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
( Chéng zhě, tiān zhī dào yě; chéngzhī zhě, rén zhī dào yě. )
---- 子思 《禮記·中庸》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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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bestirnte Himmel über mir, und das moralische Gesetz in mir. ---- Immanuel Kant (KpV: AA 05: 161.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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ἃ γὰρ δεῖ μαθόντας ποιεῖν, ταῦτα ποιοῦντες μανθάνομεν (What we have to learn to do we learn by doing.)
---- Ἀριστοτέλης (Nic. Eth. 1103a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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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과정 자체가 평균 이상의 사회화/관계력 교육과 분리불가하게 진행되는 자연계와 압도적 차이가 난다. 박사 말년 차엔 최소 과장급 능력자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기준도 있고. 이미 반 세기 넘게 실천되어 왔고.
자연계 >> 예술계 > 인문계
일머리란 갖추어야 하는 것이지만, 일터에서 불필요한 눈치 보기로 소모적 비효율이 발생해도 문제가 없다는 건 역시 그 세계의 특정 작동 원리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상황. 눈 가리고 아웅의 미덕. 한가하다. 교육자나 연구원도 ai로 대체 가능해지는 건, 그것이 더 낫다고 인식되는 경우.
메타인지에 대한 정보는 잘 안 보는 편이다. 안 그래도 메타인지가 좋은 상태인 것 때문에 매일 고초를 겪고 있어서. 내가 메타인지가 환경에 비해 특이하게 좋은 건 메타인지가 특별히 뛰어난 사람과 삼십 년 동안 가장 친한 친구로 지냈기 때문이다. 그것도 성장기에. 그래서 헤어진 지 오래되었어도 잘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지심리학을 공부하지 않아서 용어나 요인을 몰라도 메타인지에 대해 경험적으로 잘 알 수밖에 없다. 한편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고.
특히 자신의 능력, 성실성, 책임감, 인품 등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예민한 '임포스터'들이 주위에 많다 보니, 너무 힘들다.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이젠 정말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아마 나이에 비해 내 형편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여유가 없다 보니 어릴 때보다 관계가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내가 나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모습이나 반응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적당한 자긍심과 함께 강력한 불안감을 가진 주변인들에게 더욱 요상하고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임포저라는 임포저가 되어야 무사하다. 무엇보다 가족들이 이 강연을 듣고 책도 좀 읽어 봤으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다.
내 인생 최대의 고통이자 가장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적고 보니, 그냥 내가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한국인 고정 화법'을 절반만 적용해서 말하면 되겠네. 적당히 조심하고 적당히 실망시키면서.
한 가지 독일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독일인 교사들은 사설 어학원에 있는 평범한 경우에도 메타인지가 발달한 학생을 쉽게 간파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람은 가르치기에 편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기에 그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학생으로서 평생 동안 유일하게 편안하다고 느낄 만큼 그들 자신이 메타인지가 발달해 있었다. '교육'은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교육학'만은 가장 앞선 나라였다.
"고마워. 어려웠어. 내가 도와 줄게." 참 좋은 말이다. 많이 해 봤지만, 결과는 대체로 카타스트로피... 그래서인지 누가 나한테 해 준 기억은 없다.
그런데, 단지 개입할 의사가 없고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긍정적인 말로 상황을 모면하려고만 하고, 경계선을 긋고 소통을 차단하기 위해 무관심을 덕담으로 치장하는 사람이 더 치명적이다. 지금까지는 물론 앞으로의 노력마저 무의미해지고 상대의 존재 자체가 무가치해지는 느낌을 주니까. 어떤 여지도 남지 않으니 더 이상 희망도 없다. 그래서 그것이 진짜 의도임이 전달된다. 부드럽고 확실하게.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요즘은 그런 경우가 더 많지 않나?
사안별로, 관점과 목표에 따라, 상황의 변화에 의해, 비관과 낙관, 긍정과 부정이 달라야 정상이다.
판단 기준이 없는 사람이 그저 귀찮기 때문에 고정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날씨나 기분 등 무분별한 이유로 언행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