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November 11, 2015

knowledge-claims

프랑스 철학이 프랑스의 철학이듯이, 영미 철학은 영국과 미국의 철학이구나.

형이상학의 역사-상대주의 비판도 맞고, 푸코의 형이상학 비판도 맞구나.

그러니까, 남의 상황들로 내가 마음고생할 필요는 없었던 듯.

그런데, 토박이 한국인인 나는 어쩌다 미국인이 되었을까? 내가 한국인인 것과 아무 상관없이 수리 논리가 정말 메타-언어라서? (현대 논리는 만든 건 독일인이지만.) 아니면 스필버그와 루카스에게 세뇌당해서? 아니면, 대강 푸코 식으로, 미국에 패전한 일본의 식민 지배를 당한 선조들의 손녀여서?

소속전공과 상관 없는 공부들. 양다리 걸치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체감하고 있다. 확실히 둘 다 망했다. 계획했던 바이지만, 계획적으로 망하고 있자니 내 미친 짓의 끝은 어디... 회복이 덜 돼서 미친 정도도 예전의 절반 정도 밖에 안 되니 불행 중 다행? 이제 또 한 풀 살 만하니 하려고 드는 게 작업이 아니라 공부인 걸 보니... 이럴 줄 알았으면 국내 진학하지 말았어야지. 방방.



Richard J. Bernstein 강연 (2013.02.13 Beloit College) The Pragmatic Turn


이렇게 안팎으로 또 종횡으로 자부심 넘치는 사람을 보니 참 신기하구나. 이렇게 사는 기분은 도대체 어떨까??? 하긴, 남들은 내가 나 좋아하는 거에 홀려 있으면 내가 나 잘났다고 생각하는 줄로 안다. 그런 때에는 나도 이런 식으로 보이는 건지도 몰라. 단지 이 사람은 존경스러워하고 나는 걱정스러워해 줄 거라는 차이. :p

아무튼 이 강연을 들으면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와 유사해지는 이 심정은 뭘까? 내용은 그동안의 인상들이 다 정리되는 것 같고,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데... 그런데 주어에 나는 명목상으로나마도 끼어들지 못한다.

성공한다 해도 would-be 사이비인 나는 그렇다치고, 진골 인문학도들은 이걸 도대체 어떻게 버티는 걸까? 수학과 알고리즘을 언어와 도구로 쓸 때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상황이다. 내가 그 사이 계몽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문계로 오니 마치 고아원에 있는 나를 입양해 줄 남인 가족을 거부감 반 기대감 반으로 기다리는 듯한, 왠지 서러운 기분이 든다.

이 땅의 인문학자들은 이걸 다 겪어 버린 후라서, 혹시나 사명감 같은 것을 지고 가고 있는 걸까? 알 수 없지만, 알겠는 건 아마도 그 길은 내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느끼게 하는 길인 것 같다는 거. 결국... 좋은 일이겠지.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