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29, 2009

술버릇 when drunk

술버릇이란 게 생겼습니다. 그다지 없었는데 말이지요. 숨겨 둘 글이지만, 보내지 못하는 편지이지만... 씁니다. 사는 동안 말이 너무 없단 소릴 자주 들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마음이 마음의 벽에 부딪혀 더 이상 오갈 길 없을 때, 안으로 안으로 먼 여행을 떠납니다. 

한 사람은 우주이니까요. 제 안에도 우주가 있습니다. 제 마음은 좁고 얕아 저 하나도 담아 내질 못하는데, 그래서인지 참으로 가벼이 멀리도 멀리도 그리고 여기저기 잘 다닙니다. 밖으로 흘러 넘친 슬픔 위로, 잊고 있던 그때로, 못 보았던 나에게로, 그 사람의 마음으로도... 시공을 넘어 훨훨 나는 동안 답답함이 풀려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생소한 자유로움과 뭔지 모를 역동이 살갗에 닿아 무서워지기도 합니다. 새로 발견한 것들은 따뜻하기도 하고 시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다쳤던 곳을 다시 다치고 자꾸 덧이 납니다. 

그래도 지나치기보다는 머무를 때가 더 많습니다. 자꾸 다치다 보면 덜 아파하게 될 것도 같습니다. 아니라도, 적어도... 알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왜 아픈 건지는. 얼마나 나빴는지는. 이미 견디지 못해 떠났던 여행이라서 그런지 더 견딜 수 있게 되지는 않습니다. 견디고자 한 적도 없고요. 견딜 수 있었다면 굳이 떠나지 않았겠지요. 그렇지만 피할 수 없단 것도 알아서, 비겁하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피하지 않기에 견디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해요. 

피한다면 조금은 덜 아프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것만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자랑은 아닙니다. 권할 생각도 없습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닌데, 제게는 이렇게 하는 것이 사는 것 같아요. 언젠가 죽을 테니까. 제자리에서 묻지 못했던 것들을 거기에서 물어봅니다. 생각보다 많은 대답들을 듣습니다. 하나하나 다시 들려 봅니다. 아무래도 여행을 좋아하나 봐요. 

그 기록입니다. 제가 쓰는 것들은. 제 목소리를 타고, 제가 이름 붙인 이들의 목소리를 타고, 제가 만났던 이들의 목소리를 타고. 주어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듣는 이도 없습니다. 아, 아니요. 제가 이름 붙인 이들은 사실 저만의 것은 아닙니다. 가만히 듣는 것을 넘어서 말을 걸어 오는 사람들로부터 생명을 얻어 살아갑니다. 저를 떠나. 

그것이 술버릇이 되어 버린 것이 유감입니다. 약해지기 위해서 마시는 술은 맛이 없거든요. 다만 부드러워져서 마음의 그릇이 넓혀지고 다른 영혼의 아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지요. 그러면 덜 아프니까요.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더 이상 견디지도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둘 때, 그렇게 모든 것을 비워 냈을 때에만이 쓰입니다. 꽉 차 있을 때에라면, 아마 글이 아니라 말로 남았겠지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마음이 멀리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오래 기다리곤 합니다. 

동화 속에서처럼 느림보가 이기게 될까요? 현실에서는 이 끝없는 되새김질에 지쳐 결코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승부를 피하지 않아야 패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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