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03, 2006

Eimuntas Nekrosius 네크로슈스 (2006) Hamlet 햄릿

에이문타스 네크로슈스 (Eimuntas Nekrosius) 연출 햄릿 Hamlet


2006-11-01 물 

2002년의 내한 공연을 놓치고 얼마나 아쉬웠었는지 모른다. 예상보다 더... 독특한 장치들이 만들어 내는 효과들이 내가 해 보고 싶어서 오랫동안 안달하고 있는 시각적 이미지들과 비슷했다. 재료들이 완전히 동일한 것들도 많았다. 그래서 기분이 좋기도 안타깝기도 했다.

네크로슈스의 햄릿은 어린아이이다. 그는 어머니가 바지를 입혀 주어야 할 정도로 어리다. 또는, 여린 영혼의 햄릿에게 일국의 왕세자라는, 강한 자들 중에서도 강한 자의 역할이 강요된다. 고민을 한다는 것은 모른다는 뜻이다. 햄릿은 현실은 물론 자신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여 헤매고 무섭고 불쌍한 영혼이다. 그는 편지를 물에 녹여 없애고 얼음을 깨뜨린다. 폭력이다. 그의 계략과 투쟁에는 전략이 없다. 폭력은 불안정하다. 폭력은 미숙함의 발현이다. 순수와 공포가 만나면 광기가 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망령의 원한을 위해 대신 복수하려다가 죽는다. 희생이다. (희생은 남성미의 극치이다.) 

네크로슈스의 오필리어는 자연이다. 자연은 의지가 없기에 정복가능하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을 품기에 무한하다. 괴로운 햄릿이 그녀를 찾아왔을 때 그녀는 검은 천으로 물이 엎질러진 마루바닥을 닦고 있다. 내게는 천의 색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검은 색은 모든 빛을 흡수하는 색이다. 천은 물을 흡수한다. 포용이다. (포용은 여성미의 극치이다.) 레어티스가 햄릿과 화해할 때 그는 검은 천을 뒤집어 쓴다. 검은 천은 역시 용서인 것이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잎새처럼, 밟으면 밟힐 수밖에 없는 들풀처럼, 휘저으면 물결이 일어나는 시내처럼. 오로지 의존적이기만한 그녀가 사실은 모든 것을 품는다. 자연이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흘러가는 자연이다. 그래서 그녀는 연약하고 동시에 강인하다. 그래서 항상 의존적이면서도 동시에 누구보다 자유롭다. 오필리어가 죽음에 이르는 순간의 장면은 이 모든 것을 보여준다. 그녀는 쉼없는 에너지로 모든 것에 이끌려 모든 것을 좇다가 모든 것을 품는다. 순수와 고통이 만나면 파멸이다. 그러나 파멸도 생명 활동이다. 

클로디어스는 잔에 담긴 물(현실 또는 가능성)을 마시고 잔(여건 또는 결과)을 깨뜨리고 별짓 다한다. 그는 행동이다. 과거의 행동을 후회하고 현실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고 미래의 행동을 치밀하게 계획한다. 그는 확신에 차 있기 때문에 불안하다. 반면, 햄릿은 의심에 차 있기 때문에 불안하다. 그는 알기 때문에 괴롭다. 햄릿은 모르기 때문에 괴롭다.

거트루드는 의지이다. 그는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고, 아들을 사랑하나, 지금의 왕을 필요로 한다. 그녀는 단지 반응한다. 그러나 그녀는 모두에게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다. 모두가 그녀의 진심을 알고자 하지만, 사실 그녀의 진심은 현실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동기가 없는 그녀는 어떠한 동기부여도 견디지 못한다. 그리하여 의심하거나 주의하거나 방지할 능력이 없다. 반응으로서의 의지는 무능일 뿐이다. 

폴로니어스는 걱정이다. 그는 불행을 방지하기 위해 관찰하고 예견하고 경계하고 방어한다. 그러나 그의 모든 노력은 그 자체로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하여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그가 오필리어를 단속하지 않았더라면 햄릿과의 관계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가 왕비의 방에 숨어들지 않았더라면 그는 죽지 않았다. 

망령은 물론 불안이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한다." 햄릿이 죽자, 망령이 아무리 애써 보아도 드럼은 더 이상 울리지 않는다. 불안이 잠식할 영혼이 사라지면, 불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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