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
( Chéng zhě, tiān zhī dào yě; chéngzhī zhě, rén zhī dào yě. )
---- 子思 《禮記·中庸》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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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bestirnte Himmel über mir, und das moralische Gesetz in mir. ---- Immanuel Kant (KpV: AA 05: 161.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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ἃ γὰρ δεῖ μαθόντας ποιεῖν, ταῦτα ποιοῦντες μανθάνομεν (What we have to learn to do we learn by doing.)
---- Ἀριστοτέλης (Nic. Eth. 1103a33)
박창수 Park Chang Soo (Piano): Free Music 1015th THE HOUSE CONCERT 2024-03-04 Mon. 8pm 대학로 예술가의집
* 본 공연은 이머시브 사운드(immersive sound)가 적용된 공연입니다. 시청하실 때는 이어폰/헤드폰을 착용하고 감상해주세요.
[4:37] Start
[1:06:20] * Minitalk
프리뮤직 | Free Music(글: 박창수)
프리뮤직은 가장 간단히 말하자면 즉흥 연주이다. 작곡된 곡을 연주하는 것과 차별화되는 것으로, 미리 준비된 것을 연주하는 것이 아닌 '작곡을 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음악이다.
프리뮤직의 정확한 표기는 Free Improvising Music인데, 이는 전위음악의 요소인 우연성, 불확정성과 재즈의 즉흥성이 결합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재즈에서 발전된 프리재즈(Free Jazz)가 현대음악과 접목되면서 프리뮤직이라는 형태로 발전해온 것으로, 재즈에서의 즉흥성이 미리 만들어진 아우트라인(outline) 아래에서 이뤄진다면 프리뮤직은 그 조차도 없는 완전한 즉흥이다. 악보도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연주하여 무대에서의 매우 빠른 계산이 요구되는 음악이기에 상당히 지성에 기반한 작업이기도 하다.
프리뮤직은 정해진 프로그램 없이 공연 당일 연주자의 즉흥, 즉 리듬, 음계, 화성의 고정된 제약을 거부한 상황성에 기초하여 음악이 만들어진다. 이는 청중과 연주인 간의 교감, 공연 장소의 분위기, 연주인에게 축적된 삶의 경험과 생각, 연주 스타일, 단련된 기교가 한데 어우러지는 음악이고, 생동하는 기(氣)의 음악이며 그 전개를 예측할 수 없는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연주자의 내면 세계를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표현하여 연주하는 이의 마음과 음악성이 매우 확실하게 전해지는 프리뮤직은 함께하는 연주자에 따라 현대음악, 민속음악,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도 융합할 수 있는 폭넓음을 가지고 있다.
계몽주의, 식민주의, 신자유주의가 공고히 결합된 캄푸스에서 소문자 아방가르드를 설명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냥 대문자로 가는 선명한 길은 여럿이라는 편의성도 있고. 효율만 생각하는 것이 답인 듯. 그늘 아래 누워 쉬어 가는 캄푸스. 끌고 갈 양 떼가 있는 것도 아닌 홀가분한 나그네.
Walter Benjamin (1927): [...]
하지만 나무에는 저 숲 속의 밤도 살고 있다. 그건 화사한 붉은색으로
내부가 칠해진 무겁지만 작은 상자들에 있다. 겉엔 광택이 나는 검은색 바탕
위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차르 전제정 시대에 이 산업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 지금은 새로운 세밀화들과 함께 금색으로 농부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는 옛 그림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세 마리 말이 끄는
마차로 사냥을 하고 있거나 컴컴한 밤에 바다색 치마를 입은 소녀가 녹색으로
넘실거리는 숲 옆에 서서 연인을 기다리고 있는 그림들이다. 그 어떤 무서운
밤도, 그 자궁 속에 그로부터 출몰하는 모든 것이 숨어 있는 이 단단한
상자의 니스칠한 밤만큼 어둡지는 않으리라. 앉은 채로 담배를 팔고 있는
여인이 그려져 있는 상자를 보았다. 그녀 옆에 숨어 있는 아이 한 명이
담배를 집으려 한다. 여기도 칠흑같은 밤이다. 하지만 오른쪽으로는
돌멩이를, 왼쪽으로는 잎이 다 떨어진 작은 나무 한 그루를 알아볼 수 있다.
그 여인의 앞치마에
'모젤프롬'이라고 써 있다. 그녀는 소비에트의 '담배를 든 성모'다.
cf. Дом Моссельпром (Московское объединение предприятий по переработке продуктов сельскохозяйственной промышленности) 모스셀쁘롬(인 듯. 러시아어 몰랐다지만 Mosselprom은 독일어 발음으로도 모스젤프롬. 적어도 모쎌프롬.)
Юрий Андреевич Желябужский (Yuri Zhelyabuzhsky; 유리 젤랴부즈스키, 1924) Папиросница от Моссельпрома (Papirosnitsa ot Mosselproma) The Cigarette Girl from Mosselprom(112 m) (캡션: 영어 자막. 원래 무성.)
이번 주말에 봐야지. 지금으로서는 벤야민이 이 영화를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잡상인이 재활용한 포스터를 보았는지 또는 그것을 원본으로 한 모작이나 소재로 한 장식화를 보았는지 불확실하다. 아무튼 조사 결과 벤야민 체류 시기 '모스셀쁘롬 돔'은 시내 한복판에 당시로서는 초고층에 해당하는 10층으로 완공되어 있었다. 또는, 현실이야말로 공통된 원본이고, 영화가 벤야민의 여행기와 마찬가지로 거기에서 모티프를 끌어냈는지도.
어제 도착한 유리 펜으로 못 참고 새벽에 무아지경으로 잉크 놀이 했더니 스트레스가 날아가서 완전 의욕 충전.
김수환 (2022: 170-204):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있다. 모스크바 방문이 남긴 영향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 두드러진 매체가 따로 있다는 점이다. 문학도 연극도 아닌 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벤야민의 평전을 쓴 제닝스(Michael Jennings)와
아일런드(Howard Eiland)에 따르면, "이후의 작업 방향이라는 면에서 볼 때
벤야민이 러시아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가장 중요한 결실 중 하나는 영화 매체
관련 사유들을 펼쳐갈 추동력이었다."[하워드 아일런드·마이클 제닝스, 『발터 벤야민 평전: 위기의 삶, 위기의 비평』, 김정아 옮김, 글항아리, 2018,
370쪽.]
[...]
이런 대립 구도가 갖는 의미는 훗날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통해
유명해지게 될 촉각성 개념의 기원이 실은 모스크바였다는 사실의 확인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더 의미심장한 것은, 유럽과 러시아(소비에트)를
이런 식으로 병치, 대립시키는 벤야민의 관점 자체다. [...] 그 태도의
각별함은 그가 일반적인 유럽인의 관점에서라면 일탈이나 지체(가령 아직까지
유럽에 이르지 못한 상태)로 간주할 만한 것들에서 새로움과 차이(즉
유럽에서는 불가능하기에 시도되지 못한 것)를 식별하고자 할 때, 무엇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해본다면 어떨까? 벤야민이 영화 매체에
부여한 특별한 가능성이 기존의 모든 매체들과는 원칙적으로 다른 그것의
(존재론적, 기능적) 새로움에 걸려 있다고 한다면, 혹시 그 새로움이란 모든
유럽적인 것과 차별화되는 소비에트-러시아만의 원칙적인 새로움과 연동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만일 영화 매체의 새로움과 소비에트 사회의 새로움이
본질적으로 동종의 것이라면 어떨까?
[...]
1926년 겨울 벤야민이 목도한 모스크바의 가정집, "사적인 삶"이 폐지되고
"안락한 방"이 사라진 그곳은 더 이상 (소부르주아적 거주지의) 아우라가
불가능해진, 그런 장소였다.
[...] 결국 벤야민이 말하는 경험의 빈곤 상황, 새로운 야만성의 상황이란
그냥 자연이 아니라 (「초현실주의」에서 이미 이야기했던) "피시스(Physis)"의
상황, 그러니까 "기술 속에서 그 집단의 일원으로 조직되는 자연"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 이 경우에도 우리의 관심은 '이후'뿐 아니라 '이전'으로 이끌린다.
"자연과 기술, 원시성과 안락함은 여기서 완전히 하나가 된다"라는 바로 앞의
문장은, 한편으로 기술이 현실 속에 고도로 침투해 있는 피시스의 (미래)
세계를 가리키는 것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의) 또 다른 세계를 강하게
연상시킨다. 새 것과 옛 것이 어지럽게 뒤섞여 공존하는 곳, "기술적 경영과
원시적 실존의 모습이 철저히 서로 침투"(297)해 있는 그곳은 다름 아닌
모스크바다.
Na zijn studie in Berlijn componeerde Jakob van Domselaer in de jaren 20 zeer extreme muziek. Schönberg was nog aan het zoeken naar zijn twaalftoonssysteem en Stravinsky was nog niet tot bloei gekomen toen Jakob van Domselaer in 1913 reeds zijn stijloefeningen componeerde: abstracte klankclusters waar de tijd gestold lijkt. Hij noemde het dan ook klankstollingen. Het theoretisch kader voor zijn klankexperimenten ontstond vanuit de contacten met Piet Mondriaan en de Stijlbeweging. Het was Van Domselaer die in 1914 de muziek van Busoni en Schönberg voor het eerst in Nederland uitvoerde. De Eerste Symphonie (1921) is volkomen uniek in zijn soort en is ondanks verwantschap met Mahler en Sjostakovitsj toch geheel eigen in stijl en vorm. De Pianoconcerten no. 1 en no. 2 (1924 en 1926) zijn minstens zo expressief. Ook klinkt er veel meer geschiedenis in door dan in de Symphonie. Soms klinken kathedralen van welluidendheid. Tevens zijn er laatromantische kenmerken als gebroken akkoorden, warm pedaal, romantische crescendos: je hoort bovenal de bewonderaar van de negentiende-eeuwse pianoschool in de traditie van Liszt en Busoni.
tr. by google:
After his studies in Berlin, Jakob van Domselaer composed very extreme music in the 1920s. Schoenberg was still looking for his twelve-tone system and Stravinsky had not yet blossomed when Jakob van Domselaer already composed his style exercises in 1913: abstract sound clusters where time seems to have solidified. That's why he called it sound clotting. The theoretical framework for his sound experiments arose from contacts with Piet Mondriaan and the De Stijl movement. It was Van Domselaer who first performed the music of Busoni and Schönberg in the Netherlands in 1914. The First Symphony (1921) is completely unique in its kind and, despite its affinity with Mahler and Shostakovich, is still completely unique in style and form. The Piano Concertos no. 1 and no. 2 (1924 and 1926) are at least as expressive. There is also much more history in it than in the Symphony. Sometimes cathedrals resound with melodiousness. There are also late romantic features such as broken chords, warm pedal, romantic crescendos: above all you hear the admirer of the nineteenth-century piano school in the tradition of Liszt and Busoni.
‘바르도(Bardo)’는 사람이 죽은 후 저승으로 천도되기까지 머무는 ‘살고도 죽은, 죽고도 산’ 상태를 이르는 티베트어다. 이 곡에서 구음과 뒤섞인 악기 간 음향의 색채는 삶과 죽음의 틈새(바르도)에 대한 추상적 이미지를 드러낸다. 작곡가 원일은 바다 속으로 사라져 간 어린 생명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며 그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 곡을 작곡하였다. ‹Bardo-k›는 그들이 잘 떠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죽음에 대한 명상 같은 곡이다. (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40:14] 원일(Il Won, 2022) 디오니소스 로봇 (Dionysus Robot) * 세계 초연
Marion Brown alto saxophone · Harold Budd
piano/voice · Maggie Thomas harp · Richard Bernas
celeste · Gavin Bryars glockenspiel/voice · Jo Julian
marimba/vibraphone/voice · Michael Nyman marimba/voice · John
White marimba/percussion/voice · Howard Rees
marimba/vibraphone · Nigel Shipway percussion · Richard Bernas
piano · Brian Eno voice
어쩔 수 없이 생각나네. 고등학교 시절부터 팬이셔서 해외 여행이 자유롭기 이전 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 어렵게 여권 발급받아 첫 비행기 타셨다는 추억 말씀하시던 이 교수님. 어쩌면 저 객석에 계실지도. 딱 이 시간쯤(오랜 미국 생활로 평균 오후 10시 이후 새벽 4시 이전) 연구실로 출근하시면 늘 나 혼자 있는 우리 랩도 거르지 않고 꼭 들르셔서, 집중하던 중이라는 핑계로 무뚝뚝하다 못해 무례한 지경인 내 태도에 아랑곳없이 전혀 형식적이지도 단지 습관적이지도 않은 세심한 말씀 먼저 주시고 이런저런 농도 붙이시다, 영 맹한 내가 괜스레 타박하신다 여겨 볼이 붓는 걸 보시고서야 이제 안심된다는 듯 나가시던.
그러나 정말 안심했던 건 나였다. 그런 날이면 화장실 다녀올 때마다 연구실 알림등이 켜져 있는 줄 이미 알면서도 굳이 눈으로 확인하고 또 그러면 마음이 놓이곤 했다. 컴컴한 복도에서 아무리 익숙해도 걸음이 무거워지고 창문으로는 모교와는 달리 밤이면 죽어 있는 캠퍼스에 나무만 흔들려도 마음이 순간 스산해졌으니까. 잠깐이었지만 그것이 그 시절 내가 누린 몇 안 되는 여유의 시간이기도 했다.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공학과 물리학의 차이가 문과와 이과의 차이보다 더 힘들었다.
무엇보다 디펜스 날 정 교수님 이 교수님 엄격함이야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음에도 나에게도 너무 진지하게 해 주셔서 놀랐다. 동네 축구를 상대로 요즘 같으면 손흥민이 조금도 안 봐주고 전력을 다하는 느낌이었달까? 이렇게 하는 거로구나 비로소 배웠다. 불과 이틀 전 장장 다섯 시간 동안 천장이 녹아 내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호통하시던 지도교수님 눈이 시퍼래서 내색을 못 했지만, 정녕 아름다운 오펜스였다. 유일하게 의미와 보람을 느낀 시간이었다. 논문 자체는 교정 한번 못 보고 writing에 시간 쓰지 말라며 프로젝트 보고만 요구하시는 지도교수님 압박에 제 실속은 알아서 먼저 차릴 일임을 몰랐지만.
지난 십 년 동안 그리고 오늘도 나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이번 여름에 들어서야 노력이 필요해졌지만, 그전까지는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되었다. 내용이 달라도 내용 밖의 일이라도 세 분 각각 뭐라 하실지 잘 아니까. 그런데 정작 우리 교수님께서 뭐라 하실지는 만사에 모른다. 빨리, 아니 제때 끝냈으면 하신다는 것밖에는. 그것도 이제는 과거형이 되었네. 인정하기를 미루었지만, 마침 길을 잃은 것 같다.
Theodor W. Adorno (1949/1975): 해명되지 않은 것을 해명되지 않은 채 놓아둠으로써 <행복한 손>에서 나타나는 카오스적인 측면은 가상과 유희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는 쇤베르크의 지적 성실성이다. 그러나 카오스의 현실은 전체 현실이 아니다. 카오스의 현실에서는 교환사회의 법칙이 출현하며, 이 법칙에 따라 교환사회는 맹목적으로, 그리고 인간의 머리 위에서 재생산된다. 이 법칙은 다른 사람들을 제멋대로 다루는 권력의 지속적인 증가를 포함하고 있다. 세계는 가치법칙과 집중에 의해 희생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카오스적이다. 그러나 세계는 "그것 자체로서는" 카오스적이지 않다.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가 혹독하게 짓밟는 대상인 개별 인간만이 세계가 카오스적이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개별 인간에게 세계가 카오스로 나타나게 만드는 폭력들이 종국적으로는 카오스의 재조직을 떠맡는다. 카오스는 폭력이 만들어내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카오스는 코스모스의 기능을 갖고 있으며, 질서에 앞서서 나타나는 무질서이다. 철학에서 카오스와 체계가 함께 속해 있듯이, 사회에서도 카오스와 체계가 함께 속해 있다. 표현주의적으로 나타나는 카오스의 한복판에서 구상된 가치 세계는 기세를 올리면서 떠오르는 새로운 지배의 특징들을 담지하고 있다. <행복한 손>의 그 남자는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연인도 거의 보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갖는 연민을 정신의 비밀스런 왕국으로 끌어올린다. 그는 이 왕국의 우두머리이다. 그의 강력한 힘은 음악에서, 그의 나약함은 가사에서 효과를 발휘한다. 그가 대변하고 있는 사물화 비판은 바그너의 사물화처럼 반동적이다. 그의 사물화 비판은 사회적 생산관계들을 향하고 있지 않으며, 분업을 향하고 있다. 쇤베르크에게 고유하게 나타나는 사물화 비판의 실제는 이러한 혼동으로 인해 병들어 있다. 쇤베르크는 음악에서 고도로 특화된 지식을 문학적인 시도를 통해 보완하려고 하였지만 바로 문학적인 시도에 의해 쇤베르크의 사물화 비판의 실제는 중압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또한 바그너적인 경향이 붕괴되고 있다. 바그너의 종합예술작품에서 예술적 생산과정의 합리적인 조직을 통해 아직도 응집되어 있고 이렇게 해서 바그너 작품의 진보적인 요소를 유지시켜 주던 것이 쇤베르크에서는 괴리되면서 산산조각이 난다. <행복한 손>의 남자는 기존의 질서에 경쟁자로 등장하면서도 기존의 질서에 충실하게 머물러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간단하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쇤베르크가 작품에서 창조한 남자는 "터키 사람들의 수급 2개를 매단 밧줄을 허리띠처럼 몸에 두르고", "칼집에서 빼든 피 묻은 칼을 손에 들고 있다." 그에게는 이 세계에서 이처럼 잘못된 일이 생기고 있지만, 그는 그럼에도 힘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있는 불안이라는 괴물은 그에게 복종을 강요한다. 무력한 자는 자신의 무력함과 스스로 타협을 하면서 그에게 자행된 불의를 다른 사람들에게 자행한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그 남자는 역사적으로 이중의 의미를 갖고 있다. 무대를 "기계기술자의 작업장과 대장장이의 작업장의 중간 정도로 꾸미라는" 연출자의 지시만큼 그 남자가 갖고 있는 역사적 이의성(二義性)을 정확하게 지적해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새로운 즉물성의 예언자인 주인공은 — 장인(匠人)으로서 — 옛 생산방식이 갖고 있는 마력을 살려내야 한다. 쓸모없는 것을 거부하는 그의 단순한 몸동작은 왕관을 생산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가 귀감으로 삼고 있는 지크프리트는 최소한 칼을 만들어냈다. "음악은 장식적이어서는 안 된다. 음악은 진실하여야 한다." 그러나 예술작품은 다시 오로지 예술만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 예술작품은 자신이 사회적으로 속해 있는 현혹의 상호연관관계로부터 예술적 탈출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절대적 예술작품은 실명 상태에 빠진 채 오로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동어반복적으로 관계를 가질 뿐이다. 예술작품의 상징적 중심은 예술이다. 이렇게 해서 예술작품은 공허해진다. (문병호 옮김, 2012: 79-81)
카오스를 폭력으로, 질서를 이성(합리적 체계성)으로, 사회학적으로 해석한 다음 자신의 역사적 변증법을 적용하는 듯. 신기하다. 카오스를 무조로, 질서를 화음으로, 음악적으로 해석한 다음 역시 자신의 역사적 변증법을 사회학적으로가 아니라며 양식사학적으로가 아닌 예술철학적으로 적용한다. 하나의 음에도 음 전체의 상태를 내포하는 역사가 있단다. 이건 멋지다.
그래도 프랑크푸르트 학파 쪽으로 들어갈 거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버밍엄 쪽 아님을 알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구조주의 쪽은 확실히 아님도 지원하기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의 원망이 언제부터 왜 생겼기에 뒤늦게 부활했는지 모르시겠지. 꿈에 왕림하셨다. 혼비백산했다. 드물게 현실적인 꿈이었다. 아직 안 괜찮다. 현실이 더 무서운 것 같아서.
하여튼 '행복한 손'보다는 '행운의 손'으로 옮기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사이버네틱 아트에서 백남준을 뺄 수는 없다. 몰르와 교류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슈투트가르트에서는 음악은 안 했나 보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