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y 28, 2021

Utilitarianism as philosophical Radicalism 철학적 급진주의로서의 공리주의

가치론의 계보를 통해 니체, 벤덤, 마르크스라는 인물들이 재등장했지만, 댐을 건설할 것도 아니고 쪽배 하나 마련할 셈이라 안 그래도 바다처럼 넓은 강에서 이토록 큰 바위들은 피해 도는 길이 현명하다는 분별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위치 파악을 할 수 있는 자료들만 찾아 놓고, 아무래도 만약을 대비해서 구해도 놓았지만, 못 이길 유혹은 아닐 줄 알았는데... 굳이 손에 쥐지 않아도 충분할 것 같았던 높은 완성도에 고맙게도 짧기까지 한 역자 박동천(2021) 서문과 저자 엘리 알레비(Élie Halévy, 1901) 서문(전문)에 못지않은 본문의 매끄러움. 영국 공리주의의 이론적 뿌리가 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지의 학자들에 있었음을 문헌적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프랑스인 역사학자의 저술인 점을 염두에 두어야겠지만, 역풍보다 순풍을 불어 주는 힘은 이쪽으로 중딩보다 무식한 나에게 엔진이 된다. 두 달 전 더 이상 홀려 들어갈 시간이 없다고 간신히 덮어 둔 고전 (강준호 옮김)을 결국 다시 펼쳤다. 

Jeremy Bentham (1789): 나는 여전히 내게 필요한 지식을 던져줄 희망이 있는 모든 통로를 추적하고 있었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나는 처음에 착수했던 문제와 관련된 여러 부문들을 계속 탐구했다. 그 탐구의 이런저런 부문에서 나의 연구는 입법에 대한 전 분야를 망라했을 정도였다. [10] 

'입법' 대신 소프트웨어 기술과 자유의 문제. 이런 수재(21세에 변호사)가 힘들었고 부족하다고 말하는 규모의 작업을 나 따위가 꿈꾸고 있었나? 지극히 일상적인 문제라서 사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냥 성실하기만 하면 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식탁만 차려 드리려는 거니까. 도마 위에 올려다 드리려는 거니까. 아니면 부엌에 CCTV를. 분신이 두 마리만 있었으면 좋겠다. 인지언어학, 입증이론, 양자역학, 체계이론, ... 3월 말에 이제 4년만 더 주시면 되겠다고 하고 싶었지만... 오리알 신세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네.   

Halévy: 모든 공리주의 철학자가 그렇듯이, 벤담의 목표는 도덕학을 하나의 엄밀한 과학으로 확립하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의 영혼에서 가장 쉽게 측정될 수 있는 느낌을 추려내고자 했다. [34] 엘베시우스와 베카리아의 제자는 사악한 법률을 공중에게 해를 끼치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직업을 통해서 돈을 번다는 데 이미 저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62] 벤담이 바라봤던 목표는 도덕과 입법의 기술을 인간형태에 관한 하나의 객관적 과학을 토대로 삼은 위에 최초로 설립하는 데 있었다. 공리의 원리는 도덕 설교자의 주관적 선호가 아니라 인간 본성에 관한 객관적 법칙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여태까지 꼬리를 물고 제창되어 온 여타 도덕적 격언과는 다르다. [67-68]

Bentham: 입법 과학(legislative science)에는, 수학과 마찬가지로 왕도도 총독의 문도 없다. [24]

신자유주의, 이기심-이타심 논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에 조심해야 하고, 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고민을 함께해 주는 건 오늘도 미학 밖에 있구나. 가치이론이란 다분히 인위적인 영역 구분을 몰랐다면 어쨌을 뻔. 무섭고 외로웠어요. 

페이스북과 네이버가 "알고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정보 통제권을 휘두르고 있으니 말이다. 구글과 머스크가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내 기분이 어떠한지 결정하려 한다. 네트워크가 왕도가 되었고 플랫폼 기업들이 총독의 문이 되었다. 단순히 그러지 말라고 항의하는 것은 투정밖에 안 된다. 차단과 불매로는 자기만 피해를 입게 되었다. 월든은 선택이고 실험이어야지 유배나 위험이 되어서는 안 된다. 수학을 수학으로 깰 필요가 생겼다. 벤덤 사후에야 우리는 수학이 초월적이지도 중립적이도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무엇을 그 수학적 대상으로 삼고 어떤 수학적 도구를 쓸지 판단하고 비평할 수 있는 것은 수학도 논리학도 물리학도 정보이론도 아니고 각종 인문학이다. 그 전문가들은 자신의 귀빈석을 직접 주문해야 한다. 수정안도 대안도 보안책도 친절히 명령해 주어야 한다. 그러한 자잘한 수고 대신으로 이전과는 달리 투쟁할 필요가 없지 않나. 모든 자동화 기술에는 다름 아닌 그 기술적 필요에 따라 supervisor의 자리가 있으니까요. 좀 차지해 주세요. 마음에 들면 칭찬하고 안 들면 질책해 주세요. 자애롭게 구경만 하시지 말고. 살릴 것과 죽일 것을 여태 갈고 닦으신 저마다의 성미대로 좀 골라 주세요. 적응하고 통찰하시느라 바쁘지 말고. 가장 까다롭고 변덕스러울수록 가장 자격이 있으니까요. 오퍼레이터의 소원이다.   

이제 또 자학의 주말이 시작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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