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pril 26, 2021

Erwin Schrödinger (1944) What is Life 생명이란 무엇인가

Erwin Schrödinger (1944): 순전히 과학적인 관점에서 분노도 편견도 없이 생명을 탐구하느라 상당히 애를 쓴 내게, 우리 논의의 철학적인 함축들에 대한 나 자신의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견해를 덧붙일 기회를 허락해주길 바란다. 

앞의 논의에서 제시된 증거에 따르면, 살아 있는 존재의 몸속에서 일어나며 또한 그 존재의 정신적 활동, 자기의식 등에 대응하는 공간 시간적 사건들은 (그 사건들의 복잡한 구조와 물리학과 화학의 공인된 통계학적인 설명을 고려할 때) 엄격하게 결정론적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최소한 통계 결정론적이다.

내가 보기에 양자 불확정성은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과 달리 감수 분열이나 자연적 혹은 X선 유발 돌연변이 같은 사건들의 순수한 우연성을 강화하는 것(이 사실은 명백하고, 잘 알려져 있다) 외에는 생물학적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나는 물리학자들에게 이런 점을 강조하고 싶다.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 살아 있는 존재가 통계 결정론적이라는 것을 사실로 전제하자. 만일 '자신이 순전히 기계라고 선언하는 일'이 잘 알려진 불쾌감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모든 공정한 생물학자가 이 사실에 동의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 불쾌감이 동반되는 이유는, 이 사실이 직접적인 자기반성에 의해 확인할 수 있는 자유의지에 모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경험들 자체가 아무리 다양하고 이질적이라도, 그것들이 서로 모순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음의 두 전제로부터 옳고 모순되지 않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1. 내 몸은 자연법칙에 따르는 순수한 기계로서 작동한다.
  2. 그러나 나는 내가 결과를 내다보면서 내 몸의 운동을 지휘하고, 또한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운명적일 텐데, 내가 그 운동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느끼고 인정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직접적 경험을 통해 안다.
이 두 사실에서 추론할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내가 (가장 넓은 의미의 '나', 즉 한 번이라도 '나'를 느끼거나 발설한 적이 있는 모든 의식 있는 정신이) 자연법칙에 따라서 '원자들의 운동'을 통제하는 당사자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과정 같은 결론. 내 경우 소프트웨어 공학이 결정적이었다. 그 의미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러고 있는 것인데, 십 대 때 이미 고전이었던 Watson의 이중나선을 읽고 자란 나로서는 어리둥절해지는, DNA 발견 이전의 당시 상황에 적응하느라 주말을 통째로 날리고 또 날을 새우고도 쓰기는 커녕 읽기도 멈춘 현실 상황에 숨 막히는 압박이 한순간에 보람으로 돌아왔다. 지나치게 사적인 기쁨이라는 것이 문제인데... 큰 지도에서 필독서임을 알면서도 나름 펼치지 않고 버틴 몇 달 끝이었으나, 이 방면으로 평생 자제력이 오차 범위 내에서 절대 0도의 에너지 준위에 머물러 있는 나인 걸 어쩌겠소. orz. 

이게 다 최소 볼츠만까지 커버해야 나오는 벤제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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