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2001 Alpha
Jean-Baptiste Barrière (1707-1747, fra):
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 ( Chéng zhě, tiān zhī dào yě; chéngzhī zhě, rén zhī dào yě. ) ---- 子思 《禮記·中庸》22:7 _____ Der bestirnte Himmel über mir, und das moralische Gesetz in mir. ---- Immanuel Kant (KpV: AA 05: 161.33–36) ________________________ ἃ γὰρ δεῖ μαθόντας ποιεῖν, ταῦτα ποιοῦντες μανθάνομεν (What we have to learn to do we learn by doing.) ---- Ἀριστοτέλης (Nic. Eth. 1103a33)
💞 중간계에서 난 고작 5차 팬에 불과
[1:30] Fratres (Fassung für Violine, Streicher und Schlagwerk) (1977)
[13:49] Cantus in Memoriam Benjamin Britten (1977)
[22:10] Adam's Lament (für Chor und Streichorchester) (2009)
[45:40] Salve Regina (für gemischten Chor, Celesta und Streichorchester) (2001)
[59:30] Te Deum (für drei Chöre, präpariertes Klavier, Tonband (Windharfe) und Streicher) (1984)
Square (2001) Final Fantasy X (Remastered, 2019) trailer
Nun liebe Kinder, gebt fein Acht
Ich bin die Stimme aus dem Kissen
Ich hab' euch etwas mitgebracht
Hab' es aus meiner Brust gerissenMit diesem Herz hab' ich die Macht
Die Augenlider zu erpressen
Ich singe bis der Tag erwacht
Ein heller Schein am FirmamentMein Herz brennt
Sie kommen zu euch in der Nacht
Dämonen, Geister, schwarze Feen
Sie kriechen aus dem Kellerschacht
Und werden unter euer Bettzeug sehenNun liebe Kinder, gebt fein Acht
Ich bin die Stimme aus dem Kissen
Ich hab' euch etwas mitgebracht
Ein heller Schein am FirmamentMein Herz brennt
Mein Herz brenntSie kommen zu euch in der Nacht
Und stehlen eure kleinen heißen Tränen
Sie warten bis der Mond erwacht
Und drücken sie in meine kalten VenenNun liebe Kinder, gebt fein Acht
Ich bin die Stimme aus dem Kissen
Ich singe bis der Tag erwacht
Ein heller Schein am FirmamentMein Herz brennt
Mein Herz brennt
음악만 들으면 서정미가 넘치는데... ( ..)^
ref. E.T.A. Hoffmann (1816) Der Sandmann
늘 하던 대로 7시에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어머니와 우리는 아버지의 작업실로 가 둥근 테이블 주위에 둘러앉곤 했지.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시며 커다란 잔으로 맥주도 드셨어. 아버지는 종종 우리에게 신기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는데, 이야기에 열중한 나머지 담뱃불이 늘 꺼져서 내가 파이프에 다시 불을 붙여드려야 했지. 불붙은 종이를 들고 있는 일은 참 재밌었어. 그러나 이따금 아버지는 우리 손에 그림책을 들려주고는 안락의자에 꼼짝 않고 앉아서 말없이 짙은 담배 연기만 내뿜으셨는데, 그럴 때면 우리는 마치 안개 속에 잠긴 것 같았어. 그런 밤이면 어머니는 매우 슬퍼하셨고, 9시만 되면 곧 "얘들아, 이제 자러 가거라. 모래 사나이가 오는 소리가 들린다" 하고 말씀하셨지. 그때마다 실제로 천천히 층계를 올라오는 무거운 발소리가 들렸어. 그래서 나는 그게 모래 사나이라고 생각했지. 한번은 둔중하게 쿵쿵 울리는 그 발소리가 특히 무서웠어. 우리를 침실로 데려가는 어머니에게 나는 물었지.
"엄마, 우리를 늘 아빠에게서 떼어놓는 그 나쁜 모래 사나이는 누구예요? 어떻게 생겼어요?"
"얘야, 모래 사나이는 없단다" 하고 어머니는 말씀하셨어.
"모래 사나이가 온다고 말하는 건, 너희가 너무 졸려서 눈에 모래를 뿌린 것처럼 눈을 뜰 수 없을 거라는 뜻이야."
어머니의 대답에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 나는 어린 마음에 어머니는 우리가 무서워할까 봐 모래 사나이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모래 사나이가 층계를 올라오는 소리를 늘 들었으니까. 모래 사나이와 우리 아이들에 대한 관계를 좀더 자세히 알고 싶은 호기심에 가득 차서, 나는 마침내 막내 누이동생을 돌보는 늙은 유모에게 물어보았지.
"모래 사나이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에요?"
"나타니엘, 아직 그것도 모르니? 그는 아주 나쁜 사람인데 자러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에게 와서 눈에 모래를 한 줌 뿌린단다. 눈알이 피투성이가 되어 튀어나오면 모래 사나이는 그 눈알을 자루에 넣어서 자기 아이들에게 먹이려고 달나라로 돌아가지. 그의 아이들은 둥지에 사는데 올빼미처럼 끝이 구부러진 부리로 말 안 듣는 아이들의 눈을 쪼아 먹는단다" 하고 말했어. 그래서 내 마음속에는 잔인한 모래 사나이가 소름 끼치는 모습으로 그려졌지. 밤에 층계를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몸을 떨고 눈물을 흘리며 "모래 사나이야! 모래 사나이야!" 하고 더듬거리며 소리쳤어. 어머니는 내게서 그 말밖에 들을 수 없었지. 나는 곧 침실로 뛰어갔지만 모래 사나이의 끔찍한 모습이 밤새도록 나를 괴롭혔어. 유모가 들려준 모래 사나이나 달나라에 있는 그의 아이들의 둥지에 대한 이야기를 믿지 않을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도 모래 사나이는 여전히 내게 무서운 유령으로 남았고, 그가 층계를 올라오는 소리나 아버지의 방문을 세차게 열고 들어서는 소리가 들리면 경악과 공포에 사로잡혔어.
이따금 그는 오랫동안 오지 않다가도 어느 때는 전보다 더 자주 찾아오기도 했어. 그런 일이 여러 해 계속됐지만 나는 그 무서운 유령이 익숙해지지도, 내 마음속에 있는 소름 끼치는 모래 사나이의 모습이 지워지지도 않았어. 모래 사나이가 우리 아버지와 만나서 무슨 일을 하는 걸까 하는 상상에 점점 더 몰두하기 시작했지. 너무 겁이 나 아버지에게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그 수수께끼에 싸인 모래 사나이를 직접 보고, 그 비밀을 스스로 알아내고 싶은 호기심은 해가 갈수록 내 마음속에서 점점 더 커졌어. 모래 사나이는 어린아이들의 마음에 쉽게 깃드는 경이로움과 모험의 길로 나를 데려갔지. 물론 요정이나 마녀, 난쟁이 등등의 무서운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것처럼 재미있는 건 없었지만, 그 어떤 이야기보다 더 신기한 건 역시 모래 사나이였고, 나는 책상이나 옷장, 벽에 분필이나 숯으로 아주 흉측하게 모래 사나이를 그리곤 했지.
열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나를 아이들 방에서 다른 방으로 옮겨 가게 하셨어. 아버지 방 가까이에 있는 방이었지. 그때도 여전히 9시가 되어 그 미지의 사나이가 집 안에 들어서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얼른 물러가야 했어. 내 방에서도 그 사나이가 아버지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옅은 연기가 집 안에 퍼지는 것 같았어. 어떤 방법으로든 모래 사나이를 한번 보고 싶은 호기심과 더불어 용기도 점점 커졌지. 이따금 어머니가 가시고 나면 얼른 내 방에서 몰래 빠져나와 복도로 나가봤지만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어. 모래 사나이가 보일 만한 곳에 다다르면 그는 이미 방 안으로 들어간 후였거든. 마침내 억제할 수 없는 충동에 이끌린 나는 아버지의 방 안에 몰래 숨어들어 모래 사나이를 기다리기로 결심했어.
그런데 무려 26분 전 리마스터에 맞춘 새 비디오(싸이코 "밴드" 패스 버전)가 올라왔다.
전래 자장가 가사의 잔인성은 문화권들 일반에서 공통된 것으로 보이는데, 왜 우리나라만 예외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사례가 있는지 예전부터 궁금했다. 그런데 얼마 전 일본 추리극에서 그 내력을 알게 되었다. 만화/애니 충사에도 암시가 있었지만은. 어쨌든 등유 아닌 전기 시대에 한 쪽 눈이라도 뜨고 있어야 하는 것으로 규칙이 바뀐, 미국식 도시 괴담의 분위기로 거듭난 메탈 버전. 물론 메탈리카를 가사 때문에 듣는 사람은 없겠지만. 덤으로 미국 야구에서 이 곡은 9회말 만루 상황에서 투수들이 극도의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즐겨 듣는 곡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두려움을 이기는 용기를 준다고. 나에게는? '여고'에 취직한 '행운'에 발광하는 수컷들의 유감없는 수작질들에 대한 역겨움을 견디게 해 준 마취제였다. 학부 때 우리 전공에서 교직 이수를 하지 않은 학생은 내가 유일한 것으로 안다. 지금도 '선'과 '생'이라는 글자와 발음이 싫다.
한편 람슈타인은 21세기에 처음 만나서 순수하게 좋다. 마초이즘도 예술로 승화하니 큐트하잖아. 덕분에 남체 혐오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 시각적으로 보수적인 나로서는 수용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나름 애틋해. 무엇보다 음악이 훌륭하니.
나의 6월은 행방불명. 5월에 들어가서 7월로 나왔나? ('' )( '')
=> 대본 보기
Theodor W. Adorno (1949/1975): 해명되지 않은 것을 해명되지 않은 채 놓아둠으로써 <행복한 손>에서 나타나는 카오스적인 측면은 가상과 유희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는 쇤베르크의 지적 성실성이다. 그러나 카오스의 현실은 전체 현실이 아니다. 카오스의 현실에서는 교환사회의 법칙이 출현하며, 이 법칙에 따라 교환사회는 맹목적으로, 그리고 인간의 머리 위에서 재생산된다. 이 법칙은 다른 사람들을 제멋대로 다루는 권력의 지속적인 증가를 포함하고 있다. 세계는 가치법칙과 집중에 의해 희생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카오스적이다. 그러나 세계는 "그것 자체로서는" 카오스적이지 않다.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가 혹독하게 짓밟는 대상인 개별 인간만이 세계가 카오스적이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개별 인간에게 세계가 카오스로 나타나게 만드는 폭력들이 종국적으로는 카오스의 재조직을 떠맡는다. 카오스는 폭력이 만들어내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카오스는 코스모스의 기능을 갖고 있으며, 질서에 앞서서 나타나는 무질서이다. 철학에서 카오스와 체계가 함께 속해 있듯이, 사회에서도 카오스와 체계가 함께 속해 있다. 표현주의적으로 나타나는 카오스의 한복판에서 구상된 가치 세계는 기세를 올리면서 떠오르는 새로운 지배의 특징들을 담지하고 있다. <행복한 손>의 그 남자는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연인도 거의 보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갖는 연민을 정신의 비밀스런 왕국으로 끌어올린다. 그는 이 왕국의 우두머리이다. 그의 강력한 힘은 음악에서, 그의 나약함은 가사에서 효과를 발휘한다. 그가 대변하고 있는 사물화 비판은 바그너의 사물화처럼 반동적이다. 그의 사물화 비판은 사회적 생산관계들을 향하고 있지 않으며, 분업을 향하고 있다. 쇤베르크에게 고유하게 나타나는 사물화 비판의 실제는 이러한 혼동으로 인해 병들어 있다. 쇤베르크는 음악에서 고도로 특화된 지식을 문학적인 시도를 통해 보완하려고 하였지만 바로 문학적인 시도에 의해 쇤베르크의 사물화 비판의 실제는 중압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또한 바그너적인 경향이 붕괴되고 있다. 바그너의 종합예술작품에서 예술적 생산과정의 합리적인 조직을 통해 아직도 응집되어 있고 이렇게 해서 바그너 작품의 진보적인 요소를 유지시켜 주던 것이 쇤베르크에서는 괴리되면서 산산조각이 난다. <행복한 손>의 남자는 기존의 질서에 경쟁자로 등장하면서도 기존의 질서에 충실하게 머물러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간단하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쇤베르크가 작품에서 창조한 남자는 "터키 사람들의 수급 2개를 매단 밧줄을 허리띠처럼 몸에 두르고", "칼집에서 빼든 피 묻은 칼을 손에 들고 있다." 그에게는 이 세계에서 이처럼 잘못된 일이 생기고 있지만, 그는 그럼에도 힘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있는 불안이라는 괴물은 그에게 복종을 강요한다. 무력한 자는 자신의 무력함과 스스로 타협을 하면서 그에게 자행된 불의를 다른 사람들에게 자행한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그 남자는 역사적으로 이중의 의미를 갖고 있다. 무대를 "기계기술자의 작업장과 대장장이의 작업장의 중간 정도로 꾸미라는" 연출자의 지시만큼 그 남자가 갖고 있는 역사적 이의성(二義性)을 정확하게 지적해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새로운 즉물성의 예언자인 주인공은 — 장인(匠人)으로서 — 옛 생산방식이 갖고 있는 마력을 살려내야 한다. 쓸모없는 것을 거부하는 그의 단순한 몸동작은 왕관을 생산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가 귀감으로 삼고 있는 지크프리트는 최소한 칼을 만들어냈다. "음악은 장식적이어서는 안 된다. 음악은 진실하여야 한다." 그러나 예술작품은 다시 오로지 예술만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 예술작품은 자신이 사회적으로 속해 있는 현혹의 상호연관관계로부터 예술적 탈출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절대적 예술작품은 실명 상태에 빠진 채 오로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동어반복적으로 관계를 가질 뿐이다. 예술작품의 상징적 중심은 예술이다. 이렇게 해서 예술작품은 공허해진다. (문병호 옮김, 2012: 79-81)
카오스를 폭력으로, 질서를 이성(합리적 체계성)으로, 사회학적으로 해석한 다음 자신의 역사적 변증법을 적용하는 듯. 신기하다. 카오스를 무조로, 질서를 화음으로, 음악적으로 해석한 다음 역시 자신의 역사적 변증법을 사회학적으로가 아니라며 양식사학적으로가 아닌 예술철학적으로 적용한다. 하나의 음에도 음 전체의 상태를 내포하는 역사가 있단다. 이건 멋지다.
그래도 프랑크푸르트 학파 쪽으로 들어갈 거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버밍엄 쪽 아님을 알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구조주의 쪽은 확실히 아님도 지원하기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의 원망이 언제부터 왜 생겼기에 뒤늦게 부활했는지 모르시겠지. 꿈에 왕림하셨다. 혼비백산했다. 드물게 현실적인 꿈이었다. 아직 안 괜찮다. 현실이 더 무서운 것 같아서.
하여튼 '행복한 손'보다는 '행운의 손'으로 옮기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사이버네틱 아트에서 백남준을 뺄 수는 없다. 몰르와 교류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슈투트가르트에서는 음악은 안 했나 보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