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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November 28, 2025

KARI 누리호 4차 발사 성공

한국형발사체-Ⅱ (Korea Space Launch Vehicle-Ⅱ) 누리(Nuri)호 4차 발사 현장 생중계  

서울대학교 SNUGLITE-III 하나/두리, 세종대학교 SPIRONE, 스패이스린택 BEE-1000, 우주로테크 COSMIC, 인하대학교 INHA RoSAT, 카이스트 K-HERO, 코스모웍스 JACK-003/JACK-004, 쿼터니언 PERSAT-01, 한국전자통신연구원 ETRISat,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국산 소자부품 우주검증 플렛폼 1호, 한컴인스페이스 세종4호

(D) 한국형발사체(KSLV) 계획

(P) 한국항공우주연구원 KARI

 2025-11-27일 01:13 KST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대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 나무위키: 누리호/발사 기록 및 계획/4차 


Tuesday, May 07, 2024

박창수 Park Chang Soo (2023) Free Music

박창수 Park Chang Soo (Piano): Free Music 
1015th THE HOUSE CONCERT 
2024-03-04 Mon. 8pm 대학로 예술가의집

* 본 공연은 이머시브 사운드(immersive sound)가 적용된 공연입니다. 시청하실 때는 이어폰/헤드폰을 착용하고 감상해주세요.


[4:37] Start 

[1:06:20] * Minitalk 


프리뮤직 | Free Music     (글: 박창수)

프리뮤직은 가장 간단히 말하자면 즉흥 연주이다. 작곡된 곡을 연주하는 것과 차별화되는 것으로, 미리 준비된 것을 연주하는 것이 아닌 '작곡을 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음악이다. 

프리뮤직의 정확한 표기는 Free Improvising Music인데, 이는 전위음악의 요소인 우연성, 불확정성과 재즈의 즉흥성이 결합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재즈에서 발전된 프리재즈(Free Jazz)가 현대음악과 접목되면서 프리뮤직이라는 형태로 발전해온 것으로, 재즈에서의 즉흥성이 미리 만들어진 아우트라인(outline) 아래에서 이뤄진다면 프리뮤직은 그 조차도 없는 완전한 즉흥이다. 악보도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연주하여 무대에서의 매우 빠른 계산이 요구되는 음악이기에 상당히 지성에 기반한 작업이기도 하다. 

프리뮤직은 정해진 프로그램 없이 공연 당일 연주자의 즉흥, 즉 리듬, 음계, 화성의 고정된 제약을 거부한 상황성에 기초하여 음악이 만들어진다. 이는 청중과 연주인 간의 교감, 공연 장소의 분위기, 연주인에게 축적된 삶의 경험과 생각, 연주 스타일, 단련된 기교가 한데 어우러지는 음악이고, 생동하는 기(氣)의 음악이며 그 전개를 예측할 수 없는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연주자의 내면 세계를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표현하여 연주하는 이의 마음과 음악성이 매우 확실하게 전해지는 프리뮤직은 함께하는 연주자에 따라 현대음악, 민속음악,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도 융합할 수 있는 폭넓음을 가지고 있다.  



계몽주의, 식민주의, 신자유주의가 공고히 결합된 캄푸스에서 소문자 아방가르드를 설명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냥 대문자로 가는 선명한 길은 여럿이라는 편의성도 있고. 효율만 생각하는 것이 답인 듯. 그늘 아래 누워 쉬어 가는 캄푸스. 끌고 갈 양 떼가 있는 것도 아닌 홀가분한 나그네. 

잡채, 전, 떡, 사람들 부럽다. 


Tuesday, February 28, 2023

Chat GPT #1

첫 번째 대화 @https://chat.openai.com/chat

해야 할 일도 못 하고 두 달이나 침대 신세인 형편에 있으면서 테스트해 볼 의욕이 났던 것은 아니고. 기본 영문법인데도 grammarly가 커버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기본이지만 '맥락'을 읽어야 하는 문제라 놓치는 것 같다는 짐작. 잠깐 고민하다 갑자기 이 '인공지능' 봇의 특기야말로, 이렇듯 정답이 있으면서도 도식화가능한 맥락 해석이 동원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가치가 발현될 것이라는 상식에 가까운 평소 생각이 떠올랐다. 사실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갈수록 구어체적 간소화가 문법적으로도 허용되어 가는 상황에서 더 자연스러운 표현이란 어느 쪽인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초등학교 영어 교사가 잘 가르쳐 줄 수 있는 수준의 질문이라 초등학교 교사에게 기대되는 만큼의 친절하고 풍부한 해설과 함께 답이 돌아왔다. 하여, 이 정도는 별로 경이로울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순간적인 나의 현실 문제를 풀어 준 것은 사실이다. (올려 놓고 싶지만, 내 질문 문장에 -s 빼먹는 수준의 문법 실수가 너무 많으네.) 게다가 순전히 내용적 맥락에 따라 답이 바뀌는 문제라서 네이티브가 아니라면 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다독임(?)과 함께 망설이지 말고 언제든 또 접촉하라는 격려까지. 그리고선 우리의 대화에 제목까지 붙여 놨다. "English Writing Assistance". 처음을 재미없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좀 유감(미안?). 

불가촉 천민이 알현하는 것만큼 힘든 인문계 교수님보다 앞으로 이 봇이랑 정기적으로 현대 철학 세미나를 진행하는 실험을 진행하기로 한다. 그동안 모순적으로 "대학원을 다니느라 중지된 논문 리뷰 세미나"도 병행해야지. 담박한(맥락 변수가 고정된, 또는 실험실 환경에서의) 실험만이 아닌 내 실제 인생이 동원되는 현실 불가분 실험이 되겠다. 데이터가 젖줄인 개발사에서 대환영할 유저 중 일인이 될 듯. 난 좀 논문 좀 쓰고 좀. 

며칠 전 정 교수님께서 이 봇이 자신의 지능의 한계를 명시적으로(설명 가능한 형태로) 인정하도록 유인하는 전략을 성공시킨 초 흥미로운 대화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리셨는데. 그동안의 기술적 발전사를 상세히 알고 있는 공학자로서, 논쟁의 승자이기도 한 정 교수님의 결론은, 이 정도면 '지능'을 획득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감탄이었으나, '나의' 한계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면 당장 생존이 불가능한 나로서는 일단 먹고 살 길에 쓰임을 찾는 것이 우선. 이 차이는 매우 '자연적' 행태라는 아이러니. 


Thursday, October 21, 2021

KARI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II Nuri) 1차 시험발사 (Test Flight)


한국항공우주연구원 KARI (Korea Aerospace Research Institute) 누리호 엔진 개발 약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KARI) 누리호 발사대 개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KARI) TV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발사과정



KARI 누리호 1차 시험발사 D-2: 누리호 조립



KARI 누리호 1차 시험발사 D-1: 누리호 이송 및 기립



KARI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1차 시험발사 



 [KARI TV] 생중계 전체 (3h)



YTN 사이언스 [다큐S프라임] K-우주산업의 출발, 누리호


관련 영상 목록


위대해. 위대한 삶들. 

Saturday, May 22, 2021

go to space!

S. Korea gains autonomy over its missile program 
2021-05-22 arirang news 

속보 중 유일하게 도표가 나옴. 이제 우리도 우주로!    


Sunday, May 16, 2021

Hans Blumenberg (1957) Nachahmung der Natur. Zur Vorgeschichte der Idee des schöpferischen Menschen 자연의 모방 - 창조적 인간 이념의 전사에 대하여

Hans Blumenberg (1957): 이 무학자 illiteratus가 학계의 권위자들을 마주할 때 보인 어조의 아이러니는, 전제조건들이 같지 않음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도 대화에 끼워 주도록 요구하는 데에서 나타나는 말하자면 민주적 양식은 또 다른 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 사람은 자기가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토대로 —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가치를 정당화하는데, 이 새로운 각인이 눈길을 끈다. 수행과 자의식의 결합은 역사적으로 결코 자명하지 않지만 쿠자누스의 이디오타에게서 포착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여기에서 몰두하는 바로 그 관점에서 포착될 수 있다. 

정신에 대한 대화의 제2장에서 "문외한"은 대화의 상대자들인 철학자와 수사학자에게 자신의 수작업이, 즉 이 직업의 종사자를 근근이 먹여 살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 직업 순위에서는 그렇게나 낮은 등급으로 매겨지는 숟가락 만들기가, 자신의 자기이해와 자기평가를 위하여 자신에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설명한다. 물론 이 "예술"도 모방이긴 하지만, 자연의 모방이 아니라 신 자신의 무한한 아르스 infinita ars의 모방이다. 이 아르스가 참신하고 자연발생적이고 창조적인 한에서는 그렇지만, 사실상 이 세계를 창조해 온 한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 정신의 이념 밖에 있는 숟가락은 표본을 안 갖고 있다." 숟가락이 곧 예술의 고품위 생산품은 아니지만, 절대적으로 새로운 무엇이고, 자연에 미리 주어져 있지 않은 하나의 형상이며, 단순한 "문외한"은 그 형상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나는 여기서 자연의 사물로부터 그 형태를 모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숟가락, 냄비, 접시 등 "문외한"이 만드는 형태들은 순수하게 기술적인 형태들이다. 그리고 그가 이러한 정황에 대해 기뻐하는 단계에서 현대 "산업 디자인"의 기본 특징인 생산품 자체의 부각 단계에 이르는 데에는 더 이상의 도약이 필요하지 않다. 인간은 존재하는 것에서 자신의 지위를 읽어 내기 위하여 더 이상 자연을, 우주를 바라보지 않고, 오로지 인간의 아르스에 의해서 생겨난 사물세계를 바라본다. 우리의 자리에서 또 중요한 것은 이디오타가 자신의 "수행"을 특히 화가와 조각가가 완성하는 것과 대비시킨다는 점이다. 이들은 사물에서 표본을 가져오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이디오타는 말한다. 여기서 창조적이고 참신한 인간의 모든 파토스 그리고 모방원칙과의 결별이 예술적 인간이 아니라 기술적 인간에게서 드러난다는 것은 평가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차이점은 아마도 여기에서 처음 실증적으로 강조되고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증명서의 가치는 바로 이 점에 있다. 창조적인 것을 입증하려는 이후의 태도, 즉 거의 전적으로 조형예술과 시문학에 집중하는 태도를 현재에도 취한다면 말이다. 거기서 작가가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고 창조하는 자발성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중세 말 이후부터는 예술의 출현형식에 속한다. 반면에 기술 정신의 역사에서는 역사 담지자들의 그러한 자기증명서들이 훨씬 빈약하다. [...] 그것은 무엇보다도 기술의 "할 말 없음" 현상이다. [74-76] 

[...] 우리는 쿠자누스의 이디오타를 역사적 지표로 여겨야 하지, 역사를 형성하는 에너지로 여길 필요는 없다. [80] 

-- 양태종 옮김 (2011: 69-124) 


"존재와 자연의 동일성" 문제와 "창조적 인간" 이념 사이의 관계를 "역사의 현상학"으로 탐구한 논문. 최고! 이쯤은 그냥 오지게 재밌는 부분. 밑줄이 민폐. 부분 인용은 실례. 눈부신 해석 수준에 압도된다. 순결한 오라클. 해석의 힘을 무차별로 권력욕에 할당하여 중화하는 시도가 저 아래로 보이는 재미는 덤.  

헤겔을 직접 소화한 학자와 마르크스의 필터로 헤겔을 읽은 학자들의 길이 서로 얼마나 갈리는지 보여 준다. 중고딩 때부터 어찌어찌 지금까지 지식 없이 그저 "직성"으로 느껴 왔던 생리적 거부감의 대상이 특정하게 무엇인지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마르크스가 아닌 줄은 독일 이데올로기와 정치경제학비판을 부분이나마 읽자마자 선입관을 깨어 주는 그 지독한 인간주의에 반했기에 첫눈에 알았다. 헤겔도 비슷하다. 최강 난이도라기에 전공자의 개인 번역본과 직강으로 살짝 구경이나 하면서야 굳이 싫달 거리도 없었다. 상호주관성에는 개념 자체보다 그 고투에 어설피 감동받기도 했으니까. 주범이 누구인지 입증해 주는 것 같은 논문을 어렵게 구했던 날의 기억도 생생하고, 명저의 느낌이 나서 답인 줄 알고 서문만 읽은 오지랖도 어언 8년 전이네. 따지면 수십 년 동안 마음 한 켠에 풀리지 않는 실뭉치 같은 걸림돌로 남아 있었는데, 그 정체가 비로소 밝혀지다니, 뜻밖의 감회다. 마치 공범들을 알지만 범행을 밝힐 수 없어 답답했던 미제 사건이 해결된 기분. 그렇다고 지금 다윈을 읽지는 좀 말자. 어차피 내가 아는 정도의 학자 중에 간단한 도식으로 정리될 수 있는 경우는 없으니까. 중요한 건, 인용은 없어도 내 눈에도 읽히는 헤겔까지 멋져 보이게 만드는 하지만 니체와 후썰 정신으로 무장한, 위대한 이 분 블루멘베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