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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April 02, 2026

Park Joo-Min's Interview with Chun Woo-Yong

주민, 전우용을 만나다 1편 



주민, 전우용을 만나다 2편 

(P) 박주민TV


> 연대의 가치를 재발견하기 

- Minouche Shafik 지음, 이주만 옮김, 이기적 인류의 공존 플랜: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What We Owe Each Other: A New Social Contract, 2021), 까치, 2022. 

    1) 사람에 대한 투자(교육, 훈련, 평생학습) 

    2) 재난, 실업, 질병, 기후 위기에 따른 고통과 위험을 공평하게 나누는 방식으로 사회계약을 재편하자

- 페르디난트 퇴니스(Ferdinand Tönnies, 1894-1936)의 Gemeinschaft 공동사회 vs. Gesellschaft(사회) 

- '서로' 믿는/돕는/잘 사는 사회 - 국제적/국가간/개인간 연대, 위기에 대한 공동 인식


> 서울의 위상/역할 변화  

- 한강 약탈의 역사 - 1963년 1월 1일 강남 지역 서울 편입, 1966년 이후 개발 착수.  

- 역사에서의 발전 -  물질적 진보, 재산권만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 사람다움이라는 가치



Tuesday, January 23, 2024

Wednesday, October 18, 2023

Relationships

인간 관계 거리 설정


대학원 과정 자체가 평균 이상의 사회화/관계력 교육과 분리불가하게 진행되는 자연계와 압도적 차이가 난다. 박사 말년 차엔 최소 과장급 능력자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기준도 있고. 이미 반 세기 넘게 실천되어 왔고. 

    자연계 >> 예술계 > 인문계

일머리란 갖추어야 하는 것이지만, 일터에서 불필요한 눈치 보기로 소모적 비효율이 발생해도 문제가 없다는 건 역시 그 세계의 특정 작동 원리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상황. 눈 가리고 아웅의 미덕. 한가하다. 교육자나 연구원도 ai로 대체 가능해지는 건, 그것이 더 낫다고 인식되는 경우.


Sunday, February 06, 2022

고마워. 어려웠어. 널 도와 줄게. Thank you, I will help you.


[세바시 강연] 리사 손 - 겸손이라는 가면


[세바시 강연] 리사 손 - '임포스터'


메타인지에 대한 정보는 잘 안 보는 편이다. 안 그래도 메타인지가 좋은 상태인 것 때문에 매일 고초를 겪고 있어서. 내가 메타인지가 환경에 비해 특이하게 좋은 건 메타인지가 특별히 뛰어난 사람과 삼십 년 동안 가장 친한 친구로 지냈기 때문이다. 그것도 성장기에. 그래서 헤어진 지 오래되었어도 잘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지심리학을 공부하지 않아서 용어나 요인을 몰라도 메타인지에 대해 경험적으로 잘 알 수밖에 없다. 한편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고.    

특히 자신의 능력, 성실성, 책임감, 인품 등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예민한 '임포스터'들이 주위에 많다 보니, 너무 힘들다.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이젠 정말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아마 나이에 비해 내 형편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여유가 없다 보니 어릴 때보다 관계가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내가 나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모습이나 반응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적당한 자긍심과 함께 강력한 불안감을 가진 주변인들에게 더욱 요상하고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임포저라는 임포저가 되어야 무사하다. 무엇보다 가족들이 이 강연을 듣고 책도 좀 읽어 봤으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다. 

내 인생 최대의 고통이자 가장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적고 보니, 그냥 내가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한국인 고정 화법'을 절반만 적용해서 말하면 되겠네. 적당히 조심하고 적당히 실망시키면서. 

한 가지 독일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독일인 교사들은 사설 어학원에 있는 평범한 경우에도 메타인지가 발달한 학생을 쉽게 간파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람은 가르치기에 편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기에 그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학생으로서 평생 동안 유일하게 편안하다고 느낄 만큼 그들 자신이 메타인지가 발달해 있었다. '교육'은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교육학'만은 가장 앞선 나라였다. 

"고마워. 어려웠어. 내가 도와 줄게." 참 좋은 말이다. 많이 해 봤지만, 결과는 대체로 카타스트로피... 그래서인지 누가 나한테 해 준 기억은 없다. 

 

Thursday, December 09, 2021

pessimistic or critical

[사피엔스 스튜디오] 비관적인 사람, 부정적인 말 


그런데, 단지 개입할 의사가 없고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긍정적인 말로 상황을 모면하려고만 하고, 경계선을 긋고 소통을 차단하기 위해 무관심을 덕담으로 치장하는 사람이 더 치명적이다. 지금까지는 물론 앞으로의 노력마저 무의미해지고 상대의 존재 자체가 무가치해지는 느낌을 주니까. 어떤 여지도 남지 않으니 더 이상 희망도 없다. 그래서 그것이 진짜 의도임이 전달된다. 부드럽고 확실하게.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요즘은 그런 경우가 더 많지 않나? 

사안별로, 관점과 목표에 따라, 상황의 변화에 의해, 비관과 낙관, 긍정과 부정이 달라야 정상이다. 

판단 기준이 없는 사람이 그저 귀찮기 때문에 고정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날씨나 기분 등 무분별한 이유로 언행을 결정한다.  

 

Tuesday, December 08, 2015

언어 폭력 nonviolent communication

Marshall Rosenberg (2003) Nonviolent Communication
"우리에게 위협적으로 들렸던 모든 메시지 뒤에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사람이 우리에게 자신들의 삶에 기여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The use of moralistic judgments is characterized as an impersonal way of expressing oneself that does not require one to reveal what is going on inside of oneself. This way of speaking is said to have the result that "Our attention is focused on classifying, analyzing, and determining levels of wrongness rather than on what we and others need and are not getting."
NVC(비폭력 대화) discourages static generalizations. It is said that "When we combine observation with evaluation others are apt to hear criticism and resist what we are saying." Instead, a focus on observations specific to time and context is recommended.

과녁에서 내가 벗어나 있는 경우에도 똑같이 폭력적으로 느끼곤 하는 건 역시나 일종의 오지랖이지만 쓸데없이 힘들면서도 고칠 생각을 안 했던 이유이기도. 나는 굳이 충돌해야 한다면 삼자개입이 낫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로젠버그의 대안적 추천법을 여자가 하면 빨랫터 넋두리로 취급당해 그야말로 사냥당하거나 교화의 대상이 된다. 종종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일반화 베테랑에게 확증례를 보태 주는 셈이 되기도 한다.

Requests are distinguished from demands in that one is open to hearing a response of "no" without this triggering an attempt to force the matter. If one makes a request and receives a "no" it is recommended not that one give up, but that one empathize with what is preventing the other person from saying "yes," before deciding how to continue the conversation.

난 바로 포기해 버리곤 해서 오히려 상대방이 서운해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반면, 김칫국 잘 마시는 성격의 내가 굳이 이유를 확인해 보기를 고려할 정도의 심경에 이르는 이해불가의 상황이라면 지금까지의 경험상 확인하려고 하면 안 된다. 내게 밝히기는 커녕 스스로도 인정하기 싫은 이유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서. 잘못하면 그 방어심리로 인해 상대방의 이유까지 내가 덮어 쓰는 결과가 발생. 특히 윗사람에게는 하면 안 된다. 아랫사람에게 거절하는 윗사람은 변명한다는 방어적 불쾌감이 적고 우리나라의 경우 아랫사람이 반문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것도 알기 때문에 특별히 섬세한 사람이 아니라도 자기가 먼저 아랫사람이 이유를 알도록 설명해 주는 경우가 많다. 위아래 개념 없는 나만 해도 나보다 연세가 적으신 분에게는 훨씬 더 신경써서 말하곤 하니까. 아니라면 정말 투명하지 못한 뭔가가 있는 것이니 하나의 오해를 풀려다가 삶이 고달파진다. 가끔은 차라리 그냥 오해하자. (오해가 오해가 아닐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