아니라 자막의 필요성은 잘 모르겠지만, 파파게노/파파게나 커플로는 맨 위 영상에도 등장한 이때 배우들이 인기가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선택은
Claude-Michel Schönberg 작, Voxxclub & Florian Silbereisen 연 (2015) Das Lied des Volkes (aus dem Musical Les Misérables)
Hört ihr, wie das Volk erklingt? Von uns'rer Wut erzählt der Wind
Das ist die Sinfonie von Menschen, die nicht länger Sklaven sind
Jedes Herz schlägt, wie es kann, unsere Herzen trommeln laut
Alles fängt ganz von neuem an, wenn der Morgen graut
Wenn die Barrikade ruft, dann bebt der Feind vor unserem Schrei
Wir bauen eine Welt ganz ohne Hass und Tyrannei
Drum schließt euch uns an, jede Frau, jeder Mann, und seid frei
Hört ihr, wie das Volk erklingt? Von uns'rer Wut erzählt der Wind
Das ist die Sinfonie von Menschen, die nicht länger Sklaven sind
Jedes Herz schlägt wie es kann, unsere Herzen trommeln laut
Alles fängt ganz vom Neuen an, wenn der Morgen graut
Wenn du kämpfst mit ganzer Kraft, hat bald ein Ende alle Not
Mancher wird dahingerafft, stirbt einen ehrenvollen Tod
Die Erde von Frankreich, vom Blut unserer Helden hellrot
Hört ihr wie das Volk erklingt? Von uns'rer Wut erzählt der Wind
Das ist die Sinfonie von Menschen, die nicht länger Sklaven sind
Jedes Herz schlägt wie es kann, unsere Herzen trommeln laut
Alles fängt ganz von Neuem an, wenn der Morgen graut
투쟁도 참 유혹적으로 하시네. 좀 나는 본받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발음이 너무 정확해서 연습하려고 고른 거였는데. 몸짱이시라 단순히 내 눈이 현혹되어서 그런가? 어쩐지 징글징글.
Alain Boublil/Jean-Marc Natel/Claude-Michel Schönberg 원작
프랑스어: À la volonté du peuple
À la volonté du peuple et à la santé du progrès
Remplis ton cœur d'un vin rebelle et à demain, ami fidèle.
Nous voulons faire la lumière malgré le masque de la nuit
Pour illuminer notre terre et changer la vie.
Il faut gagner à la guerre notre sillon à labourer
Déblayer la misère pour les blonds épis de la paix
Qui danseront de joie au grand vent de la liberté.
À la volonté du peuple et à la santé du progrès
Remplis ton cœur d'un vin rebelle et à demain, ami fidèle.
Nous voulons faire la lumière malgré le masque de la nuit
Pour illuminer notre terre et changer la vie.
À la volonté du peuple, je fais don de ma volonté.
S'il faut mourir pour elle, moi je veux être le premier
Le premier nom gravé au marbre du monument d'espoir.
À la volonté du peuple et à la santé du progrès
Remplis ton cœur d'un vin rebelle et à demain, ami fidèle.
Nous voulons faire la lumière malgré le masque de la nuit
Pour illuminer notre terre et changer la vie.
이성과 고뇌의 좌절. 자승자박 식의 신념과 인내를 고수하며 일상의 기쁨과 육체적 쾌락을 희생시키는 삶에 대한 회의. 두 팔을 내뻗고 "메뚜기처럼" 끊임없이 뛰어 보아도 자신의 발 아래도 보지 못하는 인간 지성의 한계. 이상을 향해 매진하는 삶의 맹목성을 자각하고 절망하는 순간, 신에게선 고달프고 어리석은 땀내를, 악마에게선 아름답고 신선한 바람을 느낀다. 그 절망에마저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괴로워할 때, 무대 위에서 책들이 묶여진 의자가 떨어진다. 고상한 품격의 상징이었던 검정은 죽음의 색으로 변하고 그 둔중한 반향과 파우스트의 나약한 충격이 뒤섞이는 동안, 자랑스럽게 펄럭이던 메피스토펠레스의 붉은 망토가 그리워진다.
2006년 <햄릿>으로 나를 사로잡았던 네크로슈스가 괴테를 들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겨우내 기다렸던 공연. 효과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그 자체로 배우보다 더 명확하고 풍부한 의미를 전달해 주던 시각적, 촉각적 은유들이 여전했다.
몰입을 방해하는 대사가 많았고, 배경음악의 선곡과 원작에 대한 해석이 아쉽기는 했다. 일차적으로 독해하고 말기에는 너무나 고전이었으니까... 가시를 세우자면, 네크로슈스에게 네크로슈스의 어법만이 "뼈다귀처럼" 남았다고나 할까. 숙성과 초월에 이르지 못한 열정에 쉬이 만족하기에는 그를 이미 거장으로 보았던 나의 기대가 아깝다. 괴테를 뛰어넘은 뒤라야 괴테를 보여 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가 셰익스피어를 분해시키고서 네트로슈스가 되었듯이. (나는 왜인지 연극에 대해서 유독 신랄해진다.)
르빠주는 안데르센의 일기를 통해 그의 사회적, 개인적 좌절을 발견했다. 아이들을 싫어했던 안데르센은 자신을 동화작가라 여기는 덴마크를 떠나 파리 등지의 인사들과 교류하기 위해 여행을 다녔고, 양성애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성과 동성 모두로부터 거절당했다. 르빠주의 분신인 등장인물 프레드릭은 캐나다 출신 작사가로 일 때문에 파리에 오지만 직업적 성취를 얻지 못한 채 연인과 결별에 이른다. 안데르센과 프레드릭을 통해 르빠주는 문예 분야에서 지난 수백 년간 존속되고 있는 일종의 '파리 컴플렉스'(?)를 소재로 삼았다.
19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는 화려한 문화의 도시 파리는 예술과 지성의 중심이면서 동시에 성 상품과 차별이 범람하는 퇴폐적이고 폭력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픽샵과 파업으로 대변되는 현재의 파리의 모습에는 자유라는 표상 아래 자리한 파리지엥의 고독과 선진적인 사회제도와는 동떨어진 이민자들의 비참한 생활이 교차한다. 오페라 극장 디렉터 아르노의 아내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와 바람이 나 딸을 데리고 떠나 버리고, 모로코계 청소부 라시드는 타인의 체액을 닦는 일을 한다.
네 명의 등장인물들의 소망과 목표가 좌절되어 가는 과정이 마치 영화처럼 빠르게 전환되는 장면들 속에서 밀도 높게 그려졌다. 이브 자끄는 변검에 버금가는 묘기로 영어와 프랑스어, 왈츠와 테크노를 오가며 일인극을 무색케 하는 연기를 펼쳤다. 체구와 두상까지 완전히 달라 보여서 신기했다.
거품처럼 발화하는 존재. 꺾이기보다는 증발해 버리는, 갇히기보다는 죽어 버리는. 절실하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결벽증. 변신과 여행에 대한 갈망. 낯설음와 위험에 대한 공포증.
첨단기술을 사용한 멀티미디어 무대 연출로 유명한 르빠주의 2003년 내한 공연 <달의 저편>을 놓쳤던 아쉬움에 더욱 기대감을 가지고 찾았던 작품이다. 일반적인 정극과 비교하면 신선하고 파격적인 형식임에는 분명했지만, 나로서는 무슨 기술들을 적용했는지 대체로 읽을 수가 있었기에 전혀 낯설지 않았다. (기술면에서는 오히려 내가 하고 있는 작업들이 더 앞서 있다.)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작품 내에서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극에 대한 내적인 이해를 배제하고는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르빠주의 <안데르센 프로젝트> 그리고 안데르센의 두 소설과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는 형식적인 실험을 위해 기술을 적용하지 않는다. 그러한 태도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오로지 메시지, 내용에 집중하며, 전달하고자 하는 것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적합한 수단을 개발하여 취할 뿐이다. 그는 아무 것에도 사로잡혀 있지 않다. 그 점이 가장 훌륭하다. 그러한 순수하고 엄격한 접근이야말로 미디어 아트를 둘러싼 모든 표피적인 논쟁들, 진정성에 대한 회의, 방법적인 다양성에 의한 무의미한 선별 작업들을 종식시킬 명쾌한 판정이 아닌가 싶다.
자, 그의 말을 따라서, 드라이아드의 파멸과 그림자의 승리라는 결말로 나를 이끌 내 안의 순결하고 불결한 욕망들, 그것을 실현시키려는 의지와 억압하려는 의지 사이의 갈등들, 원하지 않아도 필연적인 외부로부터의 오해들, 무고한 타자에 대한 나의 이기심과 뜻하지 않았던 사악함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나쁜 것들을 천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인간의 능력, 그리고 불확실한 힘들의 충돌 사이에서 우연히 발생되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가능성들... 이 모든 열린 구조로의 자유로운 개입을 감행하자.
2002년의 내한 공연을 놓치고 얼마나 아쉬웠었는지 모른다. 예상보다 더... 독특한 장치들이 만들어 내는 효과들이 내가 해 보고 싶어서 오랫동안 안달하고 있는 시각적 이미지들과 비슷했다. 재료들이 완전히 동일한 것들도 많았다. 그래서 기분이 좋기도 안타깝기도 했다.
네크로슈스의 햄릿은 어린아이이다. 그는 어머니가 바지를 입혀 주어야 할 정도로 어리다. 또는, 여린 영혼의 햄릿에게 일국의 왕세자라는, 강한 자들 중에서도 강한 자의 역할이 강요된다. 고민을 한다는 것은 모른다는 뜻이다. 햄릿은 현실은 물론 자신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여 헤매고 무섭고 불쌍한 영혼이다. 그는 편지를 물에 녹여 없애고 얼음을 깨뜨린다. 폭력이다. 그의 계략과 투쟁에는 전략이 없다. 폭력은 불안정하다. 폭력은 미숙함의 발현이다. 순수와 공포가 만나면 광기가 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망령의 원한을 위해 대신 복수하려다가 죽는다. 희생이다. (희생은 남성미의 극치이다.)
네크로슈스의 오필리어는 자연이다. 자연은 의지가 없기에 정복가능하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을 품기에 무한하다. 괴로운 햄릿이 그녀를 찾아왔을 때 그녀는 검은 천으로 물이 엎질러진 마루바닥을 닦고 있다. 내게는 천의 색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검은 색은 모든 빛을 흡수하는 색이다. 천은 물을 흡수한다. 포용이다. (포용은 여성미의 극치이다.) 레어티스가 햄릿과 화해할 때 그는 검은 천을 뒤집어 쓴다. 검은 천은 역시 용서인 것이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잎새처럼, 밟으면 밟힐 수밖에 없는 들풀처럼, 휘저으면 물결이 일어나는 시내처럼. 오로지 의존적이기만한 그녀가 사실은 모든 것을 품는다. 자연이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흘러가는 자연이다. 그래서 그녀는 연약하고 동시에 강인하다. 그래서 항상 의존적이면서도 동시에 누구보다 자유롭다. 오필리어가 죽음에 이르는 순간의 장면은 이 모든 것을 보여준다. 그녀는 쉼없는 에너지로 모든 것에 이끌려 모든 것을 좇다가 모든 것을 품는다. 순수와 고통이 만나면 파멸이다. 그러나 파멸도 생명 활동이다.
클로디어스는 잔에 담긴 물(현실 또는 가능성)을 마시고 잔(여건 또는 결과)을 깨뜨리고 별짓 다한다. 그는 행동이다. 과거의 행동을 후회하고 현실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고 미래의 행동을 치밀하게 계획한다. 그는 확신에 차 있기 때문에 불안하다. 반면, 햄릿은 의심에 차 있기 때문에 불안하다. 그는 알기 때문에 괴롭다. 햄릿은 모르기 때문에 괴롭다.
거트루드는 의지이다. 그는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고, 아들을 사랑하나, 지금의 왕을 필요로 한다. 그녀는 단지 반응한다. 그러나 그녀는 모두에게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다. 모두가 그녀의 진심을 알고자 하지만, 사실 그녀의 진심은 현실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동기가 없는 그녀는 어떠한 동기부여도 견디지 못한다. 그리하여 의심하거나 주의하거나 방지할 능력이 없다. 반응으로서의 의지는 무능일 뿐이다.
폴로니어스는 걱정이다. 그는 불행을 방지하기 위해 관찰하고 예견하고 경계하고 방어한다. 그러나 그의 모든 노력은 그 자체로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하여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그가 오필리어를 단속하지 않았더라면 햄릿과의 관계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가 왕비의 방에 숨어들지 않았더라면 그는 죽지 않았다.
망령은 물론 불안이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한다." 햄릿이 죽자, 망령이 아무리 애써 보아도 드럼은 더 이상 울리지 않는다. 불안이 잠식할 영혼이 사라지면, 불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