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anuary 25, 2006

monaco (font)

굴림체의 폭정에 시달리다 처음 돋움체가 나왔을 때는 모두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듯 하다. 바탕체의 간지러움이나 궁서체의 엄청난 부담감은 굴림체의 불가피한 독점을 가져왔다. 친근하고 넉살 좋은 굴림체가 웹페이지를 독과점하지 않았던들 그렇게까지 미움을 받았을까? 무엇보다 굴림체 만큼 적응력이 뛰어난 폰트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굴림체는 특히 자음이 비대하여 가독성이 뛰어나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로 무식하고 아둔하다고 치를 떠는 민감한 미감의 소유자들에게 균형 잡힌 돋움체가 환영을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돋움체는 무언가 허허롭고 단조롭다. 글쓴이마저 고지식하고 맥빠진 사람으로 느껴지게 한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굴림체를 쓸 수 밖에 없었던 시절에 비하면 포스팅을 할 때마다 깔끔한 느낌이 들어 만족했던 것도 잠시. (물론 각종 폰트가 텍스트 에디터 기능의 애플리케이션과 웹브라우저의 인코딩 옵션을 통해 쏟아져 나왔지만, 지금 말하는 것은 주로 웹상에서의 이야기이다.) 돋움체의 최대 미덕은 겸손함이라고 생각하며 때로 자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빠르게 돌아가는 넷상에서 눈 돌아가기 바쁘게 쏟아져 내리는 데이터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돋움체는 안이하고 심심하다.

언젠가부터 영문을 단지 읽기만 하던 것에서 쓰는 것까지 별 저항감이 없어지고 나서, 나는 찬사를 금치 못하게 하는 수많은 한글 글자체를 다 알 수도 없었고 또 무엇 하나를 통용하기보다 여건에 따라 맞추어 쓰게 되었으므로 점점 관심이 없어졌다. Arial이나 Times New Roman의 식상함은 이미 옛날 이야기이다. Arial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Verdana에 대한 반가움은 오랜 기다린 만큼이나 컸다. 무언가 쫓기는 듯한 답답함을 주던 Arial 식의 배열이 시원시원하게 트여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Sans 시리즈는 아기 냄새가 나는 듯하여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특히 Comic Sans를 무지 좋아한다. 그러나 이것은 활용에 제약이 많다. 잡담이나 일기가 아니라면 우스워 보이기 쉽기 때문에.

그러나 Tahoma를 알고서는 모든 특성들을 적절하게 융합시켜 주는 완벽함에 뿌듯했다. 지금도 몇 가지 글자체들을 놓고 망설임이 길어질 때에는 그냥 Tahoma를 선택하는 것이 무난하다. 무엇보다 쉬이 식상해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은 적절한 무게감의 Tahoma는 가독성이 Arial이나 Verdana보다 오히려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 또한 Georgia를 상당히 선호하는 편이다. 사실 지금으로서는 Tahoma와 Georgia의 사용 빈도가 거의 반반이다. Courier는 알파벳을 사용하지 않는 언어의 사람들에게는 그 독특한 매력이 그저 황당하게 느껴질 뿐이다. 타자기의 서체를 살린 것이니 그들에게는 추억이 있겠지만. 그에 반해, Georgia는 마치 Times New Roman과 Tahoma이 장점을 섞어 놓은 듯 하다. 품위 있으면서도 고리타분하지 않은, 진지하면서도 활기가 있는. 요즘은 Helvetica와 Lucinda가 유행이지만, 나로서는 특별한 개성을 느낄 수가 없기에 별 감흥이 없다.

주종은 나도 Tahoma와 Georgia이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맥을 쓰면서 알게 된 Monaco이다.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아무 데서나 쓸 수는 없지만, Comic Sans의 귀여운 연약함을 완화시키는 똑 떨어지는 느낌을 준다. 발랄하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도 매력적이지만, 영문자 단 하나의 타이핑만으로도 그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글자체이다. 그래서 사적인 메일이나 채팅, 그외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글이 아니라 나 혼자만 보는 것에는 모조리 이 Monaco를 적용해 두고 쓴다. Book Antiqua가 biblophile의 기질이 다분한 나의 두번째 favorite이지만, 이것의 활용은 더욱 제한적이다. 무엇보다 글자크기가 어느 정도 이하로 작아지면 가독성이 급격히 떨어져 쓸 수 없는 지경이 된다.


Monaco는 Apple의 디자이너 Susan KareKris Holmes의 작품이다. 두 사람은 내가 프리젠테이션 슬라이드 용으로 좋아하는 Geneva의 작가이기도 하다. Kris Holmes는 서체 전문 디자이너이고, Susan Kare는 애플의 커맨드 키 등을 디자인한 GUI(Graphic User Interface) 분야의 개척자이다. 그녀의 홈피 http://kare.com/에서 폰트를 구입할 수 있다.

+
게다가 모노 스페이스이라서 코딩 계를 지배하고 있다. 가히 '프로그래머들의 폰트'라 할 만하다.


cf.
https://en.wikipedia.org/wiki/Monaco_(typeface)




  • mooni 2006/02/02 16:49 # 삭제 답글

    글씨체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익숙해졌다는 것이 더 무섭더군요...
  • aidos 2006/02/03 22:18 # 수정 삭제 답글

    익숙해져 버렸으면 정 주면 되지요, 뭐. 핫핫.
  • 빨간구름 2008/02/01 23:38 # 삭제 답글

    웹프로그램시작하면서 폰트를 그동안 많이 바꿔왔다. 그러다가 프로그램은 고정폭폰트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폰트깔아봤다 최근에 모나코를 썼었는데 첨엔괜찮은데 나중엔 영 가독성이 떨어진다. 고정폭폰트의 단점은 한글지원 안하는 에디터에서 잘 안써진다. 프로토타입이 아니라 개성이 강한게 많다. 하나있다면 courier new 가 있지만 옆으로 너무 뚱뚱하다.
    특이한 폰트로 가끔외도하지만 결국엔 가독성좋은 프로토타입으로 돌아간다.
    너무 밋밋해도 안되고 너무 꺽어도 안되고 너무 얇아도 안되고 너무 뚱뚱해도안되고 줄간격이 너무쫍아도 안되고
    Latha, trubuchet MS, tahoma, monaco 중에 지금 고민중인데 첫번째꺼나 두번째껄로 쓰게될거 같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