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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November 14, 2021

Shostakovich & Tchaikovsky by Klaus Mäkelä

Concertgebouworkest / Klaus Mäkelä
2021-11-13 Elbphilharmonie
(2022-02-13까지 재생 가능)


[3:20] Дми́трий Дми́триевич Шостако́вич (Dmitri Shostakovich, 1939) Симфония № 6 си минор, op.54 (Symphony No. 6 in B minor, Op. 54

[40:35] Пётр Ильи́ч Чайко́вский (Pyotr Ilyich Tchaikovsky, 1893) Симфония № 6 си минор, соч. 74 «Патетическая» (Symphony No. 6 in B minor op. 74 »Pathétique«)


내 달팽이관마저 우주의 기적 같다... 빅뱅부터 부모님까지 은혜롭다. 


Friday, August 13, 2021

윤이상 Isang Yun (1987) Chamber Symphony No. 1

윤이상 Isang Yun (1987) Chamber Symphony No. 1 (for 2 oboes, 2 horns, and strings) 
서울시립교향악단(Seoul Philharmonic Orchestra)Osmo Vänskä 오스모 벤스카
2021-04-10 예술의전당(Seoul Arts Center) 콘서트홀 (Concert Hall)




(P) 2006 Naxos



처음 듣는 곡인데 음악도 연주도 기대를 초월한다. 

어쩔 수 없이 생각나네. 고등학교 시절부터 팬이셔서 해외 여행이 자유롭기 이전 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 어렵게 여권 발급받아 첫 비행기 타셨다는 추억 말씀하시던 이 교수님. 어쩌면 저 객석에 계실지도. 딱 이 시간쯤(오랜 미국 생활로 평균 오후 10시 이후 새벽 4시 이전) 연구실로 출근하시면 늘 나 혼자 있는 우리 랩도 거르지 않고 꼭 들르셔서, 집중하던 중이라는 핑계로 무뚝뚝하다 못해 무례한 지경인 내 태도에 아랑곳없이 전혀 형식적이지도 단지 습관적이지도 않은 세심한 말씀 먼저 주시고 이런저런 농도 붙이시다, 영 맹한 내가 괜스레 타박하신다 여겨 볼이 붓는 걸 보시고서야 이제 안심된다는 듯 나가시던. 

그러나 정말 안심했던 건 나였다. 그런 날이면 화장실 다녀올 때마다 연구실 알림등이 켜져 있는 줄 이미 알면서도 굳이 눈으로 확인하고 또 그러면 마음이 놓이곤 했다. 컴컴한 복도에서 아무리 익숙해도 걸음이 무거워지고 창문으로는 모교와는 달리 밤이면 죽어 있는 캠퍼스에 나무만 흔들려도 마음이 순간 스산해졌으니까. 잠깐이었지만 그것이 그 시절 내가 누린 몇 안 되는 여유의 시간이기도 했다.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공학과 물리학의 차이가 문과와 이과의 차이보다 더 힘들었다. 

무엇보다 디펜스 날 정 교수님 이 교수님 엄격함이야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음에도 나에게도 너무 진지하게 해 주셔서 놀랐다. 동네 축구를 상대로 요즘 같으면 손흥민이 조금도 안 봐주고 전력을 다하는 느낌이었달까? 이렇게 하는 거로구나 비로소 배웠다. 불과 이틀 전 장장 다섯 시간 동안 천장이 녹아 내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호통하시던 지도교수님 눈이 시퍼래서 내색을 못 했지만, 정녕 아름다운 오펜스였다. 유일하게 의미와 보람을 느낀 시간이었다. 논문 자체는 교정 한번 못 보고 writing에 시간 쓰지 말라며 프로젝트 보고만 요구하시는 지도교수님 압박에 제 실속은 알아서 먼저 차릴 일임을 몰랐지만. 

지난 십 년 동안 그리고 오늘도 나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이번 여름에 들어서야 노력이 필요해졌지만, 그전까지는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되었다. 내용이 달라도 내용 밖의 일이라도 세 분 각각 뭐라 하실지 잘 아니까. 그런데 정작 우리 교수님께서 뭐라 하실지는 만사에 모른다. 빨리, 아니 제때 끝냈으면 하신다는 것밖에는. 그것도 이제는 과거형이 되었네. 인정하기를 미루었지만, 마침 길을 잃은 것 같다. 


Saturday, July 31, 2021

Einojuhani Rautavaara (1972) Cantus Arcticus, Op. 61

Einojuhani Rautavaara (1972) Cantus Arcticus, Op. 61 
"Konsertto linnuille ja orkesterille" (Concerto for Birds and Orchestra)


I. Suo (The bog) 
II. Melankolia (Melancholy) [06:25] 
III. Joutsenet muuttavat (Swans migrating) [10:10]




in Rautavaara: Garden of Spaces / Clarinet Concerto / Cantus Arcticus: #05-07
Helsinki Philharmonic Orchestra / Leif Segerstam 
(P) 2005 Ondine  
 




in Rautavaara: Angel of Light / Dances With Winds / Cantus Arcticus: #09-11
Lahti Symphony Orchestra / Osmo Vänskä
(P) 1999 BIS  




in Rautavaara: Cantus Arcticus / Symphonies Nos. 4 and 5: #01-03 
MDR-Sinfonieorchester (Leipzig Radio Symphony Orchestra) / Max Pommer 
(P) 1997 Ondine 



Saturday, July 24, 2021

role-playing

가해자가 피해자로 가장하는 것은 폭력의 속성 같은 특권인가. 최선의 굳히기 기술, 확인 사살, 완전 범죄로 기록해 주어야 하나. 처음부터 자기 도마 위의 포획물일 뿐인 상대 사람과 나머지 사람들을 속이는 경우에는 대책을 마련할 여지라도 있다. 흔치는 않아도 관용이 기회를 준비해 놓을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미력한 양심과 교활한 자기정체성 사이를 효율적으로 조정하려는 연극인 경우, 동원되지 않으려면 최대한 멀리 피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속도가 중요하다. 주위 사람들이 기꺼이 동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처음 일어난 폭력과 갈취의 장소로부터 무대의 크기가 폭발적으로 넓어진다. 그 기술을 인간들로부터 가장 잘 배운 견종이 말티즈라고 한다. 그만큼 더 사랑받기 때문에 그렇게 진화했다고. 

공범자가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하는 초월적 능력도 있다. 우주의 중심은 나라며. 이제 폭력은 더이상 은밀하면 더 맛있어지는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이며 합리적인 체계로서 당당히 빛을 받으며 작동하게 된다. 빨리 인식하고 예상 손익을 적절히 파악하여 유연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기여해야 할 몫이 사회 또는 처신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진다. 관건은 다친 사람이 있느냐 뺏긴 사람이 있느냐다. 그런 종류의 연극을 거부하는 사람을 살면서 한 명밖에 만나지 못했다. 친했지만 사별한 지 오래다. 나머지는 만나지 못한/못할 이들이다. 그래서 멀리서 흔적이나마 건재함을 확인하지 못하면 살기가 힘들어지곤 한다. 그래서 결국 고대의 기록을 자꾸 찾게 된다.  

즉흥극에 동참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능란한 관객 역할 정도는 기꺼이 맡아 줄 사람들이야 늘 많은데, 굳이 왜 내가 봐 주어야 한다고 우기는 걸까? 가끔은 쉽지 않은 관객의 무반응과 어차피 배우일 수밖에 없는 "우리" 운명이 강제한 역할에 대한 어리석은 저항이 그만큼 더 재밌고 짜릿하니? 그런데 날 납치하려면 살인할 각오도 할 필요가 있어. 그냥은 안 되겠지. 



Gustav Mahler (1903/1906) Sinfonie Nr. 6 in a-Moll, "Tragische"
WDR Symphony Orchestra + Jukka-Pekka Saraste
2019-06-26  Cologne Philharmonic Hall


나는 나랑 놀아야지. 자기와 놀기를 가장 쉽고 건강하게 하도록 해 주는 모든 예술가들의 은총이 망극. 


Monday, July 19, 2021

진은숙 Unsuk Chin (2020) subito con forza by Oslo Philharmonic

진은숙 (Unsuk Chin, 2020) subito con forza (for orchestra)
Oslo PhilharmonicKlaus Mäkelä 
2021-06-04  Oslo Concert Hall


이것이 21세기 클래시컬이다. 

한 시간이 넘는 교향곡에서 처음 10초의 음색만으로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던 나를 납치하듯 빨아들인 매켈라. 일시적 기분 탓인가 쇠약해진 기력 탓인가 계속 의심했지만, 드물게 싫어하던 곡을 지난 일주일 동안 열 번이 넘게 경청하고 다른 연주들과 비교하게 만든,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는 지휘. 자꾸만 클릭하게 만든다. 덕분에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관현악단(hr-진포니오케스터)의 최근 연주들을 닥치는 대로 하나씩 들어 보기까지 했다. 고루 훌륭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냉방이 안 되는 공간에서 쪄진 몸과 정신의 환희로 심신이 분리되고 있다. (연구 지원은 커녕 책상 하나도 안 내주는 사립 '학교' 덕에 일말의 죄책감 없이 고맙게도 양심만은 청량하지만,) 찬밥 된 메를로퐁티. 눈은 있어도 귀는 없는 내가 이런 지경이라면, 아마 업계에서 역사적 연주로 남지 않을까. 공간 음향과 카메라는 훌륭해도 녹음은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부디 유튜브 업로드용 영상에 한정된 상황이기를. 

그렇게 형성된 그의 첫인상에 곧바로("subito"로?) 진은숙이 떠올랐다. 그가 해석하는 진은숙이 너무 궁금하다고. 여기서 핵심은 내가 진은숙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사실. 아마 옛날 뉴스 프로그램 중 짧은 인터뷰 같은 데서 앨리스(원작 소설의 판본을 수집할 정도의 팬이라 기억에 남은 듯) 공연 장면이 삽입 영상으로 좀 나왔었나 보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잠재적 이미지로 묻혀 있었던 것이 역시 무의식적으로 자동 연결됐던 것. 전혀 기대 없이 검색 결과 무려 작년에 발표한 신곡이 매켈라의 지휘로 2020년 9월 24일 암스테르담에서 왕립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에 의해 초연되었다는 엄청난 사실(실황 녹음)과 특별한 관계에 기절할 뻔. 올림픽에 '감상' 종목은 없나? 먹고사는 데 도움되는 재능은 없고 놀고 먹는 데만 천재적 신기가 넘쳐. 

subito con forza. 구글 번역기는 영어로 "immediately with force"란다. 내가 붙인 제목은 고루하지만 '포세이돈'!

Saturday, July 17, 2021

Dmitri Shostakovich (1941) Symphony No. 7 in C major, Op. 60 "Ленинградская (Leningrad)"

 

Дми́трий Дми́триевич Шостако́вич (Dmitri Dmitriyevich Shostakovich, 1941) Симфония № 7 «Ленинградская» до мажор соч. 60 (Symphony No. 7 in C major, Op. 60, "Leningrad")  
hr-Sinfonieorchester (Frankfurt Radio Symphony) + Klaus Mäkelä
2019-11-01  hr-Sinfoniekonzert ∙ Alte Oper Frankfurt


나에게는 좋아하던 곡이 아닌데도 귀가 특별히 즐거운 연주일 따름이지만, 예술의 초월적 권능과 어쩔 수 없이 부러워지는 문화. 이렇게 다시 만난 러시아(작곡), 독일(악단), 핀란드(지휘)라니, 나도 이런데 이들에게는 더욱 만감이 서릴 장면. 아무튼 단번에 기억하게 된 클라우스 매켈라는 96년생으로 현재 노르웨이의 오슬로 필 상임 지휘자라니 다른 의미로 orz. 그렇다면 문제의 도시에서는? 


Симфонический оркестр Санкт-Петербургской филармонии / Ю́рий Хату́евич Темирка́нов 
Saint Petersburg Philharmonic Orchestra / Yuri Temirkanov
2018-05-05  Saint Petersburg Philharmonic Orchestra Grand Hall


저음부의 무게감이 굉장한데 묘하게 우아한 기품이 있다. 확실히 도저히 못 살겠는 괴로움과 압박을 주기도 하고, 의외로 발랄한 모습에는 소박함이 넘쳐 매력적이다. 해석이 이렇게나 다르다니 애써 찾은 보람을 준다. 매켈라의 쇼스타코비치가 시적이라면 테미르카노프의 오케스트라는 영화적이랄까. 완전히 다른 종류의 생생함이 의미심장하군.  


cf. Ed Vulliamy@TheGuardian 2001-11-25: Orchestral maneouvres (part two)  


A radio address by Shostakovich 
1941-09-16 Leningrad

"An hour ago, I finished the score of two parts of a large symphonic composition. If I succeed in writing this composition well, if I succeed in completing the third and fourth parts, then it will be possible to call this composition the seventh symphony. 

Why do I announce this? So that the radio listeners who are listening to me now will know that the life of our city goes on as normal. 

We are all now doing our military duty. Soviet musicians, my dear friends and numerous brothers-in-arms, my friends! Remember that our art is now in great danger. Let us defend our music, let us work honestly and selflessly!"


로 봤을 때, 반히틀러였느냐 반스탈린이었느냐의 문제에 대한 논란과 관련해서는 증언의 내용이 사실에 가까운 것 같다. 저 정도면 단순히 민족/애국주의라고도 소비에트 정부의 선전에 무조건 협력했다고도 할 수 없다. 오히려 당시 참혹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입장이 분명하다 못해 강경한데, 인기와 이용가치 때문에 양쪽에서 얼버무림을 당한 거겠지.   

다만, 심리전의 수단으로 무리하게 강행된 초연을 위해 기아 상태에서 연습에 강제 동원되어 급사당한 무명의 민간인 음악가들과 더불어 압력을 받아 고난을 겪은 가족들이 있었음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