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04 흙의 낮 @LG아트센터
이성과 고뇌의 좌절. 자승자박 식의 신념과 인내를 고수하며 일상의 기쁨과 육체적 쾌락을 희생시키는 삶에 대한 회의. 두 팔을 내뻗고 "메뚜기처럼" 끊임없이 뛰어 보아도 자신의 발 아래도 보지 못하는 인간 지성의 한계. 이상을 향해 매진하는 삶의 맹목성을 자각하고 절망하는 순간, 신에게선 고달프고 어리석은 땀내를, 악마에게선 아름답고 신선한 바람을 느낀다. 그 절망에마저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괴로워할 때, 무대 위에서 책들이 묶여진 의자가 떨어진다. 고상한 품격의 상징이었던 검정은 죽음의 색으로 변하고 그 둔중한 반향과 파우스트의 나약한 충격이 뒤섞이는 동안, 자랑스럽게 펄럭이던 메피스토펠레스의 붉은 망토가 그리워진다.
2006년 <햄릿>으로 나를 사로잡았던 네크로슈스가 괴테를 들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겨우내 기다렸던 공연. 효과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그 자체로 배우보다 더 명확하고 풍부한 의미를 전달해 주던 시각적, 촉각적 은유들이 여전했다.
몰입을 방해하는 대사가 많았고, 배경음악의 선곡과 원작에 대한 해석이 아쉽기는 했다. 일차적으로 독해하고 말기에는 너무나 고전이었으니까... 가시를 세우자면, 네크로슈스에게 네크로슈스의 어법만이 "뼈다귀처럼" 남았다고나 할까. 숙성과 초월에 이르지 못한 열정에 쉬이 만족하기에는 그를 이미 거장으로 보았던 나의 기대가 아깝다. 괴테를 뛰어넘은 뒤라야 괴테를 보여 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가 셰익스피어를 분해시키고서 네트로슈스가 되었듯이. (나는 왜인지 연극에 대해서 유독 신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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