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November 15, 2015

조용필 (Cho Yong-Pil , 1983) 한 오백 년 Five Hundred Years of Han

조용필 (1983) 한 오백 년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한 오백 년을 살자는데 웬 성화요 
뒷동산에 후원에 칠성단(七星壇)을 모고 우리 부모님 만수무강을 빌어 보자 
백사장 세모래 밭에 칠성단을 모고 님 생겨 달라고 비나이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한 오백 년을 살자는데 웬 성화요

청춘에 짓밟힌 애끓는 사랑 눈물을 흘리며 어디로 갔소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한 오백 년을 살자는데 웬 성화요 
한 많은 이 세상 냉정한 세상 동정심 없어서 나는 못 살겠네 
꽃답던 내 청춘 절로 늙어 남은 반생을 어느 곳에다 뜻 붙일고 
내리는 눈이 산천을 뒤덮듯 정든 님 사랑으로 이 몸을 덮으소 
 
지척에 둔 님을 그려 살지 말고 차라리 내가 죽어 잊어나 보리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런가 왜 이다지도 앞날이 암담한가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한 오백 년을 살자는데 웬 성화요 
십오야 뜬 달이 왜 이다지도 밝아 산란한 이내 가슴 산란케 하네 
청천에 뜬 저 기러기 어디로 가나 우리 님 계신 곳에 소식이나 전하렴 
으스름 달밤에 홀로 일어 안 오는 님 기다리다 새벽달이 지샜네


당시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충격에 얼어 버렸다. "한"이란 말을 처음 들어서 엄마한테 물었던 것과 그 답변도 뚜렷이 기억한다. 영문을 모르겠는데 가슴이 계속 아파서 무서웠다.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붙잡고 계속 살펴보시다 설마 노래 때문인가 놀라셔서 애가 벌써 저래서 앞으로 어떡하냐고 걱정하는 대화를 나누셨던 것도 생각난다. 아무튼 한이란 게 무엇인지에 대한 엄마의 설명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가서 그 뒤로도 몇 년 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몇 학년이나 올라가서까지 때때로 되새기게 되었다.

KBS 드라마로 본 <토지>에서 부모 잃고 우는 어린 서희에게 너무 엄한 할머니가 감쪽같이 숨기고 있는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역시 KBS 드라마 <하늘아 하늘아>를 보다가 <한중록>의 '한'이 그 한임을 알고 비로소 이해가 되는 느낌이었다. 이거 본다고 안 자서 매번 혼났다. 정말 재밌게 봐서, 지금도 미디어에서 정보석을 보면 사도세자와 겹쳐진다. 고학년 무렵에는 엄마의 설명이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내가 무지 좋아하는 단어가 되었다. 사전에는 없는 엄마의 설명을 따르자면, 그것은 약하지 않고 강해야 품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에는 용기나 용서와 인내가 필요하다. 아니라면 약간의 차이로 다른 것이 되어 버리니까. 

그리고 살풀이를 역시 TV에서 처음 보았을 때 그렇게까지 감동했던 것은 '한'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 그것도 이미 죽은 사람의 한을 아직 사는 사람이 대신 풀어 준다는 그 마음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마음으로 사는 삶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삶일 거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교실 뒷쪽에 모여 뉴키즈온더블럭의 스텝 바이 스텝을 연습할 때, 나는 어른이 되어서 내 맘대로 다닐 수 있게 되면 '살풀이'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더 자라서 조지훈의 '승무'를 처음 읽었을 때, 아빠한테 이 모든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너무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비록 이 나이에 다시 모교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었긴 하지만, 교내 기념 시비를 지날 때마다 그 앞 벤치에 앉아 아빠랑 종일토록 이야기하곤 했던 시간들이...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