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ne 14, 2017

昭和元禄落語心中 (Showa Genroku Rakugo Shinju) 쇼와 겐로쿠 라쿠고 신쥬

원작 만화 雲田はるこ (쿠모다 하루코) / 애니메이션 감독 畠山守 (하타케야마 마모루)
昭和元禄落語心中 (쇼와 겐로쿠 라쿠고 신쥬) [1기 13화/2기 12화 완결]
anime site: http://rakugo-shinju-anime.jp/
일본어 위키: https://ja.wikipedia.org/wiki/昭和元禄落語心中


2기 오프닝

2017-06-11/12 @방

우리나라 '만담'의 유래라 할 수 있는 일본의 라쿠고(落語)를 처음 알게 되었다. 절대 제자를 들이지 않는 것으로도 잘 알려진 라쿠고가 8대 야쿠모가 교도소에서 방금 출소한 막무가내 떼쟁이 전직 야쿠자를 도대체 왜인지 문하에 두기로 하고 동거를 시작한다. 그 집에는 야쿠모의 친딸이나 조카라기엔 서로 적대적 긴장감이 흐르고 혈연이 아니라기엔 서로 너무 막역해 보이는 기묘한 분위기의 코나츠도 살고 있다. 이 기발한 상황과 첫장면에서부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전통 라쿠고 <죽음의 신> 대목의 청감에 끌려 들어갔다. 내용은 나무위키에 잘 정리되어 있고. 작중작인 셈인 여러 라쿠고를 들으면서 일본어도 모르는 내가 눈물 퐁퐁, 웃음 폭발 하다니 신기했다. 말뿐 아니라 기층문화도 잘 알고 있어야 제대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텐데.      

"네가 하고 싶은 라쿠고가 뭔지 모른다면 내가 가르쳐주리?
너 자신의 라쿠고야."

첫째, 나와 스케로쿠의 라쿠고를 몸에 익힐 것. 전부 다 외워. 그러면 네 라쿠고는 알아서 완성된다.
둘째, 둘이서 라쿠고를 살려내는 길을 닦기로 했던, 나와 스케로쿠와의 못 다한 약속. 죽은 스케로쿠를 대신해서 이 구멍을 채워 줄 것.
셋째, 절대 나보다 먼저 죽지 말 것. 

스케로쿠와 키쿠히코(8대 야쿠모)는 성정이 상극이면서도 그래서인지 잘 어울렸다. 스케로쿠는 드세고 거칠고 키쿠히코는 차갑고 까다로운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둘 다 부드러운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 2기 후반부에서 그 같은 평가가 대사로 나오기도 해서 깜짝 놀랐다. 내 말이 ~

대승불교식으로 보자면, 인욕으로는 이미 보살인 스케로쿠가 정진 바라밀을 이루자면 지계가 우선임을 깨달았다면, 지계에 충실했던 키쿠히코가 보시 바라밀을 성취하고자 인욕 바라밀에 정진한다고나 할까. 둘은 서로에게 최고의 스승이었던 셈. 과거의 고통 때문인지 시작부터 이미 반야로 충만한 채로 등장하는 요타로는 그대로 정진 바라밀에 매진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우연히도 주변 사람들의 성불을 돕게 된다. 타고난 기질은 스케로쿠에 가깝고, 타고난 체질은 키쿠히코 쪽인 나도 나름대로 고군분투해 왔건만, 지금, 요타로가 나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있음을 알겠다. 갱생이란...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석, ... 어릴 때 좋아했었다! 처음 들었을 때 나도 유딩이었다! 어느 명절날 TV에서 구봉서와 배삼룡의 옛 전성기 때의 연기를 담은 흑백 영상을 잠시 보여 준 다음 두 사람이 직접 출연하여 이번에는 무대장비까지 갖추어 한 편의 연극으로 재연했다. 어린 눈에 웃겨서 마구 굴러다녔다. 이것의 원전이 있었다니! 돌아보니, 이때 처음으로 유머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이 죽는다는데도 웃고 있는 나에게 순간 섬뜩해지면서 죄의식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당시에 '죄의식' 같은 단어는 몰랐지만.) 그 고민의 결론으로 희극이나 코미디의 한 측면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에...


코나츠의 (아마도 여성 최초) 라쿠고 「寿限無」 공연 


그래서 나는 블랙 코미디를 보면서 죄의식 없이 웃는 사람이 되었다. 이게 또 한국에서는 가끔 불편할 때가 있지만. 사람은 준비없이 깊이 울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예상외로 크게 웃게 되면 그 체감이 자기 인상에 남아서 오래도록 거듭해서 떠오르게 되고, 그때에는 울음이나 웃음 자체는 잊은 채로 그 내용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신파나 풍자의 과장이 요구하는 울음과 웃음은 일회적인 욕구 해소가 아니라 메시지의 되새김질을 전달하는 끈질긴 에너지다. 반성과 각성을 고단함 모르게 자발적으로 진행시키기로 이만한 것이 세상에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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