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
( Chéng zhě, tiān zhī dào yě; chéngzhī zhě, rén zhī dào yě. )
---- 子思 《禮記·中庸》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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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bestirnte Himmel über mir, und das moralische Gesetz in mir. ---- Immanuel Kant (KpV: AA 05: 161.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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ἃ γὰρ δεῖ μαθόντας ποιεῖν, ταῦτα ποιοῦντες μανθάνομεν (What we have to learn to do we learn by doing.)
---- Ἀριστοτέλης (Nic. Eth. 1103a33)
종묘대제(宗廟大祭)는 왕실의 품격 높은 의례와 무용, 음악이 어우러진 종합적인 의례로,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중 길례(吉禮)에 속하며, 국왕이 직접 거행하는 가장 큰 규모의 제사이다. 1969년 복원되어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매년 5월 첫 번째 일요일에 유교의 예법과 절차를 엄격히 지켜 웅장하고 엄숙한 의식으로 거행된다.
* 국조오례의: 1474년에 편찬된 국가의 기본 예식인 오례[길례(吉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빈례(賓禮), 가례(嘉禮)]에 대해 규정한 예전(禮典)
독일 가기 전 여기랑 사직대제 참관하고 김해 봉하 마을 방문하는 거, 꼭 하고 싶었는데, 여태 못 함. 앞으로 일 년 안에 꼭 다 해야지.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면 그 꿈을 알고 공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은, 같은 것을 보면서도 내가 보는 것과 그가 보는 것이 다름을 알고 그는 그의 길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의 길로 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 길의 끝에서 만나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길에서 새로 보이는 것들을 그때마다 서로 들려 주고 듣는 것이다. 그러면 한마음이 된다. 폭발하듯 커진다.
그렇게 같은 마음이 되는 기분이 어떠한지 나도 안다. 평생 한 번도 못 겪어 보고 죽는 사람도 많으니 이미 나는 행복한 걸까? 아니면 다시 느끼지 못해 늘 허덕이는, 다른 것은 보지 못하고 이것만 찾아 헤매며 사는 삶이란 가여운 걸까?
착해야 머리가 좋다. 아이큐나 지식과는 무관하다.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에서 귀함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남들이 못쓸 것이라 버리기 바쁜 것들이, 누군가 가만히 간직하는 것조차 견디지 못해 갖은 비난과 공격을 퍼붓고 틈만 나면 부수고 죽이려는 것들이 실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안다면, 그 상황 자체가 그것들을 사수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목숨을 걸고 지켜야만(武) 하는 것이 있으면 없던 능력들이 생기고, 게다가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포기를 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절대로 머리가 좋아진다.
다른 수작들은 뻔히 읽히기 때문에 웃음이 나는 것이다. 치루는 대가가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하거나 구원 받으리라 믿거나 보상을 기다리거나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못할 만큼 모자라서가 아니다. 그것은 우월감에서 나오는 냉소나 비웃음이 아닌 그냥 단순한 웃음이다. 의무나 희생이 아니었듯이 행운도 능력도 아닌,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강요나 폭력 속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과 그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착하면 세상은 그를 절박하게 만든다. 절박한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그 상황을 바꾸기로 결정하는 순간부터, 소중한 것을 반드시 살리겠다고 결심할 때, 상황이 불리하고 위험할수록 더욱 머리가 좋아지기 시작하는 것은 사람을 만든 자연의 이치다. 물론 뜻대로 되리란 법은 당연히 없다.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되어서가 아니라 모든 것들이 그대로 드러나 눈에 훤히 보이게 되면 웃음이 나는 것이 사람이란 종의 이상한 특징이다. 웃을 수 있는 것은 조건이 좋아서든 능력이 뛰어나서든 여유가 있기 때문이거나 또는 미쳤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그 생각이 읽힐 때마다 사람으로 태어나 왜 사람으로 살지 않는지 궁금할 뿐이다.
그래서 착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꿀 수 있는 꿈을 찾은 다음 그 꿈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필요조건이다. 물론 뜻대로 되리란 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하는 것을 자유라 부른다. 어떤 것이 어떻게 피어날지 몰라 궁금했던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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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영화는 그저 아름다운 꿈이다. 나도 실제로는 세종이 장영실을 버렸으리라 생각하니까. 생물학적으로만 죽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역사적으로 죽였다는 사실로부터는. 연산이 김처선을 죽였듯. 천것에게 비위가 상한 군주의 사형 방식이란 존재 자체를 지울 수 있다는 위력을 보이는 것. 끔찍하다.
벗: 평생 지기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 1488-1545), 무명의 갖바치, 미지의 운암주인
제자: 장잠(張潛), 성수침(成守琛), 백인걸(白仁傑)
최인호 (2005, 열림원) 유림: 왕도, 278쪽:
"융경(隆慶) 무진년(戊辰年)은 선조의 원년이다. 정암선생에게 영의정을 추중하시고 다음 해에 시호를 도덕이 있고, 견문이 넓으며, 정도로써 사람들을 복종시킨다는 뜻으로 문정(文正)이라고 내리셨다.
최인호 (2005, 열림원) 유림: 왕도, 253-254쪽:
문정공 조광조 영령 치제문:
" 효종 원년(1650년) 심곡서원에 친필로 사액을 내림으로써 정식으로 조광조의 복원을 만천하에 공표한다. 실로 조광조의 사후 130년 만의 일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조좌랑 채지연(蔡之沇)을 직접 심곡서원에 보내어 조광조의 영령 앞에 제사를 지내도록 명령한다. 효종은 이시해(李時楷)로 하여금 처제문을 지어 올리도록 하는 한편 채지연을 보내어 조광조의 신위 앞에서 이를 낭독하도록 하였다.
국왕은 예조좌랑 채지연을 보내어 선정신(先正臣)인 문정공 조광조의 영령에 제를 드리노라.
경의 기상은 산악의 정신인 듯 북두의 결정인 듯
영봉(靈鳳) 같은 상서(祥瑞)며 금옥같이 윤택하다
어려서 학문에 뜻을 두고 개연(慨然)히 분발하여 대도(大道)를 탐구했네
역법(曆法)은 하정(夏正)쓰고 면류관은 주(周)의 제도
일찍부터 지난 포부 왕좌지재(王佐之才) 그 아닌가
이 나라 동녘 땅에 문화가 싹튼 것은 기자(箕子)가 우리 땅에 오면서 시작됐네
그 덕화(德化) 그 교훈이 그 뒤로 침체되어 신라 고려 지나면서 큰 발전 없었도다
두절된 그 학문을 문경공이 창시하고 경 또한 분발하여 정통을 받았도다
방향을 제시하고 앞길을 알려주니 문왕이 아니어도 그침 없이 분기(奮起)한다
흉중(胸中)에 쌓인 지식 자연히 대도(大道)와 부합되며 언어와 동작은 법도에 어김없다
조용히 생각하고 밤낮으로 신칙(申飭)하여 엄연하고 숙연한 그 위의 어긋남이 없었도다
굳건하고 엄밀하게 다듬고 갈고하여 영화가 밖으로 발하여 선명한 그 광채가 옥같고 물과 같네
법도 있는 품위는 일거일동(一擧一動)에 나타나고 고고한 학의 맑은 울음 구천까지 들려주어
임금께 신임받아 천재일우(千載一遇) 되었도다. "
졸부 중종이 부단히 인격을 수양하고 겸허하게 인재들의 직언을 수용하며 군자로서 성군으로 거듭나 약육강식의 편파적인 정세를 타파하고 강력하고 정의로운 왕도정치를 펴기를 바랬던 그의 이상... 도덕적 결벽증과 그로 인한 세상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자기 내부의 모순들에 시달렸던 평범한 사춘기 시절, 그의 순수함과 철저함에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밤을 노린 여인의 유혹을 거듭 거부하고 도리어 그녀를 꾸짖고 달래어 교화시키는 것으로 지아비로서의 정절을 지켰던 그의 자제력과 충실함에 귀중한 이십 대를 방종으로 흘려 보냈다는 후회마저 또 다른 변명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에게 엄격한 이의 모습은 나를 늘 황홀케 하고, 또 무서운 채찍이 된다.
사모하는 이여...
고고한 의욕과 강건한 충심을 배신당하고 젊은 날 눈바람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얼마나 아프셨습니까.
학문도 도덕도 정의도 말고 우선 처자식이 밟혀 어찌 눈을 감으셨습니까. 그리 아끼시지 않으셨습니까.
왜 가장 잔인하게 버림 당하고도 사랑과 걱정을 거두지 않으셨습니까.
그 총명으로 어찌하여 위협을 피하지 못하고 끝까지 그 저열함을 보지 못하고 맹종하셨습니까.
그 죽음이 오늘의 저에게도 감히 남일 같지 않을 만큼 세상은 변함이 없고 사람도 여전합니다.
가신 그 길을 따라야 할지 그저 우선 사는 게 중요한지, 나이가 들수록 더욱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