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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ne 09, 2024

Secrets of the Neanderthals (2024, bbc) 네안데르탈인의 비밀

Secrets of the Neanderthals 네안데르탈인의 비밀 (예고편)
=> 전편 보기 @netflix 
(P) 2024 BBC Studios Science Unit 


cf. 

Rebecca Wragg Sykes @bbc 2023-05-01: The puzzle of Neanderthal aesthetics  

https://en.wikipedia.org/wiki/Neanderthal




[YTN사이언스] 2023-08-15 인류 DNA 비밀

보도: 양훼영 / 영상: 황유민 / 그래픽: 박유동 / 자막: 이선


현생 인류의 유전자에는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이외에도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DNA가 일부 섞여 있습니다. 다른 호모 종 사이에 교배가 있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이미 화석 '데니'로 확인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만남이 이뤄졌는지는 지금까지 밝혀진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국제 공동연구팀이 커다란 기후변화로 인해 두 호모 종이 만나는 장소와 시기가 결정됐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연구팀은 우선 지구 자전축과 공전궤도 변화로 인한 천문학적 변동과 온실가스 농도 등을 이용해 기후 모델링을 만든 뒤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300만 년 동안의 기온, 강수량 등의 기후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화석과 유전자 자료를 결합하니 네안데르탈인은 온대림과 초원지대를, 데니소바인은 툰드라, 냉대림과 같은 추운 서식지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기후변화가 서식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 결과, 간빙기에 네안데르탈인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데니소바인을 만났습니다. 그 시기가 9만5천 년 전과 12만 년 전으로 분석됐는데, 이는 유전적 자료와 일치했습니다. 

[악셀 팀머만 / IBS 기후물리연구단장 :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을수록 유럽에서 유라시아로 온대림이 확장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두 호모 종은 유라시아에서 더 많이 만나고, 유전적인 교배를 통해 아이를 낳았습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로 기후변화가 인류의 유전적 다양성과 종 분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적 권위의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습니다.




ebs (2016) 사라진 인류 1부 - 멸종



ebs (2016) 사라진 인류 2부 - 생존



Thursday, December 21, 2023

소심심고(素心深考) by 広中 平祐 (Hironaka Heisuke)

[지식인사이드] 박문호의 '학문의 즐거움'


1. 소심심고(素心深考) 

2. 대국적으로 보라 

3. 가설을 세워라 <= 유연하라 


울 아빠 평생 작업이 이건데...

이 분도 내 올해 허리가 아물지 않은 덕에 은인이 되었다. 마음이 괴로울 때 한결 가벼워지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 듣다 보면 맑아진다. 나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꽤 되기도 했는데... 모자르다. 우선 자립이 시급. 

학문의 즐거움 고대하며 용돈 모아 샀던 날이 엊그제 같이 생생하건만... 중학생 시절. 이후 몇 번이고 애독했던. 아저씨 일화도 기억난다. 설마 그래서 나 굳이 아줌마 된 거?

아니, 근데 난 하얀 마음만 넘쳐서 문제인 쪽이라고요! ......지금은 그냥 위로만 받자. 피곤하다. 


Wednesday, June 29, 2022

호모 스피리투알리스 아르티펙스 Homo spiritualis artifex

Jean Clottes (2011)동굴 깊숙한 안쪽에 있는 그림들은 보이길 의도한 것이 아니었고, 이 표현을 통해 현실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죽을 운명인 인간으로서는 작품을 만드는 것 자체가 작품의 결과나 그 시각적 효과보다 더 중요했다. 같은 내벽에 여러 그림들이 겹쳐 있는 현상도 이로써 설명될 수 있었다. 주술 의식이 있을 때마다 그림 위에 또 그렸으니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이다. "일단 이 행위가 끝나면, (...) 그림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22-23] 작품의 결과보다는 새기고 그리는 행위 자체가 더 중요했을 것이다. 

공감 주술은 모든 전통문화에 나타나는 기본 개념으로, 인간종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이는 기도나 현물, 또는 제례 의식을 통해 우리 일상을 좌지우지하는 초자연적인 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런 수단들은 신앙이 다르듯이 문화에 따라 당연히 달라지지만, 이미지에 따라붙는 중요성으로 볼 때, 예술은 이미지를 표현하므로 가장 특화된 수단일 수 있다. [26]  

역사적인 관점에서만 흥미로운 호모 파베르(Homo Faber)와 너무 낙관적인 개념인 호모 사피엔스 대신에, 나는 호모 스피리투알리스(Homo spiritualis)를 제안하고 싶다. 세계는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이들은 비물질적 힘에 호소해 이런 새로운 복잡성을 이해하고 최대한 잘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존재이다. [46-47] 

-- 류재화 옮김(2022)

 

인문학(영문학)이 과학(선사학)할 때, 그야말로 차원이 다름을 보여 준다. 우리 일반인이 기대하는 대로. 비로소 좀 과학적이 된다. 얼렁뚱땅 부지불식으로 넘어가는 것들을 최대한 줄이고, 논의를 거치지 않은 채 가정해 버린 것들을 적어도 지적은 하고. 자신의 어슬픈 진짜 토대를 정직히 밝히고. 모든 분석이 해석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함으로써 성실히 할 일을 하고. 이왕 풍성하게 수행하여 새로운/성숙한 논제들을 추가해 주고.


류재화(2022): 인간을 '호모 파베르' '호모 사피엔스'로 부르기보다 '호모 스피리투알리스'로 부르고 싶은 저자는 특별히 인간의 정신성에 주목한다. 여기서 정신성은 내적 세계만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 세계부터 전제한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보고 느끼며 어우러져 살아간다. 그러는 사이 어떤 강렬한 정신 작용으로 자신의 내적 세계에 이미지들을 투사하고, 그 이미지들을 다시 외적 세계에 투사한 것이 예술일 수 있다. 구조주의 인류학에서 현대인보다 원시인 또는 선사인이 더 상징적 사고를 한다고 보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상징적 형상화 능력이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기술이 아니라 대범한 지각성으로, 설명하기 힘든 무분별한 생략법 또는 환유 기법으로 추상의 단계까지 한달음에 올라가는 힘이다. 물질계와 상상계를 논리적 순차성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전광석화처럼 짧고 강렬하게, 그러나 유연한 정합성으로 이동하는 그야말로 기적적인 힘이다. 선사 예술이건 현대 예술이건 우리 모두가 전율하며 공감하는 예술이 있다면, 이런 감출 수 없는 에너지가 고여 있기 때문일 테다. [283]


어쩌면 저에게 안성맞춤으로 이처럼 환상적인 요약을! (안성탕면 먹고 싶다.)  


잡다하다는 건 편집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보통은 반대로 기초 지식부터가 양적으로 부족할 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라 초심으로 돌아가 있는데, 용서가 되실지 매우 의심스럽네. 결과에 하나도 안 담길 시간들이 훨씬 더 많을 텐데. 

기적적으로 방 정리를 시작했더니 소논문 한 편의 구상이 나옴. 졸업은 더 위험해졌나? 

생존도. 바로바로 K 교수에게 그대로 전해졌을 테고 또 그 인맥과 이권 안에서 흔적도 안 남게, 광영만 남게 진행 중일 테니. 평생 이런 일들을 안 당해 본 삶도 있다니 부럽다. 

 

Thursday, November 26, 2020

천문: 하늘에 묻는다 Forbidden Dream (2019, 허진호 Hur, Jin-ho)

허진호 (Hur, Jin-ho, 2019) 천문: 하늘에 묻는다 Forbidden Dream 

https://en.wikipedia.org/wiki/Forbidden_Dream

 
조성우 곡 (2020) 문풍지에 별과 꿈을 새기다

대화가 이 정도는 통해야 대화를 하든 말든 하지.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면 그 꿈을 알고 공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은, 같은 것을 보면서도 내가 보는 것과 그가 보는 것이 다름을 알고 그는 그의 길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의 길로 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 길의 끝에서 만나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길에서 새로 보이는 것들을 그때마다 서로 들려 주고 듣는 것이다. 그러면 한마음이 된다. 폭발하듯 커진다.  

그렇게 같은 마음이 되는 기분이 어떠한지 나도 안다. 평생 한 번도 못 겪어 보고 죽는 사람도 많으니 이미 나는 행복한 걸까? 아니면 다시 느끼지 못해 늘 허덕이는, 다른 것은 보지 못하고 이것만 찾아 헤매며 사는 삶이란 가여운 걸까? 
 
착해야 머리가 좋다. 아이큐나 지식과는 무관하다.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에서 귀함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남들이 못쓸 것이라 버리기 바쁜 것들이, 누군가 가만히 간직하는 것조차 견디지 못해 갖은 비난과 공격을 퍼붓고 틈만 나면 부수고 죽이려는 것들이 실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안다면, 그 상황 자체가 그것들을 사수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목숨을 걸고 지켜야만(武) 하는 것이 있으면 없던 능력들이 생기고, 게다가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포기를 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절대로 머리가 좋아진다. 

다른 수작들은 뻔히 읽히기 때문에 웃음이 나는 것이다. 치루는 대가가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하거나 구원 받으리라 믿거나 보상을 기다리거나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못할 만큼 모자라서가 아니다. 그것은 우월감에서 나오는 냉소나 비웃음이 아닌 그냥 단순한 웃음이다. 의무나 희생이 아니었듯이 행운도 능력도 아닌,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강요나 폭력 속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과 그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착하면 세상은 그를 절박하게 만든다. 절박한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그 상황을 바꾸기로 결정하는 순간부터, 소중한 것을 반드시 살리겠다고 결심할 때, 상황이 불리하고 위험할수록 더욱 머리가 좋아지기 시작하는 것은 사람을 만든 자연의 이치다. 물론 뜻대로 되리란 법은 당연히 없다.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되어서가 아니라 모든 것들이 그대로 드러나 눈에 훤히 보이게 되면 웃음이 나는 것이 사람이란 종의 이상한 특징이다. 웃을 수 있는 것은 조건이 좋아서든 능력이 뛰어나서든 여유가 있기 때문이거나 또는 미쳤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그 생각이 읽힐 때마다 사람으로 태어나 왜 사람으로 살지 않는지 궁금할 뿐이다.  

그래서 착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꿀 수 있는 꿈을 찾은 다음 그 꿈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필요조건이다. 물론 뜻대로 되리란 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하는 것을 자유라 부른다. 어떤 것이 어떻게 피어날지 몰라 궁금했던 것 뿐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저 아름다운 꿈이다. 나도 실제로는 세종이 장영실을 버렸으리라 생각하니까. 생물학적으로만 죽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역사적으로 죽였다는 사실로부터는. 연산이 김처선을 죽였듯. 천것에게 비위가 상한 군주의 사형 방식이란 존재 자체를 지울 수 있다는 위력을 보이는 것. 끔찍하다.    
  

Monday, January 08, 2018

Thupten Jinpa (2017) Science and Philosophy in the Indian Buddhist Classics - Volume 1: The Physical World


어젯밤 달라이 라마의 트윗에 담긴 영상을 스크랩해 두었다가,


오늘 보고 감이 와서 바로 샀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아래와 같다. (이 프랑스인이 남아시아라고 부른 곳에 국한되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해야겠지만.)
“The genesis of science that took place in South Asia was just as demanding in terms of empirical accuracy, explanatory standards, and theoretical ingenuity as science in the West. Unlike modern science, however, it included the experience of meditation among its basic sources of knowledge. This broadening of the empirical horizon promises to trigger a new Renaissance. We are fortunate that the editors here have offered us such a clear presentation of this exceptional resource."
--- Michel Bitbol, CNRS (The National Center for Scientific Research(Research), Paris
달라이 라마가 서문에서 인용한 문구:
Monks and scholars, just as you test gold
by burning, cutting, and polishing it,
so too well examine my speech.
Do not accept it merely out of respect.
--- Buddha

Dalai Lama: The Buddha says, we must test its validity for ourselves through experimentation and the use of reason. The testimony of scriptures alone is not sufficient. This profound advice demonstrates the centrality of sound reasoning when it comes to exploring the question of reality.

정신분석학의 임상조사, 인지심리학의 실험분석, 현대물리학의 발견들, 현대형이상학과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그 결과들을 해석적으로 포괄가능한 사유체계로 불교의 존재는 독보적이다. (와이트헤드도 있지만.) 이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들의 개인적이고 지극히 내면적인 경험은 잊혀질 수가 없다. '불교논리학'의 선도지가 놀랍게도 '아직' 오스트리아임을 최근 알게 되었다. 아직인 이유가 대충 짐작이 간다.


+
유교 연구의 중심은 이제는 무슨 쐐기라도 박듯이 이론의 여지없이 하버드-옌칭 연구소이다. 재작년에 마지막으로 확인한 결과 [논어]의 영역이 이제는 여러 대학에서 강의마다(대학원도 학부 전공도 아닌 학부 교양 강의에서까지) 새로 이루어지고 초벌 원고가 공개되어 학계를 넘어선 토론을 유도한다. (즉 3세대 연구자들이 활발히 독립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고, 자연히 이들은 수도 많다. 더 이상 동경대와 국립대만대에서 교수와 박사들을 수입해 가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군자'가 noble men이나 gentleman이 아니라 junzi로 번역되는 경우가 더 많아졌고, 그 주석을 보면 고대 그리스 철학의 유사 개념들과의 차이를 상술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불과 십여 년 전에야 책의 형태로 출간된 최신의 고고학, 문헌학, 문자학의 공동 연구 성과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세계초특급이 아닌 대학의) 경영학을 전공하는 스무 살의 학생이 선택교양 강의에서 배워 알고 있는 내용이 이 정도 수준이다. (솔직히 내가 논어를 본문만이라도 당장 외워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이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는데, 여태 반도 못 외우고 있지만.) 일례로 仁의 어원 전개 과정에 대한 학계의 최신의 합의 내용을 살펴보려면 영어 텍스트를 배제하고서는 너무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일면이겠으나, 한국에 갑골문 학자는 지금까지도 몇 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중국의 유교와 일본의 유교와 한국의 유교의 사상사적 차이와 문화적 차이를 이론적으로 가장 엄밀하게 분석하고 있는 것은 현재 미국인들이고, 그들은 이것이 조선 전기와 후기의 여성의 지위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그러한 미시사적 응용분야의) 학술서 등등을 이미 일반 서점에 단행본으로 출간했을 만큼 성숙한 단계를 지났다. (단행본 출간이란 의미가 대충, 학계에서는 숱한 논문과 토론이 집적되어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가지는 동의에 이르러 십 년 전에 정리된 것이라고 봤을 때, 자연계에서는 이쯤 되면 나머지 연구자들은 이제 다른 영역을 알아봐야 하는데, 인문학계는 좀 다르려나?) 고전번역원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는데 요즘 출간 목록이 폭발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한강의 기적'급 속도감이 느껴지긴 했다. 그 내실을 알아볼 역량이 내게 없으니 따질 일도 아니고 일단 희망이 생기긴 하는데, 지고한 시간을 바쳐야만 하고 대를 이어 가야만 되고 평생을 바쳐 봐야 고작 일원으로 사라져도 간신히 이루어지는 종류의 작업들도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