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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November 09, 2021

Ella Fitzgerald & Louis Armstrong (1956) Ella & Louis For Lovers

Ella Fitzgerald · Louis Armstrong (1956) Ella & Louis For Lovers (Deluxe Edition)
Ray Brown bass guitar / Herb Ellis guitar / Oscar Peterson piano / Buddy Rich drums 
(P) UMG Recordings


Monday, September 06, 2021

Andrei Tarkovsky (1956) Ubiytsy (The Killers)

Андрей Арсеньевич Тарковский (Andrei Arsenyevich Tarkovsky) · Марикой Бейку (Marika Beiku) · Алексaндр Витaльевич Гордoн (Aleksandr Vitalyevich Gordon) (1956) 
Убийцы (Ubiytsy) The Killers  킬러들 (러시아 원어/자막 없음/고화질) 
based on Ernest Hemingway (1927) The Killers  살인자들
(국역: 정영목하창수 / 김욱동 / 이종인 / 김욱동2016) 


(eng sub 영어 자막/저화질)


2021-09-05 해의 밤 @내 방

국립영화학교(VGIK) 학생 시절 습작. 타르코프스키가 앞부분과 마지막의 식당 장면 연출하고, 휘파람 부는 손님 역 연기. 지도교수 롬에게 극찬을 받았다고. 난 50년대에 미국 소설을 소재로 하고 극 중 휘파람으로 미국 유행가를 불렀다는 사실에 더 놀람. 


cf. Robert Siodmak (1946) The Killers  살인자들 

cf. The B.O.S.S. Podcast [Episode 27] Hemingway Short Story Month: The Killers 


Андрей Арсеньевич Тарковский (Andrey Arsenyevich Tarkovsky, 1986): 이런 질문에 답하기 전에, 모든 소설을 영화로 각색할 수 없다는 것부터 말하고 싶다. 요소의 통일성, 문학 이미지의 정확성과 독특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있는 인물들, 마법적인 구성과 함께 감동적이고 독보적인 작가의 성격이 페이지 사이에서 분명하게 드러나 책 전체에 영향을 주는 능력이 빛나는 작품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오직 영화와 산문 예술을 공평하게 대하는 사람에게만 그런 명작 중 하나를 각색하고 싶다는 의지가 나올 수 있다. 

-- 라승도 옮김(2021: 25-26)  


에라, 이제 그냥 놀면서 살기로.  

Saturday, July 03, 2021

Jalacy Screamin' Jay Hawkins (1956) I Put a Spell on You



좋아하는 장면. 대사도 중요하다.  

Eva: It's Screamin' Jay Hawkins, and he's a wild man, so bug off.


Jalacy Screamin' Jay Hawkins (1956) I Put a Spell on You


니체가 이 곡을 들었을 때 만약 침대가 붙잡지만 않는다면 스르르 일어나 스트립쇼를 수행했을 것만 같다. 본인 인증을 위한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또, 만약 그랬더라면 다른 방면으로도 루의 선택을 받지 않았을까? 별로 읽어 본 게 없어서 니체 스타일을 잘 모르겠지만, 대강 이런 이미지가 어떨지?    


1989 live @Arsenio Hall Show


아니라면 골라 보시라.  

 

Nina Simone (1965) 


Alan Price Set (1966) 


Them (1966) with Van Morrison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1968) 


Arthur Brown (1968) 


Bryan Ferry (1993)


Bette Midler (1993) in Hocus Pocus by Kenny Ortega


Marilyn Manson (1995) 


Sonique (1998) 


Bonnie Tyler (1998) 


Jools Holland (2001) with Mica Paris & David Gilmour


Joe Cocker (2004)


Buddy Guy (2005) with Carlos Santana


Jeff Beck (2010) with Joss Stone

 

Annie Lennox (2014) for Fifty Shades of Grey


Aubrie Sellers (2014) 


Alice Smith (2015)


Angelina Jordan (2015) 


IZA (2017)


Duffy (2017)


Brigitte Wickens (2018) for Big Mouth 2x03


Sylvia Black (2018) for Chilling Adventures of Sabrina 1x01


Christone "Kingfish" Ingram (2018) for Luke Cage 2


Chaka Khan (2019)


Chantal Chamberland (2019)


The Jaded Hearts Club (2020) 


The Kills (2020)


Kandace Springs (2020) 


The Puppini Sisters (2020) with The Pasadena Roof Orchestra


YolanDa Brown (2020) with Kelly Jones


뒤프렌 이제 읽힌다. 충분하진 않아도. 

Saturday, May 08, 2021

Martin Heidegger (1957) Der Satz vom Grund 근거율

Martin Heidegger (1957): '인포메이션'은 실제로 현대인에게 가능한 한 빠르고 포괄적이며 명료하게 필요, 욕구, 그에 대한 만족의 확보를 성과 있게 전달하는 보고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인간의 언어를 정보 도구로 여기는 생각이 점차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언어를 정보로 규정하는 것은 사고하는 기계와 거대한 계산기의 설치를 위해 충족되어야 할 근거를 가장 먼저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는 형식 속에 넣음(in-formieren), 즉 [형식 속에 넣어] 전달하는 것(benachrichtigen, 뒤쪽으로 향함)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보는 조직하는 일을 한다. 다시 말해 정보는 설치하고 정렬한다(richten ein und aus). 전달로서 '인포메이션'은 이미 인간, 모든 대상, 부속물을 하나의 형식 안으로 들여놓는 장치(Einrichtung)이다. 이 형식은 지구 전체, 나아가 지구 밖의 것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확보하기에 충분한 것이어야 한다. 

'인포메이션'의 형태에는 모든 표상작용을 위해 송달되고 충족되어야 할 근거의 위력적인 원리가 지배하며, 현대라는 세계사적 시대(Weltepoche)를 모든 것이 원자 에너지의 송달에 매달려 있는 시대로 규정한다. 

우리는 성찰적 사유를 준비하기 위해 근대적 인간과 오늘날 인간이 모든 표상작용을 위한 위력적인 근거명제에서 표명되는 요구를 듣고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예'로 대답하고 '어떻게'를 제시하였다. 오늘날 인간은 근거명제에 점차 예속되면서 근거의 근거명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속이 들음의 유일한 방식도 아니며, 본래적인 방식도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한 번 더 물어야 한다. 우리는 근거율의 요구를 듣는가? 그러나 지금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언제 비로소 우리가 그 요구를 참으로 듣는다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본래적으로 말을 건네는 것에 대해 우리가 응답할 때이다. 도대체 근거율의 요구 속에 말을 건네는 것이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위력적인 근거명제가 말하는 곳을 향해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우리는 '아니오'라고 고백해야 한다. 어떤 점에서 '아니오'인가? 우리가 명백하고 결정적으로 근거율이 본래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을 충분히 듣고 숙고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305-307] 


우리가 '존재는 근거로서 경험된다'고 말할 때, 사태연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드러난다. 여기에서 근거는 '라치오', 즉 해명(Rechenschaft)으로 제시된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해명을 요구하고 해명을 부여하는 생명체, 즉 이성적 동물(animal rationale)이다. 인간은 방금 언급한 규정에 따라 계산적으로 고려하는 (rechnen) 생명체이며, 이때 계산적으로 고려함은 넓은 의미에서 이해된다. 그 의미를 로마상인의 낱말인 '라치오'라는 낱말이 물려받았다. 이 의미는 그리스의 사유가 로마의 표상작용으로 옮겨지는 시기에 있었던 키케로(Cicero)에게서도 이미 등장한다. 

존재는 근거로서 경험된다. 근거는 '라치오', 해명으로 제시된다. 인간은 계산적으로 고려하는 생명체이다. 이 모든 것은 아주 상이한 변천 속에서도 서양 사유의 전체 역사를 통해 일치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사유는 근대적이고 유럽적인 사유로서 오늘날의 세계시대, 즉 원자시대로 세계를 옮겨놓았다.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단순하면서도 섬뜩한 사태연관에 직면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위에서 언급한 규정, 즉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라는 규정이 인간의 본질을 다 드러내고 있는가? '존재는 근거를 뜻한다'는 말이 존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최종적인 말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인간의 본질, 존재에 대한 인간의 귀속성, 존재의 본질은 여전히 계속해서 놀라움을 일으킬 만큼 사유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한다면 오로지 계산적으로 고려하는 사유의 질주와 그것의 엄청난 성과를 위해 사유할 가치가 있는 것을 포기해도 되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면 계산적으로 고려하는 사유에 현혹되어 사유할 가치가 있는 것을 지나치는 대신에 사유가 그것에 응답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우리는 애쓰고 있는가? 

물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사유가 물어야 할 세계 물음(Weltfrage)이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에서 이 땅과 이 땅 위의 인간 현존재에서 무엇이 일어날 것인지가 결정된다. [316-318] 

-- 김재철 옮김(2020)  


프레게를 읽은 직후 [동일성과 차이]를 읽었으니 어설피 의분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겠나. 이만큼 술술 읽히는 건 그토록 열받은 상태로 보낸 세월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부끄럽다고요. 그래도 지금 이런 촉박한 시점에 이 책을 제목만 보고 펼칠 줄 아는 능력이 생긴 게 다 그 덕이라 후횐 없다네. Danke für Ihre Hilfe!  


Secret Garden (2002) You Raise Me Up 
ft. Johnny Logan

Wednesday, April 28, 2021

Erwin Schrödinger (1958) Mind and Matter 정신과 물질

Erwin Schrödinger (1958): 발전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의해 결정된다는 믿음으로 사태를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발전을 원한다면, 발전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 또한 발전을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적 사회적 발전과 역사적 사건들 일반이 운명의 장난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로 우리의 행동 때문에 발생하듯이, 더 큰 규모의 역사에 다름 아닌 우리의 생물학적 미래를 어떤 자연법칙에 의해 미리 결정된 불변의 운명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적어도 연극의 주인공인 우리에게는 사태가 그러할 수 없다. 설령 우리가 새와 개미를 보듯이 우리를 지켜보는 더 높은 존재에게는 그렇다 할지라도 말이다. 사람들이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의 역사를 예정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 이유는 매우 명백하다. 그것은 모든 개인 각자가, 자신의 의견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도록 설득할 수 없는 한, 자신에게는 거의 아무 힘도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 

현재 대부분의 생산 공정에서 진행 중인 기계화와 '바보화(stupidization)'는 우리의 지능 기관의 일반적 퇴보를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한 위험 요소라고 나는 믿는다. 수공업의 억압과 따분하고 지루한 조립 라인 작업의 확산에 의해 영리한 노동자로서 살 기회와 무감각한 노동자로서 살 기회의 비중이 동등해질수록, 영리한 뇌와 유능한 손과 날카로운 눈은 점점 더 불필요해질 것이다. 심지어 천성적으로 따분한 노동이 더 쉽다고 느끼는 우둔한 인간이 더 선호될 것이다. 그런 인간들이 더 쉽게 성장하고 정착하여 자손을 낳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재능이나 재주와 관련해서 부정적인 선택이 일어날 가능성이 다분하다. 

[...]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현재 행복과 미래 진화는 나란히 함께 간다. 지루함은 우리의 삶에서 결핍 다음으로 나쁜 가장 심각한 독소가 되었다. 우리가 발명한 교묘한 기계들이 불필요한 사치품을 점점 더 많이 생산하도록 방치하는 대신에, 그 기계들을 인간의 바보 같고 기계적이고 '기계 같은' 노동을 대신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인간이라는 훌륭한 존재가 하기에 너무 하찮은 노동을 기계가 맡아야 한다. [...] 전 세계의 큰 기업들과 재벌들이 서로 경쟁하는 한, 이런 일이 실현되리라는 작은 희망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경쟁은 흥미롭지도 않고 생물학적으로 무가치하다. 우리의 목표는 그런 경쟁 대신에 인간 개인들 간의 흥미롭고 지적인 경쟁을 회복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 전대호 옮김 (2007: 186-189) 


오퍼레이터로서 탱크의 자리를 지망하고 건너왔다. 나는 탱크와 달리 시온 출신이 아닌 매트릭스 출신이지만, 그래서 유리한 점이 있다. 설령 탱크처럼 조종간까지는 못 맡게 되더라도 그래서 백업을 해 주진 못하더라도 네오들이 쓸 총알 알고리듬 같은 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침투 루트를 좀 알고 있으니까. 그들의 설계도를 읽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아직도 각성하지 않는 모피어스들을 보며 절망한다. 이미 늦었지만 아직 늦지 않았는데... 

네오가 매트릭스에서 낮에는 프로그래머로 밤에는 해커로 투잡을 했듯이, 전설의 해커 모피어스는 전직 고등학교 문학 담당 교사였다, 라고 처음 영화를 봤을 때부터 생각했다. 오비디우스로 박사 학위 논문을 썼나 보다고. 그가 대련 프로그램과 점프 프로그램 안에서 네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 보면 확실하다. 얼른 네오들을 찾아서 현실을 보여 주고 좋은 알약을 고르게 하고 잘 훈련시켜서 팀에 데리고 들어가야 하는데. 어쩌면 이 모피어스들은 자신이 모피어스임을 모르는지 아니면 알고 싶지 않은 건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모피어스는 신념이 강해야 하는데 말이다.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적는 곳이 아닌데, 고립무원이라 그런지 점점 심각해지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