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25, 2005

조광조 (趙光祖) Jo Gwang Jo

정암(靜庵) 조광조 (趙光祖, 1482-1520)

1519년 (중종 14년) 12월 20일 능주 유배지에서 지은 절명시:

愛君如愛父
憂國如愛家
白日臨下土
昭昭照丹衷

source: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유허비 (전라남도 기념물 제41호: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 애우당 보중 현판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 사랑하듯 하였고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 하였노라
하늘이 이 땅을 굽어보시니
내 일편단심 충심을 밝게 밝게 비추리

--- 최인호 옮김 (source: [유림: 왕도] (2005, 열림원)


한국학종합DB: 정암집(靜菴集)





계보: 공자 - 정몽주 - 김종직(金宗直) - 김굉필 - 조광조

벗: 평생 지기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 1488-1545), 무명의 갖바치, 미지의 운암주인
제자: 장잠(張潛), 성수침(成守琛), 백인걸(白仁傑)

최인호 (2005, 열림원) 유림: 왕도, 278쪽:
"융경(隆慶) 무진년(戊辰年)은 선조의 원년이다. 정암선생에게 영의정을 추중하시고 다음 해에 시호를 도덕이 있고, 견문이 넓으며, 정도로써 사람들을 복종시킨다는 뜻으로 문정(文正)이라고 내리셨다.

최인호 (2005, 열림원) 유림: 왕도, 253-254쪽:
문정공 조광조 영령 치제문:
" 효종 원년(1650년) 심곡서원에 친필로 사액을 내림으로써 정식으로 조광조의 복원을 만천하에 공표한다. 실로 조광조의 사후 130년 만의 일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조좌랑 채지연(蔡之沇)을 직접 심곡서원에 보내어 조광조의 영령 앞에 제사를 지내도록 명령한다. 효종은 이시해(李時楷)로 하여금 처제문을 지어 올리도록 하는 한편 채지연을 보내어 조광조의 신위 앞에서 이를 낭독하도록 하였다.

국왕은 예조좌랑 채지연을 보내어 선정신(先正臣)인 문정공 조광조의 영령에 제를 드리노라.
경의 기상은 산악의 정신인 듯 북두의 결정인 듯
영봉(靈鳳) 같은 상서(祥瑞)며 금옥같이 윤택하다
어려서 학문에 뜻을 두고 개연(慨然)히 분발하여 대도(大道)를 탐구했네
역법(曆法)은 하정(夏正)쓰고 면류관은 주(周)의 제도
일찍부터 지난 포부 왕좌지재(王佐之才) 그 아닌가

이 나라 동녘 땅에 문화가 싹튼 것은 기자(箕子)가 우리 땅에 오면서 시작됐네
그 덕화(德化) 그 교훈이 그 뒤로 침체되어 신라 고려 지나면서 큰 발전 없었도다
두절된 그 학문을 문경공이 창시하고 경 또한 분발하여 정통을 받았도다
방향을 제시하고 앞길을 알려주니 문왕이 아니어도 그침 없이 분기(奮起)한다
흉중(胸中)에 쌓인 지식 자연히 대도(大道)와 부합되며 언어와 동작은 법도에 어김없다
조용히 생각하고 밤낮으로 신칙(申飭)하여 엄연하고 숙연한 그 위의 어긋남이 없었도다
굳건하고 엄밀하게 다듬고 갈고하여 영화가 밖으로 발하여 선명한 그 광채가 옥같고 물과 같네
법도 있는 품위는 일거일동(一擧一動)에 나타나고 고고한 학의 맑은 울음 구천까지 들려주어
임금께 신임받아 천재일우(千載一遇) 되었도다. "



졸부 중종이 부단히 인격을 수양하고 겸허하게 인재들의 직언을 수용하며 군자로서 성군으로 거듭나 약육강식의 편파적인 정세를 타파하고 강력하고 정의로운 왕도정치를 펴기를 바랬던 그의 이상... 도덕적 결벽증과 그로 인한 세상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자기 내부의 모순들에 시달렸던 평범한 사춘기 시절, 그의 순수함과 철저함에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밤을 노린 여인의 유혹을 거듭 거부하고 도리어 그녀를 꾸짖고 달래어 교화시키는 것으로 지아비로서의 정절을 지켰던 그의 자제력과 충실함에 귀중한 이십 대를 방종으로 흘려 보냈다는 후회마저 또 다른 변명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에게 엄격한 이의 모습은 나를 늘 황홀케 하고, 또 무서운 채찍이 된다.

사모하는 이여...
고고한 의욕과 강건한 충심을 배신당하고 젊은 날 눈바람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얼마나 아프셨습니까.
학문도 도덕도 정의도 말고 우선 처자식이 밟혀 어찌 눈을 감으셨습니까. 그리 아끼시지 않으셨습니까.
왜 가장 잔인하게 버림 당하고도 사랑과 걱정을 거두지 않으셨습니까.
그 총명으로 어찌하여 위협을 피하지 못하고 끝까지 그 저열함을 보지 못하고 맹종하셨습니까.
그 죽음이 오늘의 저에게도 감히 남일 같지 않을 만큼 세상은 변함이 없고 사람도 여전합니다.
가신 그 길을 따라야 할지 그저 우선 사는 게 중요한지, 나이가 들수록 더욱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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