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계 이론과 카오스 이론 사이에는 뚜렷하고도 미묘하거나 부분적으로 무효한 동시에 역사적이고 입법적이며 적용상의 차이가 있다. 전자(비선형 동역학)를 전공한 동문들도 있지만, 후자는 유사과학으로 취급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내가 아직 실천적 영역에서 그 경계와 경우들을 섬세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이론적인 기본 차이만 알 뿐인데 더구나 이제야 나에게 본격적으로 중요하게 된 체계 이론에서는 후자의 영향력이 더 크다. 단순히 3년만 더 주시라고 하면 될 문제 같았다면 고민해 봤을 법도 한데, 그러지 못했던 이유다. 세미나는 커녕 토론 상대도 없는 고립된 형편에서 중학생 때부터였다고는 해도 교양 수준을 벗지 못한 자의적 판단만으로 심사용 논문에 반영하는 것은 위험하다. 어차피 할일이라 틈틈이 읽기는 계속하면서도. 오늘도 카우프만을 펼쳤다가 한숨이 나와서 뒤치락거리다 우연히 발견했다. 우리나라에는 재야 과학계라는 것이 거의 없다 하겠지만, 복잡성 이론을 연구하는 대학의 통계물리학자가 카오스 이론을 (아무리 글릭에 의해 대중화된 지 오래라고 해도) 포괄하면서도 표준 과학과 구별하는 방식으로 자기조직화 개념을 심지어 대중을 청자로 두고 강의를 하다니!
김.범준 2020-11-21 [openLecture@naver] '복잡한' 세상: <확실성의 종말> <혼돈의 가장자리>
물리학 하는 사람들이 보통 개방성이 강하기는 하지만 이토록 열린 태도는 어려운 만큼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카오스와 혼돈의 헬라어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어제 비로소 알게 되는 등... 단어 공부에 허우적대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끝없는 시간 소모에 지쳐 버린 와중이라 더더욱 감사. 처음에 분야별 용어집/핸드북/정전 목록부터 받으면서 차이를 실감한다는 해외 대학 학위자들이 그 차등을 유지하기 위해 담합하는 고의적 전략이라더니, 정말 그런 속셈인 거야? 당사자들이 본인들의 이야기를 해 준다는 것을 여기저기서 들으면서도 설마 여태 그런 수준이랴 의심했었지만. 자신이 얻어 온 것 이상으로 아직도 지원받지 못하고 있던 후학들의 형편을 실감하고 분개하여 필사적으로 끌어올린 오늘날의 이공계 수준. 내가 브레멘에서 음대생이나 미대생들과 달리 동경심이 아닌 우월감을 품었던 것에는 냉정한 현실이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각자가 연아퀸인 그 개인들을 보다가... 어이없을 뿐이다. 영어 논문만 쓰면서도 이런 마음을 베푸는데, 너무 대조적이면 조금은 안 찔리나? (그런 의미에서도 정암학당은 국가적 보루이다.)
서울대 교수님 질문 좋고. 존경스러운 뒷이야기를 들은 후광으로 더욱.
척도의 문제, 척도 없음의 의미의 문제, 학문적 수사법(은유와 매체)의 문제, 표상력의 문제. 모두 나의 문제들이다. 체력도 떨어지고 참고로만 본다고 생각했는데 원치 않게 선명한 거울에 비친 것은 각각 아리스토텔레스/헤겔/장하석, 니체/들뢰즈, 크래머, 비고츠키/해킹/드앤...이라는 다시 나의 첩첩산중 같은 일상 속 조금씩 알수록 더 어려워지는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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