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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ne 02, 2024

알릴레오북스 Review: Jared Diamond (1997) Guns, Germs, and Steel

[알릴레오북's: 시즌5 - 12회] '총 균 쇠' - 박정재 교수(서울대 지리학과) 
1부: 왜 인류 문명은 지역에 따라서 불균등하게 발전했을까? 


02:50 책&손님 소개     

09:05 책을 쓰게 된 질문 

21:32 유라시아가 총균쇠를 먼저 갖게 된 이유     

33:34 유라시아와 아메리카의 차이 

39:49 식량의 확산이 가능한 대륙     

45:17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 황무지로 바뀐 이유 

47:40 2부 예고




[알릴레오북's: 시즌5 - 13회] '총 균 쇠' - 박정재 교수(서울대 지리학과) 
2부: 환경이 결정한 인류의 운명, 극복할 방법은?


03:52 균 

11:23 과학기술 

19:32 문자 

23:04 여전히 존재하는 나라 간 격차 

27:39 한국인의 기원 

31:14 총균쇠로 설명이 안되는 사례 

43:48 총균쇠 총평


역시 질문이 중요해... 

설명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좀 여쭤 볼 수 없나? 왜 없는 거야? 왜... 😭 먹먹해 미치겠는 와중 위로 같은 refreshment. 비록 여전히 안 읽은 책. 


Sunday, September 12, 2021

Tarkovsky & Gordon (1958) There Will Be No Leave Today

Александром Гордоном и Андреем Тарковским (Aleksandr Gordon & Andrei Tarkovsky, 1958) Сегодня увольнения не будет… (Segodnya uvol'neniya ne budet…) 
There Will Be No Leave Today 오늘 해고는 없다 (영어 자막)
based on Арка́дий Я́ковлевич Сахни́н (Arkadiy Yakovlevich Sakhnin, 1958) 
Эхо войны. М. (Ekho voyny. M.) The Echo of War


국립영화학교(VGIK) 학생 시절 두 번째 습작, 예비 졸업작품. 1959년 5월 9일 승전 기념일에 텔레비전으로 방영되었다. 원본은 유실되고 영상은 그 녹화본인 듯. 


2021-09-11 흙의 밤 @내 방

강박적이지 않다고 할 수 없는 선택이었는데, 명백한 프로파간다이지만 깊은 위로를 받았다. 내 책임이 아닌 것들에 책임을 지기 위해 애쓰거나 떠맡곤 했던 일들, 본래적으로 그리고 결과적으로 내 책임인 나의 일에 관한 권한이 실제로는 나에게 있지 않아 책임을 지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들로 점철된 인생이 과거 완료 현재 진행 중. instruction 자체의 문제와 파생되는 문제들. 그저 와이트헤드의 신이 나에게도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 뿐. 조건적 무비판의 조건이 성립하는 가능 조건들에 대한 질문. 그래서 나는 19세기의 사람. 

+

실화를 바탕으로 의뢰에 의해 지원금으로 제작된 선전물이었지만, 병원 장면과 전직 기관총사 민간인 인물을 타르코프스키가 굳이 넣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결정적인가. 이래서 모르고 보았더니만. 그리고 묘사의 디테일들. 화면상에서는 디테일에 불과하지만 던지는 질문들을 또렷이 들을 수 있다. (그것들은 '자유 시대'의 네덜란드인 Paul Verhoeven에게서는 대놓고 주요하게 다루어진다. 질문을 미리 만들어서 던지지 않고 관객 스스로 문장으로 만들도록 하니 감상만 하려고 영화를 보면 안 보이지만. 나에게는 가장 좋은 철학 선생님.)    


Андрей Арсеньевич Тарковский (Andrey Arsenyevich Tarkovsky, 1986): 우리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더 '정의롭고' 합리적인 사회 조직을 목표로 사회 개조 사상을 추진한 지도자들과 '탁월한 인물들', '대심문관들'이 정점에 섰던 역사 단계 전체도 막을 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대중에게 새로운 이념적 · 사회적 사상을 강제하고, 국민 다수의 행복을 위해 생활 조직 형식을 개조하라고 촉구하면서 대중의 의식을 지배하려고 했다. 도스토옙스키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들이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대심문관들'에 대해 이미 경고한 바 있다. 우리는 특정 계급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소리 높여 주장하고 더 나아가 인류의 이익과 '보편적 선'에 대한 주문을 읊조리듯 기원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사회에서 치명적으로 소외된 개인의 권리를 파렴치하게 짓밟았는지 보았다. 어떻게 '역사적 필연성'에서 '객관적', '과학적' 근거를 찾으면서, 존재론적 차원에서는 주관적으로 의식하는 오류를 범하기 시작했는지 보았다. 

사실 문명사 전체에 걸쳐, 역사 과정이란 세계 구원과 인간 조건의 개선을 위해 공상가와 정치인들의 머릿속에서 무르익은 더 '확실하고' '올바른' 길을 사람들에게 매번 제시하면서 형성됐다. 이런 재건 과정에 참여하려면 '소수자들'은 매번 자신만의 사고방식을 포기하고 자신의 노력을 외부로 돌려 제안된 행동 계획에 맞춰야만 했다. '진보'를 위한 역동적인 대외 행동의 조건 속에서 인간은 미래와 인류를 구원하면서 자신에게 고유한 것과 개인적인 것, 현재적인 것을 망각했고 공동의 노력에 사로잡힌 채 자신의 고유한 정신적 특성의 의미를 저버렸다. 이런 과정을 거친 결과 개인과 사회에 더욱더 절망적인 갈등 상황이 형성됐다. 예수 그리스도가 "너 자신처럼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한 의미대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모든 사람의 이익을 걱정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실 예수의 말은 당신 안에서 초개인적인 것을 존중할 수 있을 만큼, 다시 말해 당신이 개인적이고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관심사에 빠지지 않게 해주고, 당신 자신을 타인에게 내주고, 의심도 판단도 없이 타인을 사랑하게 하는 신적인 원리를 존중할 수 있을 만큼 당신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진정한 자기 존엄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세속 생활의 중심이 되는 나의 '자아'가 객관적 가치와 의미를 소유하고 일정한 정신 수준을 달성하고, 무엇보다도 이기적 의도가 빠진 정신적 완성을 지향한다는 진실에 대한 의식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 자기 자신의 영혼을 위한 투쟁은 인간에게 굳건한 결행과 막대한 노력을 요구한다. 윤리적 의미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의 실리적 · 이기적 관심사를 조금 더 올리는 것보다 낮추기가 훨씬 더 쉽다. 진정한 정신적 탄생에 이르려면 커다란 내면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간은 '영혼을 낚는 사람들'의 낚싯대에 쉽게 걸려든 나머지 어쩌면 공통의 고매한 과제를 위해 자신의 개인적인 길을 포기하고, 그럼으로써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자기 자신을 사실상 배신하게 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인간관계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윤리적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으면서 모든 요구를 다른 사람들에게, 인류 전체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형성됐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고 사회 건설에 참여하라고 하지만, 정작 자신은 이 과정에 절대 참여하지 않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개인적 책임을 거부한다. 이런 과정에 참여하지도 않고, 더 보편적이고 고매하고 내적으로 의미 있는 과제들을 위한 길에서 자신의 편협하고 이기적인 관심사를 포기하지도 않는 짓을 정당화하는 구실은 수천 개가 넘는다.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자기 자신의 삶과 영혼에 책임을 지겠다는 결심과 의지를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모두 함께, 다시 말해 인류 모두가 문명을 창조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개인적 책임을 저버리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책임을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한다. 이런 뿌리 깊은 전제에서 개인과 사회의 갈등은 점점 더 절망에 빠지고, 개인과 인류 사이 소외의 벽은 날로 높아진다. 

요컨대, 우리는 어느 누구의 노력도 아닌 바로 우리 '공동'의 노력으로 건설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데, 여기서 개인에 대한 요구는 자기 자신에게 부여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여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낯선 사상과 야심을 위한 수단이 되거나 그 자신이 지도자가 되어 어떤 개인의 권리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에너지와 노력을 이용한다. 개인적 책임은 '공동 이익'으로 잘못 이해한 것을 위해 희생되어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인간은 '공동 이익'에 봉사한답시고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는 권리를 획득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문제를 누군가에게 전가한 순간부터 물질적 과정과 정신적 과정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이 계속해서 깊어지고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마련해준 사상들의 세계에 살면서 이 사상들의 표준에 따라 발전하거나 그로부터 절망적으로 점점 소외되고 그에 대립한다. 

믿기 어렵고 야만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 라승도 옮김(2021: 290-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