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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23, 2021

thermal physics 2001 spring

그제 도착한 교양서를 2차 접종 후 지난 번과 똑같은 증상으로 바로 보지 못하고 오늘에야 깨어나, 돌고 도는 미궁에 몇 번째인지 같은 지점으로 돌아와 무력해진 마음의 저항 때문에 퍼즐 게임이나 하며 뒤적이기만 하다가, 동아줄 같은 역자 해설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반갑기보다 대체 아직도 이러고 있는 형편이 감당이 안 되고, 감당이 안 되고 있는 상태가 까마득히 오래되어 익숙해져 버렸다. 습관이 무섭다고 꽤 편하다. 게다가 난 늘 플랜 B를 가지고 있다. 청소년 대상 역사소설을 쓰기로. 소재도 있다. 바로 취재를 시작하면 된다. 복잡계 과학은 내 말로 설명할 능력이 없다. 며칠 밤샌다고 될 영역도 아니고. 필요한 게 지식이 아니라 이해라서. 통계물리는 안 들었고, 열물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날 리가 있나. 내가 공부를 안 하기도 했지만, 강의 잘 하시는 교수님들과 지독히도 시운이 안 맞았던 것도 사실이다. 좋은 인상이 아니다. 어릴 때 보던 책들과 함께 베란다 종이 상자에 들어 있는 것 같은데 마님의 허가를 받을 수가 없으므로, 그렇게 포기했다. 

시사 방송이나 틀어 놓고 가장 가까운 책장 칸에 B5 공책 바인더가 갑자기 눈에 들어와서 꺼내 보니 개나리색 캔버스 천으로 마감 처리된 디자인이 참 예뻤구나, 한 것까지 무의식 중의 일이었다. 여전히 아무것도 하기 싫었겠지. 바로 뒤에 꽂힌 빈 노트인 줄 이미 알고 있는 걸 굳이 꺼내서 먼지나 털려고 보니 "열물리학" "학번" "이름". 아, 커버일 뿐. 내용은 머나먼 종이 상자 안에 있고, 무엇보다 어느 상자인지 알 수가 없으므로, 계속 포기했다. 

내용이 있다... 이상하게 짧다. 물론 교재가 따로 있긴 했지마는. 노트에 구태여 강의 관련 사항들을 세세히 적는 습관이 있는데 없는 걸 보면, 종강도 일찍 한 것 같고. 자연계에는 이런 강의가 없는데. 부실해서 아끼지 않고 보관에서 탈락시켰던 걸까? 설마 이십 년 뒤에 인문학을 공부하게 되어 다시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손 닿는 곳에 놓아 둔 건 아니었을 테니. 이렇게 시작한다. 


2001.3/12.달

Statistical Mechanics > Kinetic theory of Gases > Thermodynamics 

entropy S = lnW

ds = dQ/T 


1. Energy in Thermal Physics

1-1. Thermal Physics 

- Temperature 란? 

(1) is what you measure with a thermometer (operational definition 실험적 입장) 

(2) is the thing that's the same for the two objects after they've been in (ㄱ) contact (ㄴ) long enough (theoretical definition 이론적 입장)  

(ㄱ) => Thermal equilibrium (열평형 상태)

after two objects have been in contact long enough 

(ㄴ) => Relaxation time

; The time required for a system to come to thermal equilibrium 


물론 다음부터는 죄다 수식. 큰 글씨로 A4 39쪽밖에 안 되는데, 그냥 한번 손으로 옮겨 보면 술법이 나오려나? 무념무상 채색본으로. 


꿈을 해몽한 바에 따르면, 바스카는 포기하라는 것 같다. 이런 걸 왜 꿈이나 해석하고 있는지. 포기되었든 포기하였든 다시는 나를 이런 환경 속에 두지 않겠다. 성장 없는 시간은 죽음과 같다. 그래서 티탄. 


+ 노트는 다음과 같이 끝난다. 


"phenomenology" 현상학 

; He의 성질을 기술할 뿐(가정), 그 원리는(physics) 모름. 


섬뜩해! 힝- 😱 

아니, 물리학과에 이런 식인 과목이 어디 있냐고! 그래서 흥미가 없었나 보다. 화학처럼 여겨졌던 것 같다. 마지막 시험 범위가 5장 2절까지라니, 필기가 부실했던 것이 아니라 진도 자체가 반도 안 나간 것 같다. 자대 출신 노교수님의 파행? (++ 필기가 너무 충실한 탓에 확인된 교재는 올해 OUP로 출판사를 바꿔 신판이 나왔다. 잠시 열어 보니 교재는 참 잘 고르셨다. 보통의 물리학 전공 교재들과는 달리 독학도 가능할 정도로 예외적이다.)  


vision이라고 꼭 random variables을 공부할 필요는 전혀 없다. 이유도 모르고 순전히 지도교수님 명령으로 전자공학과 가서 배웠지. 유일하게 강조하셨던 과목. 하다 보니 기계공학과의 filter는 알아서 할 수밖에 없었고. 물론 나중엔 이유를 너무 잘 알게 되었으나. 그리고, 세월이 흘러 수학철학 박사님과 확률철학 세미나를 할 때 날아다녔다. 😎 그때만 해도, 참 운명처럼 느껴지네, 조금 신기하곤 했었는데. 이제, 전부 악마의 손아귀처럼 느껴진다. 😶 

열역학(란다우 이론)이 물리학의 현상학이었다! 😵


++ 이 비유는, 그동안 현상학들이 공유하는 기본 개념어 몇 가지의 기초적인 의미조차 파악하지 못해 괴롭던 나에게 처음으로 현상학이란 이름의 한 장의 이미지를 주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지", "괄호치기가 뭐하자는 건지", 감이 왔다. 내용은 다 잊었어도 수업을 듣긴 들었나 보다. 펠만을 읽기 시작한 덕인지 몰라도. 문제는 이쪽으로는 과학철학 방면인데, 예술철학 쪽으로는 어떻게 되는 건지 여전히 캄캄인 걸 보면, 미학 이론들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학부 물리학에도 못 미칠 만큼 아직도 부족해서가 아닐까? 😥습득까지는 못 해도 닥치는 대로 쏟아붓는다고는 했는데. 


Sunday, June 13, 2021

complexity : chaos : migma

복잡계 이론과 카오스 이론 사이에는 뚜렷하고도 미묘하거나 부분적으로 무효한 동시에 역사적이고 입법적이며 적용상의 차이가 있다. 전자(비선형 동역학)를 전공한 동문들도 있지만, 후자는 유사과학으로 취급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내가 아직 실천적 영역에서 그 경계와 경우들을 섬세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이론적인 기본 차이만 알 뿐인데 더구나 이제야 나에게 본격적으로 중요하게 된 체계 이론에서는 후자의 영향력이 더 크다. 단순히 3년만 더 주시라고 하면 될 문제 같았다면 고민해 봤을 법도 한데, 그러지 못했던 이유다. 세미나는 커녕 토론 상대도 없는 고립된 형편에서 중학생 때부터였다고는 해도 교양 수준을 벗지 못한 자의적 판단만으로 심사용 논문에 반영하는 것은 위험하다. 어차피 할일이라 틈틈이 읽기는 계속하면서도. 오늘도 카우프만을 펼쳤다가 한숨이 나와서 뒤치락거리다 우연히 발견했다. 우리나라에는 재야 과학계라는 것이 거의 없다 하겠지만, 복잡성 이론을 연구하는 대학의 통계물리학자가 카오스 이론을 (아무리 글릭에 의해 대중화된 지 오래라고 해도) 포괄하면서도 표준 과학과 구별하는 방식으로 자기조직화 개념을 심지어 대중을 청자로 두고 강의를 하다니!      

김.범준 2020-11-21 [openLecture@naver] '복잡한' 세상: <확실성의 종말> <혼돈의 가장자리> 

물리학 하는 사람들이 보통 개방성이 강하기는 하지만 이토록 열린 태도는 어려운 만큼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카오스와 혼돈의 헬라어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어제 비로소 알게 되는 등... 단어 공부에 허우적대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끝없는 시간 소모에 지쳐 버린 와중이라 더더욱 감사. 처음에 분야별 용어집/핸드북/정전 목록부터 받으면서 차이를 실감한다는 해외 대학 학위자들이 그 차등을 유지하기 위해 담합하는 고의적 전략이라더니, 정말 그런 속셈인 거야? 당사자들이 본인들의 이야기를 해 준다는 것을 여기저기서 들으면서도 설마 여태 그런 수준이랴 의심했었지만. 자신이 얻어 온 것 이상으로 아직도 지원받지 못하고 있던 후학들의 형편을 실감하고 분개하여 필사적으로 끌어올린 오늘날의 이공계 수준. 내가 브레멘에서 음대생이나 미대생들과 달리 동경심이 아닌 우월감을 품었던 것에는 냉정한 현실이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각자가 연아퀸인 그 개인들을 보다가... 어이없을 뿐이다. 영어 논문만 쓰면서도 이런 마음을 베푸는데, 너무 대조적이면 조금은 안 찔리나? (그런 의미에서도 정암학당은 국가적 보루이다.)  

서울대 교수님 질문 좋고. 존경스러운 뒷이야기를 들은 후광으로 더욱. 

척도의 문제, 척도 없음의 의미의 문제, 학문적 수사법(은유와 매체)의 문제, 표상력의 문제. 모두 나의 문제들이다. 체력도 떨어지고 참고로만 본다고 생각했는데 원치 않게 선명한 거울에 비친 것은 각각 아리스토텔레스/헤겔/장하석, 니체/들뢰즈, 크래머, 비고츠키/해킹/드앤...이라는 다시 나의 첩첩산중 같은 일상 속 조금씩 알수록 더 어려워지는 이름들. 

 

Monday, April 26, 2021

Erwin Schrödinger (1944) What is Life 생명이란 무엇인가

Erwin Schrödinger (1944): 순전히 과학적인 관점에서 분노도 편견도 없이 생명을 탐구하느라 상당히 애를 쓴 내게, 우리 논의의 철학적인 함축들에 대한 나 자신의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견해를 덧붙일 기회를 허락해주길 바란다. 

앞의 논의에서 제시된 증거에 따르면, 살아 있는 존재의 몸속에서 일어나며 또한 그 존재의 정신적 활동, 자기의식 등에 대응하는 공간 시간적 사건들은 (그 사건들의 복잡한 구조와 물리학과 화학의 공인된 통계학적인 설명을 고려할 때) 엄격하게 결정론적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최소한 통계 결정론적이다.

내가 보기에 양자 불확정성은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과 달리 감수 분열이나 자연적 혹은 X선 유발 돌연변이 같은 사건들의 순수한 우연성을 강화하는 것(이 사실은 명백하고, 잘 알려져 있다) 외에는 생물학적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나는 물리학자들에게 이런 점을 강조하고 싶다.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 살아 있는 존재가 통계 결정론적이라는 것을 사실로 전제하자. 만일 '자신이 순전히 기계라고 선언하는 일'이 잘 알려진 불쾌감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모든 공정한 생물학자가 이 사실에 동의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 불쾌감이 동반되는 이유는, 이 사실이 직접적인 자기반성에 의해 확인할 수 있는 자유의지에 모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경험들 자체가 아무리 다양하고 이질적이라도, 그것들이 서로 모순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음의 두 전제로부터 옳고 모순되지 않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1. 내 몸은 자연법칙에 따르는 순수한 기계로서 작동한다.
  2. 그러나 나는 내가 결과를 내다보면서 내 몸의 운동을 지휘하고, 또한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운명적일 텐데, 내가 그 운동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느끼고 인정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직접적 경험을 통해 안다.
이 두 사실에서 추론할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내가 (가장 넓은 의미의 '나', 즉 한 번이라도 '나'를 느끼거나 발설한 적이 있는 모든 의식 있는 정신이) 자연법칙에 따라서 '원자들의 운동'을 통제하는 당사자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과정 같은 결론. 내 경우 소프트웨어 공학이 결정적이었다. 그 의미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러고 있는 것인데, 십 대 때 이미 고전이었던 Watson의 이중나선을 읽고 자란 나로서는 어리둥절해지는, DNA 발견 이전의 당시 상황에 적응하느라 주말을 통째로 날리고 또 날을 새우고도 쓰기는 커녕 읽기도 멈춘 현실 상황에 숨 막히는 압박이 한순간에 보람으로 돌아왔다. 지나치게 사적인 기쁨이라는 것이 문제인데... 큰 지도에서 필독서임을 알면서도 나름 펼치지 않고 버틴 몇 달 끝이었으나, 이 방면으로 평생 자제력이 오차 범위 내에서 절대 0도의 에너지 준위에 머물러 있는 나인 걸 어쩌겠소. orz. 

이게 다 최소 볼츠만까지 커버해야 나오는 벤제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